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200)

“바로 처리해버려. 괜히 회장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지니까.”

“네,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동양인 남자는 테이블 위에 있는 위스키병을 들어 잔에 따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슬슬 우리도 준비하자. 이번 일 끝나면 돈 챙겨서 파리 뜨자고.”

“그럼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실 겁니까?”

“그래. 고향으로 가자.”

둘은 위스키 잔을 맞부딪치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 그리고 위에 회장님 와 계십니다.”

“누구랑 와 있는데?”

“처음 보는 놈인데… 그게 약쟁이 같습니다. 코를 킁킁거리는 게 백 프로입니다.”

“약쟁이라. 어떻게 생겼어.”

“회색 머리카락에 이쁘장하게 생겼습니다. 아! 맞다. 손가락에 엄청나게 큰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커다란 원 안에 말 무늬가 찍혀 있었습니다.”

“말 무늬? 설마….”

“정확합니다.”

동양인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또 그 짓거리를 할 생각인가?”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회장이라는 놈의 욕심은 정말 멈출 줄 몰랐고 다시 한번 피바람이 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협박하고 죽인 놈들만 몇 명인데 또 그 짓거리를….”

동양인 남자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를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장님한테 안내해!”

“네, 형님.”

* * *

베르나르 아르노는 미국 일정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에르맥스 아자르에게 접근했다.

이른 시일 내로 오래 묵은 채증을 내려버리고 싶었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아르노가 룸으로 들어가자.

회색 머리를 한 젊은 중년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노를 맞이했다.

“내가 조금 늦었구먼.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을 맞대며 대화를 이어갔다.

“돈은 준비되셨습니까?”

“돈은 늘 준비되어 있어. 자네의 결단이 필요하지.”

“저도 쉽지 않은 결정이라서요. 제가 가지고 있는 4% 주식이 넘어가면 40% 이상을 보유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버지 등에 칼 꽂는 느낌이라서요. 영 찝찝하네요.”

“그런가.”

배신하려는 아자르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표정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습니까? 정말 찝찝해서 그러는 건데. 아버지가 안 망하면 어쩌지 하는 그런 찝찝함이요.”

“아….”

베르나르 아르노는 두 차례에 걸쳐 에르맥스를 위협했다.

하지만 매번 에르맥스 회장의 부인들이 나서서 자신을 방해했고 그중 한 명이 에르맥스 에밀리다.

에밀리는 현재 회장의 재혼한 여성으로 파리에서 유명한 가문의 여식이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많은 양의 주식 지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에르맥스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년 가문에서 들고 있는 지분이 너무 많아….’

에르맥스가 생기기 이전 가장 먼저 에르맥스라는 브랜드에 투자한 가문이 에르맥스 에밀리의 집안이었기에 많은 양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네 어머니는 잘 지내시지?”

“누구 말씀하시는 거죠? 우리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계시는데.”

“아… 네가 실례했구먼.”

“괜찮습니다. 이제 그 더러운 것들 다 내 눈앞에서 사라질 텐데.”

베르나르 아르노는 잠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장남과 차남의 어머니가 다르다는 걸 잠시 잊어버린 것이다.

장남의 어머니는 에르맥스 에밀리가 나타난 이후 병을 앓다가 죽어 버렸다.

‘덜떨어진 새끼.’

에르맥스 아자르는 아직도 새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 믿고 있었다.

모두 베르나르 아르노가 꾸민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사실은 그녀를 죽인 것도 베르나르 아르노로 처음부터 아자르에게 접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에르맥스를 집어삼키려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아자르의 친어머니였고 가족경영을 추천한 것도 그녀였기에 아르노의 눈에는 그녀가 눈엣가시였다.

그 뒤로 두 번째 여자가 집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아르노는 음모를 꾸몄다.

‘내 앞에서 까불지 말라고 네까짓 게 나서니까 네 아들이 고생하잖아.’

그 사건 이후 에르맥스 티에리는 LVMH와 척을 지게 되었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많은 구설수에 티에리가 저격당했다.

“자네가 원하는 거 모두 들어주지. 지금 가격의 1.5배에 모두 매입하겠네! 그리고 지중해에 내가 보유한 섬 하나와 자네 새어머니의 가문도 함께 망하게 해주지.”

“좋네요. 더 바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에르맥스 아자르는 배다른 동생인 타아르에게 브랜드를 넘겨주기도 싫었다.

나아가 아버지가 일구어낸 회사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망해버려. 거지같이 다 죽어버리던지!’

정말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베르나르 아르노와 위험한 거래를 이어갔다.

“그럼 계약서는 여기. 확인해보고 연락해주게나 비서를 보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둘의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룸의 문이 열리고 동양인 사내와 한신회의 우두머리가 들어왔다.

“자네는 어찌한 일이야!?”

동양인 사내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서 있는 회색 머리의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설마 또….”

“또라니!? 어디서 네까짓 게 당장 나가!”

옆에 있던 에르맥스 아자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는 광경이네요.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두 분 오붓한 시간 되세요.”

그는 비웃듯이 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분노에 찬 베르나르 아르노가 윽박지르듯 동양인에게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봐. 어디서 감히!”

“회장님! 에르맥스가 뭐길래…… 그까짓 회사 하나 가지려고 순진한 동생들 손에 수많은 사람의 피를 묻혔습니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 몇 장 받아내려고 협박하고 아이도 어른도 가리지 않고 죽였다고요. 근데 또 에르맥스에 미련을 두시는 겁니까.”

“너 같은 버러지가 뭘 알아. 당장 나가!”

“못 나갑니다. 이제 제 동생들 고생시키기 싫습니다. 부족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또 죽이고 협박해야 하지 않습니까!”

“너희 같은 벌레들이 해야 할 일인데 왜 그래?”

정말 태연하게 베르나르 아르노가 답하자.

억눌러온 동양인 남자가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시키라면 뭐든지 했습니다. 노다 헤이치로 회장의 밑에 들어가기 위해 어머니도 속여야 했고 노다 헤이치로에게 빌빌대며 살아야 했단 말입니다.”

“그거야 자네가 선택한 일 아닌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게 해달라길래 내가 노다 헤이치로를 알려주었고 복수를 하지 않았나. 그 뒤로는 자네 동생들 저 벌레들을 책임져달라고 나에게 또 부탁했었고 뭘 더 해줘야 하지?”

“…….”

“왜?! 노다 헤이치로랑 같이 다니니까. 마음이 바뀌었어?”

그 순간 문 뒤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뒤에 서 있던 한신회 그림자의 우두머리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젠장!”

* * *

박종식은 단신으로 클럽 안으로 들어와.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그럼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예약자라… 보자….”

박종식은 잠시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주위를 살폈다.

‘앞에 한 놈 입구에 두 명이라….’

잠시 생각을 하는 척하며 전투를 이미지했다.

‘좋아.’

생각이 정리된 순간.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는 왼손 주먹을 앞에 서 있는 웨이터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짧은 순간 한 놈이 힘없이 주저앉아버렸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두 명의 가드가 박종식에게 달려왔다.

“어림없다.”

박종식은 온몸으로 공중에 뛰어올라 양발을 둘의 얼굴로 빠르게 가져갔다.

퍽! 퍽!

“오호 맷집 좋은데.”

한 명은 바닥을 뒹굴었고 다른 한 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턱을 매만졌다.

일어난 가드는 화가 머리끝까지 터져 나왔다.

“개자식이!”

가드가 오른쪽 주먹으로 라이트를 길게 찔러넣었지만, 박종식은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흘려버리고는 카운터 펀치를 꽂아 넣었다.

퍽!

정말 짧은 순간에 웨이터 1명과 가드 2명이 바닥에 엎어졌다.

“빠르게 움직여야겠네.”

사건은 벌어졌고 곧 있으면 더 많은 놈들이 몰려들게 뻔했다.

“아씨 클럽이 무슨 이따위야!”

박종식은 입구로 들어가 한참을 헤맸다.

일반적인 스테이지가 있는 클럽이 아닌 90% 이상이 룸으로 만들어진 곳이었고 모두 미로처럼 동선이 꼬여 있었다.

“계속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끝에 비상구가 있다고 했는데.”

박종식은 빨간색 불빛이 나는 비상구를 찾고 있었다.

그 비상구 오른쪽 문을 열고 조금 더 이동한 후 왼쪽으로 들어가면 한층 더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나온다고 레예스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있냐고!”

그 순간 눈앞에 가드 셋이 박종식에게 달려들었다.

“저놈이다! 잡아.”

박종식은 넓은 복도를 뛰기 시작했다.

“일단 저기로.”

음식이 나오는 작은 구멍으로 보였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큰 문 하나가 보였다.

박종식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잠시 몸을 잠시 숨기려는 순간.

“잡았다!”

가드는 숨도 돌리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고 박종식의 얼굴을 가격했다.

“윽! 새끼 주먹 한번 맵네. 너도 맞아!”

가까이 있던 가드 한 명에게 팔꿈치를 들어 올려 코를 향해 내리찍었다.

“흠….”

“아프지.”

박종식은 둘이 더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음식이 나오는 구멍으로 몸을 집어넣어 가드의 뒤를 노렸다.

퍽! 퍽!

정말 날렵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커다란 덩치의 가드 셋을 바닥에 쓰러트렸고 비상구를 찾기 위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이 달리고 있는 방향 맨 끝 방에서 수천 수백 번을 떠올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개새끼야!”

박종식은 미친 듯이 달려가 그놈의 면상을 발로 후려갈겼다.

방심하고 있다가 맞은 타격에 상대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박종식은 드러누운 놈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운 후 쉼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박종식은 품에 지니고 있던 길고 뭉툭한 나이프 한 자루를 꺼내 그의 목에 가져가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팔목을 잡고 강하게 반대편 바닥으로 밀치는 게 아닌가.

“윽!”

박종식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있는 놈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째서….”

에르맥스 4

* * *

박종식의 계획은 레예스에게서 모든 정보를 빼내고 이때까지 지은 모든 죄를 죽음으로 씻어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게 자신과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레예스의 마음에 악보다는 선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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