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200)

“기대하겠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신 디렉터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신 디렉터님 파이널 인터내셔널인데요.”

“네, 무슨 일로?”

“……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말이죠.”

신 디렉터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 져갔다.

“그럼 언제쯤 받을 수 있는데요.”

“저희가 물량을 끌어모아도 이 주는 더 걸릴 거 같습니다. 이태리 쪽 상황이 좋지 않은가 봅니다.”

“아니. 갑자기 이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요.”

“저희도 너무 급작스럽게 연락받았어요. 현지 직원이 오늘 물건 받아서 항공편으로 보낸다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공장 걸어 잠그고 파업 시작했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 일단 알겠습니다. 다른 상황 생기면 다시 연락해주세요.”

나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들어 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하고있는 신지혜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이에요?”

“큰일 났어요. 밥 먹을 때가 아니에요.”

“네?!”

“지금 이탈리아 원단공장 파업 시작했다네요. 직원들이 공장 안에서 걸어 잠그고 물량 반출도 안 시키나 봐요.”

“그럼 언제쯤 재가동하고 물량 보내줄 수 있답니까?”

“재가동은 기약이 없고 다른 데의 것 가져와서 물량 채워주는 데만 2주는 더 걸릴 거 같다는데요.”

“2주?!”

내일부터 만들어도 빠듯하다.

원단이 2주 뒤에 들어온다는 건.

우리보고 생산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시간은 3주.

그동안 2천 벌의 수제 정장을 만들어야 했다.

“식사 나왔습니다.”

“하……. 저는 지금 먹으면 체할 거 같아요.”

입맛이 없다며 신지혜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조금이라도 드세요. 오늘 아무것도 못 드셨잖아요.”

“네. 하…. 어쩌지.”

“뭘 어째요. 국내 원단 구매하면 되죠.”

“국내도 그렇게 많은 양은 예약해야 해요.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겁니다.”

나는 갈비를 뜯으며 말을 이었다.

“하……. 일주일이라 대책을 세워야겠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MVP랑 사성 모직 있지 않아요?”

“네, 이쪽 공단 안에 있다고는 들었어요.”

그때 갈비를 손으로 뜯고 있던 류미리가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우리 공장 옆옆이 MVP고 뒤쪽이 사성 모직인데.”

“정말?!”

“저 사성 모직 사장님 자주 만나요. 여기 단골이시거든요.”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분 알아요?”

“네, 저랑 베프 먹었는데요. 갈비 동맹이라고 자주 만나서 갈비 뜯고 있어요.”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류미리가 이곳에 온 지가 2주 정도인데 대기업 사성 모직의 사장과 친해졌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그분 만날 수 있어요?”

“네. 잠시만요.”

류미리는 갈비를 뜯고 있던 손을 물티슈로 닦고는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아 네. 저 지금 갈비 뜯고 있는데요.”

순간 류미리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어내더니.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아 우리 사장님이랑 먹고 있거든요. 드시고 싶으면 나와서 드시면 되지.”

류미리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뭐래요?”

“같이 먹을 사람 없다고 오신대요. 천천히 먹고 있으래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대기업 사성 모직 사장이 왜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거야.

나와 신 디렉터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류미리의 태연한 태도에 놀라고 말았다.

“미리 씨 원래 이런 성격이에요. 예전에 신설동 공방 왔을 때는 엄청나게 낯가리고 그랬잖아요.”

“그때는 주눅이 들어 있기도 했고 원래 성격도 그랬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아리raM에서 일하고 나서 성격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거 같아요. 제가 봤을 때 원래 제 성격이 이런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기가 센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아가던 그녀였다.

침선장 박주선, 자수장 한명숙만 봐도 류미리가 기를 못 펴고 살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거야.’

아리raM에 와서는 나와 신 디렉터 다니엘 모두가 그녀를 존중해 주었다.

매번 새로운 한복디자인과 뛰어난 창의력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았고 모두 그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 류미리의 기가 살아난 듯 보였다.

‘이렇게 되면 제2의 신지혜가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사장님…. 그 눈빛 뭐죠?”

“아 아니에요.”

“아닌데 내 흉본 거 같은데 지금 눈으로 내 얼굴 뚫어지게 보고 있었는데.”

신지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들키면 잔소리 시작이다. 초긴장하자.’

“진짜 아니에요.”

“뭐 아니면 말고요.”

우리의 대화가 끝나는 시점에 갈비 정식집의 문이 활짝 열렸다.

“류미리. 어딨냐.”

“여기요.”

“배신자 갈빗집 올 때는 연락해주기로 한 거 아니었냐. 나 회사 식판 던지고 나왔다.”

“오늘은 손님이 계시잖아요. 안상호 사장님 체통을 지키세요.”

“체통은 무슨. 너 점점 기어오른다.”

“원래 사장님보다 키 커서 괜찮아요.”

“말 참 아름답게 하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리raM 대표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이야 실물이 훨씬 잘생겼네요. 예전에 패션 나인에서 봤습니다. 사성 모직 사장 안상호올시다. 아 잠시만요. 어머니 갈비 정식 하나 더요.”

그는 주문하고는 류미리 옆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네. 같이 드시면 저희야 좋죠.”

정장 원단 2.

* * *

파이널 인터내셔널 회의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김 팀장과 아래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됐어 앉아.”

“네, 회장님.”

손성호 회장.

이 업계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어려운 시기에 맨손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가전과 가공식품을 한국에 들여와 큰 부를 거머쥔 사람이었다.

“혼내려고 온 거 아니니까 긴장들 풀어. 남자 새끼들이 내가 부른다고 그리 주눅 들어서 쓰겠어!”

그가 말단직원에게 직접 만남을 청한 건 처음일 거다.

김 팀장은 부장의 말을 듣고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부터 생각했다.

‘다행이야. 잘못한 게 아닌가 보네. 근데 왜?’

김 팀장은 상사에서 20년 이상은 구른 늙은 구렁이다.

수백 개의 미팅과 사업을 진행한 덕에 상대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회장이 왜 자신을 따로 만나자고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듣자 하니 광복절 행사에 쓸 정장 원단을 우리한테 맡겼다던데 맞아?”

“네,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보고서가 올라왔으니 안 거지.”

“아…. 현재 저희가 개척한 브랜드인 로로피아나 원단을 구매하기로 계약 완료했습니다. 이틀 뒤면 항공편으로 원단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래…. 흠. 사업성은?”

“아리raM의 이름을 빌려 광복절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언론에 참여 여부를 흘려 이미지 변화와 홍보 효과도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그리고 아리raM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성장이 빠른 회사로 이번 거래 말고 다른 원단 거래도 가능해진다면 큰 수익이 발생할 거로 생각합니다.”

김 팀장에게는 기회였다.

언제 또 손성호 회장과 대면할지 모른다.

‘오늘 점수 좀 따둬야지.’

손성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돈을 벌어다 준다는데 싫어할 회사의 오너가 어디 있겠는가.

김 팀장은 파이널과 아리raM의 상생을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손성호 회장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그거 없던 일로 해.”

그의 한마디에 김 팀장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그게 무슨!”

잘 차려진 밥상을 발로 차버리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회장님 사업성이 좋은 거래입니다. 로로피아나는 고급 원단으로 국내에서 유통이 쉽지 않습니다. 아리raM과 첫 거래만 트면 계속해서 수익이 발생할 겁니다.”

“김 팀장.”

“네.”

“긴말하지 말고 철회시켜. 나는 대답 되묻는 새끼들 경멸하니까.”

우리가 일방적으로 거래를 파기한다면 이 작은 한국 패션 시장에서 안 좋은 이미지만 만들 뿐이다.

“그깟 몇 푼 더 벌자고 다른 큰 사업 놓칠 수는 없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이번 원단 거래를 버려야 다른 사업을 지킨다라.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회장은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남기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팀장님 정말 이 사업 관두실 겁니까? 이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나도 알아. 잠시만 생각 좀 하자.”

“회장님 노망나셨나 왜 저래요?”

“말조심해라.”

“네…….”

김팀장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잘못하다가는 국내 원단 시장에서 파이널의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 뿐이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잠시 보류하자.”

“팀장님!”

“물량은 받아둬. 항공편으로 받아서 물류창고에 적재해두자고.”

“그러다 진짜 사업 엎어지면 그거 다 우리 실적이랑 재고로 쌓일 텐데요. 그럼 부장님이랑 난리 치실 텐데.”

“야 인마. 부장이 높아 회장이 높아. 뭐라고 하면 벌써 비행기는 출발했는데 회장님이 갑자기 거래 취소하라 했다고 하면 되지.”

“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후덕한 미소를 가진 그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안상호는 키는 작았지만 풍겨오는 느낌만큼은 거인이었다.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데 힘이 느껴지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뭘 그리 뚫어지라 쳐다본대.”

“아 죄송합니다.”

“그냥 농담이에요 농담.”

“아…. 네. 말 편하게 하십시오.”

“그래도 되나? 그래도 회사 대표님이신데.”

“네. 편하게 하세요.”

얼핏 봐도 아버지와 동년배거나 더 들어 보이셨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내가 잠시 고민하는 순간.

식사를 마친 류미리가 아리raM의 사정을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전달했다.

“사장님 혹시 120수 이상 소재 울 90 이상 정장 원단 재고 있어요?”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이탈리아 로로피아나 원단을 주문했는데. 이탈리아 공장 파업한다네요. 그래서 지금 저희 정장 제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사성 모직 원단 좀 구매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있기야 한데. 로로피아나 공장이 지금 파업 중이라고? 아닐 걸 거기 파업하면 내가 모를 일이 없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파이널 인터내셔널 현지 직원의 소식을 방금 들었는데.

안상호 사장은 우리의 정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네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그쪽에 우리 직원들도 현지에 나가 있는데 아무 말 없던데. 그런 일 생기면 바로 연락이 와. 그쪽이 파업하면 우리는 판로 열기 딱 좋은 시기라 나름 예민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지혜가 휴대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우리 것 필요해 안 필요해. 빨리 말해 우리도 바빠.”

나는 로로피아나의 원단을 기다릴지.

빠른 시일 내에 사성 모직의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지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망설일 필요가 없겠네.’

“사성 모직의 원단으로 구매하겠습니다.”

“그럼 일단 밥부터 먹고 공장에 같이 들어가자고.”

“근데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미리 씨랑은 어떻게 친해지신 겁니까.”

“아. 언제더라 혼자 밥 먹고 있는데. 그날따라 식당에 남는 자리가 없어서 내 앞에 앉았거든 그날 여사님 세 분도 같이 계셨는데 수다 떨다가 금방 친해졌지 뭐야.”

“수다요……. 알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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