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200)

그녀는 깔끔하게 자신이 생각해온 심사기준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전보다 더 까다롭게 한단 말이지. 말괄량이가 꽤 늠름해졌잖아.’

전과는 다르게 색이 전혀 다른 3명의 심사위원.

‘너무 다른 사람들을 붙여 놓았네. 모두의 이점을 디자인했다가는 난잡해지기 딱 좋겠어.’

마치 큰 카테고리 하나에서 작은 카테고리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닌 모두 큰 카테고리 3개를 하나의 의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느껴졌다.

‘어렵네.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치면 안 될 거고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균형 잡힌 의상을 만들어야 해.’

머리가 점점 복잡해졌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디자인은 존재하지만, 살을 덧붙이면 망가지기 일쑤다.

내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

MC하경이 마이크를 통해 또 다른 발표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말았다.

“여러분 이번 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3차전은 부상이 하나 주어집니다. 특별상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모두 중앙무대 바닥을 바라봐 주십시오!”

하경의 말에 모두가 궁금증이 증폭했다.

‘그러고 보니 유영미의 브랜드와 아이도스의 협업이 있었지.’

내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나이크] X [ ] X [아디도스].

커다란 문장 하나가.

무대 정 중간을 비추며 나타났다.

“1위 브랜드는 두 브랜드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협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나이크와 아디도스의 협업.

두 회사가 존재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으며 둘 사이에 또 다른 디자이너를 참여시킨다니.

두 브랜드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그 한가운데 디자이너로서 함께할 수 있다는 기회와 최초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얻을 기회라 할 수 있었다.

‘욕심나는데.’

하경의 말에 모든 디자이너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롭게 변했다.

모두가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 테니 욕심이 날 만하다.

순위에 올라있지 못한 디자이너들에게도 적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소리이기도 했고 협업 참가만으로도 수십억대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다.

나이크가 그리고 아디도스가 바로 광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바닥에 비치는 로고가 서서히 사라지고 전자시계가 나타났다.

“5시간 동안 의상을 제작해 주시면 됩니다.”

이번에는 디자이너 외 1명을 참여시킬 수 있었다.

나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내가 원하는 디자이너 한 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요?”

“네.”

내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잠시 멈칫하더니 내 손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내가 선택한 디자이너는 노점상에서 만난 액세서리 제작자 천령진이다.

매듭과 액세서리를 만드는 능력을 액티브 웨어에 접목할 생각이다.

“류 디자이너 섭섭한 거 아니죠.”

“전혀요. 그 대신 꼭 1위 하셔야 해요.”

“물론이죠.”

천령진이 용기를 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의 아들이 반대편 손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파이팅.”

그녀는 환한 미소를 남기고 나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제가 뭘 하면 되죠?”

나는 운동에 쓰이는 도구 한두 개를 스케치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매듭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겠죠?”

“그럼요. 쉬워요.”

“그럼 이거부터 해주시고 끝나면 매듭으로 후드랑 옆에 적어드린 사이즈로 직사각형 크기도 하나 더 부탁드립니다. 들어가는 문양은 장인님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장인이라… 열심히 할게요.”

“제가 시킨 거 끝내면 말씀해 주세요.”

“네.”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료가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이제 내 차례야.”

그녀에게 주문한 요소를 접합시켜 디자인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의상은 피트니스복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를 하는 게 좋아.’

피트니스복도 유형이 여러 가지다.

고강도 웨이트 운동에는 근육을 잡아주는 컨프레션 의상을 입는 게 좋으며 유산소 운동에서는 호흡을 방해하는 타이트함을 살짝 덜어주는 게 좋다.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배제하고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의상을 디자인할 생각이다.

“근육을 잡아주는 원단은 폴리에스터 80% 이상의 합성 원단이 좋겠어.”

폴리에스터 100%는 탄성과 늘어남이 없다.

그만큼 인체의 근육을 단단히 잡아주어 지구력을 상승시킨다.

오랜 시간 운동을 해도 지치지 않는 기능성 원단이라 할 수 있었다.

“탄성과 신체에 접촉하는 부위니까. 부드러우면 좋겠어.”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원단이 모여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엘라스틴 성분이 들어간 게 있을 텐데.”

일일이 손으로 만져보며 꼼꼼히 원단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체 의상은 근육을 단단히 잡아주는 폴리에스터 79%, 엘라스틴 21% 성분이 들어간 컨프레션 원단을 선택했다.

“코튼소재의 스판덱스가 있을 텐데.”

상체 티셔츠에 사용할 원단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찾았다. 코튼 모달스판!”

코튼 모달스판은 목화솜의 코튼과 너도밤나무에서 추출한 모달로 만들어진 합성 섬유다.

촉감이 매우 부드럽고 땀 흡수가 잘되기로 유명하다.

두 소재 모두 천연이라는 점에서 피부접촉에 예민한 모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모달 섬유는 속옷에도 많이 쓰이는 재료에 속한다.

“모달이라 그런지 색도 자연스러워.”

나는 일단 아웃 웨어보다 피부 접촉면에 강한 원단을 가지고 작업대로 돌아왔다.

“이제는 디자인인데.”

생각해둔 이미지는 존재한다.

하지만 심사위원들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

“어렵네… 패션과 기능성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냐. 어느 쪽이 더 이득일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내가 고개를 돌리자.

장료이의 의상이 눈에 들어왔다.

“또 미친 짓 하고 있네….”

역시는 역시였다.

원래 그런 놈이라는 걸 이번에도 크게 깨달았다.

최종본의 디자인은 아니겠지만 얼핏 보기에 이번에는 원더우먼이 입을만한 수영복과 흡사한 운동복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커다란 망토까지 만들 기세로 붉은색 원단을 재단하고 있었다.

“내 일이나 하자.”

긴 시간을 고민해 디자인을 완성했다.

나는 아웃 웨어로 파라슈트 재킷을 선택했다.

그리고 팔 전체를 제거해 활동성과 편의성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가장 포인트가 되어줄 후드 디자인을 만들어 천령진에게 전해주었다.

“좋았어!”

디자인은 이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기능성을 의상에 덮어씌울 차례다.

컨프레션 원단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전면을 사용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입을 때와 벗을 때 상당히 불편한 것이며 디자인적이지 못하다.

“입기도 편하면서 벗기도 편해야 해. 그리고 기능성 또한 좋아야 한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재킷의 복부 부분과 티셔츠에 컨프레션을 스트레이트로 한 줄씩 서로가 겹치게 부착시킬 생각이다.

두 개의 객체가 하나가 되며 강하게 쪼여줄 것이며 분리되어 있기에 탈부착에 용이하다.

“하체는 강하게 쪼여 줘야 해.”

컨프레션 원단을 전면으로 채용하려는 계획을 뒤바꿨다.

“불편함을 최대한 줄여보자.”

허벅지 라인까지 여성용 타이즈에 주로 쓰이는 나일론 78%, 폴리우레탄 22% 원단을 채용했다.

그리고 허벅지 중간부터 무릎의 중간까지 아까보다 더 강한 소재의 컨프레션을 적용할 계획이다.

강도 높은 하체 운동에도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복이 될 거라 예상했다.

“좋아.”

경기 시간이 3시간이 지나갈 무렵.

천령진이 나에게 달려왔다.

“대표님!”

* * *

차형만과 김현숙은 비행기에 내려 수화물을 찾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진혁이 아빠. 짐 풀어놓고 대회 열리는 데 가봐요.”

“경기 끝나고 가면 되지 뭐하러 진혁이 신경 쓰이게.”

“그런가.”

“그러지 말고 구경 좀 하다가 밤에 연락해서 만나면 될 거 같은데. 오랜만에 저녁 식사나 같이하자고.”

“좋지. 오랜만에 진혁이 볼 생각하니까. 기분 좋다.”

“나도 그래.”

둘은 손을 맞잡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는 그때였다.

“여보!”

“…….”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차형만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의 은퇴 7.

* * *

3차전 경기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30분 남짓 시간이 남은 상태에서 천령진이 내가 원하던 매듭 액세서리와 후드, 그리고 직사각형 매듭을 들고 나타났다.

“여기요, 어때요?”

“아주 좋은데요.”

그녀가 내민 매듭이 은은한 밝은 빛을 발하며 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이제 쉬셔도 될 거 같네요.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녀에게 살짝 무리한 부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일을 제 시간 안에 완성해준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녀의 작품은 화려한 꽃무늬가 나열된 식탁보 같은 모습이지만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팽이 줄 굵기로 만들어져 입체감이 도드라져 보였으며 여러 가지 색의 실을 이용해 만든 끈목 덕분에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원했던 그 모습이 실체화돼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연결만 하면 끝나겠어.”

나는 매듭과 재킷 사이에 보강재를 붙인 이후.

재봉을 시작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디자이너 관계자석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방송 중인데.”

순간 촬영감독의 화가 섞인 소리가 들려왔고 내 고개도 함께 돌아갔다.

큰소리의 원인이 신 디렉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다급하게 촬영 총괄 감독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슨 말을 전달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 순간 총괄이 헤드셋으로 무슨 말을 전달하자.

하경이 작업 무대 쪽으로 다가와 잠시 경기를 일시중시 시켰다.

“모두 잠시 멈춰주세요!”

모든 디자이너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작업을 멈추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항의하듯 중앙무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신 디렉터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슨?!”

“사… 장님.”

그녀가 눈물을 보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디자이너 대부분이 놀랐고 유영미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그게… 사장님 아버님이 지금 병원에 실려 가셨데요.”

“네?! 그게 무슨… 한국에서 연락 온 거예요?”

“아니요. 대만이요. 공항에서 봉변을 당하셨데요. 지금 응급실이라고 희정이한테 전화 왔어요.”

“갑자기 무슨 대만이요… 주소는요! 어딘데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차진혁의 몸을 빌려 살고 있어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게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거 같았다.

항상 자신을 믿어주었고 응원해 주던 아버지.

그 사랑하는 아버지가 봉변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가셨단다.

분명 큰일이 벌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지만, 대회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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