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200)

둘은 손을 맞잡고 숙소로 향했다.

* * *

타미는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그날은 무던히도 드높은 하늘이 아름다운 날이었지 내 기억에는 그런 날이었어.”

천공이 광활했던 그 날 타미는 자신이 만든 브랜드를 미국의 젊은 사업가와 연예인들에게 소개하는 날.

그는 처음부터 무명이 아닌 어느 정도 유명세를 가진 디자이너였기에 각종 신문사와 잡지사들에도 큰 관심거리 중 하나였다.

그날은 야외무대가 만들어졌고 오랜 시간 준비한 의상을 분주하게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그때 타미에게 다가온 아름다운 여성이 한 명 있었으니 백옥같은 피부에 서구적인 이모구비를 가진 그런 사람이었다.

“타미!”

“왜 그래?”

“이 의상 말이에요. 불량인 거 같아. 입었는데 안 들어가는 건 둘째치고 안쪽에 뭔가 계속 걸려서 불편해요.”

“네가 살이 찐 건 아니고?”

“아침부터 열 받게 하시네?!”

“아 미안. 농담이야. 잠시만 줘봐.”

타미는 원피스 형태의 데님을 이리저리 만져보고는 결론을 내렸다.

“실수했네. 박음질이 잘못되었어. 내가 안쪽 부분 수정해서 줄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

타미는 발 빠르게 의상을 들고 사라져 버렸다.

“태현아, 이거 수정 좀 해줘.”

“저요?! 저 타미 직원 아닌데요.”

“다들 바빠서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

“타미, 저 모델이에요. 디자이너 아니라고요. 왜 맨날 나만 보면 일 시키고 그래요.”

“그럼 디자이너 하던지. 내가 디자이너 하라니까 왜 모델 활동하냐고 그 아까운 실력 썩히지 말고 당장 내 밑에서 일해.”

“하 진짜….”

타미는 웃는 모습으로 뒤돌아섰다.

그런데 그곳에 처음 옷의 불량을 발견한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혹시 한국인이에요?”

“네…. 한국인인데요. 한국 사람 처음 봐요?”

“처음 보는 건 아닌데 저도 한국인이거든요. 아니지 저는 어머니만 한국인이세요.”

“아…. 그래요. 잠시만요. 이거 해야 해서.”

김태현은 불량으로 박음질 된 부분을 정교하게 터트리고 바늘에 실을 꿰어 정교하게 바느질을 이어갔다.

그의 손놀림은 재봉틀보다 빠르면서 정교했다.

“와…. 타미 저 사람 디자이너예요?”

“아니 모델인데.”

“모델이 무슨 바느질을 기계처럼 해.”

“그러게 말이야. 완전 장난 아니지. 나도 처음에는 좀 놀라긴 했어. 천재야 천재. 저것만 잘하는지 알아. 의상 재단에 패턴, 수도 놓고 또 뭐 하더라. 별거 다 해 신기한 인간이야.”

순간 그녀의 모든 관심이 오로지 바느질을 하는 모델에게 쏠렸다.

“저기요!”

“저 바쁜데요. 조금 있다 오세요.”

“아니. 나 좀 봐봐요.”

그녀는 반강제적으로 김태현의 얼굴에 손을 얹자고 고개를 살짝 자신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얼굴과 눈빛을 보는 순간 주위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둘이 그렇게 되고는 나도 잊어버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오늘 또 자네가 기억나게 해주는구먼. 같은 한국인이 말이야.”

“두 분 다 돌아가셨군요.”

“그랬지…. 참 둘 다 아까운 인재들이었어. 그 여자는 그해에 4대 패션위크가 뽑은 모델로도 뽑히기도 했으니까.”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말이다.

내가 왜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렸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어머니….’

JK 앤더슨 4.

* * *

내가 평가하는 의상의 완성도는 어느 때 보다 완벽하다였다.

타미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만큼 기존의 타미와 캘빈, 진&진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퀄리티를 가졌다.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타미의 말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신중히 처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네요. 제가 생각했던 디자인을 완벽하게 표현해 줬네요.”

“이번에 특별히 숙련된 제작자만 각출해서 제작했어. 이 정도 퀄리티가 아니면 프리미엄이라 할 수 없으니까.”

“잘하셨어요.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의상이네요.”

백전노장인 타미가 나서니 내가 뭐라 할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의상확인은 다 했고 저는 이제 저는 가볼게요.”

“식사라도 하고 가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흠…. 아니면 같이 가시죠. 제가 호텔 예약해뒀으니까요.”

“누구랑 약속인데 괜히 내가 껴서 실례되면 안 갈래.”

“아니에요. 가셔도 됩니다. 아리raM 수석디자이너랑 식사하기로 했거든요.”

“그럼 좋지. 네가 사는 거지?”

“그럼요. 타미가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비싼 거 사드릴게요. 브레드도 같이 가실 거죠?”

“그럼요.”

나는 둘을 데리고 런칭 행사 전까지 머무를 호텔로 이동했다.

“어디에 묵어?”

“힐튼으로 예약했습니다. 제가 가고도 저희 수석디자이너는 남아야 해서요. 쉬는 동안은 좋은 데서 쉬게 하고 싶어서요.”

“오 그래? 그럼 우리 회사 와서 일 좀 하라고 해. 미국에서 휴식만 하면 심심하지 않겠어.”

“타미. 인력 빼가는 거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이에요.”

“이놈이! 누가 빼간데 교육이지 교육.”

“아…. 네.”

“진짜 아니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강하게 그의 선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레이첼은 만나보셨어요?”

“그래…. 너보다 더 자기 마음대로더구나. 아주 대단한 총괄 디자이너를 채용하셨어.”

“반응이 왜 그러세요. 레이첼은 저한테 고맙다고 하던데 재미있다고.”

“너한테는 고맙겠지 나는 안 고마워. 네놈이나 고것이나 내 머리 위에서 놀려고 아휴…. 늙으면 물러나야지.”

“무슨 일 있었어요?”

타미는 말도 하기 싫다며 창밖을 바라보며 내 질문을 회피했고 운전 중이던 브레드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날 레이철 양이 본사에 와서 타미 속을 박박 긁었거든요. 완전 화통하신 여자분이던데요.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아…. 그렇죠. 성격이 좀….”

브레드의 말을 전하자면 그녀는 타미 본사에 오자마자.

디자인실로 달려갔다고 한다.

“혹시 총괄 디자이너 누구죠?”

“네?! 누구시죠?”

“JK앤더슨에 새로 부임한 총괄 디자이너입니다.”

“아…. 잠시만요.”

잠시 후 타미의 총괄 디자이너가 레이첼을 찾아왔다.

“제가 총괄 디자이너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반가워요. 레이철이라고 합니다. 새로 런칭하는 JK앤더슨 총괄 디자이너를 맞게 되었거든요.”

“아 그래요. 반가워요. 근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여기서 디자이너들 좀 데리고 갈게요.”

“네?!”

타미의 총괄 디자이너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혀 버렸고 레이첼은 한술 더 떠 디자인팀 전체를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그 뒤로 총괄 디자이너는 울면서 타미에게 달려와 항의했고 상황은 잠시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집요한 레이첼이 타미 그룹 전체를 돌아다니며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회유해.

현재는 꼬임에 넘어간 디자이너 다수를 JK앤더슨에 발령조치 내렸다고 한다.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이 없다면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이제 타미를 뛰어넘어 JK가 저희 그룹의 주축이 될 거 같더라고요.”

“에이 마음에 안 들어! 완전 이것들 자기 마음대로야.”

“어쩔 수 있나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조건이었잖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기존 사원을 빼가! 그리고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뭐 자기가 JK앤더슨 총괄 디자이너 됐으니까 긴장하라고.”

타미는 짜증 섞인 어투로 말하고 있지만 표정만큼은 어느 때 보다 활기차 보였다.

‘기대되시나 보네.’

“아니 내가 너한테 JK앤더슨을 맡길 줄도 몰랐을 텐데 그룹의 디자이너들을 다 빼가. 어구 머리야.”

“뭐 좋은 거죠. 성장하면 타미한테도 많은 이익이지 않을까요.”

“아휴…. 말이나 못 하면.”

“그래도 총괄 디자이너 안 빼간 게 어디에요. 좋게 생각하세요.”

타미는 머리를 삐죽 내밀며 앞자리에 앉아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를 꽥 질러댔다.

그 순간 차가 힐튼 호텔 앞에 멈추어 섰다.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 어제 뭐 좋은 거 드셨어요. 힘이 남아도시네.”

“그래 내가 너희들만 보면 없던 힘도 생겨서 그래!”

.

.

.

류미리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걸어 레스토랑으로 내려오라고 전달했다.

얼마 후 아름답게 치장한 두 여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류미리 옆에 반가운 얼굴이 함께 했다.

“엇! 신 디렉터님. 아 아니지 회장님 여기는 어떻게?”

“사장님 편하게 하세요. 회장님은 좀 부담스럽네요.”

“아…. 그런가요. 근데 어떻게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우연히 류 디자이너를 만났거든요.”

그녀와 류미리는 내 옆에 있는 타미를 바라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타미 이쪽은….”

순간 타미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알아. 새롭게 취임한 켈링 그룹 회장이잖아. 그때는 자네 회사 총괄 디렉터였고 앉아요.”

“감사합니다. 타미 회장님.”

두 달 전만 해도 아리raM의 총괄 디렉터였던 그녀가 이제는 세계 명품그룹사의 회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아리raM 수석디자이너 류미리 양이에요.”

“반갑습니다. 류미리라고 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뉴욕에 올 수 있었어요.”

모두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그때 타미가 신지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때? 회장이 되니까.”

“회장이라…. 그냥 심심한 자리인 거 같아요. 엄청 바쁘기는 한데 속 빈 강정 같달까?”

“하하하. 그 말이 정답이네. 자네 아버지는 요새 뭐 하나?”

“아버지는 저 대신 내부적인 일을 전담해 주시고 계세요. 제가 아직 부족하기도 하고 배울 게 많아서요. 그리고 제가 할 일은 따로 있어서 외근 위주로 움직입니다.”

“그렇겠지 아직 그 자리를 놓기는 아쉬울 나이야 자네 아버지는. 하지만 빨리 배워두는 게 좋아. 허울뿐인 회장이라도 분명 중대한 일은 자네 아버지가 아닌 자네가 이끌어 나가야 할 테니까.”

“조언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타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지혜에게 더 많은 충고와 가르침을 전했다.

그녀도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회장이라는 자리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자리라는 건 분명하다.

심심한 자리라는 추상적인 표현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네는 왜 아까 안 왔어?”

“아 저요?”

“그래.”

“아…. 저는 회사업무가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미국에 들어온 거라서요.”

“개인적인 사정? 그게 뭔가?”

“아…. 그게 곧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3개월 단기 디자이너 특별교육이 열리거든요. 거기에 참가하려고요.”

“그 현직디자이너 모아서 한다는.”

“알고 계시네요.”

“알고말고. 내가 교수로 추천받았거든.”

수프를 먹다 말고 뿜을 뻔했다.

분명 그가 강의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룹의 회장이 현직 디자이너 특강이라니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아니…. 거기는 왜 가시는 건데요? 밑에 직원들 보내면 되지? 회장님이 가면 다른 강사들이나 교수들 주눅 들어서 강의를 어떻게 해요.”

“내 마음이야. 심심해서 하기로 했어. 그리고 다들 잘난 놈들만 와서 나는 신경도 안 쓸 게 분명한데 뭐가 문제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의 질문을 회피해 버렸다.

‘참 특이하신 분이야.’

“그 표정 뭐냐? 디자이너 양성에도 발 벗고 나서야지 미국 패션 시장이 더 거대해질 거 아니야.”

그 순간 류미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미국 디자이너는 많이 없던데요. 아시아권이랑 유럽권 디자이너들이 다수였어요.”

“아…. 그래.”

타미는 살짝 뻘쭘해졌는지 수프를 퍼먹으며 말을 잊지 못했다.

* * *

드디어 JK앤더슨의 런칭 일자가 다가왔다.

컬렉션 장소는 skylight clarkson sq로 하디슨 강이 앞에 흐르고 뒤에는 엠파이스 스테이트 빌딩 자리하고 있는 패션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린 내 눈에는 건물 주변에 몰려 있는 엄청난 인파가 들어왔다.

그중에는 초청받은 연예인, 셀럽, 메이저 잡지사 디렉터들까지 뒤섞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주위에는 온통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즐비했고 얼핏 본다면 이 스트레이트가 컬렉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뉴욕이네.’

“사장님…. 대박이네요. 역시 뉴욕은 다르네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설레여 하는 그녀가 오늘따라 귀엽게 느껴졌다.

류미리는 한참 동안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디렉터님 바쁘신데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도 당연히 와야죠. 같이 사건을 벌였는데요.”

“그렇긴 하네요. 하하하.”

“들어가요. 기다리시겠어요.”

“네.”

우리는 런칭 컬렉션을 준비하는 무대 뒤로 이동했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수많은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 속에서는 유명한 정상급 모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흘러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네.”

타미그룹의 프로들만이 이 컬렉션에 투입된 거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곳에 있는 관계자 모두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정확하게 알고 군더더기 없이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나를 발견한 타미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어때?”

“뭐가요?”

“주위 훑어보고 있더구먼. 어떠냐고.”

“완벽하네요. 모두가 자신이 해야 할 게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그렇지. 다들 나와 오랜 시간 일했던 프로들이야.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에 모두 불렀네. 조금 있다가 소개해줄게.”

타미는 짧게 말을 남기고 다시 자리를 떠났다.

내 옆에 있던 신지혜가 말을 이었다.

“확실히 규모가 다르긴 하네요. 저는 F/W 컬렉션이 끝나는 시점에 회장이 돼버려서 구짜나 발렌시 컬렉션 참여를 못 했는데. 이 모습을 보니까 S/S가 기대되네요.”

“더 대단할 겁니다. 앞에 보이는 거보다 더.”

그녀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 모든 걸 나는 알고 있다.

자리 잡혀 있는 명품 컬렉션의 규모는 어느 브랜드보다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바쟐이 몸담은 루이 바통은 공원 하나를 통으로 빌린 후 무대를 설치하고 컬렉션을 진행했고 내가 몸담았던 샤네르에서도 숲 하나를 통째로 빌려 컬렉션 장으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의상을 표현하기 가장 적절한 공간에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한다.

최고의 최고를 덧입히는 것 이것이 바로 명품이라는 브랜드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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