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200)

다음으로 장료이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나와 비슷한 질문이었지만 답이 상반되게 달랐다.

“저는 우승하지 않아도 파리로 갈 겁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장료이 디자이너는 지금도 큰 시장인 중국과 일본에서 자리매김하고 있고 차후에 진출해도 늦지 않을 거 같은데.”

기자의 또 다른 질문 이후.

장료이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그리고 결심이라도 한 듯.

자신의 소신을 마이크를 통해 전달했다.

가방의 모든 것 1.

* * *

큰 숨을 내리 쉬던 장료이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최대한 빨리 파리로 넘어가서 LVMH에 소속되어 있는 브랜드 전체를 무너트릴 겁니다!”

순간 그의 대답으로 홀 전체가 암흑같이 조용해졌다.

침을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뒤를 이어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특종이다!”

“위험한 발언이야. 신인이니까 가능한 발언. 멋진데.”

“파리상인회와 맞다이 뜨는 꼴이네. 미쳤다.”

그의 발언에 거대한 열기와 환희가 이어졌다.

아니. 모두 소름이 돋아날 정도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장료이를 바라봤다.

그는 내 표정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역시 미친놈이다. 멀어져야겠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장료이 브랜드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뛰어 왔다.

“장료이 디자이너!”

“주 비서님. 인터뷰 중인데.”

“인터뷰는 무슨. 지금 무슨 짓을….”

“아 왜요!”

인터뷰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장료이 디자이너가 그의 손에 쥘질 끌려가고 말았다.

“어메이징하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LVMH를 무너트린 다라.’

LVMH가 어떤 그룹인가.

세계 재계 6위에 자리 잡고 있는 회장이 있고 역사가 있는 명품 브랜드 수십 개를 가지고 있는 그룹이다.

그런 브랜드를 이제 만들어진 브랜드의 수장이 무너트린다고 발언했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발언이다.

하지만 내 심장은 그의 발언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설레는 발언이네. 나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짓거리를 하려고 하네.’

점점 장료이 디자이너에게 매료가 되어 가는 거 같았다.

.

.

.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대회가 진행될 홀로 들어서자.

화젯거리는 단연 장료이었다.

그의 주위에 몇몇 디자이너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대회의 목적을 희석하지 말라며 충고를 하는 이도 있었고 그의 발언에 응원해주는 디자이너도 있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 녹화 10분 전입니다. 관계자분들은 준비해 주십시오.”

짧은 방송 시작 알림이 들려왔다.

“사장. 네 말대로 오늘은 가방이 주제인 거 같아. 재료들 대부분이 가방을 만드는 재료들이야.”

중앙무대 뒤쪽으로 마련되어 있는 재료창고의 모습에서 수십 가지 가죽의 종류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 상단에 이름이 적혀 있는 브랜드 모두 이탈리아 가죽장인들의 브랜드다.

“그런 거 같네. 오늘, 네 역할이 중요하겠어. 가죽 선택부터 제작까지 네가 총괄해. 나는 오늘 도와주는 쪽으로 할 테니까.”

“오케이.”

가방이 주제일지라도 사전에 만들어진 디자인을 쓰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쉬운 과제를 줄 놈들이 아니야.”

새로운 디자인과 군더더기 없는 제작과정이 가장 큰 점수로 반영될 거라고 예상했다.

“절대 쉽게 진행되지는 않을 거야. 심사위원들 기준이 상당히 높더라고.”

“디자인 문제는 네가 해결해줄 텐데 무슨 걱정이야. 제작은 맡겨둬. 새로운 공법으로 진행할 거야. 기존의 1/3 정도 시간 단축이 가능할 거야. 불량도 줄일 수 있어.”

“새로운 공법?”

“응, 보면 알아.”

다니엘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가죽장인이 시간과 제작 불량으로 고심한다.

이유는 한 번의 실수로 3배에 가까운 일이 늘어나기도 하고 불량으로 인해 퀄리티가 떨어지기에 가죽제품 대부분은 신중하게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다니엘의 새로운 공법으로 그 많은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된 거다.

“믿을게.”

“믿으라고.”

우리의 대화가 끝이 날 때쯤.

메인 MC인 하경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여러분 제가 왔습니다. 제가 인도네시아까지 왔습니다.”

순간 방청석에서 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라와 무대는 바뀌어도 MC는 안 바뀌었네요. 제가 잘해서 그렇겠죠. 하하하.”

하경의 자화자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무대 뒤에서 두 명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앗. 뒤에 심사위원님들이 기다리는 걸 깜빡했네요.”

그 순간 야유 아닌 야유가 쏟아졌지만, 하경은 웃음으로 모든 걸 만회했다.

“소개합니다. 발렌시의 발란리아 디자이너 그리고 엔젤 링의 첸 디자이너입니다. 많은 성원과 박수 부탁드립니다.”

먼저 중앙무대 위에 오르는 건 발렌시의 발란리아였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무대 뒤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그들이 일하는 모습이 비쳤다.

발렌시의 메인명품센터.

아주 깔끔하고 멋들어지는 장인들을 위한 공간이 비쳤다.

거대한 화이트 룸에서는 일상생활을 하는 수많은 마이스터들의 모습과 그곳에 함께 일을 하는 디자이너 발란리아의 모습.

대회에 참석한 디자이너들과 그들이 속해 있는 브랜드의 관계자들 모두 부러운 듯 화면을 바라보았다.

‘우리 센터도 저 정도는 되는데.’

뒤를 이어 엔젤 링의 첸 디자이너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크린 속에서는 그녀의 디자이너로서 일상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디자인 회의와 하루의 휴식.

이 영상들은 심사위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 같았다.

너희도 이래야 한다.

일도 사람도 휴식도 모두 너희가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이다.

두 심사위원이 중앙무대에 올라서자.

하경이 앞으로 다가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먼저 발란리아 디자이너부터 인터뷰 진행하겠습니다. 정말 모시기 힘들고 언론에는 절대 얼굴을 비추지 않기로 유명하신데 어떻게 이 대회에 참여하신 겁니까?”

“파비앙이 나가라고 해서.”

“네?!”

“못 들었어! 파비앙이 나가라고 해서. 보스가 나가라는데 안 나와?”

그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인터뷰에 임했다.

나는 입을 손으로 막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신지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발란리아가 왜 저런 반응을 하는지 아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럴만해요. 발란리아는 제가 어릴 때부터 켈링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그 영감 밑에서 일하는데 악에 안 받치면 사람이 아니죠.”

“제 눈에는 즐기는 거 같은데요. 저런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잖아요. 그것도 공식 석상에서”

“그런가요.”

당연하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건 유명 브랜드의 수장이라도 파비앙을 저렇게 말하다가는 매장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란리아는 짜증 섞인 표정이지만 입꼬리만큼을 웃고 있었다.

마치 장난 어린 복수라도 하듯이 말이다.

오랜 시간 켈링에 몸담은 디자이너다.

그런 만큼 파비앙도 그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도 눈치챘듯이 이번 라운드 미션의 주제는 가방이 메인입니다. 하지만 그냥 하기에는 재미가 없겠죠. 가방의 정의가 뭘까요?”

“물건을 넣어 들거나 메고 다닐 수 있게 만든 도구죠.”

하경이 그의 말에 답했다.

“맞습니다. 간단하게는 그 말이 맞죠. 하지만 우리는 디자이너입니다. 특성과 효율에 맞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가방만이 아닙니다. 의상도 함께 진행할 겁니다. 적재적소에 가장 어울리는 가방디자인 만드세요. 어떠한 재료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의상과 매치시킬 수 없다면 그건 가방이 아닌 들고 다니기 불편한 물건일 뿐입니다.”

뒤를 이어 첸 디자이너가 마이크를 받아들였다.

“제가 세부적인 설명을 곁들이겠습니다. 제작 시간은 5시간입니다. 빠듯한 시간이지만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아주 긴 시간이죠. 참여 인원은 디자이너를 포함해 3명입니다. 그만큼 얼마나 인원을 잘 활용하고 능력 있는 인원을 이 무대에 올리느냐가 총괄디자이너의 역할이 될 겁니다.”

5시간 상당히 짧은 시간이다.

의상만을 만드는 시간이 4시간이었던 1차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듯하다.

“가방과 의상 모두를 5시간 만에… 힘들겠는데.”

가죽용 재봉틀을 사용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근간이 수제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의 공법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나.”

순간 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를 믿어야 한다.

첸 디자이너의 설명이 끝이 나고 하경이 배턴을 이어받아 대회를 진행했다.

“여러분 지금부터 대회 시작입니다.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올라올 인원을 벌써 정해 놓았다.

하경의 멘트가 끝이 나는 순간.

다니엘과 류미리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다른 브랜드 관계자들도 분주하게 움직였고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디자이너들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 팀을 짜기 시작했다.

“주제부터 정하자.”

의상의 주제에 따라 가방이 달라진다.

그 말인즉 복잡한 가방을 제외해야 한다.

“밀리터리나 스포츠 쪽 가방은 복잡할 겁니다. 심사기준을 맞추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밀리터리와 스포츠 가방은 수납과 기능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쁘고 상품성만이 뛰어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

분명 감점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니엘 씨 생각은 어때요?”

가방 부분은 다니엘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의 선택으로 의상의 주제도 달라질 거다.

“사장 말처럼 밀리터리랑 스포츠 그리고 사무 쪽 서류 가방은 시간이 오래 걸려 그만큼 기능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하니까. 하지만.”

다니엘이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은 경쟁력이었다.

“여기는 경쟁을 해야 되는 곳이야.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니엘의 말이 맞다.

우리는 전쟁터에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라의 이름을 걸고 나라의 대표로 이곳에 나와 있는데 나는 안정적인 디자인과 점수만을 생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무대야. 나는 내 모든 걸 퍼부을 거야.”

“좋아! 내 생각이 짧았어.”

“그러니 네가 결정해. 네가 우리의 보스니까 나는 너의 말에 따를 뿐이야.”

“고맙다. 나는 밀리터리 룩, 백으로 가고 싶어.”

“오케이. 그럼 그걸로 하자.”

한 치의 고민 없이 밀리터리를 선택했다.

현재 가장 트랜드화 되어있고 복고풍의 의상이 유행하는 현재 밀리터리 룩도 떠오르는 추세다.

“류미리 디자이너 생각은 어때요?”

“저도 좋아요. 최근에 공부한 의상도 밀리터리 쪽이니까요.”

의상디자인은 류미리에게 모두 맡기기로 했다.

1년 사이 그녀는 수석디자이너의 영역을 뛰어넘어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디자인을 논평할 수 있는 실력자로 거듭났기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다니엘 너는 가죽부터 정해줘. 나는 디자인 들어갈 테니까.”

“응.”

우리는 분주하게 자신이 맡을 일에 집중했다.

“밀리터리 백이라.”

예전에 장난스레 만들어 본 기억이 있기는 하다.

요즘은 군용 백을 패션에 적용하는 예도 많다.

하지만 그런 가방은 기능성을 대부분 배제한다.

디자인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능성을 배제하면 이게 밀리터리 백이라 할 수 있을까?”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서 나는 주춤하고 말았다.

솔직히 내외부의 기능성을 배제한다면 분명 이쁘고 패셔너블한 디자인이 탄생할 거다.

시간까지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발언과 심사기준을 생각한다면 절대 버릴 수 없다.

“전체적인 느낌부터.”

최소 35L 이상의 백 팩을 채택했다.

가장 이상적이고 편의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방의 형태다.

“전면부를 넓혀서 착용감을 좋게 해야겠어. 그리고 수납은 가죽으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나는 가방의 노출부 전체를 발수도, 즉 방수가 잘되며 오염에 강한 원단인 신소재 원단으로 대체할 생각이다.

“가죽으로 만들면 좋기는 해도 너무 무거워.”

디자인만을 바라본다면 100% 가죽을 채택했겠지만, 가죽은 물에 취약하다.

군용가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이 썼다.

“일단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세부적인 요소는 의상디자인을 보고 결정해야겠어.”

우리는 1시간을 오로지 디자인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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