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네가 서진의 동생인 걸 알고 왔네. 타아르 지부장에게 자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쳐오더군, 그래서 여기 오지 않을 수 없었지.”
“그랬군요.”
“서진이 없다면 그의 동생인 자네와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
정말 놀라운 이야기였다.
에르맥스의 최고 장인은 어느 브랜드라도 탐을 내는 장인 중의 장인이다.
수십억에 스카우트를 해가는 브랜드도 존재하는 엄청난 사람이었다.
‘좋은 기회잖아.’
에르맥스 세계 대회가 시작되면 실력 있는 가죽장인이 다수 필요하다.
현재 아리raM은 나와 다니엘, 지방 가죽장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밀려있는 물량으로 인해 지방 가죽장인들을 대회에 참여시킬 수는 없었다.
사실 이러한 이유에 다니엘의 형인 존커터에게도 부탁해둔 상태였다.
‘존커터를 부를 생각이었는데.’
“받아 주겠나. 자네 형과 함께 꾸려던 꿈을 동생과 함께 꾸고 싶은데.”
“당연하죠. 에르맥스의 최고 장인이라니… 근데 에르맥스 쪽에서 허락할지. 최고 장인을 그만두게 하지 않을 텐데요. 그만둔다면 최고 장인 타이틀도 내려놓아야 하고 은퇴 이후에 보장받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할 텐데요.”
“그건 문제없을 거 같네. 타아르와 약속을 했거든 내 이름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 물량을 맞춰주기로. 그 조건 덕분에 에르맥스 최고 장인 타이틀도 보존해주기로 했네.”
“그렇다면 당연히 좋습니다. 아리raM 쪽 생산의 참여에도 자유를 드릴게요.”
“고맙네.”
그는 나를 보며 부끄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니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성격이 조금은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부탁하네.”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중년의 신사는 볼을 붉게 물들이며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손을 풀고 작업을 이어갔다.
“PVC에 들어가는 패턴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특수프린팅 기계가 있어야 할 텐데.”
“PVC는 제도지에 폰트를 오려내서 유성 잉크로 패턴을 집어넣을 생각입니다.”
“임시방편으로 나쁘지 않은 생각인 거 같군. 내가 하겠네. 로고 사이즈로 인쇄해서 가져다주게.”
“네.”
우리는 일사천리로 서로의 일을 분담해 작업을 이어갔다.
카르데나스는 가방 본체의 앞판과 뒤판 가죽을 피할한 후.
보강제인 본택스를 가죽에 부착시켰다.
보강제인 본택스를 사용한 이유는 딱딱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옆면과 바닥면이 PVC라는 점을 고려해 앞판과 뒤판에 힘을 부여해야 했다.
본택스는 가죽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며 가죽에 단단함이나 두께감을 더해주는 용도로 사용한다.
“내부 가죽도 사피아노로 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안에는 어두운 톤으로 갈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회색계열의 플레인 가죽을 얇게 전체 피할해 부착시킬 생각입니다.”
“보강제는 더 두꺼운 걸 써야겠군.”
사피아노도 강한 힘을 밭는 가죽 중 하나다. 하지만 내부에 플레인 가죽이 들어가면 중심보강재가 더 중요해진다.
“근데 PVC가 투명해서 내부가 보일 텐데 색을 다르게 하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군.”
“오염도 때문입니다. 보이기 때문에 오염에 취약합니다. 그러니 어두운색으로 오염을 가려야 하거든요.”
여성 가방에서 문제가 되는 오염도를 줄여야 했다.
내부가 보이는 가방이기에 작은 오염에도 지저분해질 확률이 높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가죽을 잘 사용하면 센시티브하며 세련된 느낌을 강하게 줄 수 있다.
“결합만 하면 끝인가.”
이제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면들을 바느질로 합치면 가방이 완성된다.
근데 카르데나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무슨 문제 있나요?”
“문제는 아닌데. 이 방식이 좋지 않은 거 같은데.”
“뭐가요?”
그는 디자인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밖으로 바느질해서 엣지코드(바느질이 끝나고 단면을 고무 재질의 액체로 발라 마감 처리하는 방법)를 하는 거보다 안쪽으로 바느질한 뒤에 뒤집는 게 더 깔끔할 거 같아서 말이야. 테이핑 작업이 손이 더 가긴 하지만 시간은 여유로워.”
그의 말처럼 테이팅을 추가시켜 뒤집는다면 바느질 선이 보이지 않아 더욱 깔끔한 가방이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PVC를 사용하고 있기에 뒤집는 가방은 불가능에 가깝다.
연한 PVC라고 할지라도 가죽과는 다르게 늘어나는 성질이 아닌 끊어지는 성질이 강하다.
잘못하다가는 프린팅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
“PVC라 뒤집는 형식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PVC에 피할을 하고 보강하는 건 어때?”
“그런 게 가능한가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방법이다.
PVC를 보강한다니 가죽과는 다르게 미끄러운 성질을 가진 PVC에 보강이라니.
접착제를 바른다 해도 흘러내릴 게 분명했다.
“믿어주겠나?”
“네?!”
그는 자신 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근데 시간이 얼마 없어요. 실패하면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 말게.”
에르맥스 패션 세계 대회 4.
* * *
내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재단된 PVC를 자동피할기에 가져다 댔다.
자동피할기는 굉음을 일으키며 PVC를 빨아들였고 얇게 깎아 나갔다.
“찢어질 거 같은데….”
그의 실력을 믿는 나조차도 불안할 정도이니 얼마나 얇게 깎아 나가는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최소 두께 0.2mm 이하로 얇게 피할을 하는 건 질긴 인조 가죽으로도 어려운 작업이었다.
“와….”
그런데 내 걱정과는 달리 그는 PVC 4면을 아주 깔끔하고 균일하게 피할하는 데 성공했다.
“대단하네요.”
“믿어준 덕분이지.”
카르데나스는 피할된 4면에 사선 타공을 내기 시작했다.
“바느질 시작하겠네.”
“보강 없이 바로요?”
“바느질이 끝나고 보강할 거야 보고만 있으라고.”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남기고는 뭉툭한 가죽 바늘에 링카블레(에르맥스 가방에 사용되는 고가의 천연 실)를 연결하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예술이네.”
에르맥스의 바느질은 절대 중간에 이음을 만들어 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가방 하나의 퀄리티를 생각한 정교하고도 귀찮은 작업을 몸소 실천하는 행위였다.
그는 양팔 길이보다 더 긴 실을 연결해 바늘에 연결해 바느질을 이어갔다.
마치 그 모습은 실이 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타원형을 만들어 나가는 거 같았고 진정한 장인인 그는 실의 작은 엉킴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천연 실은 본성에 따라 엉킴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의 엄청난 집중력과 고난이도 테크닉이 실의 본성까지 뛰어넘고 있었다.
“와…….”
“저기 봐!”
“저 사람 에르맥스 최고 장인이잖아!”
“정말!”
카르데나스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감탄사가 터졌고 그를 알아본 몇 명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선 타공의 바느질을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하다니 최고 장인다워.”
가죽공예는 실이 들어가는 타공에 따라 실땀의 모양이 달라진다.
타공 종류로는 다이아몬드, 사선, 원형이 주를 이루며 그중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이 사선 타공이다.
사선 타공의 모양( / )은 이러한데 바늘이 정확히 위에서 아래로 면이 넘어가면 다시 아래에서 위로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야 한다.
이 작업은 정교해야 하며 틀어지는 순간 사선이 아닌 일자의 실선이 나타나기에 퀄리티가 매우 떨어진다.
다시 수정을 하다가는 천연 실이 풀릴 수도 있기에 명품가방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만이 퀄리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는 최고 장인답게 한 번의 실수 없이 긴 옆면과 바닥 전체를 바느질해 나아갔다.
‘속도가 기계 같잖아.’
“대단하네요.”
“뭐 이 정도야.”
나는 그를 격려하며 바느질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의 예술 행위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때 타미가 다시 마이크를 통해 종료 시각을 알려왔다.
“30분 남았네!”
* * *
안드레스는 새로운 버전의 워터백 디자인을 이번 대결에 사용할 예정이다.
워터백은 2002년 샤네르와 에르맥스 가방의 매출을 모두 뛰어넘은 최고의 가방 디자인으로 알려진 레전드 디자인이다.
인드라는 이번 시즌에 워터백을 리뉴얼, 업그레이드된 디자인을 세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었다.
“내 승리야.”
그는 자신 있었다.
리뉴얼된 디자인은 인드라의 디자이너들이 6개월을 매달려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고 디자이너 사이에서 벌써부터 엄청난 호평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출시 전에 홍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는 미유미유의 제작총괄에게 자신의 디자인을 내밀었다.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을 받아든 미유미유 제작총괄은 의아한 표정으로 트레싱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만드는 거야? 뭐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길 자신 있는 거지?”
“그럼요. 업그레이드된 워터백 디자인입니다. 질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미유미유 제작총괄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네. 만들어 보지. 가죽, 컬러, 내부 디자인까지 그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지?”
“네.”
지금 미유미유 제작총괄은 알게 모르게 인드라를 선택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수십 년을 제작에 몸담았고 푸라다와 미유미유의 가방 디자인 수십 개를 만들어 온 사람으로 견문 또한 넓다.
그런데 자신이 본 업그레이드된 워터백에서 이상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경험상 이런 경우 자신이 속한 브랜드에서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을 카피하거나 실수로 일부분을 도용할 때 이런 느낌을 받곤 했다.
‘찝찝한데. 회사였으면 보고 했겠지만… 하 어쩔 수 없나.’
“일단 만들겠네.”
미유미유 제작총괄은 가방 디자인 그대로 가죽을 재단하고 피할을 마친 후.
보강제를 붙이던 그때 이 가방과 매우 흡사한 가방이 떠올랐다.
‘버킨백이다. 흡사하군.’
그의 눈과 손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바로 에르맥스의 버킨백이었다.
자신이 만들고 있던 워터백은 너무 변형되어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칭송받는 버킨백을 닮아있었다.
분명 버킨백의 이미지가 강한 디자이너의 실수이거나 고의로 일부분을 변형시켜 카피했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워터백 본연의 아름다움은 사라져 버렸군. 안타까워.’
미유미유 제작총괄은 잠시 도구를 내려놓고 아리raM의 가방을 제작하는 이를 바라봤다.
‘…….’
순간 놀라고 말았다.
멀리서 얼핏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장인이 가방을 만들고 있었다.
‘젠장 실수했군.’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실수로 곧 인드라라는 브랜드가 패션 시장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오랜 시간 패션 세계에 몸담으며 느낀 점이 바로 한계를 맞닥뜨린 브랜드가 실수나 고의로 표방과 카피를 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본연의 디자인을 뛰어넘기란 더 힘든 법이지.”
“네?!”
“아닐세.”
* * *
바느질을 마무리한 카르데나스는 PVC와 가죽을 결합시킨 후 보강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가져왔다.
“글루건?”
“맞네. PVC 자체에 발라버리면 쉽게 떨어지지만 이걸 실 위에 바르면 아주 단단하게 고정되지. 그리고 비슷한 물질이기에 PVC를 잡아줄 거야.”
“좋은 아이디어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예전에 한 번 실험해본 적 있어. 이런 PVC 재질이 집에 남아서 말이야.”
“그랬군요.”
그는 다시 작업을 이어갔고 어느덧 가방이 완성되어 갔다.
이제는 가방을 뒤집어 까기만 하면 완성된 가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심….”
그는 늘 하던 대로 아주 깔끔하게 가방을 뒤집었고 완성된 가방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가방이야.”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디자인 끝내주는구만.”
우리 둘은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마치 벌써 승리의 축배를 건네듯 말이다.
그때 마이크를 통해 제작 시간의 종료를 알려왔다.
“모두 마무리하게 그리고 두 디자이너는 완성된 가방을 들고 단상 위로 올라와.”
내가 자신 있게 완성된 가방을 들고 단상으로 걸어 나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아리raM 가방 디자인 좀 봐. 대박!”
“뭐야… 소름 끼쳐.”
“그러게. 옆면과 바닥면을 일체화해서 홀로그램 느낌을 준건가.”
“아리raM 디자인 대박인데.”
“그러게. 올해 들어 내가 본 가방 중에 가장 트랜드한 가방 같아.”
작게나마 들려오는 평가 속에 아리raM 가방의 디자인에 대한 호평이 들려왔다.
타미는 술렁이는 사람들을 진정시킨 뒤 경기 종료를 알려왔다.
“다들 조용!”
내 뒤를 이어 안드레스도 가방을 들고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왔다.
이제부터는 평가만이 남은 상황.
타미는 공평한 평가를 위해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