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200)

“거기 누구냐!”

순간 왕이 창틀을 바라보며 소리쳤고 근위병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근위대장이 문밖에서 말을 이었다.

“들고양이가 있었사옵니다.”

“그런가…. 물러가 있게.”

“예, 전하.”

하지만 왕은 내심 찝찝했다.

스치듯 바라본 그곳에 들고양이라 하기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과민한가 보오.”

“아니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침선장 일본은 세자의 즉위식을 일본의 정복으로 행할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오.”

“준비는 끝났습니다. 즉위식 날 저희가 근위병과 함께 세자전하에게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의복을 입힐 것입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업을 이루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뒷이야기를 이었다.

“온전히 일 끝이 나면 이 문서를 들고 상해에 있는 덕화 은행으로 찾아가게 그리고 그곳에 보관된 자금으로 러시아에 도움을 청해 군사를 이끌고 와주게나. 러시아에 도착하면 이 선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도와줄걸세.”

“알겠사옵니다.”

침선장이 받아든 나무통은 분명 내가 발견한 개인금고 문서일 것이다.

순간 장면이 바뀌며 그날의 장면이 나타났다.

침선장이 죽임을 당하던 그 날 말이다.

“자수장!”

그날의 시점이 침선장이 아닌 자수장에게 맞춰졌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침선장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수장의 모습.

그는 매우 초조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자수장의 수하로 보이는 자가 나타났다.

“있던가?”

“없었습니다. 잘못 들으신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왜 친구를 배신하고 저놈들에게 밀고하였는데.”

자수장은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멀리서 쓰러진 침선장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내가 금에 눈이 멀었구나.”

순간 영상은 끝이 났고 모든 이야기가 차례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즉위식과 보물은 나라 잃은 왕의 새로운 타개 점이었다는 것과 이 모든 발단은 배신자인 자수장 때문이었다.

“만약 자수장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즉위식은 온전히 이루어졌을 것이고 왕실의 권위는 다시 회복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침선장이 살아서 자금을 가지고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분명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영상은 끝이 나고 내 눈앞에 다시 동굴의 모습이 드리웠다.

“노다 헤이치로!”

순간 분노가 터져 나왔다.

분명 노다 헤이치로 회장은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 개인금고의 존재도 알고 있었겠지…. 직접 들어야겠어.”

덕화 은행은 상하이에 있는 독일계 은행으로 현재는 BCA 은행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도 이 문서가 충분히 그 효력을 발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런 천문학적인 금액이 지금까지 예치되어 있었다면 더 큰 금액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그제야 모두가 왜 이 보물들을 찾아 헤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비밀이 이거였네….’

나는 문서를 다시 보관함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니엘과 박종식에게 이곳을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 보물들을 그대로 두 실급이니까?”

“나라의 보물입니다.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는 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겠습니다.”

박종식과 다니엘을 내 말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박종식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 어디 계시죠?”

“일본에 계십니다. 그날 이후로 파리는 위험할 거 같아서 일본으로 바로 이동하셨습니다. 장료이 도련님도 함께 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는 한국 일을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여기 일은 모두 비밀로 해주세요.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한테도요.”

박종식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궁금한 게 많지만 모든 일에 순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다 헤이치로 회장은 자신이 이루어온 모든 걸 고스란히 나에게 넘겨주었다.

욕심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수장의 배신은 모른다는 건가? 아니면 이 문서의 존재를 모른다는 건가? 아닐 거야 오랜 세월 이걸 쫓아 온 거라면 이 문서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지.’

점점 의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다.

진정한 보물 6.

* * *

“감정사는 언제 오는 거야?”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진품이 확실해 보였다.

뿜어져 나오는 도자기의 빛깔과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그려진 그림까지.

하지만 파리에 돌아온 이후부터 아르노는 계속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하형선이 개입돼 있다고 하지만 진혁이 순순히 자신에게 보물의 위치를 알려준 거부터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회장님 도착했다고 합니다.”

“알겠어. 바로 감정 시작하라고 해.”

아르노는 직무실을 빠져나와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보물 대부분을 본사 지하에 은밀히 보관해 두었다.

그곳은 오랜 세월 모아둔 각국의 고미술품과 보물급 문화재가 한가득 쌓여 있는 곳으로 어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긴히 들여온 물건들이니 세심하게 감정하게.”

“네.”

감정사는 한국에서 가져온 보물들을 하나하나 감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흠… 하….”

오랜 시간 감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베르나르 아르노가 감정사에게 말을 이었다.

“어떤가? 내가 정말 신중을 기해서 공수한 물건들인데.”

“회장님 그게….”

감정사는 진땀을 흘리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왜?!”

“이 물건들 모두 가품인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감정한 것 중 진품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품? 가짜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제가 얼핏 보기에 모두 카피된 모조품인 거 같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이긴 합니다만… 기법은 사용한 모조품입니다. 근데 또 신기한 게 원재료만큼은 최상입니다. 누굴 속이기에 아주 좋게 만들었습니다.”

아르노는 굴욕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보물들을 자랑해서인지 얼굴에 열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무슨 개소리야. 어딜 봐서 가품이라는 거야!

아르노는 감정사가 들고 있는 도자기 한 점을 빼앗아 자세히 바라봤다.

유약의 발림과 빛의 투과되는 아름다움이 사람을 홀릴 정도인데 가품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도자기가 가품이라니.”

“모두 가품이 확실합니다. 지금 들고 계신 청자 도자기의 유약은 최근에 복원된 고려청자의 기법과 흡사합니다. 엄청나게 숙련된 장인이 만든 거 같습니다.”

고려청자의 색은 계승의 대가 끊기며 명맥을 잊지 못해 한국에서도 아직 그 아름다움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한국의 장인들이 힘을 합쳐 최대한 흡사하게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는 끌어올린 상태였다.

순간 아르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차진혁!”

아르노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들고 있던 도자기를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나가….”

“예, 어?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감정사는 불똥이 튈 게 두려워 재빠르게 보관소를 빠져나갔고 비서관은 고개를 숙이며 아르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진혁 그 개자식 잡아 와 당장!”

“회장님….”

“왜 못하겠어?!”

“차진혁 그놈 이제 위치가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저희가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화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젠장!”

그때 아르노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야!”

“회장님 왜 남의 물건을 다 훔쳐 가세요. 제가 공들여서 장인들에게 부탁해서 모으고 있던 건데. 하형선만 잡아가시면 되지.”

“너 이 개자식! 어디야!”

* * *

에르맥스 타아르는 대회를 공식적으로 개최할 것을 유명 언론사에 모두 알렸다.

이후로 에르맥스를 지탱하는 주주들과 고정고객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산 하나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지부장님.”

“들어와.”

타아르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기획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와 말을 이었다.

“시키신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가을 시즌이 코앞이라고 참가 못 하겠다고 회신이 왔습니다.”

“하… 그래. 다른 곳에서는?”

“비슷한 답변입니다. 위에서 결제가 아직 안 났다거나 가을 패션위크 준비 때문에 대회 참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

타아르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의 참여를 권하고 있다.

하지만 상위 티어의 브랜드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했다.

괜히 대회에 참여해 자신보다 급이 낮다 생각한 브랜드에 패한다면 이미지만 실추될 뿐이기에 꺼려하고 있는것이다.

“겁쟁이 놈들! 도전정신이 없어.”

“지부장님 에르맥스도 리스크가 큽니다. 다시 고려해 보는 거 어떠십니까? 시간이 지나면 사장님 마약 사건도 잠잠해질 텐데요.”

“…….”

사실 타아르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러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약속이 되어 있었고 진혁이 아니었다면 브랜드이미지가 더 악화되어 브랜드 자체의 조망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에 약속은 꼭 지키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다행인 건 켈링 그룹에서는 경영진 회의에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타아르는 순간 신지혜가 떠오르며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너도 무슨 속셈인지 궁금하다. 아무리 차진혁의 부탁이라고 하지만….’

켈링 그룹에 속한 구짜와 부테가, 발렌시, 생로량 같은 경우 명실상부 명품 중의 명품으로 누구에게나 알려진 브랜드들이다.

이런 브랜드가 모든 걸 내려놓고 대회에 참여한다니 주최한 타아르도 꺼림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LVMH인데….”

끊임없이 LVMH 그룹에 푸시하고 있지만 좋은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

“아르노 회장 쪽은 어때? 계속 연락 취하고 있지?”

“LVMH 소속 브랜드는 모두 거절 의사를 전달해 왔습니다. 그리고 루이바통은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더니 갑자기 안 되겠다고 연락이 왔고요. 아 그리고 루이바통의 총괄디자이너자 CEO인 바쟐 디자이너가 오늘부로 경질당했습니다.”

“뭐?! 갑자기 왜?”

“이유는 아직 모르겠고 인터뷰 내용은 오픈화이트를 더 크게 성장시키기 위해서랍니다. 좋은 소식이 오픈화이트도 대회 참여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계속 푸시 넣어.”

“네, 알겠습니다.”

명품 브랜드의 절반이 LVMH 소속이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브랜드가 대부분이기에 나서는 이조차 없었다.

괜한 나서서 밉보이기 싫은 것이.

“젠장! 머리 아프네. 샤넬과 다올, 루이바통은 꼭 참여해야 하는데.”

타아르는 에르맥스의 실추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브랜드 5개를 뽑았다.

샤넬, 다올, 루이바통, 구짜, 발렌시다.

현존하는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소속되어 있고 브랜드 이미지 또한 에르맥스에 뒤처지지 않는다.

이 브랜드들을 모두 꺾고 정상에 오른다면 몇 년 아니 몇십 년은 최고의 브랜드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가 봐.”

“네.”

기획팀장이 자리를 떠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한국의 일정을 소화하고 뒤늦게 일본으로 향했다.

궁금한 사항이 많았지만 감정과 함께 억눌러 삼킨 이후였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니 박종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호텔에 짐부터 푸시죠.”

“네.”

우리는 무거운 분위기를 안고 차에 올라탔다.

그때 박종식이 말을 이었다.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러실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도 보물을 찾은 건 알고 있는 듯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박종식은 우리 둘의 사이에 알 수 없는 소용돌이가 생겨났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그리고 내 감정에 이상한 징후가 생겼다는 것도 말이다.

“다 왔습니다. 2시간 뒤에 로비에서 만나죠.”

“네.”

나는 호텔 방으로 이동해 짐을 풀기도 전 샤워부스로 달려갔다.

참고 있던 분노와 답답함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차가운 물을 뒤집어써서라도 억눌러야 했다.

“내 죽음도 내 동생에 몸에 들어와 이런 일들을 당한 것도 모두….”

모든 사건과 부정적인 일을 노다 헤이치로 회장에게 떠넘기고 있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수십 수백 번 하며 일본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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