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169/200)

나는 다시 묘지에 고개를 숙이고 비석은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다음에 찾아뵐게요.”

그렇게 어보를 들고 다시 산을 올라갔다.

내가 적벽에 도착하니 다니엘이 달려와 말을 이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하… 한참을 안 나타나서 무슨 일 생겼나 싶어서 내려가려던 참이었어.”

“미안, 시간이 좀 많이 지나긴 했네.”

걱정이 묻어 있는 다니엘에게 미소를 보이며 나는 어보를 내려놓았다.

둘은 내가 내려놓은 물건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뭔가요?”

“함이 엄청 고급스러운데….”

“어보가 들어 있습니다.”

둘은 내 말을 듣는 순간 화들짝 놀라 하며 말을 이었다.

“어보를 어디서….”

“진짜… 어보라는 게 산 아래에 파는 것도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얻었습니다.”

“근데 이런 진귀한 걸 어디에다 쓸려고?”

“보면 알아.”

나는 직사각형의 화강석 위에 어보를 올리고 침선장이 했던 그대로 발로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니엘과 박종식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런 문화재를….”

“미친놈아!”

하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반대편 다리를 들어 올렸다.

“기다려.”

순간 어보가 스르르 스며들듯이 화강석 중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웅장한 소리와 함께 기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보는 장치를 돌리는 열쇠에요. 이 소리는 기관 장치가 돌아가는 겁니다.”

“대단하네요… 이런 기술이 조선시대에 있었다니.”

기관이 한참 동안 돌아갔다.

벽에 작은 통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통로가 완전히 열린 걸 확인하고 어보에서 발을 떼어냈다.

“설마… 여기에 회장님이 찾던 보물이 있는 겁니까?”

“네.”

이곳까지 온 이상 이들에게 숨길 게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이동했고 마침 넒은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설마 누가 다 가져간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나는 보물을 숨겨놓은 벽을 바라봤다.

“여기에 있습니다.”

내 말을 들은 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이었다.

“네?!”

“이 벽 너머에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어요.”

벽 반대편의 공간으로 가는 방법은 모르기에 벽을 그대로 허물거나 당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 가방 줘봐.”

“응. 여기.”

나는 산에 오르기 전 유압 펌프를 챙겨왔다.

유압 펌프 두 개를 벽틈에 집어넣고 다니엘과 함께 양방향으로 힘을 주었다.

쾅!

유압 펌프는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일으키기에 벽을 잡아당기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벽 너머의 공간은 어두웠고 공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후레쉬 좀 켜주시겠어요.”

“네.”

박종식은 들고 있던 후레쉬를 공간에 비추었다.

“와…….”

다니엘의 탄성이 터져 나왔고 박종식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그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드디어 찾았네.”

진정한 보물 5.

* * *

베르나르 아르노 앞에 한국의 보물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이 중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도자기를 비롯해 유명한 화원들의 그림도 함께 놓여 있었다.

“회장님. 김홍도의 그림체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입니다!”

그림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비서관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그림들이 이곳에 한가득 보관되어 있는 게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고려청자라니…. 보존상태도 좋고 백자 달항아리라….”

수백 년을 넘은 도자기를 바라보며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경매로 내놓는다면 경매가가 어마어마하겠습니다.”

하나하나가 국보급의 문화재이기에 값을 매길 수 없었다.

하지만 흥이 오른 비서관과 달리 아르노의 표정은 불편해 보였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다.

그때 화를 버럭 내며 아르노가 소리 질렀다.

“어딨는 거야?! 어디!”

“회장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여기에 엄청난 물건들이 한가득한데 왜 그러십니까.”

“그까짓 거 몇 푼 한다고.”

“네?!”

비서관은 그제야 마음을 추스르고 아르노에게 말을 이었다.

“회장님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찾아보겠습니다.”

아르노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비서관을 바라보더니 이네 말을 이었다.

“문서! 문서를 찾아야 해.”

“문서라면. 어떤?”

“대한 황제의 국새가 찍혀 있는 문서. 분명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아르노는 툭 던지듯 말을 남기고는 다시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문서 한 장을 찾기 위해 온 사방을 휘저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문서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없어….”

“무슨 문서이길래 이러시는 겁니까?”

“대한제국 황제가 숨긴 비자금! 예치금 증서가 여기 있어야 하는데 어디 있는 거야!”

“그런 게 아직 남아 있을 리가요?”

“있네! 반세기에 걸쳐 거두어들인 왕실 자산을 일본강점기에 외국은행에 숨겼어.”

“네?!”

현재 가치로 따졌을 때 아르노 자신이 평생을 이루어 만든 그룹보다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을 예치증서.

이 모든 일이 예치증서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노다 헤이치로와 베르나르 아르노는 이 한 장의 문서를 찾기 위해 그렇게 긴 시간을 싸워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 해도 국가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천문학적이었으며 그 시대의 대한제국은 가난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 쌓아온 부는 가히 적지 않았다.

“찾아야 해!”

“하지만…. 방법이.”

“차진혁 그놈…. 분명 그놈이 뭘 알고 있을 거야.”

“일단 물건들 회수해서 나가시죠.”

“하….”

베르나르 아르노는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꿩 대신 닭인가.’

“조심히 옮기게. 모두 파리로 가져갈 거니까.”

“예, 알겠습니다.”

둘은 지하를 빠져나와.

주위에 몰려있는 정장의 사내들에게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어떻게 했어.”

“모두 끝내버렸습니다.”

“잘했네.”

하형선과 그가 아끼던 동생들은 아르노의 부하들에 의해 모두 정리가 되었고 유명을 달리했다.

비참한 최후였다,

“어리석은 놈…. 욕심이 화를 불렀구먼.”

비서관은 부하들을 시켜 문화재를 하나하나 밖으로 꺼내 오게 지시했다.

“조심해. 모두 국보급 문화재다.”

“예.”

상당히 많은 양이기에 분류작업은 할 수 없었지만, 조심스럽게 포장해 미리 준비해온 나무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회장님 모두 옮겼습니다. 헬기 도착하면 배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파리에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잘 챙겨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비서관은 문화재를 파리에 옮겨야 했기에 배로 이동해야 하는 처지였다.

비행기로 옮기는 게 가장 안전하지만 문화재 방출에 예민하기에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헬기가 도착했고 둘은 함께 헬기에 몸을 실었다.

* * *

눈앞에 가득 쌓여있는 왕가의 보물.

모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터라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 위용만큼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박물관 두 개는 만들 수 있겠어….”

“대단한 물건들입니다.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이 모아두신 문화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이 그림 분명 화풍이 김홍도 화백의 작품이 분명합니다.”

“어! 이거랑 비슷한 거 얼마 전에 만들었는데.”

“네?!”

다니엘은 놀라는 박종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실수했다며 자리를 피했다.

“저놈의 입방정….”

둘은 나를 뒤로하고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며 끊임없이 탄복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단 하나.

‘저 하나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값을 매길 수 없는 수백 개의 문화재를 뒤로하고 나무통 하나에서 옅은 빛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나무통을 들어 올려 내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했다.

“한지? 문서인가.”

내부 안에는 일반 한지보다 두꺼운 느낌의 종이 두 장이 발견되었다.

“뭐지?”

나는 한 장을 다시 통 안에 집어넣고 커다란 한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한지 왼쪽 위에는 덕화 은행이라는 큼지막한 한문이 쓰여 있었고 옆으로 길게 문서의 용도가 쓰여 있었다.

“보증서인 거 같은데….”

나는 천천히 다시 글을 읽어나갔다.

“…….”

마지막으로 오른쪽 가장 아래에는 은행장의 도장과 함께 어보와 비슷한 모양의 도장이 함께 찍혀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문서를 다시금 확인했다.

“은행보관증서!”

문서의 내용은 개인금고 이용증서로 무엇을 보관해 두었는지 정확히 적혀있었다.

“이런 걸 보관하고 있었을 줄이야.”

개인금고에는 금과 은이 보관되어 있다.

금의 양은 십 만금으로 현재의 가치로 따지자면 1만 금이 현재 가치로 40억 정도라고 가정한다면 360조 상당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던 거야.”

금광 몇 개의 녹여 내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럼 다른 문서는?!”

다른 한 장의 문서는 황제를 대신해 개인금고를 열람할 수 있는 위임장이었다.

그때 나무통을 열면서 사라진 밝은 빛무리가 다시 피어오르며 내 눈을 점점 흐리게 만들었다.

빛이 나를 점점 집어삼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보여줘!”

나는 어느 때보다 떨렸고 기다려졌다.

이야기의 끝이 점점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기는….”

한 가닥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어느 날.

은밀하게 왕의 직무실에서 침선장과 일국의 황제가 자리했다.

“이걸 자네가 맞아주게나. 이건 황제의 어명이 아닌 벗의 부탁일세. 이제 이 나라는 가망이 없는 거 같으니 세자가 새 나라를 건국하는 데 큰 보탬이 되어야 하네.”

“전하! 어찌 그런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저는 못 합니다. 벗으로서 이 일은 저 같은 침선장이 맡기에는 너무 큰 일이옵니다.”

“이제 믿을 만한 사람은 자네뿐일세. 모두 나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네. 자네에게 어려운 짐을 맡게 해서 미안하네.”

부스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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