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200)

레예스의 답에는 거짓이 없었다.

분명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소리였고 중요정보를 빼돌릴 정도면 자신이 알만한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

머릿속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 같았다.

“왜 그러세요?”

신지혜는 놀라는 나를 보며 질문을 해왔다.

“회장님부터 찾아야겠어요. 파리에 계시니….”

“제가 아버지한테 부탁할게요.”

“네.”

빨리 그를 찾아야 한다.

연락을 받지 않는 것도 불안한데 박종식이 갑작스러운 일에 당하고 말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장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장료이 당장 파리로 날아와. 느낌이 안 좋아.”

“무슨 소리야?!”

나는 천천히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했다.

수화기 너머의 장료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말을 이었다.

“바로 갈게.”

* * *

노다 헤이치로는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진혁에게 계열사를 모두 인계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고 현재 가장 중요한 이브에 대한 일도 자신이 처리해야 했다.

나나세가 그렇게 되고 이브의 파리 진출 건이 흐지부지되어 버린 상황에서 이 일을 처리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매장 오픈식이랑 컬렉션을 진행해야겠군.”

나나세가 사라졌다 해도 이브의 디자인팀은 건재했고 진혁이 이브의 색을 잘 살려서 임시 총괄직을 수행해주었기에 부족함 없이 파리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할수록 대단한 청년이야.”

진혁이 손본 이브의 디자인을 바라보며 노다 헤이치로는 흐뭇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리고 자기 손자의 브랜드가 해외토픽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나이크와 콜라보레이션이라 이 녀석 브랜드도 한층 더 성장하겠군.”

장료이는 현재 아시아 패션 어워드에서 받은 나이크와의 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 내부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타이거지만 아직 세계시장에 뻗어 나가기에는 부족하다.

그 입지를 다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이 녀석도 곧 파리로 오겠군.”

아시아 패션 어워드 부상 중 하나인 파리 상인회 가입으로 인해 장료이의 타이거는 언제든지 파리 명품거리에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성장하면 그놈과 대적할 수 있겠어.”

켈링과 아리ram 두 그룹이 합쳐지고 에르맥스 그룹까지 자신들의 편에 선다면 아무리 LVMH라 해도 쉽게 덤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면 대결을 통해 그룹사를 무너트릴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앞이 조금 보이기 시작하는군.”

흐뭇한 미소로 자료를 보고 있던 노다 헤이치로 앞에 하형선이 다가왔다.

“회장님 좋은 일 있으십니까?”

“아 별거 아니네. 근데 안색이 좋지 않구먼 무슨 일 있나?”

“아 별일 아닙니다. 회장님 보고 드릴 게 있는데….”

“뭔가 뜸 들이지 말고 두서없이 이야기하게.”

하형선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르노 회장이 흔적들을 보관하는 곳을 찾은 거 같습니다.”

“뭐라고?!”

노다 헤이치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말을 이었다.

“그곳이 어딘가?”

“파리 인근의 한 건물입니다. 주소는 벌써 받아둔 상태입니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제가 겨우 아르노를 오래전에 모신 사람에게 접근해서 알아냈습니다. 거액을 사용했지만 이 정도 정보면 괜찮다고 판단했습니다.”

“잘했네. 당장 움직이세. 종식이도 부르게.”

“회장님 종식이는 제가 이태리로 잠시 보냈습니다. 그쪽에 회장님이 찾던 분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서요.”

“……그분이 이태리에 계셨다니. 가죽을 사랑했던 분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노다 헤이치로는 철갑상어 가죽으로 공예를 하는 칠피 장인을 수소문했다.

그는 세계 유일이라 할 수 있는 칠피 공예자로 특출난 기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칠피 공예는 상어 가죽을 가공하는 기술로 리미티드한 가죽제품을 만들 수 있다.

“차진혁 대표에게 도움이 되겠구먼.”

칠피는 철갑상어 가죽에 옻을 입혀 만든 공예법으로 나전칠기와 흡사하다.

하지만 상어 가죽 자체에 옻을 덧입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공예법이기에 그 사람이 꼭 필요하다.

“그럼 일단 우리부터 움직이지.”

“네.”

노다 헤이치로는 하형선을 따라 파리 인근의 건물로 이동했다.

에르맥스 6.

* * *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이 실종된 지 벌써 이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모두 노심초사하며 상황을 기다리고 있지만, 흔적조차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때 장료이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대체 어디 있냐고! 빨리 좀 찾아봐요. 할아버지…….”

“도련님… 노력 중입니다.”

“노력! 지금 생사도 알 수 없는데 노력이라니!”

장료이는 비서관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인내치의 한계점에 도달한 듯 보였다.

안 좋은 직감에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을 찾았을 때는 늦어버렸다.

그의 행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현재는 신지혜를 주축으로 파리의 모든 인력을 동원해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을 찾고 있었고 미국과 한국, 일본에서도 그의 행방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장료이… 미안하다.”

“야!…… 하 아니다. 내가 너무 예민해져서 내가 미안하다. 비서관님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도련님 마음 이해합니다. 저한테도 정말 중요한 분이니 더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장료이는 축 처진 어깨로 호텔 방을 빠져나갔고 그곳에 모인 모두가 다시 머리를 맞대며 대화를 이었다.

신지혜가 이때까지 모은 정보를 하나하나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호텔 CCTV에 하형선 실장님이랑 회장님이 로비를 빠져나가는 게 목격되었어요. 그 이후로 고속도로 중간중간에서 목격은 되었는데 이게 신기하게도 시간이 겹쳐요 마치 우리는 가지고 놀듯이요.”

“위장을 해서 여러 대가 돌았다는 소리인가요?”

“네… 가정이긴 한데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될 거 같아요.”

“그것 외에는 어떠한 행방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리는 한국이랑 달라서 CCTV가 많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요. 그리고 노후된 지하철 노선도 많아서 그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찾기가 더 힘들어요.”

“하 실장님도 같이 행방불명되었다는 게 이해가 안 가네요. 하 실장의 흔적은 어때요?”

“하 실장의 흔적도 없습니다.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도 없어요. 장료이 씨가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하 실장님이 의심되네요.”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료이의 비서관이 말을 이었다.

“하 실장님은 오랜 시간을 회장님과 함께했던 분인데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분도 분명 위험에 빠진 게 분명해요.”

“저희도 그렇게 믿고 싶네요.”

내가 지켜본 하형선은 비서관의 말처럼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의 손과 발이 되어 보좌했다.

그는 늘 회장님이 나서기 전에 모든 일을 해결할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야. 만약이지만 배신을 했다면 훨씬 더 위험해.’

이번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의 깊은 지역까지 수색하기로 합의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때 호텔 방의 문이 열리고 박종식이 우리를 찾아왔다.

“몸은 괜찮으세요?”

“네… 덕분에.”

박종식은 레예스의 부축을 받으며 호텔까지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하형선 실장을 찾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한신회의 진짜 우두머리예요.”

“…….”

그의 발언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가정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어떻게 된 건지.”

“네.”

박종식은 그날 한신회의 본거지를 쳐들어간 일과 그곳에서 하형선을 만난 일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거기에 아르노 회장이 있었다고요?!”

“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분명 둘이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친분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베르나르 아르노의 사람이라는 건 확실해졌다.

그리고 나와 박종식의 부모를 직접적으로 죽인 놈도 바로 하형선이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눈앞에 범인이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미안합니다. 차진혁 디자이너 형을 죽인 놈을 제가 죽였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랬구나… 그렇게 된 거구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아꼈다.

그의 상태를 보았을 때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기에.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놈은 고통스럽게 죽었나요?”

“……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였습니다. 가슴에 송곳날이 박혀도 움직이더군요. 아주 악랄한 놈이었습니다.”

“그랬군요.”

나는 잠시의 휴식을 가지자고 모두에게 제안했다.

그런 놈들에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니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베르나르 아르노. 네놈은 얼마나 더 많은 피를 보려는 거야!’

* * *

장료이는 자신의 무능함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버지가 허무하게 돌아가시고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장 따르고 기대고 싶은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인 노다 헤이치로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이 주째 행방불명인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나 정말 무능하다… 잘난 줄만 알고 살았는데 이렇게 무능하다니.”

장료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자신의 못남을 들키고 싶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들어가서 사과해야겠네.”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그때.

휴대 전화로 발신자가 찍혀 있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지?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하신가. 장료이 디자이너 아니지 도련님이지.”

익숙한 목소리.

모두가 찾고 있는 하형선의 목소리였다.

“하 실장님… 도대체 어디세요? 할아버지랑 같이 있으시죠?”

“하하하. 종식이가 크게 다치기는 했나 봅니다. 저를 아직도 그렇게 불러주시다니.”

“그게 무슨?”

“도련님. 잘 들어요! 회장님은 나랑 같이 있으니까. 안심하시고 이제부터 시키는 일만 잘 처리하면 됩니다. 할아버님은 살려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내 말을 잘 들으라는 소리지 뭐겠어. 그래야 할아버지가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장료이 잘 들어!”

“…….”

이때까지 생각했던 하형선의 말투가 아니다.

협박성이 다분한 말투로 자신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보물에 관련된 모든 걸 우리한테 넘겨 그리고 차진혁 그놈한테 전해. 네놈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그렇게 전하면 알 거야.”

“…….”

뚝!

“하 실장님? 하 실장. 하형선! 이 개자식아!”

장료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겨 버렸다.

“하…… 이런 X발!”

장료이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오랜 시간 믿고 따르던 사람이었기에 배신감이 배가 되어 돌아왔다.

하형선도 할아버지와 함께 위험에 빠졌다고 걱정하고 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다해 노력한 일을… 내가 망치라는 거야….’

“무슨 생각은 그렇게 해?”

장료이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

.

.

답답한 마음에 호텔 근처 공원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멀리 장료이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고민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생각은 그렇게 해?”

“아… 별거 아니야. 회의는 끝났어?”

“어… 뭐. 잠시 미뤘어. 박종식 씨가 왔거든… 그리고 몇 가지 문제가 더 발생하기도 했고.”

“무슨?!”

“하형선이 우리를 배신한 거 같다.”

“…….”

장료이는 깍지를 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설마… 알고 있던 거야?”

“예측 정도… 근데 방금 확신이 들어버렸거든.”

“확신이라니?”

“하 실장에게 전화가 왔었어.”

“뭐?!”

장료이는 하 실장의 말을 나에게 전달했다.

“……그것만 넘기면 회장님의 안전은 보장해준다는 거야?”

“그럴 거 같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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