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148/200)

“오 이건 시키지도 않았는데 만들었네.”

“아… 그거 가죽 원가만 300만 원 들었다.”

“뭐… 그 정도 예상했어. S급 천연 악어가죽이니 싸게 먹힌 거지.”

“6마리 들어갔다. 악어가죽 가방은 만들 때마다 찝찝하단 말이야.”

“뭐 어쩔 수 있냐. 우리 일인데.”

현재 내가 들고 있는 가방은 60㎝ 크기로 만든 남성용 온리 원 백으로 천연악어 가죽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악어 가방은 악어의 등 무늬를 일정하게 이어서 만들어야 하기에 같은 종류의 악어가죽 여러 장이 필요했다.

“잘 챙겨둬 가장 마지막 모델에게 전해줘야 하니까.”

“그래. 내가 직접 전해줄 거야. 이 녀석들… 6마리나 희생된 건데 아껴줘야지.”

“그래, 그러시던지.”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정말 예전과는 다르게 모두가 성장했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직원이 분업화해 일을 잘해주고 있다.

나는 모두에게 말을 전했다.

“모두 모여주세요!”

“네.”

“오늘 수고 많았어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봅시다. 이번 달에 성과급 두둑하게 챙겨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모두 함박웃음을 일으키며 파이팅을 외쳤다.

신 디렉터가 없는 이 공간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녀의 역할을 하는 MD팀 전원이 그녀를 대신해 힘을 합쳤다.

그래서인지 전혀 빈 곳이 어색하지 않았다.

디자인팀도 마찬가지로 이때까지 준비해온 모든 걸 이 자리에서 뽐내기 위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점검하고 점검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건 매듭 액세서리다.

현재 컬렉션 장에 모인 셀럽들과 잡지사 디렉터들 그리고 해외 바이어들의 반응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천령진 장인님도 조금 있다가 무대 입구 쪽으로 오세요. 자신이 만든 액세서리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봐야죠.”

“아… 다들 싫어하면 어쩌죠? 괜히 폐 끼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설마요. 대박일 겁니다. 제가 보장하죠.”

“그래요. 감사합니다.”

내가 만든 액세서리 디자인이지만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정말 살아 숨 쉬는 액세서리로 탄생했다.

매듭의 볼륨과 정교함이 입체감을 더해주어 정말 기계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액세서리가 만들어졌다.

나는 그녀의 최종본 액세서리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액세서리 런칭은 가죽, 매듭, 금속 모두 함께 런칭하려 했지만, 매듭은 따로 관리할 생각이다.

‘소량생산해서 엄청 비싸게 팔아야지. 기대되네.”

한국의 금속 장인들과 매듭 장인의 협업이 돋보이는 액세서리.

아리raM의 큰 매출을 안겨다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총괄 디렉터 정희정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울려 퍼졌다.

“다들 준비하세요. 컬렉션 시작 10분 전입니다.”

나는 홀연히 멀찍이 서서 무대를 바라보았다.

“신 디렉터도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녀에게 보여 줘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준비를 했다.

이번 시즌에 준비한 무대 콘셉트는 요정의 숲이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증기를 바닥에 깔았고 디귿 자 형태의 무대, 사이사이 풀과 나무를 배치해 놓았다.

나는 무대를 바라보며 그곳을 거닐게 될 모델들이 떠올랐다.

“설레어. 이 순간은 늘 그런 거 같네.”

오래전 동생의 몸으로 브랜드 Han의 컬렉션에서 느꼈던 그 울렁거리는 설렘이 지금도 느껴지고 있었다.

“곧 시작하겠네.”

이번 시즌에 소개할 의상의 수 총 45가지.

몇 번의 수정과 회의를 이어오며 최종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고 부끄럽지 않은 시즌의 시작을 알릴 자신이 있었다.

“다들 파이팅 외치고 시작하죠!”

“파이팅!”

우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무대 뒤를 장식하는 순간.

잔잔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곡으로는 유명한 작곡가이자 가수인 유희열의 공원에서.

자연의 색을 콘셉트로 만든 우리 의상과 아주 완벽히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판단이 섰다.

내 뒤로 줄지어 있는 모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출발하세요.”

첫 번째 모델이 천천히 걸어 나가자.

순식간에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네.’

약간의 텀을 주며 두 번째, 세 번째 모델이 출발시켰다.

첫 번째 모델이 메인 스트레이트에 멈추는 순간.

다시 한번 작은 환호성과 카메라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이번의 콘셉트가 자연인 만큼 순차적인 변화가 중요했으며 작은 흥분에서 큰 흥분으로 가는 묘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처음은 하늘, 두 번째는 꽃 그리고 세 번째는 어둠.”

첫 번째 모델이 입고 나간 의상은 얇은 화이트 실크 끈 원피스에 파스텔 스카이 블루 울 코트를 걸쳤다.

코트의 깃을 크게 만들어 마치 하늘을 유영하는 한 마리 새의 날개를 표현했다.

그리고 상단과 하단의 둘레를 다르게 주어, 마치 모델이 옷에 폭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어 보았다

“컬러 선택이 좋았어.”

몽환의 하늘을 표현한 파스텔 스카이 블루는 생기있어 보이며 시원한 느낌과 생동감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첫 번째 모델이 무대를 마치고 들어왔다.

“수고했어요.”

“네.”

내가 잠시 고개를 돌리는 그때.

엄청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미쳤다. 역시 아리raM 컬렉션은 믿고 온다니까.”

“장난 아니다. 이번 컬렉션 정말 화려하네.”

“그러게 말이야. 해외 바이어들 표정 봐.”

첫 번째 의상이 하늘의 새였다면 일곱 번째 의상은 노을에서 영감을 얻었다.

밤과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블랙과 노을빛의 붉은 주황색을 그라데이션한 하나의 롱 원피스.

소매는 윈터 스카이라는 약간의 살색에 붉은빛이 맴도는 원단을 4단 러폴드했다.

러폴드[Ruffled]는 여러 층의 원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형태로 곡선적인 느낌을 주는 방법이다.

나는 이 노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의상을 디자인하며 바다에 잔잔하게 깔리는 노을과 다가오는 어둠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

화려하지만 억제된 아름다움이 무대의 조명과 만나 극대화되어 보였다.

“하늘은 끝이네.”

10번째 모델이 메인 스트레이트에 올라섰다.

“귀여워!”

“그러게, 눈이 즐거운 컬렉션이네.”

“마치 하늘이 숲에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신기하네.”

10번째 의상은 하늘색과 올리브색을 타이거 무늬로 얼룩을 집어넣은 아방가르드한 의상이다.

커다란 의상에 허리와 엉덩이를 감싸는 천 벨트가 인상적이다.

이 드레스의 특징은 원단에 세 가지 색을 얇게 프린팅 인쇄를 해놓았기에 여러 각도에 따라 색이 변화하며 입체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 옷에는 하늘색과 올리브색을 제외한 피스타치오색이 몰래 숨어 있다.

두 가지 색을 섞어 놓은 거 같은 피스타치오 색상은 마치 하늘이 숲을, 숲이 하늘을 집어삼키듯 한 모습을 재현해 낸다.

10번째 모델이 무대를 마무리하고 들어 왔다.

이제 화려한 플라워의 향연이 시작될 예정이다.

* * *

일본 도쿄 경매장.

노다 헤이치로는 오늘 경매품 중 한 가지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회장님. 정말 찾던 물건이 맞습니까?”

“그런 거 같네. 이 문서에 적힌 그 물건이 확실해.”

아버지가 물려준 작은 책자에 적힌 고문서 하나 그곳에 모든 비밀이 적혀 있다고 했다.

노다 헤이치로는 이걸 찾기 위해 몇 년을 헤맸는지 모른다.

“꼭 얻어야 하네.”

차례로 경매가 이루어지고 얼마 후.

낡은 고문서 한 장이 드디어 노다 헤이치로 눈앞에 나왔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어떻게든 저것을 얻어내리라 다짐했다.

― 亡國之恨 徹天之恨

― 나라가 망해서 탄식한다. 하늘에 사무치는 크나큰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고종이 누군가에게 남긴 편지.

저 안에 보물을 찾을 수 있는 힌트가 있다.

“망국의 왕의 편지입니다. 경매 시작가는 1백만 엔부터입니다.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1백만 엔 땅!”

노다 헤이치로가 가장 처음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

누구도 저것을 탐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2백만 엔 나왔습니다. 3백만 엔, 4백만 엔, 5백만 엔, 6백만 엔, 7백만 엔, 8백만 엔, 9백만 엔 이제부터 호가 두 배씩 올라갑니다. 신중히 번호판을 들어 주십시오”

그런데 끝날 거 같던 레이스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경매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가고 있었다.

노다 헤이치로는 저 고문서의 가치를 아는 자는 자신뿐이라 생각했다.

어느 누가 보아도 큰 가치가 없는 낡은 종이였고 현재 여기는 일본 경매장이기에 고종에 대해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는 그제야 의심하며 고개를 돌려 레이스 상대를 확인했다.

“젠장!”

고개를 돌린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 앉아있었다.

매듭 패션 3.

* * *

노다 헤이치로가 바라보자 상대도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승리에 차 있는 미소로 말이다.

“젠장!”

낮 이익은 노랑머리의 중년 사내.

베르나르 아르노의 비서팀장이 경매 레이스 상대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네놈들이 어떻게…….”

“회장님. 저놈….”

“나도 알고 있네. 정보가 어디서 샜나 보고만.”

“…….”

“저것만은 꼭 얻어야 하는데. 일이 꼬이는군”

근심이 가득한 가운데 다시 이어진 레이스, 노다 헤이치로는 뒤질세라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

어느덧 경매가는 경매장 최고가인 1억 엔을 돌파했고 거기에 모인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경매장 최고가 갱신했습니다. 대단합니다!”

그 뒤로도 경매장에는 번호판을 들어 올리는 바람 소리 이외에 작은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모두 침을 꼴깍꼴깍 넘기며 둘의 피 터지는 레이스를 지켜볼 뿐.

그 순간 숨이 턱 끝까지 밀려든 경매사가 큰 숨을 내리 쉬며 잠시 시간의 텀을 만들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둘의 레이스에 집중했고 더 많이 호가하는 사람에게 환호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냥 종잇장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데에 1억 5천만 엔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전 재산을 걸어서라도!”

노다 헤이치로가 결심을 굳힌 가운데 비서팀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노다 헤이치로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 정도에서 포기하시죠.”

“어림도 없는 소리!”

“이기지 못할 싸움에 목숨을 거는 행동도 미련한 겁니다. 그러니 포기하시죠. 노다 헤이치로 회장님.”

“어디서 감히!”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모든 돈을 퍼부어본들 저는 더 많은 돈을 쓸 생각입니다. 만일이지만 저를 이긴다 해도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거 아실 텐데. 당신을 몰라서 가만히 두는 게 아닙니다. 건드릴 가치가 없어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지요.”

비서팀장은 다소 위험한 언행을 거침없이 뱉어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여기서도 이길 수 없는 건가….”

이 끝은 자신의 패배가 확실해진다고 가정 세우니 모든 게 허망해졌다.

이 작은 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이 왜 이리 오랜 시간을 이것에 목매어 살았는지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노다 헤이치로는 해볼 때까지 해볼 생각이었다.

* * *

두 번째 메인 콘셉트인 꽃을 형상화한 의상을 입은 모델이 무대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홀 전체에 이루마의 곡 플라워가 흘러나오며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었고 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연상케 했다.

“모델이 메인 스트레이트 올라서면 효과 넣어주세요.”

“네”

차례대로 모델들이 걸어 나갔고 11번째 모델이 메인에 멈추어 서는 순간!

핑크로즈의 꽃잎이 천장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미리 설치해둔 로즈 향이 켈렉션 장 전체에 뿌려졌다.

“와 아름다워. 향기까지!”

“이 향… 설마!”

“크리드다!”

크리드, 영국 왕실의 향수라 칭송받는 향수 계의 끝판왕이다.

이 향수 브랜드는 나폴레옹 3세와 유지니에 황후의 극찬을 받기도 했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황실에서도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현재는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크리드 제품을 신지혜를 통해 대량으로 공급받았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아리raM 크리드의 조향사에게 부탁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된 핑크로즈 퍼퓸을 공급받았다.

향수 등급은 4가지 나뉘는데 오드 코롱, 오드 뚜 왈렛, 오트 퍼퓸, 퍼퓸 순으로 등급이 높다.

내가 선택한 퍼퓸은 향수 원액의 비율이 15~30% 정도를 함유하고 있으며 지속시간이 5~10시간으로 가장 긴 시간 향을 유지해 준다.

“큰돈 쓴 보람이 있네.”

현재 큰 홀 전체에 뿌려져 나가는 퍼퓸의 양은 총 20L로 개인이 사용한다면 10년 치를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그리고 20L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 20만 달러로 우리나라 돈 2억 원에 해당한다.

“시각과 후각이면 충분히 매료당할 수 있어.”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려 표현을 극대화했다.

첫 번째 모델이 입고 있는 의상은 화이트색상을 시작으로 점점 내려올수록 핑크 튤립의 색이 나타난다.

이 드레스는 엠파이어 스타일로 하이 웨이스트[실제 몸의 허리선보다 높은 위치에 만들어진 허리선] 느낌을 주도록 드레스 상체 부분이 가슴 바로 밑에서 끝이 나는 디자인으로 몸을 스치듯이 지나가는 길고 루즈한 치마 핏이 단아함을 강하게 뿜어내 주었다.

그리고 포인트가 되는 오른쪽 숄더의 커다란 로즈가 이 의상의 모든 걸 표현해주고 있다.

“이제 메인 의상 중 하나야.”

그다음 모델이 입고 있는 의상.

내가 이번 시즌 가장 심열을 기우려 만든 메인 의상 중 하나다.

세미 정장으로 딱 달라붙는 재킷에 라벤더를 형상화한 프린팅이 아주 매력적이었고 가장 포인트가 되는 팔라조[Palazzo] 바지의 조화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팔라조 바지는 루즈한 디자인으로 허리 부분에서 다리까지 아주 넓게 재단된 넓은 바지로 코코 샤넬이 즐겨 입은 것으로 유명했다.

현재 복고풍이 유행하기에 이 디자인을 선택했으며 팔라조 바지는 1960년대와 199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이다.

“와!”

“저거 뭐야?”

다시 한번 터져 나온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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