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200)

“이 미친놈이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치다니.”

“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도련님한테 경호원 붙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내 손자인지는 모를 거 아니야. 그럼 건들지 않을 걸세 그리고 대회 중인 신인 디자이너를 건들지는 않을 거야. 그 정도 바보는 아닐 테니까.”

“그럼….”

“파리에 가는 건 위험하겠는데. 어떻게든 막아야지.”

노다 헤이치로는 손자에게 진실을 말해 줬다는 걸.

후회하고 있었다.

분명 이렇게 도발적인 행동을 했다는 건 그에 파생된 행위일 게 분명했다.

“어째서. 아비의 길을 뒤따라간단 말이야!”

한신회의 정보력이라면 머지않아.

장료이가 자신의 손자라는 걸 밝혀낼 거다.

그렇게 되는 순간.

위험한 놈들이 움직일 게 분명하다.

가장 걸림돌이 되는 장료이의 집안.

가장 위험하고 자신들을 방해하는 유일한 집안의 씨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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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LVMH그룹의 고층 빌딩.

“당돌한 놈이네. 아주 재미있어.”

“회장님….”

“괜찮아. 어린놈의 치기이지 않은가 하지만 생각이 없어 보이지는 않아. 왜 저러는지 이유는 알아야겠지.”

회장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프랑스의 총리인 르쉐르 에르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이른 시일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르쉐르 총리가 방을 빠져나가고 회장의 의자가 뒷배경 쪽으로 돌아갔다.

어둠뿐인 그곳에 무엇이 있는 걸까.

의자에 부착된 스위치 하나를 누르는 순간 그 모습이 드러났다.

“아름답군.”

그곳에는 어둠이 가득했던 영상 속 자수장이 만들었던 그 의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먹을 가득 먹은 검은 명주 천이 100년의 세월이 지나도 윤기가 가득하고 자수 또한 살아 움직이는 거 같군. 이것이 바로 명품이지 않은가.”

회장은 활짝 펼쳐져 있는 의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흘려보냈다.

그가 보고 있는 한국 전통의상.

옷이라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전체가 먹으로 얼룩져 있었고 손상 또한 심해 보였다.

하지만 그 위상만큼은 아직도 죽지 않은 듯 윤기를 머금은 채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물은 어디 있단 말인가. 분명 답은 이 옷에 있다고 했는데.”

그는 대를 이어 이 의상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할아버지가 남긴 긴 이야기를 다시 되뇌고 되뇌며 해답을 쫓고 있었다.

“힘을 이을 놈은 죽었어. 이제 보물을 손에 넣으면 내가 그 힘을 가질 수 있는데 도대체 보물은 어디 있단 말이야!”

그는 이야기 속의 보물이 자신에게 줄 힘에 대해 듣고 빠져들었다.

그것이 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걸림돌은 모두 치워 버리면 그만이야. 나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어.”

* * *

짧은 런웨이가 끝이 나고 심사 발표만이 남은 상태.

1차전과 다르게 모든 디자이너가 런웨이에 참여했다.

서로의 의상을 보며 환호하고 축하해주는 풍경이 비쳤다.

1차전보다는 다들 안정을 되찾은 느낌이다.

하지만 검은 속내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법.

‘모두 이를 갈고 있기는 한가 보네. 이 짧은 시간에 다들 완성도 높은 의상과 가방을 만들어 냈어.’

내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발란리아가 마이크를 들고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점수를 매긴 서류 한 장이 들려져 있었다.

“이제 평가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귀찮으니까 모든 순위를 발표하지 않겠습니다. 아마추어도 아닌 디자이너에게 충고한다는 것도 웃긴 일이니.”

순위권에 들지 못한 디자인은 발표할 가치도 없다는 말투다.

“자 3위 인도의 아룬 디자이너입니다.”

아룬 디자이너는 실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순위를 받아들였다.

분명 좋은 디자인이다.

그의 디자인은 인도의 전통의상인 사리를 변형한 의상이다.

사리.

길게 늘어뜨린 천을 의미한다.

그 말인즉 사리는 바느질을 하지 않는 옷이란 뜻이다.

염색이 발전한 인도에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의 사리를 많이 입고 다니며 평상시에도 많이 애용하는 의상이다.

아름답게 염색한 의상에 금박과 은박을 입혀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지는 게 사리다.

하지만 아룬 디자이너는 한층 더 그 단계를 뛰어넘어 어깨를 튼 오픈 숄더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인도 날씨에는 착용하지 않는 어깨 전체를 덮는 직사각형의 밍크 목도리로 포인트를 주었다.

불균형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화려함이 고급스러움을 증폭시켜 주는 듯했다.

그리고 아주 편안해 보이는 의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룬 디자이너는 가방 디자인에서 감점 요인이 많았습니다. 가방이 주제인 만큼 메인에 더 큰 힘을 주어야 하는데 의상이 너무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색상을 사용하는데. 통일성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 부분도 감점 요인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사위원의 말에 공감했다.

가방이 주제다.

그렇다는 건 메인은 가방이고 의상은 가방을 얼마나 돋보이게 해주냐가 관건이라는 말이다.

아룬 디자이너의 화려한 의상 덕분에 가방의 디자인이 묻혀 버렸다.

‘역시.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을 거 같더라니.’

아룬 디자이너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조용히 물러났다.

뒤를 이어 발란리아의 발표가 이어졌다.

“2위는!”

* * *

노다 헤이치로는 큰 결심을 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은 정말 오래간만이군. 이곳에만 오면 아버지가 떠오른단 말이야.”

그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공항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어린 날의 추억.

자신을 도망자라 말하던 아버지.

줄곧 숨어 살았던 나날들.

좋지 않은 기억도 많지만 따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검은 정장의 사내가 그의 옆에 가서 몇 가지 사항을 전달했다.

“회장님. 한적한 곳에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래. 귀한 분이니 잘 모셔서 오도록 해. 무례한 행동은 절대 하지 마. 그분의 선택에 맡기도록 하고.”

“네.”

노다 헤이치로는 큰 결심을 내린 듯했다.

검은 정장의 사내가 사라지는 걸 보고는 고급 세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향했다.

“이제는 물 위로 올라갈 때가 된 거 같군.”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갔다.

자신의 손자의 만행을 보고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이제는 수면 아래에 있는 게 더 위험해질 게 분명하다.

자신은 너무 늙었고 이제는 이 무거운 짐은 젊은 세대로 넘길 생각이다.

“이제는 이 자리를 넘겨줄 때가 되었어.”

많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이제부터는 정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섰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완벽한 상태로 모든 걸 전해줬을 텐데.”

그는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이제부터 이 편안한 안정감을 기대하기에는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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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한 비탈길을 타고 올라가니 한적한 위치에 커피숍 하나가 나타났다.

“연락드렸던 박종식이라 합니다.”

“아… 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중히 모시라고 전달받았습니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결정이라…….”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볼 수 없는 이야기.

차형만의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했다.

“정말… 그 아이를 지켜 주실 겁니까?”

차형만은 간절한 목소리로 박종식에게 말을 이었다.

“제가 해드릴 말은 없습니다. 모든 권한은 회장님에게 있으니까요. 분명한 건 큰 힘이 될 겁니다.”

“하… 역시 그분을 만나야 하는 거군요.”

차형만은 결정을 내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 * *

“2위는 한국의 차진혁 디자이너입니다.”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좋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기대가 컸던 거 같다.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만큼 혼신의 힘을 발휘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무언의 위로를 전했다.

“신선한 디자인이었습니다. 특히 밀리터리 룩과 가방의 조화가 아주 적절했어요.”

발란리아를 뒤로하고 첸 디자이너가 앞으로 다가와 말을 이었다.

“밀리터리 룩은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정말 칭찬하고 싶어요. 하지만 가장 메인이 되어야 하는 가방에서 조금 아쉬움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2위가 된 거니 아쉬워하지는 마세요.”

그녀의 말에 류미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그리 흔하지 않다.

첸은 그녀가 디자인한 의상을 바라보며 부가적인 설명을 이었다.

“기존의 형태를 지키면서도 많은 것을 변화시켜 새로움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의 의상을 아웃웨어와 결합해. 2IN1 야상점퍼를 만들었더군요. 활동성과 신속성을 모두 겸비한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죽 벨트와 X 밴드가 포인트로 작용해서 밸런스와 트랜디함을 상대에게 잘 전달해주고 있어요. 정말 칭찬합니다. 최근에 본 밀리터리 룩 중 단연 최고라도 생각합니다.”

밀리터리 룩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발란리아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첸의 말에 공감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뭐였을까?

‘역시 가방이 문제가 되는 건가?’

내가 의문을 품을 때쯤.

발란리아가 내가 디자인한 가방을 들어 올리며 내 궁금증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물병 뚜껑을 열어 물을 가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순간 흐르던 물이 가방을 지나쳐 스치듯 떨어져 내렸다.

“방수는 아주 좋아요. 정말 군대에 사용해도 나쁘지 않은 정도로요. 하지만 내구성은 어떨까요?”

그가 가방에 달린 주머니를 잇는 조금만 한 힘으로 잡아당겼다.

쫘아악!

“신소재를 사용한 기능성 그리고 송아지 가죽을 사용해 포인트를 주었고 정말 군용가방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의 활용도가 높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퀄리티가 너무 떨어지네요.”

마지막 수정이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구멍 뚫음이 들어간 부분에 임의로 다시 재봉틀을 사용하면 2중으로 구멍이 뚫린다.

그 부분은 복원할 수 없다.

그 말인즉 가방의 원단과 가죽 모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설마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 심사를 감행할지 생각지도 못했다.

내 욕심이 화를 불러들인 거 같아.

다니엘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시간이 부족한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프로이니만큼 평가 또한 냉정해야 했습니다.”

발란리아는 가방을 내려놓고 다음 순위자를 발표하려는 순간.

우리를 지목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한 가지 더. 이 액세서리 참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가방 스트랩에 부착해둔 액세서리.

가로 30㎝, 세로 10cm 크기의 삽 모양의 참.

삽의 몸통 부위에 0.2mm 구멍을 여러 개 뚫어 작은 참을 또 달아 놓았다.

“커다란 삽 모양 하나에 작은 나이프, 장갑 모양, 반합 정도면 되겠어.”

여러 브랜드에서 가방 장신구로 만들어진 고리를 참이라 칭한다.

에르맥스도 가죽으로 동물 모양을 본떠 만들기도 하고 루이바통에서는 화려한 고리를 만들어 걸기도 한다.

하나의 디자인에서 그날의 특색을 보여 줄 수 있는 아이템이 바로 참이다.

아이템의 모습에서 그 가방의 형태와 느낌이 반영된다.

“커다란 참 손잡이에 달린 작은 참들이 딱딱한 밀리터리 패션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점은 칭찬합니다”

2위일지는 모르나.

나쁘지 않은 평가가 이어졌다.

아쉬움이 남은 2차전이었지만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위 발표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은퇴 1.

* * *

1위 발표를 기다리며 모두가 손에 땀을 적시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쁨에 환호할 것이고 누군가는 쓴 고배를 마셔야 한다.

“둘 중에 하난데.”

심사위원들의 기준에서 가장 1위에 근접해 보였던 의상은 내 의상을 포함해 대만과 중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의상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극과 극의 대결이라.”

두 나라 모두 대회 시작 전 심사위원들이 전달했던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대만 디자인은 아주 평범하다.

평범함으로 주제를 가득 채운 느낌이라면, 중국의 의상은 독특하면서도 도전적이다.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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