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200)

“네,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리raM의 색을 빼고 대한민국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로 인해 가슴 포켓과 소매에 컬러를 더했다.

“포인트도 잘 표현되었네요.”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백색 태극기가 그려진 행커치프를 브레스트 포켓[가슴 포켓]에 넣어 포인트를 주었고.

소매 쪽 라인에 태극과 건, 곤, 이, 감을 연상시키는 빨강, 파랑, 검은색을 포인트로 넣어 두었다.

“잘 나왔네요. 디자인은 이대로 만들면 되겠어요. 패브릭(Fabric) 테스트랑 가먼트(Garment) 테스트 결과는 본사로 보내주세요. 거기서 확인할게요.”

“네. 그럴게요.”

공장에서 의류가 생산되면 출고 전.

여러 가지 테스트가 이루어지며 상품성을 높인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두 가지를 고른다면 패브릭과 가먼트 테스트다.

패브릭은 원단의 이염을 파악하고 수축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테스트하는 것이고.

가먼트는 빨았을 때의 수축이 일어나는지 뜯김은 발생하는지에 대해 테스트한다.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필요한 테스트라 볼 수 있다.

* * *

8월 15일 광복절.

나는 아리raM 직원들과 이른 시간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우리는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에게 전달할 의상을 정비하고 할머니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을 정리하는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이어진 정리가 끝날 때쯤.

청와대 경호 1팀장 유해수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이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십시오. 대통령님이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아니요. 충분합니다. 다과나 어르신들이 드실 간식도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제가 준비했을 텐데요.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다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죠.”

우리가 대화를 이어가던 중.

나를 향해 반갑게 다가오는 노신사를 발견했다.

“팀장님. 잠시만요.”

“저도 다시 일하러 가야 합니다. 볼일 보십시오.”

유해수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할아버지.”

“아이고 오랜만이여.”

“그러게요. 제가 너무 바빠서 한번 찾아뵙는다는 게 그러지도 못했네요.”

“바쁜데 뭐하러 가끔 자네 아버지한테 소식 듣고 있었어. 이래 보니 좋네! 좋아.”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반가움을 표시하셨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저희가 준비한 정장으로 갈아입으셔야죠.”

“그렇지. 벌써 설레는구먼. 이런 날도 다 있고 참.”

그의 환한 미소에 며칠 동안 쌓인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우리가 큰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손수레 할아버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하고만 이걸 다 준비한 거야?”

“네.”

그곳에는 수천 벌의 정장이 공간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오늘 오시는 분들의 의상과 협회에 전달할 의상까지 모두 이곳에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류미리가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오랜만이죠. 할아버지.”

“아이고 이쁜 처자 아냐. 다들 오랜만에 얼굴 보니 반갑구먼.”

“할아버지 잠시만요. 제가 정장 찾아드릴게요.”

류미리는 명단을 확인하며 손수레 할아버지의 정장을 가지고 나타났다.

“여기 있어요. 한번 입어 보시겠어요. 탈의실은 저기에 있어요.”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 할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뭉클한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누가 툭 건들면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왜소하고 처져 있던 어깨가 넓게 변했고 약간 휘어 보이던 등도 꼿꼿하게 펴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넥타이를 고르게 잡아주고 재킷의 매무새를 잡아주었다.

“어떠세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아니. 아주 편한데. 내 평생 이렇게 편한 정장은 또 처음 입어 보네.”

“다행이네요. 치수도 딱 맞고 잘 어울리세요. 이제 행사장으로 이동하시면 될 거 같아요.”

“그래 고마우이. 조금 있다가 다시 보자고.”

“네.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아리raM의 직원들은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의 옷을 전달하고 매무새를 잡아주는 등.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던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예요?”

“저도 잘.”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나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

행사장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출입은 관리하는 요원들과 청와대 경호팀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나도 독립운동가 후손이란 말이야! 들여보내 달라고!”

“어르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참석자 명단에도 없고, 확인해보니까. 후손도 아니신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최한결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란 말이야!”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커다란 키에 백발의 노신사가 지팡이를 짚은 상태로 출입 요원들과 대치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아 저분이 계속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들어가야 한다고 난리를 부리시네요.”

“아 그래요.”

“매해 저런 분들 많으세요. 잘못 알고 찾아오셔서 우기는 분도 계시고 친일파인데 독립운동가 자손이라고 오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러니 신경을 안 쓰셔도 됩니다.”

“네.”

내가 출입 관리 요원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몸을 돌리려는 그때.

“어…….”

입구 쪽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독립운동가 후손이라 말씀하시던 어르신의 낡은, 정장에서 은은한 밝은 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빛이….”

순간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어르신의 정장에서부터 발한 빛이 하늘 위로 강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찬란한 빛이었다.

.

.

.

내가 감았던 눈을 뜨니.

한국이 아닌 서양식 구조의 건물이 빼곡히 나타났다.

주위는 온통 백인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고 한국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야?”

내가 주위를 살피던 와중에 가까운 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

영웅들의 후손 2.

* * *

주위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고 백인들은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그때 내 눈에 낯익은 인물이 둘이나 나타났다.

한 명은 비단옷을 건네받았던 청년이었고 한 명은 손수레 할아버지의 증조부셨다.

“이야기가 이어진다.”

침선장과 하문희의 사건처럼 동떨어져 있던 사건이 하나가 되어 내 눈에 나타난 것이다.

“거기 서라 조센징 놈들!”

“죽여버려!”

탕! 탕!

무슨 이유에서일까?

둘은 사복을 입은 일본인에게 쫓기고 있었다.

최대한 몸을 숨기며 도망치고 있지만, 위험해 보이는 상황의 연속이다.

“검사님 이쪽으로 피하시죠.”

손수레 할아버지는 젊은 청년을 깍듯이 모시며 골목 어귀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미로 같은 골목을 도망치던 그들 앞에 막다른 길이 막아섰다.

“젠장! 검사님 제가 저놈들 시선을 분산시킬 테니 반대편으로 도망치십시오.”

“혼자서는 갈 수 없소. 함께 갑시다.”

“총알도 이제 없습니다. 제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 어서!”

할아버지의 증조부는 검사라 호칭하는 자의 눈빛을 읽고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절대 동료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눈빛이었기에.

“하 알겠습니다. 그 대신 제 앞으로 달려나가십시오.”

“알겠네.”

총알이 쏟아지는 골목을 빠져나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검사님 제가 쓰러져도 뒤돌아보지 마시고 달리셔야 합니다.”

“…….”

할아버지의 증조부는 총탄이 쏟아지는 막다른 골목에서 일본인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반대편 골목으로 몸을 틀어 달려나갔다.

그가 일본인의 눈을 돌리는 사이 이 검사도 다른 골목으로 몸을 던졌다.

둘은 한참을 뛰어 다시 한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깨에서 피가….”

“괜찮습니다. 계속 가시지요.”

둘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저들의 눈을 피해 어디론가 향하는 듯 보였다.

“역에 다 와 갑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골목을 꺾어 들어가는 그때.

눈앞에 일본인이 나타났다.

“젠장! 선생님. 이제는 정말 혼자서라도 역으로 도망치셔야 합니다.”

“제가 어찌 혼자 도망갈 수 있단 말이오.”

“선생님은 큰일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서 가십시오.”

할아버지의 증조부는 이 검사의 등을 강제로 떠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는 일본인을 향해 달려갔다.

땅!

순간 총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졌다.

총소리에 이 검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쓰러진 사람은 아까 자신을 쫓던 일본인이었다.

“대체 누가?”

그때 쓰러진 일본인 뒤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누구시오!”

“검사님. 최한결이라 합니다.”

자신을 최한결이라 알린 사내.

그가 일본인에게 단 한 발의 총알로 죽음을 선사했다.

“선생님 이쪽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덕분에 살았소. 김 형 어서 갑시다.”

“네 검사님.”

셋은 숨이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지만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한참을 달린 후에야 목적지인 기차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때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인물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 검사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이 선생님도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둘은 반가움에 손을 부여잡고 인사했다.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한결이 덕분이오. 저놈이 총소리를 듣고 안 달려갔으면 큰일 치를뻔했소.”

“그랬습니까. 최 형, 감사합니다.”

청년은 최한결에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인데요. 괘념치 마십시오.”

“어서 들어갑시다. 곧 기차가 떠날 것이오.”

허름한 차림의 남자 넷은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듯 보였다.

“어디로 가는 거야?”

그들 모두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기차역으로 아까 본 일본인 한 명과 또 다른 셋이 역 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

“……이러다 다 죽겠는데.”

내 생각처럼 그들이 역 안에 들어서는 순간.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탕탕탕!

탕탕!

역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선생님. 안 되겠습니다. 세 분이라도 어서 기차에 올라타십시오. 제가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한결아!”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 아닙니까. 선생님,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아니다. 내가 더 영광이었다. 네 노력을 헛되이 만들지 않을 것이다. 꼭 살아서 보자꾸나.”

“네. 어서 가십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셋은 최대한 빠르게 기차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아직도 총소리가 들립니다. 최 선생이 아직도 싸우고 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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