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200)

다음에 나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작업을 이어갔다.

전반적인 가방 제단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작업은 다니엘에게 맡겨둔 채 나는 류미리에게 다가갔다.

“가봉작업 마무리되면 저한테 바로 넘겨주세요.”

“네.”

* * *

나나세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

그녀는 파티 룩을 선택했다.

화려한 드레스와 톡톡 튀는 미니멀 핸드백을 주제로 삼았다.

“준! 드레스 가봉 다 돼가?”

“네. 거의 다 돼갑니다.”

“나한테 바로 넘겨 그리고 핸드백 부자재 부탁해.”

“네.”

강압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적재적소에 직원들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방은 50수 원단으로 만들어진 핸드백으로 부자재 작업이 많이 필요하다.

백 팩과는 다르게 핸드백은 원단으로 만들려면 양면 레자라고 불리는 S/L (Synthetic Leather) 양면 보강재를 덧대야 한다.

주로 가방 바닥 보강이나, 스트랩 등에 자주 사용되며, 가방 옆면이나 몸판에 사용된다.

그래야 부드러운 천이 쓰러지지 않고 버틸 힘이 생겨난다.

“레자에 접착제 잘 발라. 잘못하다가는 다 일어나니까.”

“네. 저도 압니다.”

“옆으로.”

“네.”

레자의 사용에 따라 가죽의 모습이 달라진다.

전체를 전부 접착 처리한다면 유연성을 읽어버려 딱딱한 천 널빤지로 보일 거다.

가방을 만드는 과정에는 가죽 천체의 사이드만 접착처리 해.

가죽이건 원단이건 본연 성질을 살려 주어야 한다.

“뭐 하는 거야! 옆 판에 2.0mm 너무 두꺼워.”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해. 아씨 급해 죽겠는데.”

“대표님… 그만하시죠. 오늘따라 왜 그러세요. 부자재야 바꾸면 되는 건데.”

“…….”

“저희도 한 회사의 팀장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표님만큼 이브를 사랑하고 정상으로 올라가길 원한다고요.”

“미안… 내가… 오… 늘.”

“하…….”

나나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떨고 있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스트레스로 혼란스러웠다.

“저도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너무 몰아붙이시니 저도 모르게.”

다행히 그녀의 상태를 지켜본 팀장도 사과하며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아니야. 내가 너무 예민했어.”

“무슨 일 있으세요. 저희 아직 마지막 아니잖아요. 3차도 있고 4차도 있어요. 우승도 가능합니다.”

“그렇지. 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나나세는 한발 물러서 팀장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를 거다.

그녀가 얼마나 간절한지 나나세는 매 회차가 간절하다.

* * *

쟝료이는 나나세의 부스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나기에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무슨 일이야?!”

그가 지켜본 나나세의 모습은 불안함 덩어리였다.

‘설마 할아버지 때문인가?’

장료이도 그녀에 대한 일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더욱 정이 갔다.

‘하… 내가 나서야 하나.’

그녀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극도로 경멸하는 친일파의 집안이다.

한국의 광복 이후.

그녀의 집안사람들은 모두 일본으로 건너왔다.

장료이의 집안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와 다르게 말이다.

‘할아버지는 가업을 가장 중시하시는 분이야. 내가 나서면 그녀가 더 위험해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계속 이렇게 지켜보고 있자니.

장료이는 찝찝한 기분에 자기 일까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주 비서님 저 잠시만요.”

“네?!”

“나나세 안정시키고 올게요.”

“안 됩니다.”

주 비서는 빠르게 몸을 틀어 장료이의 앞에 멈추어 섰다.

“아까 일도 있는데 이번에는 회장님의 뜻까지 거르시려는 거에요? 회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마십시오.”

“주 비서님 분란이라고 했습니까! 그건 과거일 뿐이에요. 그녀는 그 시대의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합니까!”

“대표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장료이의 얼굴이 더욱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

“나와요!”

그는 주 비서의 어깨를 밀치며 나나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의 귀에 대고 말을 이었다.

“누나, 걱정 마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그리고 힘내요.”

순간 나나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모두가 의아해했다.

.

.

.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다니엘과 나 그리고 류미리까지 어리둥절한 상태다.

무언가 폭풍우가 순식간에 중앙무대를 휩쓸고 간 거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야?”

“나도 모르지. 장료이랑 나나세 디자이너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지.”

오늘따라 나나세의 부스에서 큰소리가 났길래.

고개가 여러 번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녀의 울음에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우리가 신경 쓸 게 아니야. 작업부터 마무리하자.”

“오케이.”

모든 디자이너가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나나세도 어느새 마음을 진정시키고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그려 졌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의상 재봉을 이어갔다.

“벨트랑 모자는 완성되었습니다.”

“의상도 거의 끝났습니다.”

의상 부분은 대부분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마네킹에 피팅 후 수정을 이어갔다.

“가방 완성했어.”

다니엘의 완성되었다는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가는 순간.

내 눈에 검붉은 빛과 함께 밝은 빛이 공존하며 가방에서 같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둘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듯이 말이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두 가지 모두 완성형에 가까운 디자인이다.

그리고 매치 또한 완벽하다.

근데 왜 밝은 빛이 아닌 두 가지 빛이 공존하는 것인가.

“영상….”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주위의 모든 것이 서서히 멈추어갔다.

그리고 내 눈에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친!”

세계 2차대전의 참혹한 현장이 내 눈에 비쳤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단연 내가 만든 가방이었다.

“내가 만든 가방이잖아?!”

총탄이 날아드는 해변.

그곳을 점령하기 위해 고지를 넘나드는 군인들의 모습이 비쳤다.

그들이 모두 하나같이 전투용 배낭이 아닌 내가 디자인한 밀리터리 백 팩을 착용하고 있었다.

“라이언 X자식! 이딴 가방을 보급하다니!”

“전쟁을 치러보지 못한 놈이 만든 게 분명해. 이딴 편의성 없는 가방을 만들다니!”

하나 같이 가방에 대한 불만들을 토로하며 고지를 뛰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길래 욕을 뱉어내는 걸까?

나는 유심히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뭐가 문제인 거야….”

오랜 시간 전투는 이어지고 수많은 전사자가 생겨났다.

“이 가방만 아니었으면….”

가방에 대한 원망이 들려왔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군인들의 모습까지.

“앗!”

35L 이상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깔끔한 디자인과 몸과 밀착되는 일체감을 주기 위해 전체 면적을 키웠다.

‘그게 문제가 된 건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쟁 중인 군인들은 여러 방면으로 행동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만든 가방디자인에는 밀착형 포켓이 대부분.

포켓의 수는 많으나 부피가 큰 장비는 수납할 수 없었고 적재적소에 도구를 사용할 수 없었다.

사실 너무 커다란 주머니나 부피감을 주면 디자인이 촌스러워지기에 모두 배제한 건데 그것이 검붉은 빛을 일으킨 것이다.

“수정할 게 많네.”

내 생각이 정리될 때쯤.

눈에서 흘러나오던 영상이 사라졌다.

나는 다니엘이 들고 있던 가방을 뺏어 들어 일부 디자인을 변형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종료까지 얼마나 남았어.”

“30분 정도.”

“가방디자인 수정 좀 하자.”

“인제 와서 무슨 소리야?!”

“이걸로는 안 되겠어.”

“갑자기….”

“다니엘 이번에는 날 믿어줘. 정말 중요한 상황이야.”

다니엘은 당황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어떻게 고치라는 거야.”

“전체 두께조절이랑 전면부 크기 조절 그리고 가방 바닥에 스트랩을 만들 거야. 그리고 포켓에 옆을 만들어서 볼륨을 줄 거야.”

“미친! 30분 안에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건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거랑 같은데….”

“부탁한다. 재봉틀 사용해. 어쩔 수 없어.”

다니엘을 궁시렁대며 수정할 부분의 재봉된 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스트랩은 안 보이게 부자재 부분에 집어넣을 거지?”

“응.”

“그럼 스트랩이랑 아이템은 네가 만들어.”

“안 그래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게 마무리된 류미리는 모델에게 의상을 전달하고 옷매무새를 잡으며 수정을 이어갔다.

“가장 밀리터리한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삽이라는 전형적인 물체가 부착될 자리에 들어갈 아이템.

이것이 하나의 중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을 만들어야 한다.

“종료 10분 전입니다!”

하경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다니엘과 나는 안간힘을 써가며 마지막 작업을 이어갔다.

“나는 완성! 내가 또 해냈어!”

다니엘의 포효가 내 귀에 들어왔다.

그가 얼마나 집중해서 가방을 수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장!”

“다 돼가.”

내가 마지막 바느질을 완성하는 순간.

밝은 빛이 가방 전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좋아!”

그 순간.

하경이 경기 종료를 알려왔다.

가방의 모든 것 4.

* * *

아시아 패션 어워드 2차전이 진행 중이다.

언론사들은 특종 거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을 그들이 가만히 둘리가 만무했다.

장료이의 발언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퍼져 나갔다.

― 중국의 신성 디자이너가 세계의 정상을 노리다!

― 세계 재계 6위 LVMH에 도전장!

― 아시아 신성들의 대회. 아시아 패션 어워드 그 모든 것을 파헤친다.

― 1차전 4위 쟝료이는 누구?

― 장료이가 인정한 한국의 패션디자이너 차진혁.

― 아시아 패션 어워드 1차전 1위 한국의 차진혁 디자이너.

뉴스를 지켜보고 있던 쟝료이의 할아버지.

노다 헤이치로는 분노를 삼키지 못한 채 강하게 책상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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