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골라 담기식으로 판매할 겁니다.”
“골라 담기요?”
“네, 10개의 가방 모두 출시하고 홈페이지와 매장에서 고른 가방 4개를 세트로 판매할 생각이에요. 개수마다 할인율을 달리할 겁니다. 할인율을 이용해 네 가지의 가방을 살 수밖에없게 할 겁니다.”
개별 판매도 이루어지겠지만 세트 구매를 유도할 것이다.
그럼 판매량이 엄청나게 증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박……. 어떻게 그런 생각을…. MD부서 자리 비워둘게요. 와서 일 좀 하시죠.”
“……아 마케팅은 아이디어만 드린 겁니다. 광고랑 화보, 상품 마케팅은 디렉터님 몫이죠.”
“농담이에요. 아이디어가 빛나서 장난쳐봤어요.”
“아…. 하여튼 가방 보관함에도 신경을 써야 할 거예요. 그건 다시 디자인해서 보여드리는 거로 할게요.”
“네. 기대할게요.”
그녀는 벌써 설레발을 치며 역대 최고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녀의 반응을 보면 겸손한 태도로 일관한 나도 설레기는 마찬가지.
가격만 적정선에 맞출 수 있다면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할 것이다.
“아 그리고.”
“네?”
“일단 국내 디자인 특허 출원 좀 해주세요.”
“최종회의도 안 거쳤는데 괜찮겠어요?”
“그렇기는 한데….”
그녀의 말이 옳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부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부분과 매출과 전략, 가방제작에 대한 의견을 미리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럼 다니엘이랑 김상진 팀장 불러주세요. 간단하게 회의 진행하죠.”
“네, 알겠습니다.”
네트 백과 스카치 백이 샤네르의 신상으로 둔갑해 출시되는 걸 보며 심한 불쾌감이 들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두 번은 안 당한다.”
.
.
.
“갑자기 웬 회의?”
“아 사장님 가방디자인 특허 신청권 때문에 긴급하게 모았어요.”
“벌써 가방디자인 다 만든 거야? 근데 왜 나는 모르고 있던 거지? 내가 가방 제작자인데.”
“그래서 지금 불렀잖아요. 삐딱선 타실 거예요?”
“아, 그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러지.”
내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다니엘이 뚱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넌 또 표정이 왜 그러냐?”
“너 가방디자인 만들었으면 냉큼 제작실에 들고 와야지 치사하게 신 디렉터랑 류 디자이너부터 보여주냐.”
“방금 만들었거든 삐지기는.”
“됐어. 치사한 사장 놈.”
다니엘은 가방 제작 담당인 자신이 디자인을 아직 못 봤다는 거에 뽀로통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다니엘의 어깨를 살짝 주무르며 스크린 앞으로 나갔다.
“아직 파일화 하지 못해서 스케치 초안으로 회의 진행하겠습니다.”
“네.”
“보시는 초안은 총 10가지입니다.”
10가지라는 말에 다니엘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롭게 변했다.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인 그때 그가 손을 들고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디자인은 훌륭해. 단순한 디자인을 아주 훌륭하게 표현해서 명품에 걸맞게 만들었어. 근데 다 출시하는 건 아니지?”
“맞아.”
“다 출시한다고?”
“그래.”
“사장. 지금 패션위크까지 한 달 하고 조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야. 시간도 그렇고 품…….”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결정사항이 그래. 네가 좀 고생해줘.”
“…….”
그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대충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벌써 결정된 사항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좋은 마케팅은 떠오르지 않기에 밀어붙이고 싶었다.
“하여튼 다니엘은 조금 이따 나랑 따로 이야기하자. 그럼 이야기 이어갈게요. 10가지 가방을 골라 담기 방식으로 마케팅할 겁니다. 백 상자를 제작해 4개를 골라 담아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백 상자는 4개를 구매한 고객에게만 지급할 겁니다.
“그럼 금액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최종회의 때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는 가방의 가치와 판매실적이 나올지에 대한 회의니까요.”
“네.”
회의는 짧게 진행되었다.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호평이 이어졌고 카피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 새로운 디자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모두 가방이 출시되고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룰지 기대하는 눈치들이다.
“그럼 회의는 이 정도로 하고 디자인 특허 출허에 반대하는 분이 없으면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네.”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고 모두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다니엘과 함께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부탁 좀 할게. 고생 좀 해줘라.”
“아니 고생은 할 수 있는데. 문제가 그게 아니잖아. 너 이거 욕심이야.”
그에게 정곡을 찔리고 말았다.
욕심이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까 회의 망칠까 봐. 깊게 이야기를 안 했지만. 종류가 한 번에 늘어나면 아무리 장인들이라 해도 불량률 상승할 거야. 그 뒷감당은 누가 해? 네가 해?”
가방마다 모양이 다 다르듯 활용하는 용도도 조금씩 다르게 디자인되었다.
형태는 비슷하나 전혀 다른 디자인이기에 제작방법이 모두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말처럼 분명 불량이 발생할 거다.
하지만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내부 디자인도 너무 복잡해. 만일이지만 주문량이 올라가면 이건 장인분들 혹사시키는 일이야!”
“그건 생각해둔 방향이 있어.”
“뭐?!”
“가방이 모두 가죽일 필요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S/S 시즌을 저격한 가방이야. 그렇다는 건 너무 무거워서는 안 돼. 내부에 가죽을 덧대자면 무게는 0.3배 늘어나 피할 아무리 얇게 한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가격도 비싸지지.”
“그래서?”
“내부는 모두 고급원단으로 제작할 생각이야. 제작은 안산에서 할거고.”
“그렇다는 말이지.”
“네가 고생하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부탁한다.”
“하…. 그럼 이번에 내 의견 따라. 네 말대로 가기는 하는데 가방 출시날짜 2주 미뤄줘 교육 일정 늘리게. 최종안도 빨리 완성하고.”
“오케이 그럼 너도 찬성하는 거다”
“그래. 나는 이제 내려가련다. 아버지 혼자 고생하시겠다.”
“미안하다.”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가 계속 내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다.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 모두 신 디렉터 모니터 앞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나와 함께 밥을 먹은 다니엘도 궁금했는지 나를 뒤로한 채 그곳으로 뛰어갔다.
“뭔데? 다들 뭐 하는데 모여있는데.”
“아 다니엘 씨 이거 보세요.”
“뭘? 헉…….”
나도 궁금증이 발동해.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뭔데 그래?”
“YK어패럴 송원일 사장. 구속됐다는데요. 죄목이 불법 자금 세탁이랑 성매매, 불법 촬영이라네요.”
‘드디어.’
박창식이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지혜는 모니터 앞에서 수십 개의 기사를 훑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송영태 사장 3심 연기되었네요. 사건이 어마어마하네. 정치인, 언론인, 재벌 완전 싹 다 엮여있어요.”
“제가 한번 볼게요.”
“네.”
내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자.
수십 개의 기사 제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 BB엔터테이먼트 사장 송영태 살인교사 및 불법 자금세탁, 성매매 알선으로 가중처벌 불가피.
― [형사합의부] 공모혐의에 대한 추가 기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재판을 연기하기로 결정!
― 아이돌 불법 성매매 및 스폰 숨은 그들의 정체는.
― 중앙지검 박창식 검사 스폰서 명단 가지고 있다고 공표.
― YK어패럴 송원일 사장 구속.
― 스폰서 명단 정치인 다수 확인
― H기업 차남 마약 혐의 수사 진행.
― 칼을 빼든 검찰.
― PD 노트 YK의 자회사는 왜? 자금세탁에 사용되었는가. 방영 예정.
제목만 봐도 매우 자극적인 기사들이다.
박창식은 내가 내어준 자료를 이용해.
정말 저들을 짓뭉갤 만한 자료와 증인을 찾은 듯했다.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 몰게 한 이번 사건.
정말 밤낮없이 사건을 파헤쳤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조만간 삼겹살에 소주 한잔할 수 있겠네.’
잠시 생각에 잠기는 그때.
휴대전화에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 * *
YK 물산.
최상층 직무실 그곳에 송원일 사장의 아버지 송태원 회장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그는 연결된 언론과 송원일과 YK의 관계를 최대한 차단했다.
“개자식! 내가 조용히 지내라고 했거늘!”
“원일이 저놈이 조용히 지낼 그릇이야.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뭘 어째 법무팀이 움직였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뭐 대충 일이 년 살고 나오면 미국지사 내 보내지 뭐.”
“그럼 원일이가 맡고 있던 YK어패럴은 어쩌려고 꽤 배가 불러오고 있는 계열사 아니야?”
“그게 문제인데……. 전문 경영인이나 애들한테 맡겨야 하지 않겠나.”
“그럴 거 있어. 우리 경희는 어때? 그래도 브랜드 경력도 있고 모르는 놈들보다야. 훨씬 낫지.”
“흠……. 경희면 나쁘지 않지. 그래 경희 너는 할 생각은 있고?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또 다른 한 명.
브랜드 Han 총괄 출신의 김경희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저야 좋죠. 브랜드야 저보다 아는 사람도 드무니까요. 그럼 저 시켜주시는 거예요. 아저씨.”
“오호. 그래 경희 정도면 내가 맡겨볼 만하지. 어려운 것도 없으니까. 재미 삼아 맡아 봐.”
“이번 주 안에 긴급주주총회 열어서 대표이사 바꾸는 거야 일도 아니니까. 기다리고 있어 연락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오냐.”
송태원 회장은 흐릿한 웃음으로 그녀에게 답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김 회장에게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나랑 술이나 한잔하지. 오늘은 술 없이는 안 되겠어.”
“경희야 먼저 가거라. 아비는 여기서 좀 쉬다 갈 테니.”
최종 디자인 회의 1.
* * *
* * *
사무실을 빠져나오니 가을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왔다.
“벌써 가을이 온 거 같네.”
나는 빠르게 회사 인근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하니.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여기야!”
“뉴스에서 검사님 얼굴 계속 나오시던데 바쁘지 않아요. 뭐하러 이곳까지 오셨어요?”
“이제 시작인데 뭘 잠시 시간 내서 나왔어. 나도 밥도 먹고 해야지.”
“그럼 식사를 하시지.”
“그냥 잠시 나온 거야. 무슨 잔말이 이리 많아. 너는 욕을 번다 벌어.”
“잔소리 사절입니다.”
“하여튼 너한테 할 말 있어서 왔으니까 앉아.”
“네?! 무슨 할 말이요?”
“그게….”
박창식은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더니 무거운 입을 열며 말을 이었다.
“고맙다.”
“뭘 또 새삼스럽게.”
“아니 정말 고마워 내가 꼭 이 은혜 안 잊을게 처음에 무례했던 것도 오늘에서야 사과한다. 차진혁 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이렇게까지 못 왔을 거다. 고마워.”
나에게 따뜻한 말을 남기고는 박창식은 아련한 눈으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슬픔과 사랑이 가득 뒤섞여 있었다.
“동생분은 저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검사님은 이제 죄책감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가세요.”
“그래야지. 이번 일이 끝나면 검사복 벗어야 할지도 몰라. 근데 정말 후련하다. 꽉 막혀서 답답했던 가슴이 이제 좀 뚫리는 거 같아.”
“검사 그만두시려고요?”
“이렇게 일을 저질렀는데. 거기 있겠어. 동료 검사들 사이에서는 거의 망나니야 잘못하다가는 검사장도 목이 날아갈 판이거든 이 일 끝나면 동네 변호사나 해야지.”
“동네 변호사라. 할 거 없으면 우리 회사 고문변호사나 하십시오. 제가 고용해 드릴 테니. 내년이면 해외 진출 건 때문에 변호사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변호사 개원하자마자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특혜를 내가 또 받네. 일단 이 일이 언제 끝날지 몰라. 이 새끼들 3심까지 갈 게 뻔하거든.”
“하여튼 이제 들어가시죠. 검사님도 바쁘실 텐데 시간 꽤 많이 지났어요.”
“그래야지. 자리 너무 비우면 안 되니까. 다음에 밥 한 끼 하자고 내가 건하게 살 테니까.”
“네 비싼 거로 골라 두겠습니다.”
나와 박창식이 웃으면서 벤치에서 일어나는 그때.
우리 주위를 서성이는 할머니 한 명을 발견했다.
길을 잃었는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고 주위에 사람들은 할머니의 물음에 손만 흔들 뿐이었다.
나는 보다 못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뭐 찾으세요?”
“아…. 집을 찾고 있는데 이 근처가 아닌가 봐요.”
그때 옆에 있던 박창식은 시계를 바라보더니.
“시간이 늦었네. 난 가봐야 할 거 같은데. 할머니 근처 파출소에 모셔다드려 그럼 다 찾아주니까. 다음에 보자고.”
“네.”
박창식은 할머니에게 고개 숙이고는 공원을 빠져나갔다.
“할머니 혹시 주소 적어놓은 거 있으세요?”
“아. 이거.”
나는 할머니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할머니 여기 반대편 동네인 거 같아요. 한 20분 정도 걸어가셔야 할 겁니다.”
우리가 위치한 곳은 가로수길 인근의 공원이다.
하지만 종이에 적힌 주소는 몇 블록을 넘어가야지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어짜누. 터미널에서 적힌 대로만 타고 오면 된다고 해서 왔는데.”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주소만 보고 찾아가기란 힘들 텐데.
나는 남은 시간을 그녀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흠……. 그럼 제가 모셔다드려도 될까요?”
“총각이? 미안해서 어짜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