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선장은 주위를 한참 살펴보더니 가장 중심에 놓여있는 무언가를 집어 들어 자신의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때!
“침선장 어른!”
“자네 왔는가.”
침선장을 찾아온 사람은 바로 서현도였다.
“미안하네. 자네 말고 믿을 사람이 없었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럼 이걸 어디로 옮기면 되나요?”
“그럴 필요 없어.”
“네?”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네….”
침선장은 서현도만을 남겨놓은 채 그 공간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어디선가 침선장의 목소리가 서현도가 서 있는 굴 안에 울려 퍼졌다.
“여기일세!”
서현도가 고개를 돌리자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화강암 돌벽에서 침선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멀리 떨어지게나!”
“네.”
순간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천왕이 새겨진 돌이 밀려나며 쿵 하고 쓰러졌다.
“…….”
“너무 놀라지 말게. 반대편에서 밀어야 열리는 형태일세.”
“아 그렇습니까.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놓으시다니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건 나와 폐하만이 아는 사실일세. 이제 자네까지 셋만이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구만.”
“묵고하겠습니다.”
“그러리라 믿네.”
그렇게 영상은 끝나고 내 눈앞에서 흐릿하게 사라졌다.
‘보물은 숨겨져 있어.’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저 공간을 열 수 있는 어보는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서현도가 들어오기 전에 가슴 품에 숨겼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나의 의문이 풀리면 또 다른 의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나를 어지럽혔다.
“너도 보았구나. 보물이 숨겨진 장소 말이야?!”
“…….”
영상이 끝이 나니 하형선이 나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해봐 무엇을 봤는지.”
“…….”
하형선은 내 손을 구둣발로 짓누르며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을 했다.
윽!
“말해보라니까?!”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부터!”
“하하하하. 대단하네 대단해. 그놈의 노다 헤이치로, 헤이치로! 차진혁 너도 속고 있는 거야. 그 영감은 썩은 욕심 덩어리라고.”
“회장님의 안전부터야!”
“좋아!”
하형선은 전화기를 들어 자신의 부하에게 명령했다.
“풀어줘.”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말해봐. 무엇을 보았는지?”
내 짐작이지만 하형선은 불안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본 영상에 집착할 것이고 자신이 본 그곳이 확실한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영상을 보았을 확률이 높아. 지독할 정도의 검붉은 빛이었어.’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서!”
“왕의 직무실! 그리고 침선장과 자수장.”
“오호….”
구상복과 연결된 사람은 침선장과 자수장.
그리고 그 장소에서 둘이 다른 길을 택했다.
“자수장을 따라서 영상이 이어졌어.”
순간 하형선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자수장은 상의원의 보물창고로 향했어.”
“하하하.”
‘역시. 둘이 다른 길을 갔기에 빛이 달라진 거야.’
하형선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나도 선택받은 사람이야! 그 많은 보물을 너도 보았을 거야. 금은보화와 국새를!”
‘국새라니… 그걸 자수장이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야?!’
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에 국새는 많은 역할을 하는 도구였다.
일본이 국새를 이용해 국권을 침탈하고 주권을 모두 훔쳐 갔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았어….’
나는 순간 직감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이제부터라는 걸.
“너까지 비밀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안 그래? 노다 헤이치로 회장의 안전도 보장되었으니 너는 여기서 사라지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겠어?”
“너 이 X자식!”
순간 하형선이 가슴 품에서 긴 나이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건….”
“그래. 이건 네 형을 죽일 때 사용했던 칼이야. 이 칼에 두 형제가 죽겠구나.”
하형선이 긴 나이프를 천장 높이 들어 올렸다.
‘여기서 끝인 건가?’
내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려는 그때였다.
콰광!
교회 입구로 차량이 돌진한 것이다.
“윽 아파라….”
검은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언제나 의지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 디렉터?!”
“사장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목을 매만지면서 나를 지긋이 바라봤고 뒤를 이어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여기는 어떻게?”
“제 차에 GPS 장치 설치돼있거든요. 저 나름 대기업 회장이잖아요.”
우리의 잡담을 듣고 있던 하형선은 다시 한번 나이프를 들어 올려 내 목을 내리치려 했다.
깡!
순간 울려 퍼지는 맑고 경쾌한 소리.
하형선은 들고 있던 나이프를 손에서 놓쳐버렸다.
“어디서 왕을 먼저 잡으려고!”
“박종식!”
주위는 검은 정장 사내들은 박종식이 데리고 온 부하들인 듯 보였다.
순간 하형선의 부하들과 혈투를 벌어졌다.
“형님, 그때 못했던 거 마저 하시죠.”
“이 새끼가!”
박종식은 몸을 던져 하형선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퍽!
짧고 간결한 한 방이 하형선의 얼굴에 적중했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몸을 일으켜 박종식의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하형선이 박종식에게 집중하는 그때.
신 디렉터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사장님.”
“위험한데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
“제가 안 왔으면 사장님 지금 이 세상 사람 아니에요. 잔소리는 다음에 들을 테니까. 여기 벗어나기나 하죠.”
“네.”
신 디렉터의 부축을 받고 혈투 중인 곳을 조심스레 벗어났다.
“타세요.”
“네.”
교회 문을 뚫고 들어온 차에 몸을 실으니 의외의 인물이 내 눈앞에 있었다.
“……어이가 없네.”
“아까 하형선 부하들이 죽이려는 거 저희가 구했어요.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잘하셨어요.”
“일단 저희부터 빠져나가죠?!”
“잠시만요! 회장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무사히 돌아왔답니다. 호텔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방금 발견했다고 연락받았어요.”
“다행이네요.”
나는 차 안에서 유리창으로 하형선을 바라봤다.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을 해칠 생각은 없었나 보네.’
하형선이 베르나르 아르노에게 대하는 태도와 노다 헤이치로 회장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순순히 노다 헤이치로를 풀어준 것도 의아할 따름이었다.
“정이라는 게 무서운 거지….”
“네?!”
“아니에요. 가시죠.”
우리는 멀지 않은 동네에 몸을 숨겼고 한참이 지나 박종식도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도망쳤습니다. 제가 아직 회복이 다 되지 않아서 제압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에요. 무사히 오신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일단 호텔로 복귀합시다.”
“네.”
진정한 보물 3.
* * *
무사히 호텔로 돌아오게 되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죽음을 걱정하며 떠나간 호텔이었기에 기분이 묘하게 설레었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가자.
노다 헤이치로가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회장님!”
“그래 종식아. 다친 데는 괜찮고? 아무 일 없었지?”
“네, 그럼요. 아무 일 없었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박종식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노다 헤이치로에게 용서를 구했다.
“별말을 다 듣는다. 네가 아니라도 일어났을 일인데 죄송은 무슨.”
노다 헤이치로는 자책하고 있는 박종식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나에게 말을 이었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네.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고 다행이야.”
“고생은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시죠? 그래도 하형선이 약속을 지켜서 다행입니다.”
“그놈도 그리 나쁜 놈은 아닐세. 상황이 그리 만든 거지 그냥 나를 미끼로 쓸 뿐이지 다치게 할 생각은 없어 보였네.”
“그런가요.”
노다 헤이치로는 하형선이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했다.
“그 선택도 하형선이 한 것이니까. 회장님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그럼세. 그리고 말이야.”
“네?!”
“어떻게 되었어? 보물의 흔적은….”
“제가 가지고 있던 흔적들은 하형선이 들고 갔습니다. 하지만 구상복은 저희 손에 들어왔어요.”
“그런가 다시 원점이구만.”
“아닙니다. 큰 발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흔적들은 이제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런가….”
노다 헤이치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제부터 자네의 몫이네. 나는 이제 여기에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했네.”
“네?!”
그는 장료이를 빤히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느낀 게 많아. 내 욕심에 이놈의 아비도 희생되었고 자네의 형도 아버지도 그렇게 된 거 같아 괴로울 따름이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한테 사과하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하형선이 말했던 두 회장의 욕심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
솔직히 나도 여기에서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 어쩔 생각인가?”
“한국으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하형선도 분명 한국으로 갈 테니까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죠.”
“그런가. 너무 무리하지 말게 부디 조심하고.”
“네.”
노다 헤이치로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옆에 서 있는 장료이의 팔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회장님 잘 챙겨 드려 더는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파리에 남아서 신 디렉터 도움 좀 받아서 타이거 파리 지부 개설에 힘써.”
“응, 그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