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200)

3차전의 결과는 내가 2위로 90점, 장료이가 1위로 97점으로 통과했다.

3위가 러시아, 4위가 인도, 5위가 대만, 6위가 인도네시아, 7위가 일본이다.

종합 순위의 변동은 중국과 인도의 순위가 뒤바뀌었고 일본이 7위로 밀려나 버리며 경쟁에서 크게 벗어났다.

현재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가 한국, 중국, 인도, 러시아다.

‘장료이의 슈퍼우먼복이 1위라니… 하, 그 장면을 봤어야 했는데.’

나는 1주일 뒤 방영되는 아시아 패션 어워드 방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니엘. 내가 부탁할게. 그리고 필요한 자료 다시 한번 봐 줘.”

“나도 알아. 안다고 그분들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황이나 일본이 하는 행동을 보면 나도 화가 나. 근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잖아.”

그를 설득해야 한다.

그도 한 부분의 총책임을 맞고 있는 회사의 중추이기에 내 독단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한국에는 도의라는 게 있어.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말이야. 물론 아시아 패션 어워드도 중요해. 아니 너보다 내가 더 간절해. 근데 왜 이러겠어.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 없을 수도 있어.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니까 부탁하는 거야.”

“아니 더 유명해져서 하면 되잖아. 뭐가 다음이 없어.”

“상황이 달라. 지금 해야 해. 더 늦어지면 안 돼.”

집회 책임자가 보내온 자료를 보고 나는 깨달았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현재 생존자 대부분이 90세를 넘긴 고령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지금 다니엘을 설득시키려 노력했다.

다니엘도 분명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생전 처음 접하는 사건과 강제 징용 피해자보다 나와 아리raM을 더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마음만큼은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너 괜찮아. 나만 안 괜찮은 거야. 하…… 직원들 있어서 내가 더 말은 안 하는 데 정말 괜찮냐고?”

“원래 내 것 아니었어. 괜한 욕심부리고 싶지 않아. 나는 혼자서도 그만큼 올라갈 능력이 있어. 아니 모두가 있으니까. 가능해.”

다니엘은 회의실에 모여 있는 아리raM의 직원들을 한번 쓱 훑어보고 말을 이었다.

“하….”

“다니엘. 우리 작은 공방에서 시작했어.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 이상으로 커가고 있고 나는 성공보다 신의를 따르면서 살기로 다짐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더 믿어줘.”

“일단 알겠어.”

다행히 다니엘이 내 의견 일부를 받아들인 듯하다.

그의 마음에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 패션 어워드 의상 회의 진행하시죠….”

“수석디자이너 류미리입니다.”

류미리가 회의실 앞으로 나가 회의를 진행했다.

우리가 선택한 가장 메인이 되는 의상은 전통 도포다.

“사장님 의견을 반영해 메인 의상은 한지 섬유의 흰색 도포를 채용했습니다. 팔 전체의 사이즈를 키웠고 누빔 처리해. 따뜻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포인트가 되는 투명한 필름지를 의상 전체에 열처리할 생각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퍼포먼스가 가미되는 순간. 새로운 디자인과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나타날 겁니다.”

“좋네요. 일단 샘플 만들어서 실험 한번 해보죠. 다른 건 저랑 따로 이야기하고 이제 F/W 서울패션위크에 올라갈 의상 디자인 의견 좀 들어보죠.”

“네.”

일정이 상당히 빡빡하다.

이번 대회가 끝나는 순간부터 차례로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패션위크가 시작된다.

4대 패션위크 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

서울패션위크가 시작되기에 쉼 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루이바통 오트 쿠튀르인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큰 패션쇼이자 모든 디자이너의 꿈의 무대 오트 쿠튀르.

대회 일정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파리로 날아가 며칠 동안 와인을 마시며 패션쇼를 관람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아침에 큰 용량의 메일이 온 게 오트 쿠튀르 자료였나 보네’

신 디렉터의 부재로 대리급 두 명이 파리에 가 있는 상태였다.

아침에 그중 한 명의 이름으로 메일이 와있었다.

‘빨리 끝내고 가서 봐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정면을 바라보며 PPT를 시작했다.

“이번의 콘셉트는 도시 속의 몽환과 자연입니다. 화면 봐주세요.”

내가 리모컨으로 화면을 넘기자.

회의장 전체가 아주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내 얼굴에 미소가 띠였다.

“미쳤다… 이걸 대회 기간에 만들었다고요.”

“역시 대표님이시네….”

“천재가 있기는 하구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 3.

* * *

호평이 이어지며 분위기가 바뀌어 갔다.

내 디자인이 그들에게 밝은 미래로 비쳤으리라 믿고 싶었다.

나는 총 45가지의 F/W 신상품을 준비했다.

컬러로는 퍼플 계열의 무궁화 색, 라벤더색 그리고 블루 계열의 블루미스트, 스카이블루 같이 자연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컬러를 대거 채용했다.

그리고 중심 컬러로 블랙을 선택했다.

퍼플과 블랙의 조화가 아주 중후하면서 차가운 도시의 모습을 그려줬으며 스카이 블루와 블랙의 조합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번 시즌은 코트, 롱 가디건, 세미 정장, 모직 원피스가 주가 될 겁니다.”

나는 화면을 하나하나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때 김형준과 안정원 그리고 디렉터 팀 전체가 환호성을 뱉어냈다.

“메인 의상 3종 중 하나입니다. 더블 블레스티드(단추가 앞 여밈으로 가로 두 줄이 가 있는 재킷) 방식으로 퍼플과 블랙을 반반씩 사용했고 오른쪽 팔 전체를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손목 부분은 나팔 형태로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할 겁니다. 다음으로 바지입니다.”

대회가 진행된 한 달 동안 만들어진 디자인으로 완성도는 80% 정도다.

모든 발표를 끝내자.

구두 디자이너 안정원이 손을 들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 구두 디자이너라면 궁금한 게 많을 거야.’.

“13번이랑 26번 의상 일체형 의상이던데. 구두와 의상을 통일성 있게 만들었으면 하는데요. 단발적인 디자인이긴 하나 컬렉션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네요. 13번은 무릎에서 발목까지 가죽으로 되어 있는 바지니까. 가죽 구두를 바지와 연결했으면 하는데 어때요?”

“그것보다는 롱부츠로 일체감을 주는 게 편의성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발성이라고는 하나 판매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의상과 구두 모두 판매가 부진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26번도 조금 더 생각해 보세요. 제 생각이지만 바지와 구두에 지퍼로 탈·부착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요.”

“알겠습니다.”

“좋아요. 구두 디자인은 일주일 안에 센터로 넘겨서 샘플 받아요.”

“네.”

뒤를 이어 김형준도 질문을 이었다.

“기존에 스니커즈 모두 활용하실 생각이세요? 지금 의상을 봤을 때 턱없이 부족한 거 같은데요.”

“이번에는 아리raM 신상과 기존 2종 그리고 다른 브랜드 스니커즈, 구두로 대체할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질문이 오갔고 디자인에 대한 호평과 문제점도 이어졌다.

드디어 아리raM도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 * *

박종식은 이번 차형만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파리에 도착했다.

“네년 내가 사고 칠 줄 알았어. 내가 그냥 찌그러져 살라니까. 말 안 듣고 사고를 쳐!”

쥐새끼처럼 숨어 호텔에서 노다 헤이치로와 하형준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나나세의 모습이 호텔 CCTV에 떡하니 찍혀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중간이라도 한다고 했잖아. 왜 나까지 나서게 해.”

그녀는 벌써 일본을 벗어나 파리로 도망쳤고 현재는 파리 외곽에 은거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녀는 아시아 패션 어워드는 포기한 듯 이브를 떠나 버렸다.

박종식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나세가 은거하고 있는 호텔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나는 시점 나나세가 머무는 호텔을 찾아냈다.

“당신이 찾는 여자. 9구역 N 비즈니스호텔에 머물고 있더군.”

“빨리 찾았네.”

“이게 내 일이야. 돈은?”

“여기.”

박종식은 작은 손가방을 건네고 돌아서려 했다.

“아씨. 여기도 개자식들 엄청 많네.”

손가방을 건네받은 놈은 벌써 반대편으로 뛰어가고 있었고 박종식의 앞에는 엄청난 거구의 사내가 등장했다.

자신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털북숭이의 백인 남성.

박종식은 그를 보는 순간 위험을 감지했다.

“어이 어린 친구! 왜 나나세를 찾지?”

“뭐야? 일본말 잘하네. 빠가야로 같은 새끼야 그것도 모르면서 여기는 왜 왔어. 근데 해결사가 나설 만큼 나나세가 가치가 있나. 참, 거기도 보는 눈들 없고만.”

“나는 시키는 일만 한다. 그리고 너는 여기서 죽어!”

“좋을 때로 오랜만에 몸 좀 풀지 뭐.”

박종식은 달려오는 거구를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돼지 새끼가 엄청나게 빠르네.”

순간 거구 남성은 달려오는 속도에 맞춰 주먹을 길게 뻗었다.

“그래서 맞겠냐. 느려터진 돼지 새끼야!”

박종식은 거구의 주먹을 몸을 비틀어 피한 후.

자신의 팔꿈치로 거구의 반대편 허벅지를 강하게 가격했다.

“윽!”

거구의 남성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중심을 잃은 채 크게 휘청거렸다.

박종식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발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려 거구의 얼굴을 강하게 가격했다.

쾅!

거구는 순간 고개가 하늘 높이 꺾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박종식은 두 번의 일격으로 자신보다 두 배는 큰 거구를 쓰러트린 것이다.

“와! 덩치가 커서 그런지 때리는 맛이 있네. 아씨 구두에 피 묻었잖아!”

짜증이 난 박종식은 쓰러진 거구에게 다가가 뱃가죽을 걷어차며 말을 이었다.

“카메라가 많아서 이 정도로 봐준다. 다음에 보이면 죽인다.”

거구의 남성은 몸을 부르르 떨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이가 없었다.

기업의 해결사 일을 하며 단 한 번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적이 없었는데.

“네…. 놈도 다음에 죽을 거다.”

“입만 살아서 실력 더 키우고 와서 덤벼라.”

박종식은 천천히 그 장소를 벗어나 나나세가 머무는 9구역의 N 호텔로 향했다.

“파리들 꼬이네. 빨리 해결하고 떠야겠어.”

* * *

아시아 패션 어워드 최종 피날레를 위해 우리는 일본 나가사키로 이동했다.

최종 컬렉션에 올라갈 의상은 총 30벌로 일주일 동안 밤낮을 새워가며 제작했다.

“모두 마지막입니다. 힘냅시다.”

“네!”

모두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류미리는 제작센터에서 일주일 동안 밤낮없이 작업을 이어갔고 다니엘도 피날레에 쓰일 가방과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모두 숙소로 이동하고 정희정 디렉터님은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네.”

모두 숙소로 이동해 내일을 준비하라 지시했다.

그리고 나는 총괄 디렉터인 정희정과 내일 있을 컬렉션 무대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남았다.

“호텔 레스토랑 가서 이야기하죠.”

“네.”

그녀는 디자인 회의가 끝나는 날.

한국의 무대 설치팀을 데리고 일본으로 넘어왔다.

그녀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무대가 될 지역을 사전 탐사하고 무대 디자인을 상황에 맞게 수정했다.

“허가랑 크루즈는?”

“단체 관광으로 허가를 받았습니다. 크루즈는 네 대 대여했고요. 한국 여행사 쪽이 보유하고 있는 배가 있어서 수월했습니다. 선장님들도 한국분들로 바꿨습니다.”

“다행이네요. 조명이랑 인원은 다 문제없는 거죠?”

“네. 이상 없습니다. 근데 이거 진짜 해도 되는 걸까요. 제가 여행사 쪽에 인맥이 있어서 물어보니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던데.”

“해야죠. 이제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하…… 대표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준비 완벽하게 하겠습니다.”

드디어 내일이다….

어쩌면 한일 화합의 장에 기름을 때려 붓고 횃불을 집어던지는 경이다.

대통령에게는 미안하나.

그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내 길을 가야겠어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진혁아. 미안하다.’

* * *

일본 외무성.

“장관님. 보고할 게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아시아 패션 어워드 한국팀이 나가사키에서 피날레 컬렉션을 열고 싶다고 허가를 내달라고 합니다. 그것도 항구 쪽입니다.”

“나가사키?”

외무장관 고이즈미 타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겠지. 한국놈들 남이 죽든 살든 자기들만 배부르면 되는 민족이 아닌가. 이렇게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

외무장관은 아시아 패션 어워드에 많은 게 걸려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만큼 디자이너들 모두가 큰 임무를 짊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고이즈미 타로는 한국팀이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허가 내줘. 그놈들이 뭘 할 수 있겠어.”

“장관님….”

“자네도 소설 쓰지 말고 허가 내줘. 아시아 패션 어워드는 한일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거야. 한일관계 악화로 우리도 큰 피해를 본 상태라고. 빨리 관계를 개선하고 회복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아쉬움을 남긴 채 차관급 인사가 고이즈미 타로의 방을 빼져 나가려는 순간.

“잠깐!”

“더 하실 말씀이라도.”

“방위성에 연락해서 내가 부탁할 게 있다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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