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200)

내 눈에 그녀의 표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설마….”

순간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죽을 때를 목격했거나.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았거나. 내가 죽은 이후에 어떤 놈들이 찾아왔거나 정도인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정을 세운 것에 반성했다.

괜한 사람을 오해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쨍그랑!

안델라의 집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뭐지?”

악!

순간 악에 받친 듯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의 집의 담장을 넘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 * *

“야 일어나! 깬 거 알고 있으니까.”

박종식은 쓰러진 레예스를 파리 외곽의 한 창고에 끌고 왔다.

“악! 살려주세요.”

짝!

순간 박종식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아씨 귀청 떨어지겠다. 야 소리 질러도 아무도 안 와. 그러니까 닥쳐라. 깨어났으면 상황판단부터 해 멍청한 년아.”

그는 정말 인정사정없이 그녀를 대했다.

“너희 보스 어딨어?”

“카 아악 퉤.”

그녀가 붉은 핏덩어리를 뱉어내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냥 죽여. 이러나저러나 죽을 거 네 손에 죽을게.”

“그래, 뭐.”

레예스는 박종식의 시연찮은 반응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보여줄 게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

박종식은 콧노래를 부르며 작은 창고 안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들고 나타났다.

“아씨 배터리 없네. 조금만 더 기다려.”

레예스는 그의 여유로움에 불안한 감정만 증폭되어 갔다.

얼마 후 박종식이 동영상 하나를 재생해 그녀의 얼굴 앞에 가져갔다.

“이거 봐.”

박종식이 내민 영상을 보는 순간.

레예스는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안 돼! 그 사람은 건드리지 마.”

“오해하지 마. 내가 이 새끼 건드리려고 보여준 거 같냐. 같이 있는 사람을 보라고.”

“회장님의 비서….”

“빙고.”

레예스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바라봤다.

“레예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

그녀는 박종식의 웃고 있는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 있잖아. 아르노 회장 측 사람이야.”

“말도 안 돼! 그 남자는 일반 셀러리맨이야. 우리 일과는 무관한 사람이야. 업무상 만났을 수도 있는 거잖아.”

“멍청하기는 최근 들어 너희 조직원들 하나둘 없어졌을 텐데.”

“네가 그걸 어떻게?!”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팩트는 아르노 회장이 너희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다는 거지.”

“회장님이 왜! 우리는 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데.”

“아르노에게 이제 한신회의 개들은 필요가 없으니까. 너희 같은 살인자들은 걸림돌이 될 확률이 높거든 아니다. 걸림돌보다는 치부가 더 정확하겠다.”

“개소리 집어치워.”

박종식은 노다 헤이치로의 명령에 따라 비밀리에 한신회와 그들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개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중 공들여 신경 쓰는 사항이 개들의 움직임과 변화를 관측하는 것.

개들의 움직임에 따라 기업합병과 큰 자금이 움직이기에 노다 헤이치로 쪽에서도 함께 움직이며 자금을 키워갔다.

“한신회의 개들 아니지 LVMH 그룹의 개가 더 맞겠다. 너희가 했던 악행을 생각해봐. 기업의 뒷거래, 살인, 폭행, 불법 자금 세탁에 주가 조작까지. 더러운 짓은 너희가 다했잖아. 그게 부담스러운 거지 만약에 알려지기라도 해봐. 어떻게 될 거 같아? 그룹 자체가 풍비박산일 거야.”

“설마… 아닐 거야… 우리가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충성을 다했는데… 너희 회장 너무 잔인하다.”

레예스는 분노와 배신감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박종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퍼즐이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요 몇 달 사이 조직원 대부분이 실종되고 어디론가 잠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근데 내 생각인데. 너희 보스도 알고 있었을걸. 자기 혼자 살려고 으그.”

박종식은 질렸다는 듯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그때 뒤에 있던 레예스가 소리치며 묶인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냥 죽여! 이 개자식아.”

“그럼 재미없잖아.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사실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박종식이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베르나르 아르노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사건이 시작되었다.

박종식의 수하들이 전담하고 있던 한신회의 개들이 하나둘 의문의 사건으로 죽어 나가고 있다는 걸 보고받았다.

‘꼬리가 잘리기 전에 잡아내야 해.’

연결고리가 될 수 있던 나나세가 죽어버렸으니 이제 레예스를 회유할 수밖에 없었다.

박종식은 레예스를 더 자극하기 위해 흘리듯 말을 남겼다.

“심심한데 증권회사나 가볼까.”

소리 지르고 있던 그녀가 순간 조용해졌다.

아르노의 명령이라고 해도 자신을 사랑하는 건 거짓이 아니리라 믿고 싶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말투, 행동 모두 사랑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거라 믿고 있기에.

‘내가 그를 지켜줘야 해. 아르노에게서도 보스 그리고 저 개자식에게서도 지켜줘야 해.’

“말할게. 그 대신 조건이 있어.”

“미친. 잡혀있는 주제에 조건?!”

“싫으면 말든지.”

“들어나 보자. 얼마나 대단한 조건인지.”

“100만 달러 그리고 영상 속 남자의 안전이면 돼.”

“영상 속 남자의 안전은 오케이 근데 100만 달러는 안 되겠는데.”

“내 목숨값이야. 그 정도는 받아야겠어.”

“하… 일단 알았어. 그럼 네 남자친구 목숨값부터 결제해. 너희 보스가 있는 곳이랑 김서진 디자이너를 찌른 칼을 숨긴 장소 정도면 퉁쳐줄게.”

“좋아.”

아리raM 그룹 6.

* * *

안델라의 목소리에 다급히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델리를 안은 채 잔디밭 바닥에 주저앉아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무슨!”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안델라. 무슨 일이에요?”

“……그게.”

그녀는 손가락으로 집 뒤를 가리키기만 한 채 두려움에 가득 찼는지 말을 잊지 못했다.

그때 집 뒤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차 디자이너!”

“엇, 박종식 씨. 여기는 어떻게?!”

“아… 말하자면 긴데. 당신은 어떻게?”

“형 집에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랬군… 하여튼 잠시만 저 여자분 잡고 있어 줘요.”

안델라는 한국말을 하는 우리를 보며 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안델라 저분은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치 내 말에 부정이라도 하듯이 말을 이었다.

“저 사람… 그때 당신 형이 죽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야.”

“형을 구하려고 왔던 사람이에요.”

“…….”

그녀는 내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횡설수설하는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델리가 울음이 터트리고 말았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델리에게 말을 이었다.

“꼬마 아가씨 울지마 아무 일도 없어. 엄마가 오해하셔서 놀라신 거야.”

내가 델리를 달래는 그때.

박종식이 한 여자와 이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악… 저 여자… 나는 아무것도 말 안 했어요. 진짜예요.”

안델라는 델리를 꽉 껴안은 채 내 뒤로 숨어들었다.

뒤에 숨은 그녀의 미세한 떨림이 나에게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도무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박종식 씨 이제 무슨 일인지 좀 말씀해 주시죠.”

“아… 죄송해요.”

박종식은 그제야 자신의 가슴 품에서 지퍼 백에 든 정글 나이프 한 자루를 꺼내 보였다.

“차 디자이너 형을 죽인 칼이에요. 그리고 이 여자는 당신 형을 죽인 원수의 부하고요. 저 아줌마가 놀라는 거 보니. 그날에 이 여자나 내 얼굴을 본 거 같네요.”

‘저 칼로 나를… 개자식들.’

억울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칼 한 자루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동생의 몸에 들어와 기생하듯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지퍼 백을 박종식에게 받아 드는 순간 정글 나이프에서 검붉은 빛이 일렁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그날이야….”

은침 분위기 속 작은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던 그날 밤이 나타났다.

그때 차 한 대가 우리 집 마당 앞에 멈추어 썼다.

“저놈들이… 범인인 거야?”

사내 셋과 여자 하나가 차에서 내려 작전을 수행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자식들….”

여자와 남자 한 명은 안델라의 집으로 다른 한 명은 로버츠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냥 나와버렸다.

“이쪽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그럼 초입에서 지키고 있다가 누가 움직이면 알려주라고.”

“예, 보스.”

그들의 말을 빌려 생각해본다면 그날 로버츠는 집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 한 명이 보스라는 사내에게 다가와 말을 이었다.

“집에 여자랑 아기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잡아둬. 소리 내면 죽여버려.”

“네.”

얼마 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넷 앞에 내 스포츠카가 나타났다.

나는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 하악… 웩!”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복면과 검은 모자를 쓴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내 목에 칼 선을 그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술기운이 남아 있던 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위액이 역류했다.

“X발! X새끼….”

그때 내 눈에 기억 속에 없던 장면이 비쳤다.

그 짧은 순간에 살려는 의지로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내 모습.

“…….”

죽음 앞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내 손길에 나를 죽인 놈의 복면과 모자가 흘러내렸다.

“한국인!”

분명 한국인이다.

동양인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만의 특유의 외모가 비쳤다.

‘나를 죽인 사람이 한국인이라니.’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널 꼭 찾아 죽여버릴 거야!”

그렇게 영상이 희미해지며 서서히 끝나갔다.

“어… 박종식 씨?”

의아했다.

박종식이 했던 말과는 사뭇 다른 한 장의 슬라이드가 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잘못 본 건가? 마치 지켜보고 있는 거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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