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200)

“근데 진짜 말이 안 돼요. 아무리 동대문이 크다고 해도 개인 브랜드 하나가 기업의 브랜드를 이긴다는 게….”

“뭐가 있어! 분명해. 내가 알아볼 거야!”

신지혜는 겉옷을 챙겨 회사를 빠져나갔다.

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커서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었다.

“하…….”

아무리 우리가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한국 패션협회가 공개적으로 공평하게 평가했다고 발표까지 한 마당에 뭐가 달라지겠는가.

“안 되겠다. 저도 좀 나갔다 올게요.”

동대문의 독자적인 브랜드라 할지라도 명품과 의류기업보다 큰 매출이 생긴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우리가 1벌을 팔아야 할 때 이들은 100벌을 팔아야 하는 구조.

이런 큰 매출과 수요가 있는 브랜드가 이때까지 수면에 올라오지 않았다니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같이 가시죠.”

내가 큰소리로 신지혜를 부르자.

그녀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터져 나올 거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방심했네요.”

“아니에요. 방심은 무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보죠. 저도 걸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니까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네.”

우리는 한참을 달려 동대문에 있는 아이즈의 매장에 들어섰다.

25평 남짓의 작은 매장.

그곳에는 여성 의류과 남성 의류가 잘 분배되어 디스플레이 되어있었다.

소형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장점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매장이다.

“어서 오세요.”

“네…. 혹시 여기 있는 의상 모두 사장님이 디자인하신 건가요.”

“그럼요.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디자인하고 제작까지 한 의상들입니다. 한번 보시죠. 싸게 드릴게요.”

“싸게라….”

“네?!”

“아니요. 보고 말씀드릴게요.”

나는 신중하게 모든 품목을 확인했다.

전체적인 밸런스와 디자이너의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품질은 나쁘지 않아. 좋은 원단으로 제작했네.’

“혹시 이거 가격이 어떻게 되죠?”

“그 재킷은 21만 원이요. 잘생긴 손님이니까 20만 원에 드릴게요.”

“그래요. 조금만 더 볼게요.”

‘재킷 하나에 21만 원이라…. 우리 재킷의 1/10 가격이네.’

생각이 깊어질수록 의문만이 가중되는 느낌이다.

만약 내가 인정할 정도의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나는 고민 없이 이 매장을 나가.

한국 패션협회의 평가와 발표를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재킷이 이 가격이면 다른 건 더 저렴하다는 건데.’

20분가량을 신 디렉터와 함께 매장 전체를 살펴보았다.

“사장님….”

“네.”

“터무니없는 거 아시죠. 이거 조사해봐야 해요.”

“이런 디자인으로 한국 대표가 되다니….”

가장 큰 문제점.

마치 개성이 가득 밴 의상 같아 보이지만 나와 신 디렉터 눈에는 훤히 보이는 문제점.

무의식의 기억.

많은 디자이너가 조심해야 하는 문제.

내 생각에 아이즈의 사장은 노력을 많이 하는 디자이너다.

하지만 그게 독이 되어 자신의 디자인이 누군가의 카피본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인 듯하다.

“분명 자신의 개성은 배어있기는 하는데. 거기에 더한 걸 덮어씌웠네요.”

“이거랑 이건 너무 티 나요.”

신 디렉터가 내민 재킷 하나와 여성 원피스 하나.

L사와 G사의 디자인이 많이 배어있다.

남성 재킷에는 L사 특유의 개성 넘치는 홀로그램디자인이 많이 묻어 있었고 여성 원피스에는 G사의 특이한 원단 질감을 사용했다.

만약 이걸로 브랜드라는 이미지로 출시하거나 컬렉션을 열었다면 무조건 디자인소송에 휘말릴 거다.

“분명 뭐가 있네요. 확신이 들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용납할 수가 없어요. 이런 능력으로 한국 대표라니….”

조용히 대화를 이어갈 때쯤.

엄청난 덩치의 사내가 가게 문을 열고 나타났다.

동대문 상인 2.

* * *

내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구의 남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손님 계셨네.”

“무슨 일이에요?”

“아, 이거 계산 좀 해줘라. 요새 카드 손님이 부쩍 늘었네.”

“잠시만요.”

이 상황을 지켜보며 이들이 카드리더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면 현금유통이 많은 동대문에서 법인 단말기 하나를 가지고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한 듯 보인다.

그들이 이걸 악용해 매출을 한곳에 몰아넣어 준다면 웬만한 브랜드매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다.

“신 디렉터님, 일단 나가시죠.”

“네?! 왜요. 증거를 찾아야죠!”

“일단 나오세요.”

우리가 가게를 조용히 빠져나가려는 순간.

아이즈의 사장이 우리에게 다가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손님. 다음에 또 와주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고 서글서글한 미소로 우리를 대했다.

손님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청년이었다.

“우리가 누군지 아는 거 아닐까요? 뭐 이렇게 친절해.”

“아니요. 모르는 거 같네요. 그냥 친절한 거죠. 매력 있네요.”

“동대문에서 저런 친구도 보기 힘든데…. 웬일이래.”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서비스업인데 저 정도는 필수죠.”

“안 그래요. 상품을 강매를 유도하거나 과하게 금액 측정해서 파는 사람도 많아요. 어떨 때는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아 그래요.”

신지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이상하게 아이즈 사장이 밉지 않다.

무슨 감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움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살다 보면 잘못한 친구건 가족이건 미움보다는 안타까운 감정이 생길 때가 있지 않은가.

현재 내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랬다.

“간절해 보이기도 하고….”

“사장님! 마음 약해지시면 안 돼요. 이럴 때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제가 뭘?! 약해졌다는 거예요.”

“그 동정! 늘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시잖아요.”

“동정이 아니라 마음을 읽은 겁니다.”

“하여튼 협회로 바로 가시죠. 그쪽에 민원신청하면 바로 해결될 거예요. 조사 이후에 정당하지 않다면 재심사 열릴 겁니다.”

“신 디렉터님 잠시만요.”

“왜요?”

“저한테 하루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설마 용서해 주려는 건 아니시죠?”

“뭐, 그건 아니고 서로 좋은 방향을 찾아보려는 거죠.”

문득 아이즈 사장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한다기보다 내 밑에서 더 지옥을 맛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달까.

무섭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키워주고 싶다.

“죄송한데 저한테 시간 좀 주세요.”

“하…….”

신 디렉터가 자신의 앞머리를 헝클이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아시죠! 저 사람 자기가 무슨 짓 했는지도 모를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해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잘 설득해서 출전 포기하게 만들어 볼게요.”

“사장님!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렵게 돌아가려고 하세요. 저희도 시간이 없어요.”

“하루면 됩니다. 하루만 기다려주세요.”

“하…. 마음대로 하세요.”

신지혜와 논쟁 끝에 허락 아닌 허락을 맡았다.

나의 행동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는 그녀.

하지만 나는 저 간절해 보이는 젊은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에게 패션에 대한 열정과 동질감을 느껴 이런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 행동에 실망했는지.

신 디렉터는 더 따져 묻지도 않고는 뒤돌아서 떠나버렸다.

“제가 해결할 테니 믿어주세요. 저도 신 디렉터님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독백을 삼키며 아이즈의 매장으로 다시 발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그에게 당당하게 밝히기로 했다.

“오! 다시 오셨네요. 주위 보고 오셨나 봐요. 제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그럼?”

“제가 아리raM 대표 차진혁입니다.”

* * *

동대문 상인연합회.

“형님. 큰일 났단께요!”

“뭔데?”

“그 김경진이라는 놈 회사가 뭐라더라. 아시아 패션대회 한국 대표로 뽑혔단디요. 그놈 유명해지면 복잡해지는 거 아니요?”

“당연한 소리하고 있어!”

상인회 회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담배를 끊임없이 피우며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 고민에 빠져들었다.

현재 이들은 김경진이 운영하는 가게를 포함, 주위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허물고 대형 쇼핑몰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런 이유에 가게를 점거하고 있는 상인들을 모두 쫓아내야 하는데.

김경진이라는 어린놈이 사사건건 방해를 해대고 있는 통해 사업 진행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돈만 주면 나간다는 것들이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김경진인가 그놈이 절대 안 된다고 나대니까. 상인 놈들도 돈 더 받아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요.”

“미치겠네.”

“형님, 이번에 또 지연되면 김 회장님이 저희 죽여블지도 모르는디.”

“나도 아니까 닥쳐! 생각 좀 하자. 한국 대표가 됐으면 얼굴도 팔릴 거고 이제 유명해질 텐데. 유명해지면 머리 아픈데.”

“형님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디. 들어 볼라요.”

“뭔데?”

“부시고 빠지고 하시죠. 이러나저러나 옛날 방법이 최고 아니요. 우리 그런 식으로 재개발시킨 게 몇 개요. 그냥 죽이는 거보다 피 말려 죽이는 게 더 무서운 법 아니요.”

“그 방법이 최고기는 하지.”

이들이 맡은 업무는 상인들을 위협하고 돈으로 회유해.

그곳을 떠나게 하는 거다.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돈이 들어갔다.

현재는 돈과 힘으로 동대문 상인연합회 회장직까지 역임한 상태다.

말 그대로 외부적으로는 상인회일지 모르나 내부적으로는 조폭들이었다.

“네 말대로 해보자.”

“오랜만에 몸 좀 쓰것고만.”

이른 시일 내에 젊은 디자이너들과 상인들을 내보내야 한다.

안 그러면 자신들의 목이 달아날 판.

일을 처리하기 위해 가져와 쓴 돈이 너무 많다.

“자금줄 막히게 생겼네.”

그때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상인연합회의 문이 열리고 백발의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놈들 뭐 하는 놈들이야! 돈만 밝히는 돈벌레 새끼들아! 가져다 쓴 돈이 얼만데 아직도 일 처리 못 해.”

“회장님…….”

그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구에 서 있는 김 회장을 가장자리의 소파로 안내했다.

“그 구역 빨리 비우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죄송?! 이게 죄송한 사람의 태도야 하…. 이래서 대가리 나쁜 조폭 새끼들이랑 일 안 하려고 한 건데.”

“죄송합니다.”

“빨리 처리해! 너희들 잘하는 거 있잖아 협박하고 부수고. 너희 그러려고 고용한 거 아니야!”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임대 기간도 많이 남아 있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돈으로 회유하려 해도 김경진이 나타나서 그들을 설득하는 통에 쉽지가 않다.

법적으로도 손을 쓸 수 없는 처지인지라 강압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애들 모아!”

조직의 보스는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 * *

당황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에게 내 신분을 입증하는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김경진이라는 젊은 청년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여기…. 는 무슨 일로?”

“궁금해서요.”

“뭐가요? 왜요! 동대문시장 나부랭이가 한국 대표가 되니까. 배가 아팠습니까?”

많은 뜻이 담겨있는 내 함축적인 발언에 그가 발끈했다.

마치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자신의 잘못이 저 분노로 가려질 거라 믿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누가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없다면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거겠죠?”

“…….”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

주변 가게에 상인 무리가 아이즈의 매장에 들어섰다.

“뭐야! 왜 잡놈이 여기에 온 거야. 당장 안 꺼져?”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웃어?!”

“그럼 이 상황이 웃기지 않습니까?”

“뭐라고!”

모두가 내 말에 발끈하며 김경진을 바라봤다.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와 말을 이었다.

“원하는 게 뭐예요? 회계자료를 보여달라면 보여줄 테니까. 괜한 소란피우지 말고 나가시죠.”

“그 자료 본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어차피 현금은 간이영수증으로 대체하고 데이터를 조작했을 텐데 카드단말기는 전체가 공유하는 거 같고 제 말이 틀렸나요?”

내 말에 김경진이 흠칫 놀라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협회에 알린다면 금방 밝혀질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랑 대화하실래요? 아니면 어려운 길을 가실래요?”

“…….”

김경진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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