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200)

다음날이 되어 회사로 출근하니.

나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이상했다.

“무슨 일이에요? 다들 왜 이러지.”

그때 신지혜가 일어나더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모든 사무실 직원들이 일어나 나를 향해 소리쳤다.

“최고예요!”

“멋지십니다. 사장님.”

나는 어리둥절해서 모두를 진정시켰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갑자기 왜 이래요?”

내 말에 신지혜가 다가오더니 말을 이었다.

“정원이가 아침에 알려주던데요. 형준 씨 어머니 병원비랑 수술비 사장님이 대신 내주셨다고.”

내가 안정원을 빤히 바라보자 내 눈을 피한다.

‘언제 또 말했데.’

“뭐 그렇게 됐습니다. 우리 식군데 챙겨야죠.”

“오 감동. 진작 말을 하시지 저도 도와드렸을 텐데.”

“괜한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여튼 잘하셨어요.”

“사실 그냥 준 거는 아니에요.”

“네?!”

“스니커즈 디자인 2개에 대한 구매비용이었습니다. 그게 형준 씨한테도 마음 편할 거고요.”

“역시 사장님.”

“세상에 공짜는 없죠. 그때는 저희 소속도 아니었고 업무 지시를 내린 것도 아니라 사용하기에는 꺼림칙했거든요.”

“근데 그거 다듬어야 하잖아요.”

역시 신지혜답다.

출시할 정도의 상품이 아니라는 거 정도는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맞아요. 제가 손을 볼 겁니다.”

“그래서 로열티가 아니라 디자인을 구매하신 거구나.”

“네, 작은 아이디어라도 저작권이라는 경제적 가치가 있으니 지급해야죠.”

“잘하셨어요. 그래도 대단한 일 하신 겁니다. 형준이 어머니를 살린 거잖아요.”

“다행이죠. 디렉터님 말대로 잘된 일이고요”

“아 그리고 어제 말씀을 못 드렸는데. 원단 재단기 오늘 항구에 도착했다네요.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 토요일에 공장 고사를 지내면 어떨까 하는데.”

“너무 급하지 않아요?”

“그게 장인분들이랑 가죽장인분들 시간이 다음 주에 다 된다고 하셔서요. 주말이기도 하고 크게 할 것도 아니라 빨리 처리하고 싶어서요.”

“저는 가능합니다.”

“그럼 그 날짜에 추진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직원 중에서 참여 희망하는 분들만 참여시키세요. 주말 시간을 뺏고 싶지 않으니까.”

“네 그럴게요. 그럼 가족들도 다 같이 참여 가능하다고 전달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의류 생산라인 3.

* * *

공장 완공식이 시작되었다.

넓은 2층 내부에 각종 기계가 들어섰다.

원단을 넓게 펼치는 원단기와 레이저 커팅기, 타프미싱, 공업용 다리미, 공업용 재봉틀이 종류별로 수십 대가 놓여 있었다.

‘재정이 바닥이 날 만하겠어.’

중요제품은 이태리에서 들여왔다.

그 외에는 대부분 한국 기업 제품으로 대체했다.

매장확장기획에 필요한 재정을 제외하고는 모든 돈을 공장에 투자했다.

‘아주 뽕을 뽑아줄게.’

주머니는 비어 버렸지만, 가슴 속 열정만큼은 가득 차올랐다.

그때 신지혜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을 이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서요.”

“사장님 표정 보니까 반대한 제가 다 미안하네요.”

“별말씀을.”

“아. 다들 모였어요. 내려가시죠.”

“벌써요.”

아리raM 직원, 그들의 가족 그리고 무형문화재, 지방에서 올라온 가죽장인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를 드리며 고사를 지내기 위해 가장 중심에 섰다.

중심에 서는 순간, 신영길 선생님이 내 등을 떠밀며 말을 이었다.

“차 사장부터 절해. 잘되게 해달라고 부자 되게 해달라고.”

“네.”

나는 마음을 다해 절을 올리고 가슴속에 품은 내 희망을 읊조렸다.

“봉투 꽂아야지.”

“네.”

나는 품속에 있던 흰 봉투를 꺼내.

환하게 웃고 있는 돼지 입에 끼워 넣었다.

그렇게 모두가 차례차례 절을 올리며 회사의 무운을 빌었다.

“차 사장 용돈이네.”

“감사합니다.”

“입에 안 들어가….”

“네?!”

선생님들 세 분이 합쳐 모은 돈이 얼마나 두꺼운지 강제로 집어넣으려 해도 돼지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벌려라!”

그때 신영길 선생님이 두 손으로 돼지의 입을 잡고 벌리기 시작했다.

쫙!

순간 굳어 있던 돼지의 턱관절이 소리를 내면서 쩍 벌어졌다.

어떠냐며 주위를 힐끔 쳐다보시던 신영길 선생님이 벌린 입에 봉투를 강하게 물렸다.

“돈 많이 벌겠다. 쫙 벌려도 돈을 악물고 있구먼.”

“자네 돼지 신이 분명 벌을 줄 거야.”

“실없는 소리 말어.”

황의선 선생님과 신영길 선생님이 장난을 치시며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도착한 이지석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고사를 마무리했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준비한 음식을 챙겨 한자리에 앉았다.

‘이런 게 행복하다는 건가?’

화려한 파티와는 다르게 행복이라는 감정이 가슴속을 가득 메웠다.

정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외국 생활을 한 나였기에.

어색하기만 한 문화였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박주선이 슬며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아까 인사를 못 드렸네요.”

“인사는 무슨. 그런데 차 대표 내가 얼마 전에 영부인 만났는데 차 대표 이야기하시던데 인도네시아에서 한바탕했다며.”

박주선의 말에 모여있던 모두의 귀가 쫑긋했다.

사실 그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언급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엠마와 이사벨이 부른 기자들 아무도 기사를 써내지 않았기에.

‘분명 누가 막았을 거야. 괜히 떠벌렸다가 입국 정지에 암살자가 붙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 그런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게 좀이야. 차 대표 역시 배포가 남달라. 일본 디자이너 코를 납작하게 해줬다면서 영부인은 차 대표보고 패션 국가대표라고 엄청나게 칭찬하시던데.”

“그러세요…. 감사하네요.”

나는 진땀을 흘리며 주위의 시선을 피했다.

그 와중에 박주선이 다시 한 방을 날렸다.

“듣자 하니. 프랑스랑 미국 레이디퍼스트가 상품도 걸었다던데. 그건 뭐야?”

“아 그게…. LVMH 회장이랑 토미 힐피거와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고.”

“회장이면 기업 사장? 다른 사람은 또 누구야.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미리야 대단한 사람들이니?”

박주선이 류미리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

“미친 사장 놈… 그걸 왜 이제야 말해.”

그녀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고 다니엘은 들고 있던 컵을 놓쳤다.

그때 신지혜가 진지한 모습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흥분한 듯 말을 이었다.

“왜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 당장 미국이랑 프랑스 항공권 끊어야겠어요.”

“진정하세요.”

흥분한 그녀를 만류하며 겨우 자리에 앉힌 뒤.

진정시켰다.

주위에 어른들은 그녀의 행동에 도대체 누구길래 그러냐며 궁금증을 내비쳤다.

답답했던 아버지가 물음에 말이 없던 나를 뒤로하고 신지혜에게 질문을 이었다.

“누군데 그래?”

“한 명은 세계 3대 명품 그룹 회장이고 또 다른 분은 미국 패션업계에서 전설 같은 사람이에요.”

“오 그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우리 진혁이를 만나 준다고.”

“네. 저도 좀 당황스럽네요.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혼자만 알고 계셨죠?”

신지혜가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바라봤다.

‘어차피 LVMH 회장은 안 만나려고 했는데…. 토미가 문제지.’

“진짜. 별거 없어요. 그리고 바로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시간도 있습니다.”

“그래도….”

신지혜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서 보는 게 좋을 거 같다는 판단을 한 거뿐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기는 한데 다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그녀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만일 투자와 브랜드 협약에 대한 제안이 들어온다면 정말 큰 기회가 될만하다.

하지만 나는 꺼려졌다.

‘굽히고 들어가기가 싫은데.’

나는 박주선에게 술 한잔을 건넨 후.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일어났다.

그때 광주에서 올라오신 오채중 공방장이 너스레를 떨며 큰소리로 주제를 바꿔주었다.

“형만아 너는 무슨 복을 타고나서 이쁜 마누라에 잘 생기고 능력 있는 아들을 얻었냐. 나는 장가도 못 가고 이렇게 사는데 아이고 배 아파라.”

“내 아들이 형님 아들이지 뭘.”

“말은 잘해요. 술이나 먹어라.”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술잔이 오갔다.

여사님 세 분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

회사를 구경시켜 주며 자랑을 이어갔다.

다니엘도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모셔와 알뜰히 살뜰히 챙겨 드렸다.

나는 모두에게 돌아다니며 인사하고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고개 숙였다.

그때 황의선 선생님이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바빠?”

“아닙니다. 선생님.”

황의선은 붉게 물든 얼굴로 내게 다가와 말을 이었다.

“좀 밖에 나가서 걷자. 술기운이 올라와서 힘드네.”

“네.”

한참을 말없이 걸어가던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으셨다.

“용케 이만큼 올라왔네. 대단하네! 대단해. 그때는 정말 할 수 있겠냐는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네가 뭘 한다고 하면 설레어 어떻게 해낼지 말이야.”

“다 선생님들 덕분이죠. 그때 제 손을 안 잡아주셨으면 이만큼 못 왔을 겁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해. 다 자네 실력 덕분이지.”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사실 내가 줄 게 있어서 불렀어.”

“줄 거라니.”

“이걸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내 손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죠?”

“팔찌야.”

나는 작은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이번에도….’

순간 노을 져가던 하늘이 무색할 만큼 강한 빛에 의해 대낮처럼 밝아졌다.

바람에 흩날리던 풀들도 황의선의 표정도 멈추었다.

그렇게 내 눈앞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역시.”

새로운 영상이 비밀의 실마리를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그때 사라져 가던 하문희가 나타났다.

그녀는 며칠은 더 헤매고 굶었는지 뼈밖에 남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네.”

그녀는 조심스레 한 마을로 들어갔다.

“현도 나으리…. 나으리….”

“누구시오.”

작은 초가집의 문이 열렸다.

“문희야!”

그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주위를 살핀 후.

하문희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살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다들 죽은 줄만 알았다. 어찌 위험하게 이 먼 곳까지 왔단 말이냐. 어디 숨어있지 않고.”

“마땅히 갈 데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는데 문득 나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잘하였다. 잘 왔어.”

나이는 하문희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였지만 말하는 느낌과 풍겨오는 행동이 하문희보다 더 높아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저만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흑흑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죄송할 게 무엇이더냐.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지 않느냐.”

“…….”

“그래서 옷이 든 상자는 어찌 되었느냐? 네가 살아 있다는 건 그 상자를 지켰다는 게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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