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 지나가는 시점.
나는 의상디자인에 콘셉트를 파악하기 위해 류미리에게 다가갔다.
완성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상과 가방의 통일성을 만들어야 한다.
가방의 모든 것 2.
* * *
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류미리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진행돼가요?”
“오셨어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그럼요. 한 번 봐주세요. 저도 기본 틀은 다 잡았어요. 이제 세세한 부분만 살리면 될 거 같아요.”
그녀의 스케치를 바라보는 내 느낌은 나쁘지 않다였다.
완성본이 아닌 기본 베이스만으로도 훌륭한 밀리터리 룩에 상당히 근접해 있었고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만했다.
“상당히 빈티지하네요.”
“시대 배경을 생각해서 빈티지하게 가기로 했어요. 가방 스케치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둔 듯했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내가 가방디자인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소재가 현대적이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재는 현대적이라도 비슷한 빈티지하게 나온 원단을 사용하면 되니까요.”
“그럼 저도 이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게요.”
“근데 시대 배경을 어디로 잡은 거예요?”
“2차 세계대전이요. 가장 올드하지만 그 느낌이 가장 트랜드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는 가장 밀리터리 룩의 근간이 되는 디자인을 가지고 오려는 듯 보였다.
밀리터리 룩.
육군 군복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패션 스타일이다.
유에스(US) 아미 룩, 카키 룩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194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행했던 직선적인 어깨와 짧은 타이트 스커트가 대표적이다.
그러한 이유에 류미리는 이 시대의 밀리터리 룩을 가져온 듯 보인다.
“역시 금장이 좋겠죠?”
“금장은 카피 느낌을 줄 거 같네요. 생로랑에서 가장 처음 내놓았던 디자인이 금색 견장과 단추였으니까요.”
“그런가요. 이 부분은 고민 좀 해봐야겠네요.”
생로랑에서 금색 견장과 단추를 활용해 밀리터리 룩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발란리아 디자이너가 이걸 모를 리가 없다.
“감점 요인은 최대한 배제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네.”
밀리터리 룩의 특징은 직선적인 느낌이 강하고 패치 포켓과 아코디언 포켓 등을 사용하여 기능성을 올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액세서리를 이용해.
군인의 위용을 표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디자인이 탄생한다.
“신발은 스니커즈로 할 생각이에요. 괜찮으시죠.”
“신발은 전시되어 있는 거 중 고르면 되니. 모두 마무리하고 결정하도록 하죠. 스니커즈랑 군화 느낌의 첼시 부츠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폴렛은 없애는 게 좋겠어요. 너무 올드해 보일 거 같네요. 플랩 앤드 버튼이랑 다운 포켓을 적절하게 분배해서 날개 라인에 하나 추가시켜보죠. 오른쪽 복부에도요.”
“좋을 거 같네요.”
에폴렛은 트렌치코트 어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견장을 결합하는 형태를 말한다.
그리고 플랩 앤드 버튼은 뚜껑이 있는 주머니를 단추로 잠그는 형식을 말하며 다운 포켓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머니라 보면 된다.
주머니를 잘 사용하면 스포티한 디테일을 줄 수 있다.
“의상 패턴은 정했어요?”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나라별, 상황에 따라 군복은 원단이 달라진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의 군복이 다 다른 이유가 그들의 행하는 행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 나라마다 지역에 따라 수십 가지의 원단 패턴이 존재한다.
“2차 대전이 모티브가 된다고 해도 원단은 다르게 사용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카무플라주 프린트가 가장 기본이긴 하지만 몇 가지 더 생각해 주세요.”
“최대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카무플라주는 너무 평범하고 튀는 부분이 있어서 배제했습니다.”
군복의 패턴은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원단에 프린트한 카무플라주 프린트(camouflage print)를 사용한다.
카무플라주 프린트란.
잎사귀와 그물의 초록과 밤색이 어우러진, 위장을 위한 문양을 칭한다.
육군의 군복을 떠올리면 가장 적절하다 볼 수 있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 색상과 형태가 바뀌기는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패턴이다.
“타이거 스트라이프보다는 남색의 원 톤으로 갈 생각이에요. 일단 정해지면 확정되면 말씀드릴게요.”
“원 톤도 나쁘지 않네요. 일단 지금 내용 정리해서 최종 시안 만들어 주세요.”
“네.”
그녀가 생각하는 건 데저트 룩(desert look)에 가까운 밀리터리 룩인 듯하다.
북아프리카 사막 지대의 군복으로 카키색의 원 톤 밀리터리 셔츠나 팬츠, 부츠의 아이템으로 구성한 새로운 밀리터리 패션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밀리터리 룩으로 군복의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부드러운 이미지로 표현하여 누구나 입을 수 있도록 캐쥬얼 복.
그리고 그녀의 디자인은 일반적인 밀리터리 룩과는 다르게 더욱 캐쥬얼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데저트 룩에 가까운 원단을 사용한다면 가방의 원단도 비슷하게 가야겠어.”
나는 디자인 전체를 같은 시리즈의 느낌으로 일체화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밀리터리 룩의 특성상 언밸런스한 느낌을 준다면 보기 불편하게 다가올 거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순간.
다니엘이 두 손 가득 재료들을 들고 나타났다.
* * *
나나세는 자신의 팀에 가죽 제작자가 아닌 의상 디자이너 두 명을 데리고 올라왔다.
가방의 소재로 가죽이 아닌 원단을 이용하기 결정을 내린 듯했다.
“준 디자이너. 50수 아래로 가장 두꺼운 원단 몇 개 가져와 줘. 색상은 대조해보고 정하도록 할게.”
“디자인은 생각하셨어요?”
“디자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얼른 시킨 거나 가져와. 시간 없어.”
“네…….”
나나세가 불러들인 둘은 디자인부서를 이끄는 팀장급 디자이너들이다.
그만큼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이다.
하지만 현재 나나세는 독단적으로 팀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안 질 거야.”
그녀의 행동은 팀워크에서 매우 위험한 짓이라고 볼 수 있었다.
팀이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다른 누군가가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이런 부분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둘의 마음과 행동은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이거 받아. 의상에 기본 틀은 내가 생각해놓은 대로 하고 디테일이 필요한 부분만 살려줘. 절대 베이스는 손대지 마.”
“대표님 이건 너무 식상한데요. 요즘 트랜드에 맞지 않아요. 어깨랑 하단 부분은 고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니면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겁니다.”
“토 달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 시간도 없는데 괜히 밸런스 무너지게 하기 싫어.”
“아니. 이 부분을 바꾼다고 전체가 틀어질 거 같지는 않은데요.”
“그만! 시키는 대로 해. 결과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녀는 1차전 이후 불안한 마음이 가중되었다.
회장이 직접 자신의 방에 다녀간 이후.
더는 물러날 곳이 없어졌다.
“나나세 대표. 내 명령이 웃긴가 보군. 아리raM을 방해하라고 지시했는데 제대로 이루어진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조부님의 잘못을 만회하고 싶다며 나에게 목숨도 바친다더니 어째 매번 실수하는군.”
“…….”
“그만하고 싶으면 말해. 조용한 곳 알아봐 줄 테니까.”
“아닙니다. 회장님 더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몇 번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자네 부모님을 살려두었고 집안도 건들지 않았으면 나한테 좋은 결과를 보여야 할 거 아닌가.”
“열심히 아니 꼭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한 번 더 믿어 보지. 다음은 없어. 이번 대회에서도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거야. 그리고 벌을 받게 될 거다.”
나나세는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그날 회장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다.
잘못하다가는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 같았다.
“대표님 오늘따라 너무 예민하신 거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이야기는 잘 들어주셨는데 오늘따라 강압적이네요.”
이브의 두 팀장은 그녀의 행동에 의야 했다.
1차전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승부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결과가 더 안 좋아질 거 같은데.”
“믿어 봐야지. 그래도 실력 하나는 나쁘지 않잖아.”
“그렇게는 한데. 여기 모인 디자이너들 하나같이 뛰어난 게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너무 독단적이니까.”
“뭐 어쩔 수 있나. 모든 책임은 대표가 지는 거니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두 팀장은 나나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눈에 차진혁의 모습이 비쳤다.
* * *
다니엘이 들고 온 가죽은 고급 가죽 중 하나인 송치 가죽이었다.
송치 가죽은 생후 1년 미만의 송아지에서 얻은 가죽으로 일반적인 가죽과 다르게 송아지의 털을 그대로 살려둔 가죽이다.
매우 부드러우면서 아름다운 광택이 일어나는 가죽으로 포인트를 주기에는 최적의 가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에 장갑과 파우치, 구두, 액세서리류에 주로 쓰인다.
“송치 가죽?!”
“맞아. 송치 가죽으로 주머니랑 수납에 포인트를 줄 거야. 이 털의 느낌을 살리면 더 야생적인 느낌을 줄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밀리터리 가방에 전체를 가죽으로 사용하지 않을 테니 포인트에 가장 적절한 가죽을 골라온 거야.”
“대단한데.”
“대단할 것까지야. 포인트로는 이만한 가죽 없잖아. 비싸서 문제지.”
내가 만든 디자인을 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움직여 주었다.
“설마 내 생각 읽었냐?”
“무슨 소리야?”
“아니다. 잘했어. 포인트로는 그만이긴 하지. 내가 만들 디자인부터 살펴봐 줘.”
다니엘은 내가 만든 최종스케치를 바라봤다.
“역시 일부 포인트만 가죽을 사용할 생각이네. 그럼 재봉틀을 사용해도 되겠고.”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부족할 거 같아. 원단이라면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잖아. 그래도 재봉틀 사용은 최소화해줘. 스티칭해야 더 튼튼할 테니까.”
“오케이. 재단만 도와줘.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니엘의 눈빛이 어느 때 보다 빛나 보였다.
“시작해볼까.”
다니엘은 가방의 패턴 작업에 들어갔다.
“사장! 가죽은 그대로 두고 원단만 재단해줘.”
“가죽부터… 해….”
다니엘이 나의 말을 중간에 차단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원래대로라면 주머니 같은 작은 부분부터 해두는 게 편하다.
하지만 다니엘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원단 재단을 부탁했다.
오늘만큼은 그의 의견이 내 생각보다 우선이다.
“그럼. 원단 부분 패턴 넘겨줘.”
우리는 10수 캔버스 트윌 광목 원단의 느낌이 나는 소재를 선택했다.
실을 두 올 또는 그 이상으로 꼬아서 만든 원단으로 내구성이 강하고 부드러운 촉감과 구김과 마찰에도 강해 변형이 작다.
우리가 사용하는 원단은 트윌의 장점을 살리고 몇 가지를 더 추가시킨 신소재 원단이다.
기존의 트윌 원단과는 다르게 방수와 방습에도 강하다는 이점을 가졌다.
“전면부는 끝. 뒤쪽 패턴이랑 옆쪽 바로 전달해줘.”
“오케이. 받아.”
우리는 차례로 제단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니엘이 작은 부분의 포켓의 패턴을 짜는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야! 뭐 하는 거야. 그 비싼 가죽은 왜 토막을 내!”
“기다려봐. 신기한 거 보여줄 테니까.”
가방의 모든 것 3.
* * *
다니엘은 패턴대로 재단하지 않고 빠르게 작은 조각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패턴이 움직이지 않도록 잡고 절단하는 게 힘든 거지 작은 조각은 만드는 건 몇 초면 가능한 일이다.
“무슨 짓이냐. 그 비싼 송치 가죽을 왜?!”
“기다려 보라니까. 내가 신기한 걸 보여줄게.”
조각을 낸 가죽을 패턴 위로 가져다 대는 다니엘.
정반대 과정으로 일을 행하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보는 중이다.
‘제대로 안 되기만 해봐라. 가죽 낭비한 거 후회하게 해주겠어.’
저 귀한 가죽을 손상한다면 짜증이 밀려올 거 같았다.
송치 가죽은 무두질 과정도 복잡한 가죽이기에 장인들이 힘을 다해 만드는 가죽 중 하나다.
“설마 늘리려는 건 아니지?”
“맞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저게 될 리가 없다.
아무리 가죽의 특성에 따라 늘어난다고 해도 저렇게 작은 조각이 패턴의 크기로 될 리가 만무한데.
“어?!”
“보이지.”
늘어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한 거야.”
“영업비밀인데.”
“야!”
유심히 바라본 다니엘의 테이블에서 특수용액이 발견되었다.
“설마 저걸로 한 거야.”
“맞아 아주 얇게 펴 발라서 만든 거지 그리고 이거 봐.”
다니엘이 늘어난 가죽은 나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뒤에 부가적으로 해야 하는 부자재 처리까지 모두 마무리되어 있었다.
“어떻게 한 거야.”
“가죽의 성분을 이용한 거야. 화학 용액으로 단백질에 층을 만들어 주고 그 상태로 최대한 늘려 그리고 부자재를 바닥에 내려두고 울퉁불퉁하게 스크레치를 주는 거지.”
“그래서.”
“늘어났던 가죽의 틈이 부자재를 잡아주고 그 상태에서 재단을 하는 거야. 그럼 끝.”
“어떻게… 이런걸.”
“네가 일을 하도 많이 시키니까. 생각해낸 거 아니야 반성해. 이 사장 놈아.”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늘어난 가죽의 변형을 찾아볼 수 없었다.
패턴대로 늘린 가죽 덕분인지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접착력이 떨어지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접착제를 안 쓴다는 게.”
“NO, NO 접착제보다 더 단단해. 절대 안 떨어져 그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단백질이 살짝 녹아내리기도 해서 일체화시켜버리거든.”
“어떻게 찾아낸 거야?”
“공부 좀 했다. 내가 나름 똑똑해.”
다니엘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 걸까.
“그런 눈빛 거절한다. 대회 안 끝났다 집중해.”
“응…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