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200)

에르맥스 타아르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자르를 내칠지언정 범죄와 저 악에 받친 마음을 감싸려 할 것이다.

‘여기서 끝내야 해.’

“아버지. 아니 회장님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형은 지분을 아르노에게 넘기려 했던 거 말고도 고가의 회사 물품과 마약을 물물교환했습니다. 이대로 넘겨서는 안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브랜드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분명 에르맥스가에 큰 위기가 찾아올 겁니다.”

“그럼… 네 형을 법적으로 처리하자는 소리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이 빼돌린 가방 모두 특수 가죽으로 만들어진 리미티드 제품에다가 가방마다 고유 일련번호가 모두 찍힌 상태로 마약상에 넘어갔습니다. 그게 현금처럼 사용되었고요. 분명 회사에 조사가 들어올 겁니다. 형을 넘겨야 회사에 이미지에 피해가 없을 겁니다.”

“꼬리 자르기를 하자는 소리지 않느냐! 그런 건 대신할 놈들이 있을 것인데.”

“아버지! 언제까지 형을 감싸고만 도실 생각이세요. 그만하세요!”

에르맥스 회장은 타아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다.

아자르보다 타아르가 더 회장의 자리에 어울리며 에르맥스를 많이 아낀다는 걸.

하지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장남에게 마음이 갔다.

“이번만큼은 제발 제 부탁 들어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타아르는 그 말을 뒤로하고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하….”

에르맥스 회장은 수화기를 들어 비서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 * *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공항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특보가 쏟아져 내렸다.

“급하긴 급했나 보네.”

― 에르맥스 장남 에르맥스 아자르가 마약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수십억에 해당하는 마약을 유통했으며 그 과정에 에르맥스의 고가의 가방이 마약 대금으로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에르맥스는 불법적으로 유통된 모든 에르맥스 가방을 회수하기로 결정 내렸다고 알려졌습니다.

에르맥스 타아르가 우리가 준 자료를 잘 사용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큰 불씨가 되기 전에 꺼트려야지 잘했네.”

에르맥스의 가방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리미티드한 물건이다.

일반 시중에 유통되는 가방도 주문 제작에 아주 극소량만 유통되기에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몇 배의 웃돈이 붙어서 구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특별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방은 에르맥스의 충성고객이 아니라면 팔지 않기에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데 이런 가방이 마약 거래에 쓰였다.

이러한 이유에 에르맥스 타아르는 모든 사실을 공개하고 회사 자체에서 이번 일을 수습하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브랜드의 이미지와 가방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작은 걸 내어주고 큰 걸 얻으려 들것이다.

“역시 똑똑한 사람이네.”

“에르맥스도 꽤나 애먹겠네.”

“우리한테는 좋은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타아르는 우리가 내민 조건은 받아들였지만, 쉽게 에르맥스의 이름을 내걸고 세계대회를 주최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약에는 에르맥스 그룹이라 칭했기 때문에 자회사를 참가시킨다 해도 계약조건에 위배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언론과 고객들에게 뭇매를 맞을 지금 같은 상황을 덮을 방법은 세계대회를 주최하는 게 가장 시선을 분산시키기 좋을 것이다.

하나 더 보태자면 에르맥스 타아르는 현재 차기 회장으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세계대회의 우승을 원할 것이다.

‘독이든 성배를 마신 걸 축하해.’

“가자.”

“으… 응.”

나는 장료이와 함께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진정한 보물 1.

* * *

베르나르 아르노는 우리가 파리에 입국했다는 정보를 접했을 것이다.

모두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연락이 없을까요?”

“기다려보죠.”

우리를 재촉하던 하형선과 아르노는 일주일이 지나는 시점인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우리를 가지고 놀며 길들이기를 하는 듯 보였다.

조바심이 나는 쪽은 우리였기에 답답한 마음만 깊어져 갈 뿐이었다.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장료이….”

“응?!”

“아니 멀리 가지는 말라고.”

“응, 알겠어.”

지금 가장 답답한 건 장료이일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했고 깊게 쌓여있던 감정의 골은 어느새 걱정과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장료이가 호텔을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전체를 울리는 전화벨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수화기 근처에 있던 신지혜가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네, 네. 연결해주세요. 사장님!”

수화기를 손으로 막은 신지혜가 나에게 말을 이었다.

“아르노 쪽에서 전화 온 거 같아요.”

“바꿔주세요.”

“네.”

수화기를 그녀에게 전해 받았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

“차 대표… 미안하네.”

“회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노다 헤이치로 회장이었다.

목이 메말라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그의 강한 어조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끼익!

“회장님 잠시만요.”

내 목소리를 들은 장료이는 무언가는 직감한 듯 수화기로 달려왔다.

“회장님이셔.”

“…….”

순간 눈물이 이슬처럼 고여가던 장료이는 전화기를 받아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 없죠?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맨날 모질게 대해서 정말 죄송해요.”

“우리 손주가 어른이 다되었구나. 내가 더 미안하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배신자의 목소리가 장료이의 귀를 간지럽혔다.

매우 불쾌했고 찾아가 죽여버리고 싶은 감정이 폭발할 거 같았다.

“도련님, 회장님은 무사합니다. 하하하 물건은 잘 챙겨왔지?”

“하형선! 할아버지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넌 내가 죽인다.”

“아이고 무서워라. 물건만 잘 전달받으면 회장님 안전할 거야. 물건이나 잘 넘겨. 차진혁이 바꿔.”

장료이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나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차진혁입니다. 어디로 가면 되죠?”

“호텔 로비에 메시지 하나 전달해 뒀으니 그쪽에서 보지. 물건이랑 자네만 와야 할 거야. 괜히 떨거지들 데리고 오지 마. 안 그러면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 살아서 보기 힘들 테니까.”

“알겠습니다.”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박종식과 신지혜, 장료이가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물건 전달하고 올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안 돼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혼자 간다는 말씀이세요.”

신지혜가 내 말에 발끈하듯 화를 버럭 내었고 장료이는 고개만을 떨굴 뿐이었다.

그때 박종식이 말을 이었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놈들 사람 목숨 파리처럼 여기는 놈들인데 차진혁 디자이너가 혼자 간다는 건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겁니다. 저라도 같이 가시죠.”

“혼자 가야 회장님이 안전합니다. 지금은 회장님 신변이 가장 중요하니까. 저 혼자 가겠습니다.

“하…….”

신지혜는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짜증이 난다며 호텔 방을 빠져나려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디렉터님. 이일에 종지부는 제가 찍는 게 맞아요. 그러니 믿고 맡겨주세요.”

“하지만… 너무 위험해요.”

“괜찮을 겁니다.”

그녀를 진정시킨 후.

보물의 흔적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호텔 방을 빠져나왔다.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해야 하기에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살아난 이유가 있을 거야. 여기서 죽을 리가 없어.’

만약 신이 있다면 내가 여기서 죽을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위안으로 삼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호텔 로비에 도착해 직원에게 말을 이었다.

“혹시 1202호나 차진혁 이름으로 메모 남겨진 거 있나요?”

“아… 있습니다. 차진혁 이름으로 있네요. 잠시만요.”

직원은 잠시 안으로 들어가 봉투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신분증만 확인하고 전달하겠습니다.”

“네.”

나는 직원에게 여권을 내밀어 신분을 확인시키고 종이봉투 하나를 건네받았다.

― 오를레앙 D2060 Rn E60, 45430

좌표가 적혀있는 메모.

오를레앙이라면 파리에서 꽤 떨어진 농촌 지역이다.

“철저하네. 트여있는 지역이야….”

나는 신지혜에게 빌린 차를 끌고 호텔 주차장을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좌표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했다.

.

.

.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오래된 교회 건물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듯 보였고 주위는 논과 밭이 있어 시야가 훤하게 뚫려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홀로 돌계단을 올라 교회 안으로 발을 옮겼다.

“빨리 왔네. 회장님이 걱정되긴 했나 봐.”

“하형선… 회장님은?!”

“물건부터.”

“회장님 안위부터!”

“물건만 확인되면 회장님은 호텔로 안전하게 모셔다드릴 거니까. 물건부터 넘겨.”

정말 많은 준비를 한 듯 보였다.

‘회장님은 여기에 없어… 물건만 받고 나 몰라라 한다면….’

“회장님 연결해! 그럼 물건 넘겨주지.”

“의심이 많구먼. 좋아.”

하형선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을 비추었다.

화면으로 비치는 공간은 차량으로 보였으며 밀집된 건물들을 보았을 때 파리의 도심이 분명했다.

“이제 되었지. 물건 이리 줘.”

나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 가방을 건넸다.

하형선은 가방을 전해 받자마자 물건들을 확인했다.

“확실하게 다 가져왔군.”

“그럼 이제 회장님 안전부터 확보해.”

“그래야지. 근데 말이야 아직 멀었어.”

“그게 무슨?!”

하형선은 연결된 영상을 끊어 버리고 잠시 뒤로 물러났다.

“이놈 잘 지켜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작은 문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차진혁 디자이너 잠시만 기다려.”

“…….”

하형선은 물건을 가지고 뒤에 있던 작은 문으로 몸을 숨겼다.

“젠장….”

다행인 건 주위에 인원들이 나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 같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하형선이 다시 나타났다.

“가져와.”

그의 지시에 옆에 있던 사내 둘이 유리관에 보관된 구상복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 유리관 너머에는 베르나르 아르노의 모습이 비쳤다.

“차진혁 디자이너. 아니지 아리raM 그룹의 회장님이라 해야 하나.”

“너희들이 시킨 대로 했어. 이제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을 풀어줘.”

“그래야지. 한 가지 일만 더 끝내고 말이야.”

아르노의 지시에 따라 하형선이 실이 꿰여 있는 옥 팔찌를 눈에 가져다 댔다.

“그걸 어떻게….”

“사용법도 모르고 가져오라고 했을까? 이 해괴한 능력이 너한테만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는 나를 보며 비웃듯 복잡한 패턴의 팔찌를 천천히 자신의 눈으로 가져가 대고 유리관에 전시된 구상복의 자수로 시선을 옮겼다.

“안 돼!”

내가 그에게 달려가 저지하려 했지만, 주위에 있던 하형선의 부하들이 나를 막아 세웠다.

“가만히 있으라고.”

그 순간 내 눈에 검붉은 빛이 옥 팔찌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가 아닌 하형선이 그 빛에 집어 삼켜졌다.

“으악!”

하형선과 나를 남겨두고는 모든 것이 정지했다.

“으악! 괴로워.”

내 눈앞에는 의기양양하던 하형선이 괴로운 듯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마치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정신적 고통이 실제의 통증으로 전해지듯이 말이다.

“나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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