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200)

“자 시작합시다!”

군함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크루즈 두 대에서 서치라이트가 켜지며 어두워진 군함도를 대낮처럼 밝게 만들었다.

그리고 왼쪽에 정박해 있는 배에서 국악의 구슬픈 선율이 흘러나왔다.

“출발해주세요.”

모델들이 크루즈에서 내리는 순간부터가 런웨이의 시작이다.

이번 컬렉션의 특성상 무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위험한 요소가 많이 존재했다.

다행인 건 프로 모델들답게 내가 알려준 동선을 잘 파악했고 위험한 요소들을 컬렉션의 특성처럼 잘 활용하며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절제된 몸놀림과 단합된 움직임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배에 설치된 서치라이트가 한 명, 한 명의 모델들을 잡으며 그들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좋아.”

의상의 콘셉트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무엇이 일어났고 무슨 일이 자행되었는지 디자인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의상이지만 하나의 색을 가지고 있었고 원단 또한 하나다.

새하얀 세미 정장과 드레스, 원피스, 오픈 숄더톱, 재킷, 코트까지 여러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쉼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시작하세요.”

내 신호에 맞춰 우리가 설치해둔 소방 호스에서 최대 수압으로 물을 뿜어냈다.

“서치라이트 최대로 올려주세요. 그리고 무용수 투입하세요.”

“네.”

내 신호에 서치라이트가 켜지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인공 비에 얼룩진 의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의상 내부에 검은 먹 가루를 가득 집어 넣어두었다.

이 가루가 물과 만나 서서히 옷을 더럽히고 검게 물들일 것이다.

“좋아!”

희망을 품고 온 이곳에서 이루어졌던 착취와 폭행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얼룩지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현대 무용수 5명이 달려나가 모델들을 둘러싸며 이곳에서 자행된 일상과 폭력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때요?”

“시청률…… 45%라고 연락 왔어요. 순간 시청률 70%요. 이 정도면 전 국민이 다 보고 있다는 소리예요.”

“다행이네요.”

현대 무용수들 아픔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몸으로 표현해 주고 있었다.

“아직이요. 음악이 바뀌면 움직이세요.”

국악의 구슬펐던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고 잠시 후 화려하면서도 역동적인 소리로 바뀌었다.

그 순간 군함도 전체가 암흑으로 깔렸다.

“지금이에요.”

서치라이트가 단 한 곳에 집중되었다.

내 신호에 메인 의상인 흰색 누빔 도포를 입은 남녀 두 모델이 걸어 나가자.

물은 계속해서 뿜어져 내렸다.

그들은 그 비를 뚫으며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PD님 저 둘 클로즈업해서 집중적으로 찍어주세요.”

“네.”

이제 이들만 메인 자리에 도착해 짧은 퍼포먼스 하나면 내가 계획한 군함도 컬렉션이 끝이 난다.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 5.

* * *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은 난리가 났다.

양측 모두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였고 한국 방송에서는 단독으로 아리raM의 군함도 컬렉션이 방영되고 있었다.

“방송국에 엠바고… 아니지. 하 벌써 방영된 지 몇 분 지났어요?”

“5분 지났습니다. 대통령님.”

“미치겠네.”

문명진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틀어진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

아시아 패션 어워드가 끝나는 시점으로 아시아 국가들끼리의 경제 발전을 위한 산업 체인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일본대사 청와대로 들어오겠다고 합니다.”

“들여보내요…. 미치겠네.”

곤란한 상황에 부닥쳐 버렸다.

일본과 한국이 화합하자고 결의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문명진은 해결 방안으로 세 가지를 떠올렸다.

차진혁 디자이너에게 떠넘길 것인지, 아니면 강성으로 나아가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인지 또 아니면 이들에게 굴할 것이지.

‘우리는 약하지 않아. 하지만 강하게 나갔다가는 사이만 틀어질 뿐이고 고스란히 기업인들의 피해만 가중될 뿐이다. 그럼….’

고민에 빠져 있는 그때.

주한일본대사가 문명진의 직무실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대통령님. 지금 외무장관이랑 총리까지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따져 묻기 시작했다.

“일단 앉으세요. 소리 지른다고 달라질 거 없습니다. 대화로 풀어야죠.”

“하…….”

일본대사는 자리에 앉아.

문명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도 몰랐습니다. 이 상황을 알았으면 말렸을 겁니다.”

“그러셨을 거라 믿겠습니다. 그럼 뭐합니까!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아리raM 대표 저희가 체포할 겁니다.”

“네?!”

“차진혁 디자이너는 불법적인 일을 행했습니다.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네, 정말 그래도 됩니까?”

“하신다면서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주한일본 대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들려오는 말로는 문명진과 아리raM 대표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라고 들었는데 자신의 도발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청와대와 한국 정부는 그 일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잘 전달해주시죠.”

“그러겠습니다.”

주한일본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명진에게 고개 숙인 뒤 직무실을 빠져나갔다.

“외교부 장관이랑 차관들 모두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사실 그냥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문명진의 관점에서 진혁의 기별도 없는 행동에 괘씸한 마음은 있으나 밉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해주었다.

“너희가 무슨 명분으로 체포한단 말이야.”

아시아 패션 어워드 최종 컬렉션은 살인과 비윤리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브랜드가 정한 위치에서 어떠한 행위를 해도 정당하다고 공문에 명시되어 있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패션쇼를 하는 인원은 관광을 목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영된 영상을 보면 배 위에서 연주하고 서치라이트를 켰을 뿐이다.

“일본이 이렇게 삐딱하게 나오면 아시아 산업 체인은 끝인 건가.”

문명진은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기에 외교와 법적인 문제를 참모진들과 토론해 해결해야 한다.

“대단한 청년이야… 골치 아프게 됐네.”

* * *

일본 총리실에 고베 총리와 고이즈미 타로 그리고 관방장관과 방위상까지 모여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타로!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외무장관이 이것도 하나 파악 못 하고 뭐 했어!”

“죄송합니다. 낌새가 이상해서 알아봤는데. 다른 곳에서 컬렉션이 이루어지기에….”

“핑계 좋구먼.”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방위상이 말을 이었다.

“방위대로 진압하겠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안 됩니다.”

그때 관방장관이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을 이었다.

“총리님 아시아 패션 어워드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방위대가 움직였다가는 저희 입장도 곤란해집니다. 이 대회 프랑스 주최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사우디나 인도도 끼어 있습니다. 괜히 움직였다가는 역풍으로 돌아올 겁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켜봐야 한다는 건가?”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일단 고속정만 보내서 경고하고 철수시키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모두 혀를 차고 있었다.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컬렉션을 진행했고 자신들을 건드릴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타로 장관님.”

“네.”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키시고 무역 단절시키세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때 고베의 직무실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지금 회의 중이라고 했잖아.”

고베는 뒤에 이어지는 답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알겠어. 전화 연결해.”

* * *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순간.

무장한 고속정이 크루즈 쪽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어쩌죠?”

여기서 멈출지 마지막 피날레를 보여 줄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다.

배 선장들의 무전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모두 철수하지 않으면 발포한답니다. 멈춰야 합니다. 배를 돌려야 합니다.”

“잠시만요!”

아리raM 직원들과 모델들은 현재 내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저를 믿고 따라와 주셔서… 컬렉션을 여…….”

나를 위해서가 아닌 모두를 위해서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때 무전을 통해 모두의 마음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대표님! 계속 진행하시죠. 저희는 괜찮습니다.”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하. 퍼펙트호 선장입니다. 빨리 끝내세요.”

모두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 무전이 이어졌다.

“다들 감사합니다. 뒷일은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저를 믿고 무대 이어갑시다.”

“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다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국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고속정에서 울려오는 경고음이 묻혀버렸고 암전되었던 무대가 다시 환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소리치자.

남·여 모델 둘은 군함도를 바라보며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빠가야로! 고속정 더 붙여!”

“상부에서 경고만 주라고 했습니다.”

“이런 미친 한국놈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메인 모델에 엄청나게 강한 빛이 비치는 순간.

“저게 뭐야? 2번 카메라 클로즈업 해봐요.”

안혜진은 서서히 가까워지는 두 개의 도포를 바라보며 탄성을 질러냈다.

그때 여러 화면을 바라보며 방송을 지휘하던 안혜진이 말을 이었다.

“와… 소름.”

투명한 필름지로 코팅된 부분이 빛을 발하며 반짝이기 시작했고 이외 먹이 터져 나온 부분은 빛과 어둠에 가려졌다.

마치 특수효과처럼 빛을 발한 부분에서 두 개의 커다란 태극 무늬가 나타났다.

조국이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기에 나는 이곳에서 잠든 모든 이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 디자인을 창안해 냈다.

“서치라이트 전체로 비춰주세요!”

4개의 배에서 한 번에 강한 라이트가 군함도를 비추자.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모델들의 의상에서도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크기는 모두 다르나. 수십 개의 태극무늬가 군함도 전체를 누볐다.

마지막으로 두 모델은 도포를 벗어 던지고 클라이맥스를 마무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 *

아리raM의 군함도 컬렉션이 방영되고 전 세계가 한국과 일본에 집중했다.

각국의 언론에서는 기사가 터져 나왔고 뉴튜브에서는 전 세계인들이 아리raM의 컬렉션을 보며 강제 징용 피해자와 한국을 응원하고 있었다.

― 한국 vs 일본 승자는?

― 특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일방적 배제.

― 자랑스러운 브랜드 아리raM 이들의 행보는?

― 韓·日 무역갈등의 시작.

― 아시아 패션 어워드의 보물 아리raM.

― 나라도 하지 못한 일을 브랜드가 해내다.

―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

― 일본의 만행!

― 아리raM 아시아 패션 어워드 결과는?

노다 헤이치로는 쏟아지는 기사를 보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션 어워드 우승자에게 모든 권한을 주겠다고 말했는데 이게 무슨 행보란 말인가.”

“하지만 멋지지 않습니까? 멋진 젊은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최종 순위 1위였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최종 우승이었단 말일세.”

“그래서 더 뜻깊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형진은 화면 속 진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이 젊은 청년에게 매료당하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노다 헤이치로는 진혁의 행보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아리raM은 모든 브랜드를 꺾고 종합순위 1위라는 결과를 자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군함도 컬렉션으로 인해 자격이 박탈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걸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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