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을 내밀자.
약간의 힘이 가중된 악력으로 내 손을 맞잡았다.
“별말씀을요. 아리raM 파티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비행기 표에 숙박까지 모두 대단하십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그래야죠.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네.”
넷은 이번 일을 위해 마련된 비즈니스 룸으로 장소를 바꾸었다.
“문서에 대해 확인부터 하고 싶은데요. 지금 본사에서도 난리입니다. 갑자기 엄청난 게 튀어나와서요.”
“아, 그런가요. 근데 죄송하게도 아직 한 분 더 오셔야 될 거 같습니다.”
“누구 말이시죠?”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마실 거 준비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차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고 여러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나와 타아르는 대회 방향과 형식 그리고 나라 간의 지원 등을 논의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비즈니스 방으로 정희정 디렉터가 찾아왔다.
“회장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그래요. 이쪽으로 정중히 안내해주세요.”
“네.”
장희정의 말을 흘리듯 들은 미카엘은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말을 이었다.
“설마 LVMH 회장님 말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그렇군요. 당황스럽네요. 그런 거물급 인사가 한국까지 찾아오다니.”
거물급이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은 위인이긴 하다.
‘이 사람 신 디렉터까지 보면 눈알 튀어나오겠는데.’
“회장님, 손님 들어가십니다.”
“네.”
정희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베르나르 아르노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비즈니스 룸의 문을 활짝 젖히고 들어왔다.
에르맥스 타아르를 비롯해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감사의 뜻이었다.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르노 회장님.”
“큼….”
아르노는 내 태도를 보며 혀를 차듯 말을 이었다.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사업가는 사업가네 자네는 참 나를 즐겁게 해.”
“칭찬으로 생각하죠. 오늘의 적이 내일은 아군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저도 행동거지를 달리하는 겁니다.”
나는 이제 아리raM이 아닌 내 앞의 거대한 산을 넘을 것이다.
내 복수와 가족들의 원한을 갚을 기회를 잡아야 한다.
아르노는 자리에 앉기 전 주위를 살폈다.
“아버지는 잘 계시지?”
“예, 잘 지내십니다.”
“네놈도 이놈이랑 한패였다니 새삼스럽구나.”
“비즈니스 관계죠.”
타아르와 아르노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 보였다.
아니 타아르보다 타아르의 아버지인 에르맥스 회장과 깊은 사이로 보였다.
아르노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문서부터 보고 싶은데?”
“그래야죠. 모두 그것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비즈니스 룸 안에 있는 금고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무통을 꺼내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
순간 아르노의 눈빛이 얇고 싸늘하게 변했고 타아르는 저것이 무엇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무통을 바라봤다.
BCA 회장 대리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 물건이 어떤 가치를 지닌 지 알고 있는 듯했다.
“꺼내겠습니다.”
준비된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나무통의 입구를 개봉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서를 꺼내어 BCA 대리인들 앞에 문서를 내밀었다.
“문화재 감정원도 대기 시켜놓았습니다. 진품 확인도 거친 상태구요. 은행에서 유효한 문서인지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서를 천천히 확인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상하이 지부장도 대리증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섬세하고 꼼꼼하게 문서를 확인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둘은 문서를 다시 교환했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문서를 나에게 돌려주었다.
“90세기에 덕화은행에서 발급한 문서의 진본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대리증서도 대한제국의 황제와 덕화은행장이 함께 작성한 게 맞구요. 현재 대리증서의 소유권은 차진혁 회장님에게 있습니다. 더 궁금한 거 있으십니까?”
“가치는 어느 정도 될까요?”
내 질문에 아르노와 타아르까지 모두가 미카엘의 대답에 집중했다.
“정확한 정보는 본사에 들어가 봐야 알 거 같습니다. 금의 양으로 봤을 때 물가 상승률과 금 변동률을 모두 계산해봐야 해서요. 최소 300조 많게는 400조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투자에 따라 더 많아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미카엘을 말을 얼버무리며 나를 바라봤다.
“어떤 용도로 쓰일지는 모르나….”
그는 차마 뒷말을 잊지 못했다.
‘엄청난 건이긴 하지… 은행 입장에서는 내놓는 거보다 지키는 쪽이 좋을 테니.’
“투자에 관한 상황이라면 현재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아직 제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진짜 주인을 이제 찾을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모험심 가득했던 미카엘은 어디로 가버리고 사뭇 주눅 든 모습이 역력했다.
만약 한 번에 이 많은 돈을 은행에서 빼버린다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400조라니… 웬만한 대기업그룹의 가치와 맞먹네.’
패션그룹이 아닌 더 거대한 대기업그룹 하나의 가치와 맞먹는 금액이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이었고 모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자금이었기에 아르노의 눈빛은 더욱 탐욕으로 가득 찼다.
“좋아! 모든 게 진짜라는 게 밝혀졌으니 약속을 지켜야 할 거야.”
“그럴 겁니다.”
말이 끝나고 문서를 나무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정희정에게 호출에 준비된 물건을 방으로 가지고 오게 시켰다.
“금고?!”
직사각형의 쇳덩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금고는 특수제작된 금고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 두 열쇠만이 이 금고를 열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르노 회장님이 다른 하나는 제가 가지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나는 정중하게 아르노의 의사를 물었다.
하지만 역시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큰소리로 반박했다.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지! 한두 번 당한 게 아닌데 말이야. 만약 열쇠가 더 있으면 어떻게 하지?”
“그럼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열쇠는 정말 이 두 개뿐입니다.”
“흠…….”
아르노는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금고를 내가 가지고 가도록 하지. 열쇠는 딴 놈한테 양보하겠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럴 거 같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내 표정을 느낌 아르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자신이 말을 했지만, 너무 뻔뻔했다고 느낀 것이다.
“좋습니다.”
“뭐?! 뭐라고.”
“좋다고요. 금고는 아르노 회장님이 가지고 계십시오.”
아르노는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금고를 앞발굽으로 툭툭 쳤다.
“무슨 수작이야?”
“수작이라니요. 보관만 잘해주신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근데 큰 충격이나 임의로 손상을 줄 시에는 안에 설치해둔 장치가 문서를 통째로 불태울 겁니다.”
아르노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타아르 지부장님도 절대 열쇠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럼 이 금고는 평생 열 수 없을 겁니다.”
또 다른 리스크를 배제하기 위해 BCA 은행 사장 미카엘에게 말을 이었다.
“이 문서의 존재는 비밀입니다. 소문이 퍼질 시에 BCA 은행의 신용과 관리 능력에 대해 물을 겁니다. 제 말의 깊은 뜻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입니다.”
어느덧 파티 시간이 다가왔고 정희정이 비즈니스 룸으로 찾아왔다.
“회장님 귀빈분들이 기다리십니다. 곧 파티 시작합니다.”
“알겠습니다. 자 모두 나가시죠. 회장님은 금고 잘 챙겨가시고요.”
나는 비즈니스 룸을 빠져나와 음악 소리를 따라 파티장으로 이동했다.
내가 파티장에 도착하자.
순간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가 뚝 하고 끊기며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고개 숙여 파티 참여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전한 후 객석을 가로질러 단상 위에 올라섰다.
‘모두 놀래켜 줘야겠군.’
에르맥스 패션 세계 대회 1.
* * *
뜨거운 갈채와 시선을 받으며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 위로 올라섰다.
단상 위에는 정희정 디렉터가 준비해 놓은 인사말 페이퍼 한 장이 놓여 있었고 밑에는 작게 이대로만 읽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내가 이때까지 담아둔 진심을 모두에게 전달할 생각이다.
“모두 아리raM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파티에 참여한 손님들에게 고개 숙였다.
여기는 한국이었고 한국의 예를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순간 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주위를 한 번 더 훑어봤다.
‘나쁘지 않네.’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모두 긴 비행시간을 견디며 이 파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곳까지 초대한 이유 중 하나는 오늘부로 우리 아리raM이 그룹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중국의 타이거, 일본의 이브가 하나 되어 동북아시아의 패션 위상을 드높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리raM 그룹은 한 발 더 진전시켜 유럽과 미국 시장으로 확장할 겁니다. 현재의 명품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겁니다.
순간 내 발언에 인상이 굳어진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그럴 것이 한정된 시장 속에서 밥그릇을 나눠달라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여기 모인 귀빈 여러분들에게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최근 타아르 지부장님에게 부탁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러한 이유에 오늘 이 자리에 에르맥스 패션 세계대회 주최자인 에르맥스 타아르 지부장님이 와계십니다. 항간에 소문을 해명하길 원하시더군요.”
순간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 졌고 에르맥스 타아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이들 대부분이 오늘 이 파티에 참여하는 에르맥스 타아르와 아르노, 신지혜를 보기 위해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도 드문 일이겠거니와 잠시라도 안면을 튼다면 비즈니스의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모든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 위험해….’
개인적으로 이 물건을 사용한다는 게 정서상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문서의 진위를 숨기기로 결정했다.
“패션대회 주최자이자 에르맥스의 뉴욕 지부장인 에르맥스 타아르 지부장을 모셔보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편에서 에르맥스 타아르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는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나는 그에게 단상을 내어주고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반갑습니다. 에르맥스 뉴욕지부장 에르맥스 타아르입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지라 이 자리를 빌리기 위해 아리raM 회장님에게 부탁했습니다. 현재 언론을 통해 뿌려진 소문은 과장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짓은 아닙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습니다.”
순간 그의 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질문들이 쏟아졌다.
언론인들은 무대 앞까지 다가와 타아르에게 말을 이었다.
“어떤 상입니까? 거짓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밝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타아르는 연기를 하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상은 오직 우승자에게만 공개할 생각입니다. 제가 전달할 말은 끝났습니다. 더는 거짓된 진실이 퍼지지 않길 바랍니다.”
그를 어떠한 질문도 답도 하지 않은 채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파티는 참여 못 하겠네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네, 다음에 따로 뵙죠.”
그는 순간 언론인들이 둘러싸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들을 밀치고 파티장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타아르는 잠시 자리에 멈춰서 뒤를 돌아보며 언론인들에게 한마디 말을 전달했다.
“이거 하나만큼은 전할 수 있겠네요. 최고에게 최고의 상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니 참여하는 브랜드 모두 최선을 다해주세요.”
‘비즈니스의 대가가 맞긴 하네. 그럼 나도 한 숟가락 거들어볼까.’
타아르의 말이 끝나는 순간.
웅성거리던 파티장이 다시 한번 조용해 졌다.
사람들은 천하의 에르맥스 차남이 저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상에 대한 명확성을 심어 줬다는 것에 놀라워했고 환호했다.
나는 걸어가는 에르맥스 타아르에게 말을 이었다.
“타아르 지부장님! 에르맥스 세계대회에 아리raM 그룹 브랜드 전체가 참여하겠습니다. 승인하겠습니까?”
타아르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패션 전쟁의 서막이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인상은 굳히는 몇 명의 인원을 다시 발견했고 그들 사이에는 내가 꺼려하는 인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브랜드 인드라의 수석디자이너 안드레스 그리고 같은 계열의 브랜드 인&아웃의 총괄디자이너 준이치.
‘준이치가 인&아웃에 있었다니 의외네.’
준이치는 켈링의 투자를 받아 자신의 브랜드 트라이 앵글러를 런칭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가 바닥을 쳤고 켈링과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소송당해 패소하며 파산했다고 들었다.
‘능력이야…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