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00)

친구와의 재회 1.

* * *

“차진혁 디자이너 1차전 1등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런웨이를 할 거라는 듯이 디자인 요소를 집어넣었더군요.”

“만약을 대비했습니다.”

“대단해요. 바쟐 디자이너와 저는 그 부분을 높게 샀습니다. 솔직히 점수로 따지자면 인도의 아룬 디자이너와 1점 차였습니다.”

그녀의 발언에 아룬 디자이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부여잡았다.

그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아룬 디자이너가 말을 이었다.

“심사위원님 실례가 안 된다면 차진혁 디자이너의 의상을 보고 싶습니다.”

차토세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녀의 무언에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차진혁 디자이너의 의상을 함께 보고 평가하죠.”

아까와 같이 내 의상이 주 무대 위로 올라왔다.

가장 먼저 아룬이 내 의상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 대단하네요.”

내 의상에 숨어 있는 요소들을 찾은 그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 뒤로 차토세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평가는 아주 세부적인 부분도 포함입니다. 컬렉션에서 보여진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죠. 여러분이 만든 의상 모두 손색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수에 차이가 났던 건 디테일입니다.”

차토세는 내 의상에 다가가.

아웃웨어인 가죽 치마를 모두의 앞에 내밀었다.

“만져보세요.”

모두 신중하게 가죽 치마를 지켜보고 있는 그때.

장료이가 말을 이었다.

장료이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환한 웃음으로 내 치마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다.

“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대단하네. 이건 나라도 도전해보기 쉽지 않았을 거야.”

디자이너 모두가 가죽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에 그의 말에 궁금증만 증폭되어갔다.

그때 차토세 디자이너가 나서서 말을 이었다.

“차진혁 디자이너. 의상 전체에 대해 해석해 주시겠습니까. 모두 궁금해하는 거 같네요.”

“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설명을 편하게 하려고 가죽 치마는 높은 선반 위로 들어 올렸다.

“앞에 보시는 아웃웨어의 소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피아노 가죽입니다. 사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는 철갑의 느낌과 고급스러움을 이 가죽을 통해 얻고 싶었습니다.”

모두 내 설명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

어느 누가 프라다의 사피아노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단은 2.0mm 두께 가죽 두 장과 VXP라는 부자재를 부착했습니다. VXP는 가죽을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허리선은 내부 가죽 1.0mm와 외부 가죽 1.2를 결합했습니다. 움직임을 편하게 하고 탄력을 주기 위해 테이핑 테이프만으로 모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죽 치마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마무리하자.

디자이너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장료이가 나서서 몇 가지 설명을 더 이어갔다.

“내가 놀란 부분은 그게 아니야. 접착제의 적절한 사용에 놀랐어.”

가죽공예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재료 그것이 접착제다.

접착제만 잘 사용해도 부자재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다.

나는 그의 발언에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보편적으로 바늘땀이 들어가거나 가죽이 맞닿는 부분은 접착제가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업의 편안함보다 완성품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에 집중했습니다.”

가죽 전체가 아닌 정말 중요한 부분만을 접착했다.

접착을 하지 않고 바느질이나 모양을 만들어 가려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접착이 되지 않은 부분은 더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주름이 가기에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근데 아까 차토세 디자이너의 말은 뭐죠?”

“그 부분은 의상을 보면서 설명해 드리죠.”

마네킹에 전시된 원피스의 치맛단을 까뒤집으며 말을 이었다.

“이 아랫부분에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심사위원분들이 이걸 보고 말하는 거 같네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토세가 말을 이었다.

“저 부분에서 크리스털이 흘러나왔죠. 여러분은 보지 못했겠지만 흘러나온 크리스털이 빛을 발하면서 차진혁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고 있는 모델이 여신으로 보였습니다. 여신의 흔적 같은 거였죠.”

바쟐도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차토세 디자이너의 말처럼 나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고 일시적이었지만 정말 판타지 세계에 와있는 거 같았죠. 가장 주제에 부합하는 의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리고 저 실크 안에 보이는 크리스털과 함께 발하는 순간. 판타지 세계의 스킬을 쓰는 거 같았습니다.”

바쟐의 자신의 소견이 끝이 나고 무대 위에 있던 사람들과 아래에 있던 모두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모두를 향해 고개 숙였다.

모두가 1차전을 기점으로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우승 후보였던 장료이가 4위라는 터무니없는 결과를 자아냈고 프레타 포르테의 경력을 가진 나나세가 3위, 경쟁 구도에도 없던 인도의 아룬 디자이너가 2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가장 이변이 된 게 내 순위였다.

장료이가 기대하는 디자이너라고 나를 치켜세웠지만 그들로서는 나 또한 무명 디자이너에 가까웠기에.

이렇게 아시아 패션 어워드의 1차전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신 디렉터와 류미리, 다니엘까지.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축하했다.

“사장님 믿었어요.”

“응?! 아까 컬렉션 중에 내가 본 신 디렉터는 지금의 신 디렉터가 아닌가.”

“다니엘 조용히 해요.”

“아 왜. 흡….”

신 디렉터가 다니엘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흡!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하.”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을 해요.”

“아까 사장 놈 떨어질 거 같다고 그랬잖아. 다들 디자인 능력이 대단하다고.”

“다니엘!”

다니엘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내 옆으로 숨듯 다가와 말을 이었다.

“하여튼 축하해. 인정할 수밖에 없어 사장 놈.”

“고맙다.”

“축하드려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인데요. 모두 긴장해야 할 거 같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실력이 뛰어나요. 칼을 갈고 나온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우리는 자축을 마무리한 후.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2차전은 1주일 뒤니까. 하루 정도 이곳에서 머물고 이틀 뒤에 인도네시아로 이동하시죠.”

“그렇게 해요. 모두 고생했는데 관광도 하고 좀 쉬세요.”

“안 그래도 야경 구경하러 가기로 했는데 사장님도 함께 움직이시죠.”

“아니요. 저는 호텔에 들어가서 쉴게요. 너무 지쳤어요.”

“어쩔 수 없네요. 저녁만 함께 드시고 들어가세요.”

“네, 그럴게요.”

5차전 모두 다른 나라에서 치러진다.

러시아와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경제국 순위에 따라 장소가 선정되고 대회가 이어진다.

이러한 이유에 계속 이동해서 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

.

.

직원들과 저녁 식사 후.

먼저 호텔로 들어섰다.

긴장한 나머지 피곤함이 밀려왔다.

“피곤하네.”

내가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아는 얼굴이 승강기에서 내리며 로비 카운터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디자이너.”

바쟐이었다.

이놈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많고 많은 호텔 중에서 내가 머무는 호텔에서 만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는 어찌한 일로.”

“아. 내가 머물던 호텔에 예약 오류가 발생해서 이쪽으로 옮겼어. 식사하고 들어오나 보네.”

“네.”

우리 둘 사이에 서먹한 기운이 감도는 그때.

바쟐이 먼저 나서서 말을 이었다.

“호텔 라운지 바 갈 건데 같이 한잔할래?”

“괜찮겠습니까? 심사위원이신데.”

“뭐 어때. 내가 술 같이 먹는다고 편파적으로 점수를 주는 사람도 아닌데 적적한데 한잔하는 거지.”

“여자친구분은?”

“응?! 무슨 소리야. 여자친구라니?”

“아…. 아니요.”

바쟐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앗 실수다.’

바쟐이 해외를 이동할 때마다 여자친구를 대동한다는 사실은 나밖에 모르는데.

“내가 해외에 출장 갈 때마다 여자친구랑 움직이는 건 서진밖에 모르는데….”

“그냥 여자친구분이 있을 거 같아서 물어본 거뿐입니다.”

“아니야! 너 누구야?!”

바쟐은 순간 얼굴을 굳히며 단호하게 나에게 질문했다.

뭐라고 그에게 말해야 오해를 풀 수 있을까.

‘미치겠네.’

바쟐은 묵묵하게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눈빛에서 분노보다는 애절함이 가득했다.

‘설마……. 하. 어쩔 수 없나.’

“사실….”

“사실 뭐! 빨리 말해. 설마 JB 회장 쪽 사람이야?!”

“JB라니?”

“아, 내가 잘못 짚은 건가? 방금 했던 말은 잊어버려 내가 말한 거 그리고 차진혁 디자이너 정말 당신 정체가 뭐야?”

내 얕은 거짓말이 그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적절한 대답은 이거뿐이었다.

“한동네에 같이 자란 동생입니다. 김서진 디자이너는 친한 형이고요. 죽기 전까지 저와 연락하고 지냈습니다. 바쟐 디자이너 이야기는 서진이 형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응?! 동생이라니……. 서진한테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겠지 없으니까.’

하지만 이 방법뿐이다.

내가 김서진이라는 걸 그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약에 말한다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게 뻔하다.

“여기서 질문! 당신이 정말 서진과 친했다면 서진의 비밀 한두 개는 알고 있겠지.”

“그럼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서진이 형이 저한테 고민 상담도 많이 했으니까요.”

바쟐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어서는 안 되는 비밀을 꺼내 들었다.

“서진이 가장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이 하나 있어. 친하다면 모를 리가 없지.”

‘이 새끼가….’

나는 고민하는 척하다 말을 이었다.

솔직히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서진이 형 엉덩이에 왕점 하나가 하트 모양이죠. 너무 하트 같아서 부끄러워했었는데 혹시 그걸 말하는 건가요.”

“오호…. 정답 그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부대찌개도 좋아하지만 역시 옥수수 아닐까요. 어릴 적에 죽어라. 옥수수 들고 다니셨거든요. 별명이 옥수수중독자였습니다.”

“정답! 그러면 가장 자신감 있어 하는 부위는!”

“그걸 제 입으로 말해야 하나요…. 전화로도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렸습니다. 여자들이 환장한다고…. 어휴.”

‘진짜 죽이고 싶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그런가? 그건 좀 그렇지. 그리고 여자들이 뭐가 환장을 해…. 뻥쟁이 새끼!”

한마디만 더 해라.

때리고 숙소에 들어가 버릴 테다.

“하여튼 그 이야기는 뒤로하고 하나 더 물어볼게. 대학교 시절 서진이 런던에서 했던 아르바이트는?”

“햄버거 가게였던 거 같네요. 공짜 햄버거라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맨날 자랑하셨어요.”

“…….”

잠시 정적이 흐른 후였다.

바쟐은 순간 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흑흑…. 서진아…. 내가 네 동생을 만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너무 놀라고 말았다.

마치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한순간에 폭발이라도 하듯.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서진이 형을 이렇게 생각해주셔서. 그리고 미안합니다.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뭐 사정이 있었겠지. 이렇게 만난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야. 그리고 서진이 아끼는 동생이 한국의 대표라니…. 서진이 참 좋아했을 텐데.”

“그랬을 겁니다. 서진이 형한테 많이 배웠으니까요.”

“근데 아까 대회 때는 왜 서진이를 모르는 척했던 거야.”

“괜한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쟐 디자이너와 서진이 형이 친하다는 건 패션관계자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마치 그걸 이용하려고 다가가는 사람으로 비칠 거 같았거든요.”

“오…. 같은 동네 살면 성격도 비슷한가. 이상하게 서진이의 모습이 너한테서 보인단 말이야.”

“그런가요. 서진이 형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거의 맨날 만났으니까요. 서진이 형이 정말 어린 저를 친동생처럼 잘 돌봐줬거든요.”

“그랬군. 안 되겠어 라운지 바에 가서 한잔하자고 오늘 밤새울 생각 하라고.”

“물론이죠!”

1년이 지난 지금.

친구인 바쟐과 다시 재회 아닌 재회를 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인연이 악연이 아닌 좋은 인연으로 남길 바랐다.

“얼른 와.”

“네, 갑니다.”

이 만남이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친구와의 재회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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