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168/200)

동생들은 그의 명령에도 끝내 포기 하지 않으려 했다.

“그만하라고! 시키는 대로 해.”

하형선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들고 있던 무기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항복 의사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르노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을 이었다.

“이제 대화를 할 준비가 된 거 같군. 다들 뭐해 묶어.”

“예.”

아르노는 모두가 포박된 상태를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어딨나?”

“…….”

“어디 있냐고! 지금 내 인내심은 바닥이야. 한 번 더 묻지, 어딨어?”

“동생들부터 내려보내.”

“미친 새끼가 지금 내가 장난치는 거 같아?”

하형선의 눈빛에는 아직 기세가 꺾이지 않아 보였다.

아르노는 이놈의 오만함을 꺾어 버려야 속이 후련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놈 죽여.”

“예.”

아르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검은 정장을 입은 흑인이 가슴 포켓에서 작은 나이프 하나를 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형선이 소리를 질러 댔다.

“안 돼! 말할게. 그만해!”

“늦었어.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죽여.”

흑인에게 선택된 동생은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고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형님… 감사했습니다.”

검은 정장의 사내는 그의 눈을 살짝 가리더니 들고 있던 나이프로 상대의 목을 가볍게 그었다.

쓰윽!

“으악!”

하형선은 동생의 목에 칼날이 들어가는 걸 눈으로 지켜보며 오열했다.

방금 자신의 오만함을 원망하며 말이다.

“다시 한번 묻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다 죽이겠네.”

하형선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며 망설임 없이 고개를 돌렸다.

“보물은 어디에 있지?”

“저기….”

하형선은 대웅전 옆 스님들이 묵는 작은 처소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이란 말이야? 여기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날 속이려는 속셈인가?”

“정말 이곳이 보물이 숨겨진 곳이야.”

베르나르 아르노는 하형선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곳을 수색했다.

하지만 그저 오래된 절로 먼지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나를 풀어줘. 그럼 증명해 보일 테니까.”

“내가 널 뭘 믿고?”

하형선은 고개를 돌려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살려야 하니까.”

“하하하. 악마 같은 놈이 동생들한테는 한없이 천사 같구만. 좋아. 이놈 풀어줘.”

아르노의 지시에 부하 중 한 명이 하형선의 포박줄을 풀었다.

“앞장서.”

하형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처소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다.

“벽화가 문이야.”

하형선은 바닥에 쌓여 있던 돌들을 하나둘 옆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하… 다 됐어.”

하형선의 한마디에 아르노와 부하들이 옆으로 다가왔다.

“바닥에 틈이 있구만.”

하형선은 아르노의 말을 흘려버리고 몸소 보여주기 위해 손바닥을 틈으로 집어넣었다.

“으아악!”

온 힘을 다해 벽화를 잡아당겼다.

그륵!

돌이 마찰되는 소리가 들려 오더니 벽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형선은 벽바닥이 자신의 가슴까지 오는 순간 벽에서 손을 뗐다.

“오호… 이런 장치가 숨어 있었을 줄이야.”

“이제 동생들은 살려주십시오. 저 혼자 남겠습니다.”

하형선은 아르노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제발….”

그는 아르노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내 목숨을 노리고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

하형선은 자신의 그릇된 욕심을 후회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앞에 노다 헤이치로 회장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 욕심 때문에… 모든 걸 실토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어쩌면 모두에게 용서받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놈들 다 끌고 가서 없애버려.”

“예!”

아르노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하형선과 무리들을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회장님. 들어가시죠. 오랜 시간 기다려온 순간이지 않습니까.”

“함께하지.”

“영광입니다.”

아르노와 비서 단둘만이 그 공간에 발을 내디뎠다.

벽의 반대편에는 신기하게도 계단이 있었고 둘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심하십시오 회장님.”

별로 깊지 않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회장님….”

“보이는가….”

둘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 * *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에 집어삼켜지는 순간.

침선장과 김명인의 뒷이야기가 이어졌다.

“침선장 어른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래… 고생했네. 잠시만 기다리게.”

침선장은 다시 김명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둘은 쓰러져 있는 벽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꽤 무거워 보였지만 주변에 있는 돌과 나무를 이용해 돌벽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이걸로 끝입니까?”

“그렇다네. 이제 우리의 소임은 다했네.”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뭘 어쩌겠는가. 상의원으로 돌아가야지.”

“너무 위험합니다.”

“곧 있으면 세자저하의 즉위식이네. 그놈들은 가짜로 즉위식을 치를 테지만 우리는 세자전하에게 진짜 즉위식을 만들어 줄 생각이네.”

“……설마.”

“벌써 준비는 끝났네.”

“저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두렵습니다.”

“하하하. 내가 자네에게 강요한 적 있던가. 그냥 알고만 있게. 선택은 자유니까.”

침선장은 김명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밖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둘의 대화를 듣는 순간.

침선장과 김진영이라는 궁녀의 대화가 떠올랐다.

“분명….”

침선장은 그녀에게 열흘 뒤 창덕궁 인정전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그리고 그 열쇠는 함의 열쇠라고 분명 말했다.

“어보를 열었던 열쇠는 다른 거구나….”

그림의 퍼즐을 맞추자면 침선장과 하문희는 창덕궁 인정전에 당도하기 전에 일본군에게 쫓겼을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의 밀고로 일본은 이들이 행하려는 일을 알게 되었고 이 일에 가담한 인원들을 찾아 죽였을 것이다.

의복이 가짜 즉위 날 세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았어야 했으니까.

“점점 퍼즐이 맞춰지는구나.”

이들은 분명 왕과 세자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침선장과 김명인이 동굴 안을 빠져나왔고 침선장은 바닥에 놓여 있는 어보를 뽑듯이 들어 올렸다.

“쿵!”

순간 기관이 움직이며 사람이 들어갈 수 있던 통로가 막혔다.

“보면 볼수록 신기합니다.”

“나도 그러네. 미리국의 기술을 우리 장인들이 배워 흉내를 낸 것인데. 이런데 쓰일 줄은 몰랐네.”

“어보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침선장은 어보를 다시 함으로 집어넣고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산 중턱에 있는 비석이 놓여 있는 묘지 앞에 멈추어 섰다.

“아버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는 묘지에 절을 올리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구슬픈 울음소리가 주위에 퍼졌고 옆에 있던 김명인도 뒤에서 눈물을 훔치며 침선장을 기다렸다.

“어르신!”

“여기가 가장 안전하네.”

침선장은 네모나게 놓여 있는 비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으로 땅을 파며 함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

“자네와 나만이 아는 비밀일세….”

“네… 근데 만약에 저와 침선장 어른 모두 잘못되면 이제 이걸 누가 찾는단 말입니까?”

“그건 걱정 말게. 그러니 자네는 평생 이 일을 함구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침선장은 김명인에게 확답을 받고 다시 묘지에 절을 하고 산을 완전히 내려왔다.

“여기서 헤어짐세.”

“침선장 어른.”

“왜 그러는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 같은 놈이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하하 자네 같은 사람이 어때서 그러는가. 솜씨 하나는 끝내주지 않는가.”

“글재주도 없는 제가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 재주 널리 알려주게나. 이만 가보시게.”

침선장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안 김명인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큰절을 올렸다.

“이게 맞는 거겠지.”

순간 영상이 끝이 났다.

‘찾았어… 어보의 위치.’

“잠시만 여기 계세요.”

“알겠습니다.”

“어디 가는데?”

“잠시 산 아래에.”

나는 둘을 남겨둔 채 산 중턱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왔던 길이 아닌 영상 속에서 보았던 길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풀숲이 우거진 곳에서 묘지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되었구나….”

나는 묘지 주위에 잡초와 넝쿨을 걷어내고 비석 앞에 덩그러니 섰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큰절을 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흙과 모래가 한데 엉켜 딱딱하게 굳어 있다.

“움직여라!”

주위에 흙은 긁어내고 손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 온 힘을 다해 바닥의 비석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윽. 하….”

다행히 비석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 더 힘을 주니 뒤로 젖혀지며 비석 아래에 묻혀 있는 함의 머리가 나타났다.

“어보가 들어 있는 함이구나.”

나는 어보가 들어 있는 함을 꺼내 들었다.

다행인 건 함을 열 수 있는 열쇠도 함께 묻혀 있었다.

“오랜 시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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