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200)

나는 이 환호성은 다른 포인트에서 터져 나왔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거 뭐야? 브로치?”

“한국의 노리개 같은데. 아리raM에서 액세서리 내보낸다더니 진짜였나 보네.”

“아름다워. 사고 싶게 만드네.”

“상당히 고가일 거 같은데!”

처음 공개된 액세서리가 여기 모인 패션 셀럽과 잡지사 디렉터들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재킷 상의 오른쪽에 걸려 있는 브로치 액세서리.

이걸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금속세공사를 찾아갔다.

“이건 좀….”

“무슨 문제라도?”

액세서리 디자인 최종본이 나온 그 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금속세공사 윤종태 선생님을 찾아갔다.

“난해하네요. 정교함이 중요할 거 같은데.”

“폰트가 잘 보였으면 합니다.”

내 디자인은 아리raM 로고를 겹겹이 겹쳐 두 개의 꽃을 형상화했다.

폰트의 가로와 세로를 모두 다르게 만들어 꽃잎 하나하나를 만들어야 했으며 감싸는 곳과 넓게 펴지는 부분에는 꼼꼼한 작업이 요구되는 액세서리였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못해도 이 주는… 걸릴 거 같은데요. 아니 삼 주. 손이 많이 가요 이게 보기만 이렇지 손으로 다해야 하는데.”

“일주일!”

“말도 안 됩니다. 진짜 해드리고 싶은데 절대 안 됩니다. 손이 열 개도 아니고.”

“손을 더 넓혀드리면 되겠네요. 알고 계시는 세공사분들 더 모아주세요. 돈은 제가 모두 부담하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그리고 이것도 한번 봐주시겠어요.”

내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그에게 3가지 디자인을 더 보여주었다.

“일주일 안에 모두 다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건 좀.”

그는 놀란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두 배 드릴게요.”

“하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딱 일주일 만에 아리raM 본사에 입고된 은과 금으로 만든 금속액세서리를 본 아리raM 직원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대박… 이거 사장님이 디자인하신 거예요?”

“네.”

“너무 이뻐요. 완성본이에요?”

“아직입니다. 그러니 손대지 마세요. 형준아 이거 밑에 천령진 장인 가져다드려.”

“네.”

매듭 공정까지 마무리된 은 브로치는 매듭과 하나 되어 화려하게 재해석되었다.

꽃을 휘감고 있는 형형색색의 매듭이 은색 플라워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거 같았으며 아래로 길게 뻗어 흩날리는 실타래 덕분에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실타래 하나하나에 무게감을 주기 위해 세공된 금구슬이 매달아 일정한 움직임을 줄 수 있었다.

보는 이에게 매우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인상을 심어준다.

“색상 선택이 좋았어.”

매듭의 색은 블랙 로즈로 라벤더색의 정장과 불균형하지만, 은과 금이 그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찾으며 아름답게 표현해주고 있다.

끊임없이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액세서리 런칭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단하네요. 그렇죠?”

내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매듭장인 천령진이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기분 좋은 순간인데 왜 그래요?”

“기뻐서요. 이런 날이 다 오네요.”

오랜 시간 고생했을 그녀의 눈물이 오늘따라 값지게 느껴졌다.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하지만 나라는 우연한 인연이 그녀에게 기회로 찾아왔다는 것에 기뻤다.

다음 모델이 런웨이에 올라섰다.

“라이트 조절해주세요.”

이번에 보여줄 액세서리는 에스클라바주 목걸이로 옥장[玉匠]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이춘일 선생님에게 부탁해 만든 작품 중 하나다.

에스클라바주 목걸이는 노예 또는 속박을 의미하기도 하는 프랑스어로 3개 이상의 체인이 각기 다른 길이로 연결된 목걸이다.

나는 이 체인 부분을 매듭으로 대체했다.

새끼손가락에 들어갈 정도의 옥가락지 30개를 매듭으로 엮었고 가락지와 가락지 사이에 매듭으로 만든 꽃장식이 함께 들어가 있기에 더욱 한국답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위아래로 부딪히는 옥과 옥의 소리가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이제 끝이 보이네.”

이제 30번째 의상이 마무리되었다.

31번 의상부터 밤을 주제로 담고 있는 의상들로 찐한 자주색과 검은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의상들은 이제부터 차가우면서도 도도한 아름다움을 뿜어낼 예정이다.

“음악 바뀌면 바로 나가셔야 합니다.”

이번 무대 음악은 비발디 – 사계[겨울]로 시원한 겨울의 밤을 느끼게 해주었다.

밤을 표현해줄 첫 번째 의상은 롱 싱글 브레스티드로 이 의상의 컬러는 아주 짙은 블랙이다.

마치 밤하늘을 걸어 다니는 유럽의 여인을 표현해주고 있다.

나는 이 의상을 디자인할 때 어깨선을 남성 재킷만큼 넓혔고 허리선은 아주 얇게 쪼였다.

하의는 버블[Bubble] 치마로 단 끝의 아랫부분이 뒤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어 풍만감을 주었다.

위아래 의상이 서로 비대칭해 보이지만 어깨와 하단이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아주 균형 잡힌 디자인이다.

“반응 나쁘지 않네.”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가 나의 디자인에 자부심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터져 나오는 플래시 샤워가 이번 컬렉션의 성공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

.

.

이제 마지막 두 벌만을 남겨둔 상태.

44번째 모델이 런웨이를 시작했다.

그녀가 걸어 나가는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

관객석에 있던 모두가 뚫어지게 내가 만든 의상만 바라볼 뿐.

44번째 의상은 달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가장 빛이 나는 달.

나는 모두가 생각하는 달의 정형적인 색상을 버리고 자연에서 발해지는 달의 전형적인 색상 30가지 선택했다.

날마다 지구와 달의 궤도와 거리가 달라지며 색상도 변화한다.

나는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슴과 배 사이 중심점에 30가지 실크 원단을 박음질했다.

15가지는 가슴 부위로 향하도록 고정했고 15가지 원단은 길게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게 했다.

“여기에 빛을 쏘면.”

이 의상을 더욱 돋보이게 해줄 할로겐전등.

의상 하나를 위해 런웨이 전체 라인에 수십 개의 할로겐전등을 심어 두었다.

그 이유로는 할로겐 등은 태양광의 자연색과 아주 흡사하다.

그로 인해 발하는 원단의 색감은 아주 자연적이며 화려하게 보일 것이다.

실크와 실크 사이를 투과하는 빛이 내가 만든 드레스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스위치 온!”

순간 디렉터들과 바이어 모두 환호성을 터트렸다.

매듭 패션 4.

* * *

노다 헤이치로는 끝내 경매를 포기하고, 고문서를 손에 얻지 못했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하지만 경매를 이어갔다 한들 이길 방도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회장님….”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는 노다 헤이치로를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여기는 일본이지 않습니까.”

“아니네. 내가 부족한 거뿐이야. 그럴 거 없어. 자네까지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

“꼭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나서겠습니다.”

“그러지 말래도!”

“회장님….”

“더는 누가 다쳐서는 안 돼! 나는 아직 자네가 필요하네. 분명 기회는 또 있을 거야. 그러니 이제 잊어버리자고.”

노다 헤이치로는 고문서를 얻지 못한 게 내심 아쉽기는 하지만 저들이 보물의 흔적을 찾고 있다는걸.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생각했다.

‘분명 어디선가 정보가 새어 나가고 있어. 설마….’

보물의 흔적을 알 수 있는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남진 수첩뿐이다.

이건 자신이 오랜 세월 찾아 헤맨 결과 알 수 있었다.

“형선아.”

“네, 회장님.”

“차진혁 대표한테 사람 여러 명 붙여라. 느낌이 좋지 않다. 그리고 장료이에도.”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불안하다.”

“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보물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자료 두 개가 진혁에게 있고 이들의 정보력이라면 자신의 손주도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분명 이들이 빠른 시일 내로 진혁과 장료이에게 접근할 게 분명했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아직 아리raM은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다.

“그룹이 되고 더 많은 성장을 이룬 후에야 노출했어야 했는데. 내 실수야.”

만약에라도 LVMH 그룹이 움직여 세계 각국의 패션 협회와 시장을 뒤흔든다면 아리raM 그룹이 뻗어나갈 시장이 축소될 것이다.

“범인을 찾아야겠군,”

노다 헤이치로는 전화기를 들어 올려 박종식을 불러들였다.

가장 빠르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박종식뿐이기에.

“종식아, 네가 해줘야 하는 일이 있다.”

* * *

바닥에 설치해둔 설비에서 은빛의 펄 가루가 무대 위로 강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펄 가루가 할로겐의 강한 불빛에 휘날리며 아름다운 상황을 연출시켰다.

뒤를 이어 의상과 펄이 만나고 빛이 이 둘을 투과하는 순간 아주 아름다운 한순간을 연출해 주고 있었다.

와!

짝짝짝!

멍하니 이 상황을 지켜보던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 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는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눈의 즐거움을 조금 더 선사하기로 했다.

44번째 모델이 무대를 빠져나오고 마지막 모델이 런웨이를 준비한 상태다.

“다들 마지막까지 긴장 놓치지 마세요.”

“네.”

마지막 피날레 의상은 매듭으로 만들어진 드레스.

꽤 오랜 시간이 공들여 만든 드레스로 천령진의 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주 귀한 드레스다.

내 옆에는 나를 보며 헤벌쭉 웃고 있는 장하나가 보였다.

“장하나 씨 잘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죠. 제가 또 아리raM 식구잖아요. 최선을 다할게요. 홧팅!”

이제는 정상급 모델로 굳건히 자리 잡은 장하나가 우리 아리raM F/W 시즌의 피날레를 장식해주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이번 무대는 3분입니다. 오로지 이 시간만큼은 장하나 씨 시간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신호를 남기고 무대를 당당히 걸어 나갔다.

뒤에서 지켜보는 그녀의 워킹 솜씨는 유럽의 탑 유명 모델들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많이 성장했네.”

송영태에게 사기를 당하고 불법적인 일에 이용당했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모습에 가슴이 웅장했다.

장하나가 무대가 꺾이는 부분을 돌아서는 순간.

“시작해주세요.”

내 신호에 맞춰 조명팀이 하나의 메인 조명만을 남겨놓은 채 모두 조명을 꺼버렸다.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무대.

장하나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밤을 뒤덮은 별을 표현하고 있다.

이 드레스를 한 가닥의 검정 실과 한 가닥의 은 실을 이용해 만든 매듭을 하나하나 검은 원단에 박음질한 의상이다.

순간 장하나에게만 비친 강한 빛 덕분에 은 실만이 아름답게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드레스이지만 아주 아름답고 상업적인 메시지가 가득 담겨있다.

나는 이 드레스를 디자인할 때 일부로 50%의 부족하게 만들었다.

다른 50%로는 액세서리가 채워주게 하려고.

“액세서리가 메인이여야 한다.”

비중은 5:5로 왜 의상보다 액세서리에 힘을 줬냐고 물어본다면 저 액세서리가 아리raM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때까지의 모든 공예를 저 액세서리 세트에 결집했다.

팔찌에는 전각장 안윤호 선생님의 나무공예와 로고 전각이 자리 잡았고 외형 둘레에 나전장 신영길 선생님의 정교한 나전 공예가 들어가 있다.

귀걸이는 5X5 얇게 육각에 류미리가 놓은 수를 부착시켜 놓았으며 양쪽 귀걸이에 놓인 수는 모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목걸이는 이전과 같이 은공예와 매듭을 합친 초커[Choker] 형태의 목걸이로 쇄골 위로 딱 맞게 거는 목걸이가 아주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아주 완벽해.”

장하나가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자리를 잡고 자세를 취하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그녀에게 이 무대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미세하게 바람 좀 보내주세요.”

“네.”

장하나는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머리 위에 꽂혀있던 비녀를 뽑았다.

그 순간 바람에 생머리가 흩날리며 순간순간 보이는 귀걸이가 관객 애간장 타게 했다.

그리고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마다 양쪽에 차고 있는 팔찌에서 나전이 빛에 반사되며 아름답게 연출되고 있었다.

무대 아래는 아주 고요했으며 모두 숨 막히듯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다.

“끝인가.”

장하나는 퍼포먼스를 마무리하고 무대 뒤로 돌아왔다.

“저 어땠어요?”

“최고였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칭찬하는 그때.

무대 아래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우리 브랜드의 이름을 외치며 소리쳤다.

“성공이네요.”

“아직 멀었죠.”

장하나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같이 가요.”

오른쪽에는 천령진이 왼쪽에는 장하나가 함께 무대를 빛내주고 있었다.

무대 아래에 있던 관객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나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무대를 아름답게 만들어준 장인을 소개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