소설리스트

185화 (185/200)

― 한국의 전통을 지향하는 브랜드 아리raM.

― 세계 아리raM에 집중하다.

― 아리raM의 카피 의혹! 실력으로 소문을 잠재우다.

― 브랜드Han 한은샘 행방불명!

이때까지 마음고생을 시키던 디자인 카피에 대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이번에는 긍정적인 반응으로 우리 브랜드를 대하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대표님 말대로 카피브랜드라는 이미지는 없어질 거 같아요. 마르센느 쪽에서도 좋게 봐주는 거 같고요.”

“그러게요. 다행입니다.”

그때 화면 가장 마지막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만요!”

“네?!”

나는 그녀를 살짝 밀치고는 마우스를 기사 하나에 가져다 댔다.

퀴즈 온 더 로드 1.

* * *

어느덧 깊은 밤이 찾아왔다.

검정 세단은 파리를 벗어나 1시간 이상 거리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한은샘은 두려웠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다 와 가니까. 조용하고 계시죠.”

빛 하나 없는 이 길 위에서 오롯이 자기 혼자만 남겨진 거 같은 느낌.

그리고 안드레스의 죽음과 지금 상황이 겹쳐 보인다.

자신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때 차가 외곽의 공터에 멈춰 섰고 검은 정장의 사내는 한은샘을 차에서 내리게 했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아무것도 없는데.”

그때 반대편에서 다른 차량이 공터로 진입하는 게 아닌가.

반대편 차량의 라이트에 의해 암흑 같은 공간이 빛으로 채워져 나갔다.

공터는 한은샘이 생각한 이상으로 넓었고 주위에는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한은샘의 눈에 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회장님….”

“오랜만이네 한은샘 대표.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지?”

“네…….”

한은샘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현재 빌고 구걸해 이 상황을 잠시라도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살려주십시오. 시키는 건 다하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괜한 욕심 부렸습니다. 한국에서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하하하하.”

아르노는 실성을 한 듯 큰소리로 웃어 보이기 시작했고 뒤이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말이 좀 통할 거 같구만 안드레스 그놈을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말이야. 나는 나한테 기는 놈이 좋아. 목 빳빳하게 세우면 꺾어버리고 싶거든.”

한은샘은 그 말에 고개를 땅에 처박으며 말을 이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욕심도 없습니다. 사라지라고 하면 사라지겠습니다.”

한은샘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약자였다.

“나를 뭘로 보고. 죽일 생각은 없으니 대화를 해보지.”

“예!”

한은샘은 다시 차로 돌아갔고 아르노가 그의 옆에 조용히 다가와 말을 이었다.

“자네가 해줄 일이 하나 있기는 해. 시키는 대로 하면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밀어주지.”

다시 한번 다가온 달콤한 유혹.

한 번의 달콤함을 거래했기에 두 번은 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부탁인지 모르기에 두려웠다.

“무슨?”

“자네에게 내민 조건보다 더 좋은 걸 내어주지. 브랜드Han 투자에 더해 그룹사 다올의 총괄디자이너 겸직을 허가하지.”

다올의 총괄디자이너.

이 자리에 오른다면 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을뿐더러 브랜드Han도 다올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다올의 총괄디자이너의 브랜드가 아닌가.

달콤하다 못해 목을 타고 올라오는 짜릿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때, 하겠나?”

한은샘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예! 하겠습니다.”

한은샘은 다시 달콤한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르노의 부탁은 한은샘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 * *

본선 발표가 있고 난 뒤.

방송국 인터뷰와 미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아리raM에 집중되었기에 벌어진 헤프닝이었다.

그리고 다행인 건 그 관심이 좋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사람들 참 간사하네요. 가짜라고, 카피 브랜드라고 할 때는 언제고.”

류미리는 한탄스럽다는 듯 푸념을 뱉어냈다.

“그게 고객이에요. 그래서 브랜드는 이미지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차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요.”

“그래야겠어요. 다행인 게 가방 및 기타 제품 구매 취소 고객들에게 다시 구매하고 싶다고 연락 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네요. CS팀에 잘 응대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본선 진출 감사 이벤트 진행해주시고요. 보고서는 MD팀이랑 디자인팀, 기획팀이 상의해서 올려주세요.”

“네.”

나와 류미리가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현재 비서직도 겸임하고 있는 정희정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이었다.

“소호패션 CEO인 잔마르크 대표에게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잔마르크가 왜?”

“이번 에르맥스 본선 진출 브랜드끼리 이벤트를 할 생각인가 봐요. 작년 재고, 올해 시즌 재고 확인 좀 부탁한다더라고요. 그리고 잔마르크 대표님이 개별적으로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재고 쪽은 알아서 해주세요.”

“그리고 하나 더요. 박무식 디렉터가 한국판 VOKE 특별호로 아리raM을 올리고 싶다고 전달해왔습니다.”

“VOKE라 그건 보류해주세요. 엘리제 잡지사에서 개인적으로 연락받은 게 있어서요. 박무식 편집장한테 제가 직접 전달할게요.”

“그리고 여기 일주일 동안 스케줄표입니다.”

그녀는 나에게 스케줄을 정리한 서류를 내밀었다.

“방송국 위주로만 정리했습니다. 잡지사보다는 파급력이 쌔니까요. 현재 아리raM에 꼭 필요합니다. 이미지를 굳힐 기회에요.”

“아하… 네.”

“일단 내일 당장 퀴즈 온 더 로드에서 녹화 요청 왔어요. 이건 꼭 해야 합니다.”

그녀는 제발 해달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엄청난 파급력이 있다는 거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거부할 의사가 없었다.

“네, 하도록 하죠. 일정 나오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 부탁드릴게요.”

본선까지 한 달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이번 카피 논란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기 위해 그리고 아리raM을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미디어의 힘을 빌릴 거다.

“아 그리고 류미리 디자이너님.”

“네.”

“제가 방송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좀 비울 거 같거든요. 제가 없는 동안 류미리 디자이너가 본선 디자인 모두 확인해주세요. 최종 디자인 회의는 2주 뒤에 진행하겠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차질 없게 하겠습니다. 근데 방송 이외에 무슨 일이신데요.”

“아… 그게 개인적으로 알아볼 게 있어서요.”

한은샘의 기사가 아리raM 기사에 묻혀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지만, 마음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으로서 악감정은 남아있었지만, 갑자기 사라질 위인이 아니었다.

‘본선 티켓을 얻지 못해서 잠적했다고는 볼 수 없을 거 같은데.’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기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제가 부탁한 거는 어떻게 되었죠?”

“아… 잠시만요.”

정희정 디렉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말을 이었다.

“이상한 게 브랜드Han 반응은 기사랑 좀 다른 거 같아요. 시즌 준비한다고 바쁘다고만 하고.”

“대표가 사라졌는데 아무렇지 않다고요?”

“네. 제가 대표님 연락되냐고 하니까. 회사 보안이라고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그녀의 대답에 의문은 배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언론에서는 한은샘 대표가 사라졌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는데 회사 자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라. 일단 알겠어요. 가서 일 보세요.”

“네.”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리며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 * *

다음 날.

퀴즈 온 더 로드 방송 촬영이 있을 예정이었다.

“준비 다 하셨어요?”

“네.”

촬영은 아리raM 본사에서 이루어졌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여기요. 예상 질문과 답입니다. 실수하시면 안 돼요.”

나는 그녀가 내미는 서류를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없어도 될 거 같네요. 제 생각도 거기 적힌 것과 다르지 않아요.”

“네.”

나는 1층 로비로 내려갔다.

그리고 촬영을 시작하기 전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때 낯이 익지만, 초면인 사람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리raM 대표님이시죠.”

“아… 네. 반갑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요.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장소까지 마련해 주셨는데요. 로비가 참 이쁘네요. 디자인 회사라 그런가?”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나에게 서글서글하게 다가온 사람은 국민 MC로 유명한 유재순이었다.

깔끔한 차림과 서글서글한 인상이 사람을 평온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했다.

“곧 인터뷰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담당 피디로 보이는 여성이 소리쳤고 모든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자 오늘은 강남에 위치한 아리raM의 사옥에서 오프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자기야, 여기 분위기 엄청 좋지 않아.”

“그러게요.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거 같아서 신기하네요.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류 브랜드 본사라 그런지 휘황찬란합니다.”

“오… 휘황찬란이라는 단어도 쓰고 자기 발전했다 정말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진짜.”

“이거 왜 이러세요. 저 원래 지적인 사람인데.”

“왜 이러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캬캬캬.”

“됐어요.”

서로의 대화가 케미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파트너의 티키타카가 건물 자체의 분위기까지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었다.

“저희가 또 둘이서만 떠들었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은 특별하게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분들을 모셨는데요. 제가 이분들을 보니까 감개가 무량합니다. 자랑스러워요.”

“저도 저분들에게 빛이 나는 거 같았는데 역시 저희는 마음이 같네요.”

“아 그런가? 역시 우리는 작은 자기 우리 한번 외치고 시작할까!”

“그럴까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걸 안 외칠 수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게스트를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분인데요. 나와주시죠!”

컷!

순간 오프닝이 끝이 나고 담당 PD가 나에게 다가왔다.

“조금 전에 인사드렸죠. 퀴즈 온 더 로드의 담당 피디 유진아입니다.”

“네.”

“방금 보신 오프닝이 끝이 나면 아리raM에 대한 약력이랑 대표님의 디자인에 대한 설정이 영상으로 나갈 거예요. 그 뒤로 인터뷰 내용이.”

“네.”

“저희가 짓궂은 질문 해도 잘 대처해주세요. 아리raM에 관심이 많아서 질문 양도 상당하거든요.”

그녀는 나에게 아주 깍듯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하나의 그룹을 이끌고 있는 대표여서일지도 모르나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컷 사인과 함께 그들은 물이 흘러가는 대로 촬영을 이어갔다.

“모셔보겠습니다. 에르맥스 세계 패션 대회 본선 진출! 아시아 패션 어워드에서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준 아리raM의 수장 차진혁 대표님이십니다.”

순간 주위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나는 조심스레 그들이 준비해둔 자리로 이동했다.

“여기 앉아 주세요.”

“네.”

“이야. 화면보다 실물을 보니까. 웬만한 연예인도 울고 가겠는데요. 비법이 뭔가요?”

“작은 자기 그런 질문 실례야. 어휴.”

유재순은 손사래를 치며 나에게 사과하듯 고개 숙였고 작은 자기는 뻘쭘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아, 아니에요. 비법이라고 할 게 있을까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때 고개 숙이고 있던 유재순이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역시! 타고나신.”

“어휴… 과찬이세요.”

“이거 저희 부모님도 보고 계시는데. 어머니!”

순간순간 콩트가 날아들었고 그래서인지 내 긴장도 한층 풀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차진혁 대표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처음부터 매서웠다.

퀴즈 온 더 로드 2.

* * *

신지혜는 진혁의 전화를 받은 이후.

한은샘의 행적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간과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해 본다면 그가 없어진 날은 2차 예선 접수 날이다.

그로부터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녀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회장님. 모셔 왔습니다.”

“네. 들여보내 주세요.”

그가 없어진 날을 기점으로 예선 접수처 인근 CCTV를 모두 확인한 결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