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200)

“책이나 사서 돌아가자.”

그녀는 회사에 비치할 패션잡지와 디자인 북 여러 권을 구매해 아리raM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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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무실 안쪽으로 문을 열자.

볼일을 보고 온 신 디렉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 오나 봐요. 갔던 일은 잘 풀렸어요?”

“네 뭐. 사장님은 어디 가시려고요.”

“옥상이요 가방디자인이 잘 안 떠오르네요. 바람 좀 쐬려고요.”

“그러세요. 아직 급한 거 아니니 쉬엄쉬엄하세요.”

“근데 들고 있는 건 뭐예요?”

“아 잡지랑 직원들 보라고 디자인 북들 좀 사 왔어요. 보실래요?”

내 오감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저곳에 들어있다.

나는 옥상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가 사 온 잡지와 책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하나의 잡지에서 검붉은 빛이 피어난 걸 확인했다.

“잠시만요.”

나는 검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잡지를 펼쳐 원인을 확인했다.

‘이것들이 진짜! 이걸 어떻게….’

현재 대중 시장 가을 시즌을 눈앞에 둔 상태다.

내가 들고 있는 잡지에는 샤네르의 가을 시즌 특별판 가방 런칭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었다.

“샤네르에서 새로운 가방 출시했네요. 와 이쁘다. 역시 샤네르는.”

“…….”

“사장님?”

나는 분노에 차올랐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상태.

“이….”

“사장님?”

“아, 죄송해요. 좀 쉬다 올게요.”

나는 신지혜의 눈을 피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내가 만든 디자인을 버젓이 샤네르의 신제품으로 출시해! 아악!”

이제야 검붉은 빛이 왜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만약 빛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명품 디자인을 카피한 몰상식한 브랜드가 될 뻔했다.

샤네르의 새로운 가방은 내가 디자인한 네트 백과 스카치 백.

현재로서는 어느 곳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옥상 벤치에 앉아.

자세히 잡지를 읽어나갔다.

“아주 청산유수네. 샤네르 디자인팀에서 심혈을기울여?! 그러고 보니…. 설마.”

문득 네트 백과 스카치 백을 디자인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총괄님 어제 책상 위에 놓인 디자인 너무 좋던데. 발매하실 거예요?”

“No! 그건 개인적으로 쓸려고 만든 거야. 비밀로 해줘.”

“아…. 그래요. 너무 좋던데. 비밀로 해드릴 테니까.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뭐. 초안이니 보여주지.”

“감사합니다.”

아반카.

샤네르의 신입 디자이너에게 네트 백과 스카치 백 초안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때가 언젠데. 하….”

벌써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근데 그걸 기억하고 샤네르의 새로운 가방으로 런칭을 하다니.

내 잘못도 크지만 내가 죽었다는 이유로 내 디자인이 타인에게 도용되다니.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 사항이다.

단순히 내 걸 카피한 거보다 몇 배는 더한 불쾌감이 들었다.

“내가 죽었으니 내 디자인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네. 너는 내가 언젠가는 복수한다!”

나는 옥상에서 내려가 누가 보기 전에 서랍 속에 넣어둔 네트 백과 스카치 백 초안을 세절기에 집어넣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하…. 일이 많아져 버렸네.”

내 브랜드를 위해 만들어둔 디자인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아리raM과 S/S 시즌에는 동떨어진 디자인들뿐이다.

내가 디자인을 세절기에 집어넣고 생각에 잠겨있는 그때.

류미리가 사무실로 들어와.

밝은 미소로 자신의 손에 든 걸 내게 내밀었다.

“사장님. 이거 보세요.”

“네?”

“조카 주려고 샀는데 이쁘지 않아요?”

“이쁘네요.”

그녀가 내게 보여준 가방은 동그란 유아용 탬버린 백이었다.

15㎝가 채 되어 보이지 않는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이다.

“조카가 있었나 봐요?”

“친조카는 아니고 대학동문 중에 결혼한 애가 있거든요. 너무 귀여워요. 사진 한번 보실래요?”

“네. 뭐.”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사진첩을 뒤지고 있었다.

잠시 후 휴대전화 액정을 내밀며 친구의 아기를 보여주었다.

정말 똘똘한 눈에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아기였다.

그나마 화나 있던 나를 이 아이가 달래주는 거 같았다.

“정말 이쁘네요.”

“사장님도 이제 장가가실 나이 됐나 봐요. 아기가 이뻐 보이면 빨리 가야 한대요. 저도 아기 정말 좋아하는데.”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거야.’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성격이 이렇게나 바뀔 수 있나?! 전에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데.’

왠지 내 느낌이지만 류미리가 점점 장하나의 성격을 닮아가는 거 같았다.

돌발적인 멘트나 나를 고민스럽게 하는 질문까지.

과외라도 받나 싶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둘의 관계를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단체채팅방이 문제인가.’

“아 그러세요. 어서 남자친구부터 만드세요. 아리raM은 직원들의 연애를 장려합니다.”

“……아 네.”

류미리는 얼굴을 붉히며 뒤돌아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나에게 토라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때 아기 사진이 떠오르며 내 머릿속에 스파크가 터져 나왔다.

“미리 씨 잠시만요. 아기 사진 한 번만 더 보여주세요.”

“왜요?”

“아니 뭔가 떠올랐거든요.”

나는 그녀가 내미는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내가 지금 가장 필요한 아이디어를.

“이거다.”

“뭐가요? 아기밖에 없는데.”

아이가 가지고 노는 유아용 도형 맞추기 장난감.

그 도형의 모양을 나는 유심히 바라봤다.

육각형, 세모, 네모, 별, 십자가까지 여러 가지 형태가 보였다.

“이거요. 도형 맞추기 장난감.”

“그게 왜요?”

“새로운 가방디자인으로 쓰면 좋을 거 같네요.”

“이걸로요?”

“네.”

나는 자리로 돌아가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디자인을 미친 듯이 그려나갔다.

그런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류미리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진짜 천재가 있긴 하네요. 소재 하나로…. 대박!”

내가 구상한 가방디자인은 둥근 별과 육각형 그리고 직사각형과 원형 4가지였다.

둥근 별 가방에는 포인트로 모서리 부위를 은장식 테두리를 만들었고 나전으로 반짝이는 별은 연상시키도록 디자인했다.

고급스러우며 빛나는 영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육각형 모형에는 한 조각의 포인트를 주어 특별함을 강조했다.

“이런 식이면 여러 방향으로 마케팅할 수 있겠는데.”

내가 4개의 가방 모두를 그려 책상 위에 내려놓는 순간.

밝은 빛이 사무실 가득 차오를 정도로 뿜어져 나왔다.

“됐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밝은 빛은 내 두 눈을 집어삼켰다.

눈을 뜨는 순간.

푸른 바다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풍경이 내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거 같았다.

“직원들이랑 바다나 한번 와야겠네.”

너무 여유가 없이 달려왔기에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때 백사장에서 여성들이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비키니와 원피스, 레쉬 가드를 가볍게 입고 있었다.

“내가 디자인한 가방이야.”

내 눈에 비치는 해변의 미녀들 모두가 하나같이 내 가방을 메고 다녔다.

내가 생각했던 디자인보다 훨씬 발전되어 보이는 디자인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형태 또한 4가지 형태보다 훨씬 더 많았다.

“20㎝ 이하의 미니 백이네.”

나는 30㎝ 이상으로 하나의 큰 가방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가방디자인을 보고는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나쁘지 않겠어.”

나는 한참 동안 해변에서 그녀들의 가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성 가방에 많은 물품을 넣는다는 생각을 버리게 해주었다.

모두 휴대전화와 립스틱 파우더 정도의 작은 소품들만 가볍게 넣고 다녔다.

“언니 너무 편하지 않아.”

“맞아. 이거 만든 회사 대박인 거 같아.”

“저도 그래요. 작아서 너무 편해요. 여름이라 가방 들고 다니기도 힘든데. 작아서 편하기도 하고.”

“맞아.”

해변 그녀들의 대화를 들을수록 새로운 영감이 끊이지 않고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 눈앞에서 해변과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미니 백!”

나는 다시 스케치북을 잡아 들고 미친 듯이 영상 속에서 본 디자인을 그려나갔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도형을 생각해 내며 말이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그려나가니.

어느덧 10가지 이상의 도형 백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그때 자신의 자리에서 업무를 보던 류미리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 책상을 다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왜 왔다 갔다 해요. 디자인 수정 다 했어요?”

“아니 궁금해서 그러죠. 이제 다 그리신 거예요?”

“최종안은 아니고 초안입니다. 10가지 정도 그렸습니다.”

“제가 방금 잘못 들은 거죠?”

“무슨?”

“그럼 이 짧은 시간에 10가지나 만들었다고요.”

“네.”

류미리는 나를 보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며 장난스레 놀랍다는 제스처를 하고 있었다.

신지혜도 우리 둘을 보며 무슨 일이 있냐며 달려왔다.

“신 디렉터님. 사장님이 천재긴 천재인가 봐요. 2시간 만에 가방디자인 아이디어 얻었다면서 방금 10가지 가방디자인 만들었답니다.”

“응?! 정말이에요?”

신지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아직 초안이에요. 보여줄 정도는 아닌데.”

“아니 온리 원 백도 점심 먹고 오니 다 만들어두시고 이번에도….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뭘 또 정체까지.”

“그럼 구경이나 시켜주세요.”

“아직 상품화시킬 수준이 아닌데.”

“고려해서 볼게요. 빨리 보여주세요.”

“여기요.”

내가 내민 디자인 시안을 보는 신지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미리 씨도 같이 봐요. 나는 손 떨려서.”

“네?! 손이 왜?”

“보면 알아요.”

S/S 가방디자인 3.

* * *

가방디자인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그런 눈빛이다.

“진짜 대박.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도 있어 보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이뻐요.”

둘은 한 장 한 장 가방 스케치를 넘기며 끊임없이 감탄사를 뱉어냈다.

“하트 백…. 이건 진짜 대박인데. 메인으로 올려야겠어요.”

“저는 별 모양 아니 육각형 모양 너무 이쁜데요.”

그때 의문이 생긴 신지혜가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근데 가방디자인 10개 다 출시할 생각은 아니죠? 이거 두고두고 출시해도 될 거 같은데. 다 내보내기에는 아까워요.”

그녀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벌써 답은 나와 있었다.

디자인을 만들 때부터 아니 영상을 보고 결정했다.

“열 가지 모두 출시할 겁니다.”

“네?! 근데 비슷한 형식의 다른 디자인이라 시즌마다 시리즈로 출시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색다른 마케팅 전략이 있거든요.”

“무슨?”

최대한 올해가 끝나기 전.

큰 폭의 매출 상승 그래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이유에 나는 명품에서 박리다매 형식의 마케팅을 선택했다.

그녀는 자신에 찬 내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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