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할 거다.
아니라면 나는 이곳을 짓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
“포기하세요. 아시아 패션 어워드.”
“말도 안 되는!”
“능력도 없이 높은 곳만 바라본다는 건 웃긴 일입니다. 그냥 한국 대표라는 이미지와 인지도를 가지기 위해 한국은 너무 많은 걸 잃어야 합니다.”
“나는 모르겠고 벌써 결과가 나왔는데…. 포기라니.”
“말이 통할 거 같아서 다시 찾아온 건데 안 되겠네요.”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는 행동을 취했다.
“잠깐.”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말을 이었다.
“살려주세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우리는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잠시만요.”
내 질문에 묵묵부답인 김경진이 내 뒤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짧게 설명을 하고는 밖으로 내보냈다.
신기하게도 김경진의 말 한마디에 혈기왕성한 사람들이 순순히 가게를 빠져나갔다.
“대단하네요. 리더쉽은 인정입니다.”
정말 이 장면에서 느낀 내 감정을 그에게 표현했다.
그는 쓴웃음을 남기며 나에게 말을 이었다.
“하….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나쁜 일인지 알면서도 왜 그 일을 벌였는지요.”
그는 나를 손님으로 대할 때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친절한 젊은 청년의 모습 말이다.
“여기 앉으세요. 음료는 뭐로 드실래요.”
“음료는 괜찮으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나 봅시다.”
“아…. 그게.”
김경진이 대회를 출전하려는 이유.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이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면 안 될까요.”
용납할 수 없다.
이들의 사정이 딱한지는 알겠으나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고 아시아 패션 어워드의 깊은 내막을 모르는 이들의 작은 실수가 크게 다가왔다.
“무리예요. 사장님 사정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도 출전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대회는 포기하세요.”
“…….”
그는 손가락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현재 자신이 가진 금덩이를 바닥에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언론과 협회에 보고하는 순간.
그 금덩어리는 돌덩이보다 못한 돌팔매질로 돌아올 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하루 그 이상은 안 됩니다. 제가 내일 이 시간에 올 때까지 결정하셔야 할 겁니다.”
“……네.”
그에게 시간을 주었다.
나는 자신의 인생에서 옳은 길을 찾기를 바랐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빠져나가려는 그때.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내들이 승합차 3대에서 무더기로 내리기 시작했다.
“이쪽 라인 상가들 다 부숴!”
다행히 퇴근시간대가 아니라 유동인구가 많이 없는 시간대다.
쾅! 깡!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순간.
아이즈의 출입문 유리가 야구 방망이에 우수수 부서지고 말았다.
“이 X새끼들아! 그만해.”
그때 김경진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검은 양복의 사내에게 달려나갔다.
자기 삶의 일부가 부서지는데 어느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뭐야 이 새끼는 겁이 없었나.”
퍽! 퍽!
김경진은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검은 양복의 사내에게 주먹 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그만! 이 뽀글머리 돼지 새끼야.”
“뭐?!”
동대문 상인 3.
* * *
내 발언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는지.
뽀글머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 버렸다.
“뭐냐 넌? 손님이면 빨리 꺼져라. 한 번만 봐준다.”
“손님은 손님인데. 특별한 손님이라서. 너나 꺼져.”
“이 새끼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너도 반말하잖아. 나는 하면 안 되냐?”
내 말이 사레가 걸렸는지 헛기침해대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네.”
“나도 어이가 없어. 갑자기 남의 가게 부수는데. 어이가 있겠어.”
분노가 폭발한 뽀글머리가 바닥에 쓰러진 김경진을 뒤로하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너도 좀 맞자.”
“그래. 때려.”
“내가 때리라면 못 때릴 줄 알아!”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는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천장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제기랄. 맞으면 죽겠는데.’
그런데 그때였다.
쓰러져 있던 김경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뽀글머리 조폭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깐! 그분은 손님이야 건들지 마.”
김경진은 발악하듯.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가방을 주워들어 있는 힘을 다해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사장님 도망치세요. 저놈들 완전 악질이에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겁니까.”
뽀글머리는 이 상황 자체가 웃겼는지.
날아드는 가방을 손으로 걷어내며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하하하.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것도 아닌 것들이 다 난리네. 매를 벌어라. 벌어.”
그는 나를 째려보고는 다시 김경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오른발을 들어 올려.
김경진의 복부를 걷어찼다.
“너 때문이잖아. 이 새끼야 왜 사람 귀찮게 만들어.”
“윽!”
뽀글머리는 쓰러진 김경진을 향해 다시 한번 발을 들어 올렸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널브러진 나일론 소재의 옷가지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상대의 목에 감싼 뒤 있는 힘을 다해 강하게 잡아당겼다.
“억! 놔…….”
“못 놔!”
체급으로 봐서는 헤비급을 뛰어넘는 그가 한순간에 목이 쪼여오며 발버둥 쳤다.
그리고 안간힘으로 옷가지를 빠져나오며 뒤로 덩그러니 넘어졌다.
“콜록. 아씨!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그가 땅을 짚고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는 그때.
골목길 초입부터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형님! 경찰 떴나 봅니다. 애들 철수시키겠습니다.”
“아씨. 너 나 기억해라 내가 딱 봐뒀다. 두고 보자.”
그들도 경찰에 붙잡히면 복잡해진다는 걸 알았는지.
빠르게 몸을 피해 가게를 빠져나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쓰러져 있는 김경진에게 다가갔다.
“휴 살았네.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흑흑.”
“많이 아픈가 봅니다. 울기까지 하고.”
“그게 아니라 억울해서요. 흑흑.”
“어휴, 몸이나 추슬러요.”
“…….”
일에 휘말린 나를 바라보며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그를 보며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위로가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았다.
초조함과 두려움이 서로 공존해 있는 김경진의 눈빛을 보자.
마음마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 자주 있었습니까?”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전까지 찾아와서 협박하기는 했지만….”
“처음이 어렵지 이렇게 나오는 거 보면 이제 계속 이어질 거 같은데.”
“그렇겠죠. 하……. 미치겠네. 유명해지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더 강압적으로 나오다니.”
한탄스러운 말을 남긴 그의 뒤로 청년상인회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진아 괜찮아? 아이고 얼굴이.”
“괜찮아요. 형님은 괜찮아요. 다른 분들은요?”
“다들 괜찮다. 아…. 옆 가게 나리 누님 조금 다치셨다.”
“네?!”
“깨진 유리 파편이 튀면서 얼굴을 살짝 스쳤더라. 많이 놀란 거 같아.”
“그렇겠죠. 가뜩이나 마음이 여린 누나인데.”
모여있는 상인회 사람들의 심리가 모두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다.
분노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두려움과 빨리 이 일이 끝나길 바라는 사람까지.
‘점점 힘들어지겠네.’
내가 나서서 도와준다면 분명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겠지만.
‘오지랖이야. 이들의 일을 내가 해결할 필요는 없지.’
잠시 스쳐 지나간 생각.
주변에 또 다른 상권을 구축할 수 있다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하고.’
망해버린 현재의 구시가지의 상권을 끌어 올렸다는 건 이들에게 그만큼의 능력과 저력이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벌써 상권이 구축된 구시가지로 빠져버린 손님들이 이들의 상권으로 따라올까?
‘아닐 거야. 손님들은 이 의상점들만 보고 이곳에 오는 게 아니니까.’
재미와 구경거리가 형성된 이곳을 쉽게 버리고 이들을 따라서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럼 또 다른 방법.
내가 이들을 도와 하나의 브랜드로 키워줄 저력을 보탠다면.
‘나쁘지 않네.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
하지만 이 방법은 나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는 아리raM의 대표다.
사업성 없는 이곳에 묶일 만큼 바보는 아니다.
김경진이 내 역할을 대신한다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의 능력으로 비추어 볼 때 성공 확률은 희박하다 볼 수 있다.
‘아시아 대회 포기하면 두 번째 안은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신 디렉터도 걸리고.’
명분이 없이 득보다 실이 많은 사업에 손을 댄다고 말했다가는 신 디렉터와 회계팀 김상진 팀장.
이 둘이 적극적으로 반대할 게 분명하다.
‘아 모르겠네. 지켜보자.’
모두가 마음을 추스르고 김경진 주위로 가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경진아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이놈들 이제 가게 부수는 것만으로 끝낼 거 같지도 않고 나는 이제 무섭다.”
“형님…. 조금만 더 버텨봐요. 네?!”
“미안하다. 계속 이런 식이면 못 버틸 거 같아.”
“아……. 제가 죄송합니다. 괜히 무리하게.”
“아니다. 내가 미안하지.”
그렇게 김상진에게 말을 건넨 상인들이 아이즈를 빠져나갔다.
당장은 가게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은 남겼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포기하고 떠나갈 수밖에 없을 거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법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세상이지 않은가.
그때 남겨진 김경진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 그에게 나는 더 큰 숙제를 남기기로 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제는 대표이자 리더로서의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선택에 따라서 저도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잘 선택하세요.”
“네?!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