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200)

어떤 이는 시멘트가 눈에 들어가 고통스러워했고 어떤 이는 살점이 벗겨진 상태로 매를 맞기 싫어 노동을 이어갔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비인도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내가 그 모습을 보며 좌절하는 순간.

장면이 변화되며 더한 일들이 자행되는 곳이 비쳤다.

수십 명의 청년들이 석탄재를 뒤집어쓴 상태로 일을 하는 모습.

이 좁은 공간에서는 허리조차 편히 펴지 못했고 옆에서는 사람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굴에서 젊은 청년들이 석탄을 캐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미라 같았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보였고 살은 피골이 상접해 걷는 거조차 힘들어 보였다.

“젠장!”

내 눈에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목격되었다.

힘에 부쳐 둘러업지도 못해 죽은 동료의 시체를 여럿이서 질질 끌고 와.

탄광 한구석에 놓아두고 무덤덤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또래의 청년들 그들은 죽은 동료를 위해 울어줄 수도 없었다.

기력이 없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실정이었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작은 기도가 섞인 한마디뿐이었다.

“좋은 곳으로 가라. 이런 세상 말고 좋은 곳으로.”

그들은 작은 기도와 함께 다시 석탄을 캐기 시작했다.

하루 일정량을 캐내야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런 일들이 자행되었는데 사과 한마디를 안 한다고….”

나는 분노가 끌어 올랐다.

흘러나오던 영상은 끝이 나고 내 앞에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며 눈웃음을 보내 주셨다.

잠시 후 나에게 장갑을 전해주신 할아버지가 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작은 단상 위로 올라갔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이 늙은 사람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힘든 거 같아 미안합니다. 흑… 흑… 그 사과 한마디가 뭐라고 나라를 힘들게 해서… 너무 미안합니다.”

할아버지의 사과에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이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라도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고 있었고 사과를 해야 하는 전범국도 이들을 헤아려 주지 않고 있었다.

어떤 누가 이들의 청춘과 시간을 보상해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아 미안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과의 말과 고맙다는 말로 일관했다.

“어째서… 죄지은 것들이 사과를 안 하고 피해자가 사과한단 말이야.”

나는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안부나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있기에 깊은 이해도가 있었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최근에서야 언론을 통해 배상문제로 인해 일본과 사이가 많이 틀어졌고 무역 갈등까지 불러온 사실만을 인지하고 있는 정도였다.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왜…… 할아버지가 사과하시는 거예요?”

전미숙은 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저 감정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고된 노동과 폭력으로 살아온 젊은 시간을 사과받고 싶은 힘없는 노인은 되려 이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그저 미안하다고 자신들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이유만으로 사과하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전미숙이 나서서 소리쳤다.

“사과할 건 할아버지가 아니라 저놈들이죠. 사과하지 마세요! 더 당당하게 소리치세요. 사과하라고 너희가 잘못했다고!”

그녀의 말이 타고, 타고 흘러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 내며 일본 공사관 앞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 2.

* * *

집회자들은 쇠약해진 피해자들을 대신해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나와라!”

“배상하라!”

“노동자상 설치를 허가하라!”

어느 사람은 공사관에서 배상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물었고 또 다른 이는 우리 정부를 향해 강제 징용 노동자상 설치 허가를 소리쳤다.

그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한국의 기동대가 출동해 집회자들을 공사관 근처에서 강하게 밀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한국 사람 아니냐! 그만 밀쳐. 사람들 다치게 할 생각이야!”

“우리는 평화집회 중인데. 왜 공권력이 들어와!”

“일본은 사과하라!”

“배상하라!”

집회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내 옆에서 조용히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미안하네. 괜히 우리 때문에.”

나는 그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 왔다.

“그런 말 마세요. 할아버지 때문이 아닙니다.”

내 머릿속에 번득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속의 악마가 깨어나는 게 만드네.’

일본에 사과는 못 받을지언정 아주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전과는 내 상황이 다르다.

‘미치겠네….’

도리인가 신의인가 복수인가에 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신중해지자….’

경찰 기동대의 투입되며 집회는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강제 징용 노동자상 설치는 무의미해 졌고 일본의 사과는 여전히 받지 못한 상태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허탈하게 돌아선 전미숙 여사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료 정도는 봐도 괜찮잖아.’

갈등 속에서도 나는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사님 집회 책임자 누구예요?”

“저기 보이는 젊은 처자가 집회담당자야. 왜?!”

내가 고개를 돌리니 4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저 처자도 딱해. 젊은 나이에 아버지 병 수발들다가 청춘 다 가버리고.”

“그렇군요.”

“저 처자만 그런지 알아. 강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나 가족들 다 2차 피해자야.”

“그렇죠….”

“하여튼 잠시 기다려.”

전미숙 여사님의 말에 무언가 죄를 진 거 같았다.

나는 복수를 위해 도리를 저버릴 것인가.

나라면 저들보다 조금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복수심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위안부 컬렉션 주최하셨던 아리raM 대표님이시라고.”

“네….”

그녀는 마치 높은 사람이라도 본 듯 나에게 고개 숙였다.

“저보다 연장자이신데 이러지 마세요.”

“그래도… 저보다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인데요. 이렇게 찾아와준 것도 감사드리고.”

그녀의 말에 밀려드는 죄책감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부끄럽잖아….’

분명 나는 이들보다 사회적 직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힘을 얼마만큼 잘 사용하고 있느냐에 대한 건 의문이다.

“저를 왜 찾으신 건가요?”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보 좀 받아볼 수 있을까요? 관심이 생겨서요.”

그때 우리 옆에 있던 전미숙 여사님이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설마 차 대표. 우리처럼 이번에 컬렉션이라도 할 건가?”

나는 그녀의 질문에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요. 개인적인 관심입니다.”

“관심 가져주시는 것만으로 감사드릴 일이죠. 작은 관심이 커지는 거니까요. 제가 자료를 메일이나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명함 드릴게요. 여기에 메일 주소랑 연락처도 있으니 편한 시간에 연락해주세요.”

“네.”

그녀에게 명함을 전달하고 뒤돌아서며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장갑 전해드리려고요.”

“이제 가려나 봐요.”

“네, 덕분에 따뜻하게 있다가 갑니다.”

“어서 가봐요. 와줘서 고마워요.”

그의 말에 가슴이 메왔다.

‘젠장! 왜 나한테만….’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마치 이 능력이 나를 시험하는 거 같다.

너는 어떤 선택할 거야? 라고 물어보듯이 말이다.

“할아버지 다음에 또 집회에 오겠습니다.”

“그래요. 다음에도 놀러와요.”

나는 내 옆에 있는 전미숙 여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집회 장소를 빠져나왔다.

집에 오는 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선택과 결과에 대해 생각했다.

‘김서진이라면 복수일 거야. 그럼 동생 진혁이라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고 부탁하실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걸 하라고 하실까?’

나는 오로지 나로서 생각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

.

.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빨리 들어왔네. 조금만 기다려 금방 되니까. 씻고 나와.”

“네.”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없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무슨 일 있었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네.”

“아니에요. 그냥 여러 생각이 들어서.”

“진혁아.”

어머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넌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렴. 그날 그 어르신이 말했던 건 그냥 흘려버려.”

“…….”

“내가 친부모님이 아니라 그런다고 생각해도 좋아.”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부모 마음 다 같다. 태현 씨도 나랑 같은 생각일 거고 네 아버지도 그럴 거다.”

어머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벌써 모든 사실을 들었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제가 선택한 길로 해결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가슴 속 이야기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 * *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1주일이 흘러갔다.

그 말은 4·5차전이 1주일 안팎으로 다가왔다는 소리.

내 의견에 따라 아시아 패션 어워드 콘셉트가 전면적으로 수정되어 갔다.

하지만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직원도 몇 존재했다.

그중 가장 반발이 심한 게 다니엘이었다.

“너 진짜 이걸로 1위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런 정치색이 뚜렷한 짓은 마이너스야.”

“생각의 차이라니까.”

“하… 미치겠네. 차진혁 사장 이거 진짜 안 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벌써 정했어.”

현재 아시아 패션 어워드 의상과 F/W 컬렉션에 올라갈 디자인 중간 회의 중이다.

직원들의 의견이 분분했고 많은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다니엘이 내 아시아 패션 어워드 의상 디자인을 보며 발끈했다.

“이건 아니라고! 이거 너무 정치적인 색이 강하다고 심사위원 중에는 일본인도 있다는 거 잊은 거야. 대놓고 적대적인데 어떻게 점수를 가져오냐고.”

“나를 믿어. 다 생각이 있으니까.”

“하…… 류 디자이너 제발 좀 말려봐. 아니다. 정희정 디렉터 정말, 이 콘셉트로 무대 만들 거에요?”

정희정은 내 얼굴을 스치듯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취지는 상당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회가 아니라도 일본 시장에 영향력이 적은 아리raM이 국내시장에 더 큰 입지를 다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대회에서는 마이너스가 분명하죠.”

정희정은 다니엘의 생각과 다르게 중립에서 이 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류미리 수석디자이너도 다니엘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고 있지 않았기에 혼자서 미칠 지경이었다.

“수석디자이너도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저는 찬성이라고 말했잖아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고 있는 그녀였다.

“전 너무 좋아요. 이번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망신 한 번 줄만 해요. 나라에서도 못하는 거 우리가 할 수 있잖아요. 저는 적극적으로 사장님 의견 동참합니다.”

“아… 진짜 둘 다 왜 이래?! 우리는 브랜드야 브랜드 기업이라고 성공이 눈앞에 있는데 왜 험난한 길을 달리냐고! 신 디렉터 없으니까. 아주 브레이크 없지! 난 절대 반대야.”

“다니엘 씨 디자인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이 일로 심사에 부정하다 느끼면 이의제기하면 되고요. 우리는 우리 일만 잘하면 되는 겁니다.”

“아 그래. 디자인은 그렇다 치고 장소가 문제야! 왜 장소에 이점을 두고 있는 아리raM에서 장소를 나가사키로 정하냐고! 경복궁이나 한국 문화재 같은 데서 하면 훨씬 좋은데.”

다니엘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다.

아니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에 대한 건 변명할 거 없는데. 내 의견에 따라줘. 부탁이야.”

“차진혁 사장님 잘 들어봐요. 종합 1위야 1위. 여기서 삐끗하면 절대 우승 못 해. 2위인 중국이랑 우리랑 5점 차이야. 늘어난 항목에서 점수를 더 많이 따내는 사람이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