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매장 진행도는 어느 정도에요?”
가죽 상품 제품군만큼 중요한 게 오프라인 매장 개점 일정이다.
내 질문에 신 디렉터가 말을 이었다.
“국내 매장은 2주 뒤에 오픈 예정입니다. 그리고 해외 매장은 같은 날에 가오픈 상태를 유지하고 봄 시즌 시작과 동시 개장할 생각입니다. 보고서 작성해서 자료화해서 드릴게요.”
“잘하셨어요. 국내 매장은 4차전 시작 전이나 후로 예정 잡아주세요. 한국에 있을 때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네, 그건 일정 조율해보겠습니다.”
“그럼 이제 업무 이야기는 그만하고 식사하시죠.”
허겁지겁 먹고 있던 류미리가 내 말에 흠칫 놀라며 나를 슬쩍 바라보고는 살짝 웃어 보였다.
“왜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눈치 드린 거 아닙니다.”
“아. 아니요. 저만 너무 허겁지겁 먹는 거 같아서….”
“괜찮아요. 많이 드세요. 부족하면 더 시키시고요.”
“근데 사장님.”
“네?”
“왜 갑자기 액세서리에 관심을 가지시는 거예요. 너무 이르지 않아요?”
“빠를수록 좋죠. 사치품이잖아요. 액세서리가 적은 금액의 사치품이기는 하지만 생각 이상의 매출이 발생하거든요.”
“아…. 그러면 한국에 장인분들은 알아보면 되지 왜 길가에서 일하시는 분을?”
“특별함을 느꼈거든요.”
“특별함이요? 뭐 물품이 정교해 보이기는 했지만 특별해 보이지는 않던데. 마치 대량생산품같이 보였달까.”
“특별해요. 아주요. 깊은 속내를 알면 류 디자이너도 놀랄 겁니다.”
분명 보기에는 대량으로 찍어내는 싸구려 액세서리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작게 명품이 숨어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밝은 빛이 내 눈을 집어삼키는 순간 말이다.
.
.
.
빛에 이끌리듯 노점상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선반에 있던 액세서리에서 빛무리가 뿜어져 나와 내 눈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흘러나온 영상은 내가 알고 있는 장소였다.
“낯이 익은데.”
오랜 세월의 흔적.
그리고 고풍스러운 기둥과 보가 눈에 들어왔다.
“침선장과 하문희가 도망치던 그 건물인 거 같은데.”
하지만 그때보다 더 낡은 모습이다.
“시간이 더 지났다는 소리인가.”
내가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장면이 바뀌며 실타래가 가득한 방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젊은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짐을 싸고 있었다.
그때 문이 활짝 열리고 젊은 사내보다 10살쯤 더 많아 보이는 관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들어왔다.
“끈목은 모두 만들었느냐?”
“매듭장 어른. 이제 다회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러니 인제 그만 찾아오십시오. 저는 곧 있으면 궁을 나갈 것입니다.”
“어찌 그런단 말이냐? 스승님의 일 때문이더냐.”
“배를 곯아 죽어가는 저를 살려주신 게 스승님이셨습니다. 근데 일본 놈들 손에 머리가 터져 돌아가셨습니다. 근데 어찌 제자라는 놈이 편히 이곳에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밖에 나가 스승님의 복수를 할 것입니다?!”
“네 손을 보거라. 더없이 얇고 고운 손이 아니더냐. 다회를 짜기에는 그지없는 손이다. 그 좋은 손을 가지고 총과 칼을 잡겠다는 말이냐! 스승님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미 결정했습니다.”
“하…….”
관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중년의 사내는 현재로 따지면 국가무형문화재 22호에 매듭장이었다.
여러 종류의 매듭을 짓고 술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장인으로 실에 관여된 장신구를 모든 것을 만드는 장인이기도 하다.
그 종류로는 노리개, 허리띠, 가락지, 빛가림 막[커튼]의 장신구, 목걸이까지.
모든 면에서 쓰이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젊은 사내는 다회장으로 명주실을 여러 겹 겹쳐 끈목의 형태를 만드는 장인인 듯 보였다.
끈목의 형태는 장인의 손놀림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며 매듭장이 끈목을 이어받아 여러 액세서리를 만든다.
둘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관계다.
“마지막 부탁이다. 어찌 보면 내 제자이기도 하지 않느냐?”
“그거야. 매듭장 어르신이 일하기 싫어서 저한테 가르쳐 주신 거지 않습니까.”
“댔다. 댔어! 더럽고, 치사해서 부탁 안 한다. 내가 끈목을 못 짜서 이러느냐?.”
“그러십시오. 혼자서라도 호의호식하십시오.”
잠시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이더냐.”
“형님이 알 거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가보시지요.”
“미안하구나. 내가 어르신을 더 잘 챙겼어야 했는데.”
“형님 잘못이 아니니 그만하시라니까요. 며칠째 이러십니까! 형님 때문에 더 힘듭니다.”
“그럼 함께 이 궁을 나가자꾸나. 나도 다회장 어르신이 아른거려 미치겠구나.”
“그건 아니 됩니다. 다회장은 없어져도 문제가 없으나 매듭장이 없어지는 날에는 상의원 전체가 곤란해 질 겁니다.”
둘은 분명 친분이 강한 사이인 듯 보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나.
큰 사건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어디 가는지나 알려주고 가거라.”
“상해로 갈 겁니다.”
“…….”
순간 흘러나오던 영상이 끝이 났다.
내가 멍하니 서 있자.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나에게 말을 이었다.
“어서 오세요.”
“Do you speak English? [영어 가능하세요?]”
“NO!”
“NO도 영언데.”
노점상의 주인은 한어의 일종인 대만의 만다린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영어가 가능하지 않은 노점상 주인에게 내가 몸짓 발짓을 열심히 하는 그때.
신 디렉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이었다.
“만다린어 가능하세요?”
“조금이요. 학교 다닐 때 룸메이트가 대만 친구였거든요.”
“그럼 한 가지만 물어봐 주세요. 이 액세서리 직접 만들었는지.”
“네.”
신 디렉터가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이 액세서리 직접 만든 건가요?”
“네, 맞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맞다는데요.”
나는 또 다른 질문을 이었다.
“한국인인지 물어봐 주세요.”
신 디렉터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 말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 순간.
노점상 주인이 놀라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근데 어머니는 중국인이시고 아버지는 한국분이셨어요.”
신 디렉터가 나에게 말을 전달하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영상 속의 다회장이라는 걸.
“한 가지만 더요. 이 기술 아버지한테 배운 거냐고 물어봐 주세요.”
내 말을 전달하는 순간.
40대의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픔에 잠겼다.
“신 디렉터님. 혹시 시간 되면 저희랑 식사 가능한지 여쭤봐 주세요.”
“네?!”
“부탁드릴게요.”
“네.”
신 디렉터는 우리 모두를 소개했다.
그리고 나쁜 뜻이 없으며 한국의 큰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밝히고 식사 초대를 하고 싶다고 전달했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밝은 얼굴로 식사 요청을 받아들였다.
“근데 이거 팔아야 들어갈 수 있다는데요. 애들 학비 내야 한다고….”
“그럼 우리가 다 산다고 해주세요.”
“…….”
“어서요.”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 가득 차올랐다.
어쩌면 운명이라고 믿고 싶었다.
“모두 얼마죠?”
“조금 비싼데…. 1000달러요.”
대만 돈 1000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4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이다.
“제가 모두 결제하겠습니다.”
“네?! 정말요.”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선물을 이쁜 상자에 포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기다리는 우리에게 말을 이었다.
“먼저 가 있으시면 안 될까요. 도망 안 칠게요. 제가 노점을 정리하고 집에도 잠시 들려야 해서요.”
“아… 그렇겠네요. 그럼 저희는 저쪽 식당에 갈 예정인데 정리하고 오세요.”
“네.”
우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우리를 찾아왔다.
“저기….”
“들어오세요. 늦을 거 같아서 저희부터 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앉을 자리의 의자를 빼주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식사를 하라며 말을 남겼다.
하지만 계속해서 문을 향해 시선이 돌아가고 불편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눈치 안 보셔도 되는데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그게 아니라. 밖에 제 아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드님도 같이 식사하시죠.”
“그래도 되나요. 감사합니다.”
얼핏 보기에도 행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분명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10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들어왔다.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안녕.”
그때 식사를 끝낸 류미리가 아이 옆으로 다가갔다.
“누나랑 같이 밥 먹을까?”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고는 류미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쁜 누나랑 밥 먹자.”
류미리가 아이를 맞아주니.
그녀도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식사가 이어지고 어느 정도 배를 채운 그녀가 먼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받은 돈의 반은 돌려드릴게요. 재룟값만 받겠습니다.”
“아니에요. 다 받으셔도 됩니다. 어쩌면 제가 더 드려야 할지도 모르고요.”
“네?! 그게 무슨.”
내 말을 듣고 있던 신 디렉터와 류미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거였어.”
“류 디자이너는 사장님을 아직 몰라도 너무 모른다니까.”
“그만들 하세요. 당사자 앞에 두고.”
“저희는 또 뒤에서는 안 하잖아요.”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기 시작했다.
“어휴.”
나는 둘을 뒤로하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중대한 조건을 제시했다.
아버지의 은퇴 4.
* * *
우선 그녀의 이름을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명함을 내밀자니.
권위적으로 받아들일까 봐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성함도 알려드리지 않았네요. 저는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아. 저는 천령진이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이의 아버님도 부를 수 있을까요?”
“……저희 둘이 살아요. 아이 아버지는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인데요.”
“그럼 천령진 씨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겠네요.”
“네?!”
나는 그녀를 스카우트해 한국에 데려갈 생각이다.
디자이너라면 이곳에 머무는 것도 괜찮겠지만 장인은 협업 관계가 중요하고 현지 생산설비에 머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F/W 서울패션위크가 끝나는 시점으로 액세서리 제품을 런칭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에 황의선 선생님을 통해 한국의 액세서리 장인 몇 분과도 벌써 통화를 끝낸 상태다.
“한국의 브랜드 아리raM 매듭 장인으로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저를요?! 저를 왜?”
“당신의 아버지 매듭기술을 산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거 같네요.”
“아버지의 매듭기술이요?! 별 볼 일 없는 기술인데.”
순간 그녀의 말에 되레 내가 발끈할 뻔했지만 참아냈다.
‘장인의 솜씨를 별 볼 일 없다고 하다니. 어쩌면 딸이 실력이 더 좋으려나.’
그녀 아버지의 비밀을 모두 풀어주고 싶지만 그렇지 않기로 했다.
딱히 변명거리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내가 본 영상을 설명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그런 실력이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버지의 기술이 대단한지도 모르겠고요. 아리raM이라면 얼마 전에 TV에서 본 거 같은데.”
“맞을 거예요. 그 브랜드의 대표가 저입니다.”
“…….”
그녀는 고개를 내밀고 내 얼굴을 유심히 봤다.
“헛!”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이네요… 대단한 분 앞에 두고.”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여기저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