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형선이 너한테 전하라고 하더라. 네 능력을 다 알고 있다고 그렇게만 말하면 알 거라고.”
“……능력.”
“능력이라니 무슨 소리야?!”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내가 능력을 가진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의문이 가득했다.
그 순간 장료이는 내 앞에 무릎 꿇으며 고개 숙였다.
“부탁이야. 그 보물의 흔적들을 나한테 넘겨줘. 나한테는 할아버지가 더 중요해.”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어주었다.
“일어나 바보야. 당연한 걸 부탁해.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은 나한테도 중요한 분이야. 그러니 걱정 마.”
“고맙다… 흑흑 고마워.”
그의 고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보물의 흔적일까 아니면 내 능력일까? 둘 다겠지.’
만약 이 능력과 우리 집안, 내 죽음이 모두 연관된 거라면 현재의 나도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한국부터 갔다 와야겠네.”
* * *
장료이가 하형선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달했다.
신지혜는 노발대발하며 우리 모두에게 경호 인력을 붙여야겠다고 난리였고 박종식은 정말 더 위험해질지도 모르겠다며 경고했다.
“절대 단독행동하지 마세요.”
“그럴게요. 신 디렉터도 조심하세요. 이놈들 심상을 알 수가 없으니까.”
“네, 그럴게요.”
박종식은 우리를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점점 막 나가는 느낌이야 이때까지 정말 평화롭게 진행되던 일을 쓰나미처럼 몰아붙이고 있단 말이야.”
“저도 그게 참 이상하네요.”
“분명 그들 내부에서도 이상이 있다는 건데… 내 몸이 이래서 알아낼 방법도 없고 미안하네.”
“무리하지 마세요. 보물의 흔적만 넘기면 회장님 신변은 보장된다니 괜찮을 겁니다.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죠.”
“알겠어.”
나는 신지혜와 박종식에게 그들이 나의 능력까지 원하고 있다는 건 숨기기로 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게 분명했고 이들이 알게 된다고 해도 근심거리만 더 늘리게 되는 꼴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괜한 걱정거리를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비행기 시간 다 되어 가네요. 모두 안전하게 있어요.”
“조심히 갔다 오세요.”
단 하루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의 행방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이 원하는 조건만 들어준다면 회장님의 신변만큼은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
나는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장료이는 일본의 할아버지 서재에 있는 조부의 일기장과 이때까지 모아온 자료를 챙겨오기로 했다.
“미안하다. 이런 부탁해서.”
“미안은 무슨. 나 먼저 간다. 한국에서 보자고.”
“응, 나도 할아버지 물건 챙겨서 한국으로 바로 갈게.”
.
.
.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는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는 순간 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차진혁의 몸에 들어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예전 김서진일 때는 간혹 보였던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왜 나타나신 거야 불길하게….’
잠시 후 비행기가 착륙했고 출국을 마치자마자 회사로 향했다.
‘금고부터….’
“사장님! 파리에 계셔야 하는 분이….”
“아 일이 있어서요.”
모든 직원이 나를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아리raM의 매장관리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 바로 파리로 향했던 내가 며칠 만에 한국에 있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그때 류미리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없습니다.”
“아닌데… 뭔가 느낌이….”
“정말 없어요. 필요한 자료가 있어서 들린 거뿐이에요.”
“자료라니… 그거 때문에 직접 한국까지요 비행시간이 12시간인 곳에서.”
“…….”
나는 그녀의 말을 흘리고 사무실로 들어와 버렸다.
나는 빠르게 숨겨져 있던 금고 문을 열었다.
이곳에 영상이 흘러나왔던 모든 물건이 보관되어 있었다.
“디자인 문서들은 필요 없을 거고 열쇠, 팔찌, 바늘, 실 이것만 챙기자.”
물건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매번 생각해 보는 거지만 답을 찾을 수 없는 이 흔적들 어쩌면 새로운 힌트를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내가 보물의 흔적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에르맥스 7.
* * *
다니엘이 상기된 얼굴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나도 파리 같이 데리고 가. 이야기 다 들었어.”
“무슨 소리야?”
“신 디렉터한테 연락받았어. 너 한국 들어오면 도와주라고.”
“하… 괜한 이야기를…. 너까지 그럴 필요 없으니까. 여기 있어. 너 없으면 회사는 누가 관리해.”
“나 하나 없다고 안 돌아가는 회사 아니잖아. 류미리 디자이너도 있고. 경영팀이나 MD팀에서 다 알아서 하는데….”
“그건 그렇지만 품질은 네가 관리해야지. 그리고 너 설마 류미리 디자이너한테 이번 일 말했냐?”
“그건 걱정하지 마 나만 알고 있으니까.”
“그래… 잘했어. 다들 안 좋은 사건 알아서 좋을 건 없지 분위기도 안 좋아질 거고.”
“그러니까 나도 간다고! 이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잖아.”
다니엘은 내가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내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나를 대신해 어려운 일을 부탁해야 했다.
“넌 안 돼!”
“왜?!”
“너는 여기서 나 대신해줄 게 있어. 이거 받아.”
다니엘은 내가 내미는 종이 한 장을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
“내가 가면 열어봐. 그럼 너도 이해가 갈 거야. 부탁한다 다니엘.”
왠지 모르는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다니엘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원래 같으면 징그럽다며 뿌리칠 다니엘도 내 등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조심히 다녀와. 사장.”
“응.”
나는 그를 뒤로하고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회사를 빠져나왔다.
“택시!”
끼익.
“어디로 모실까요?”
“한국병원이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얼마 전 일반 병실로 옮겨진 아버지와 병간호 중인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깊은 생각에 지쳐 있던 나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고 한강은 어느 때보다 잔잔했다.
그지없이 평화로운 하루의 마무리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달려 택시가 병원 앞에 도착했다.
“다 왔습니다. 손님.”
“네, 감사합니다.”
내가 아버지 병실에 들어서자.
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가 반겨 주었다.
“아들. 왔어.”
“네, 어머니.”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다가가 손을 넓게 펼치며 와락 껴안았다.
“무슨 일 있어. 아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오늘따라 너무 몸이 고되었나 봐요.”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해도 어머니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걱정할 걸 알고 있기에 말을 아끼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똑같지 뭐 계속 누워만 계셔.”
“의사는 뭐래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근데 이상하게 엄마는 이걸로도 다행이라 생각해. 같이 오래 있을 수 있잖아.”
“그렇죠….”
나는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의 손을 살짝 들어 잡아주었다.
아버지의 손은 여느 때처럼 따뜻했다.
“아버지 빨리 일어나셔야죠.”
그런데 그때였다.
아버지가 내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내 손을 가볍게 살짝 잡아주는 게 아닌가.
“어?!”
“왜 그러니?”
“아버지가 제 손을….”
“뭐라고?!”
어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간호사에게 달려갔다.
얼마 후 담당 의사가 우리를 찾아왔다.
“기적이에요. 회복이 빠르십니다.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신 거 같아요. 조금만 더 안정을 취하면 깨어나실 거 같습니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별말씀을요. 어머니가 항상 병간호하시면서 노력한 결과인 거죠. 또 무슨 징후가 있으면 간호사한테 말해주세요.”
나는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지긋이 바라보며 다 잘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저 다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벌써 갈려고 밥이라도 먹고 가지.”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어머니도 거르지 마시고 꼭 챙겨 드세요.”
“그래… 얼른 가봐라. 아들 사랑한다.”
“저도요.”
어머니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에 비어버린 가슴에 따뜻함이 가득해졌고 모든 걸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볼까.”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해 장료이를 기다렸다.
꽤 긴 비행시간을 이용해.
노다 헤이치로 회장의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조금 늦었지. 자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표는 내가 끊어 놨어. 바로 입국하자.”
“응.”
우리는 면세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료 한번 보자.”
“응.”
장료이는 모아온 자료를 서류 가방 통째로 나에게 내밀었다.
“이렇게나 많아?”
“많다고 했잖아. 그리고 몇십 년이야. 많을 수밖에.”
“근데 이건?!”
“증조부님의 일기장이야. 모든 사건의 시작이라 할 수 있어. 근데 그건 왜?”
일기장에서 엄청난 빛이 응축되어있는 듯했지만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왜 빛이 모여만 있는 걸까?’
나는 일기장을 천천히 넘기며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일기장은 자수장이 상의원에서 있었던 많은 일은 기록해놓은 책이다.
― 따뜻한 봄날이 올 것인가?
― 萬國平和會議에서의 일이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왕은 이번 일로 매우 큰 상심에 빠져들었다.
― 1907년 정미년 왕이 폐위되고 세자께서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었다. 상의원은 새로운 왕을 모시기 위해 새로운 의복을 만들어야 했다.
― 우리에게 보물[寶物]을 숨길 방법을 구상하라 하셨고 그날 이후 상의원에 많은 기술자가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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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봤던 영상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 벗들은 뒤로하고 가족들과 숨어 버렸다. 라는 부분.’
그런데 신기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일기를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혼자서 작성해 만들어진 일기책이 아닌 여러 사람이 하루의 일과를 적어낸 책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일기장을 덮으려는 그때.
‘……뭐야!’
마치 감정에 공명이라도 하려는 듯.
보관해 온 보물들의 흔적에서 흐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보물들의 흔적을 보관하던 가방을 살짝 열어 보았다.
“윽!”
그 순간 일기장에 응축되어 잇던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나를 집어삼켰다.
* * *
노다 헤이치로는 하형선에게 납치되어 아무도 알 수 없는 장소에 갇혀 있었다.
그날 하형선을 따라 이동한 곳은 베르나르 아르노의 사무실이었고
그곳에서 그토록 찾던 구상복을 보게 되었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