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200)

“아까보다 더 좋은데요.”

아까보다 훌륭하다.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김형식이 디자인한 스니커즈에는 발목과 뒤꿈치는 훤히 드러나 있었고 단색의 기형학적인 패턴들이 스니커즈를 감싸고 있었다.

“좋네요. 김형식 씨 이것도 카피한 건가요?”

“카피는 아닌데 얼핏 보기에는 조던1 로우 같습니다.”

“형준 씨 뭔가 착각하는 거 같아요. 스니커즈의 형태는 오직 하나예요. 말 그대로 운동화죠. 근데 디자인이라는 건 무궁무진하죠. 육상화일 수도 있고 캐쥬얼슈즈나 등산화일 수도 있죠. 형식 씨가 한, 이 디자인은 조던1이 아닌 새로운 창작물입니다. 그걸 인지하셔야 해요. 모두가 다르게 보는데 형식 씨만 그 틀에 갇혀서 자신의 디자인이 모두 나이크의 스니커즈라 말하는 건 웃기잖아요.”

“네…….”

“그런 의미로 김형식 씨는 이제 아리raM의 디자인팀으로 스카우트되셨어요.”

“네?! 제가요?!”

“네. 싫으세요?”

“아니요. 아니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형준은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연신 숙였다.

한국대 의상디자인학과 출신의 꿈은 모두 디자이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다.

여기 있는 심사위원 모두 울고 있는 그를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스니커즈 디자인 좋던데요.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나도 me to.”

“저는 디자인팀 수석디자이너예요. 김형준 씨 잘 부탁드려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김형준의 포트폴리오를 바라봤다.

‘빛이 아니었으면 그의 재능을 몰라봤을 거야. 빛이 일어난 이유가 있겠지.’

“사장님 나오세요. 벌써 어두워 질려고 그래요.”

“네 나갑니다.”

우리 넷은 오랫동안 기다린 그들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평가였지만 더 냉정해져야 했다.

“사장님이 직접 하시죠.”

“네. 혹시 안정원 씨가 누구죠?”

내가 이름을 부르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안정원 씨!”

“야 안정원 손들어. 야!”

그때 안정원의 옆에 있던 친구가 소리치며 안정원의 손을 강제로 들게 했다.

“사장님 이 친구가 누구 앞에 나서는 거 싫어해서요. 수줍음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아 그래요. 안정원 씨.”

“……네.”

“디자인부서로 배치될 겁니다. 그러니 남아주세요.”

“와 정원아 잘됐다. 역시 너는 될 줄 알았다.”

그때 안정원이 숙인 고개를 들며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기 시작했다.

‘눈치 보는 거야 설마.’

“눈치 보지 말고 일어나 새끼야.”

“으…. 응.”

‘친구 하나는 잘 뒀네! 아휴…. 갈 길이 멀다.’

자리에서 일어난 안정원은 겨우 허리를 펴고 나를 바라봤다.

“안정원 씨 제 이야기 들었죠?”

“네. 들었습니다. 디자인부서로 배치되었다고.”

“그래요. 월요일부터 바로 이곳으로 출근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대답을 마지막으로 관심이 쏠리는 게 싫은 듯 자리에 앉았다.

“이로써 디자이너 선발은 끝났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여러분은 아리raM의 소속으로 기능공을 넘어 장인으로 거듭나 주세요.”

나는 최후의 통첩을 내렸다.

디자인은 감각과 능력이다.

디자인을 보는 눈을 키우는 데에만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들고 그걸 표현하는 데는 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에 이 안에서는 더는 디자이너의 재목이 나올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모두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 모두의 힘찬 박수가 쏟아졌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들의 눈빛은 아주 뜨거웠고 강렬했다.

의류 생산라인 1.

* * *

안산산업단지.

현재 이곳에 아리raM 의류 생산 설비가 순조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주위에 섬유산업과 피혁산업이 활발한 곳으로 자재 수급이 쉬운 곳이다.

“공장은 언제쯤 마무리될 거 같아요?”

“이번 주 안에 끝날 거 같아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예상보다 진행이 빠른데 기계설비가 들어와 봐야 알 거 같아요.”

현재 해외에서 주문한 원단 재단기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교육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장인 세 분이 열심히 해주시고 있습니다. 근데 굳이 바느질까지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차후를 생각하기도 해야 하고 정장을 만드는 과정 중에 꼭 필요하거든요.”

“이번 정장은 재봉틀로만 만드는 거 아니었어요?”

“일부는 손으로 해야 합니다. 기성복이라고 다 재봉틀로만 만들지 않아요. 그리고 심지가 들어가는 부위는 사람이 직접 팔자 뜨기를 해줘야 합니다.”

“팔자 뜨기?”

심지.

정장의 형태를 변하지 않게 잡아주는 뼈대의 역할을 해주는 중요한 부자재다.

심지는 많은 역할을 담당해주는데.

그 예로 주름을 방지해 줌과 동시에 전체적인 실루엣을 아름답게 오래 유지해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비스포크[수제 정장]를 만들 때는 심지를 비접착식 팔자 뜨기를 해야 해요. 왜일까요?

“당연히 품질이겠죠. 사장님이 그걸 가장 중시하시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 정답은 원단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예요. 접착식은 본드랑 원단이 결합하면서 본연의 성질을 잃어버리거든요.”

심지의 부착방법은 비접착식과 접착식으로 나뉘는데 비접착식은 팔자 뜨기라는 바느질을 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원단 본연의 성질을 잘 살려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그 반면 접착식으로 제작한다면 편하고 대량생산이 쉽기는 하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접착제를 발라 붙이는 공법인지라 환경에 예민하고 원단과 심지가 떨어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큰 문제로 재킷의 수명이 짧다.

그런 이유에 나는 손이 좀 더 가더라도 비접착식 공법을 고수하기로 했다.

‘아리raM의 재킷은 평생을 입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해.’

“아리raM은 일반 기성복이 아닌 명품 기성복을 만들어야죠.”

“아…. 그렇죠.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근데 회사 차원에서는 남는 게 없겠는데요.”

“그렇기는 하죠. 이번에는 이득을 볼 생각 없이 품질만 생각해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신지혜의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정부가 공시한 의상제작비는 현저히 부족해 원가절감이 절실한 상황이다.

좋은 재료와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는 우리로서는 손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최고의 재료와 품질로 그들의 정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이 입는 거니만큼 좋은 옷으로 만들어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괘씸하잖아요.”

“뭐, 짜내서 준 거겠죠. 분명 싫어하는 인간들도 존재할 테니까.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거니 좋게 생각합시다.”

“네. 사장님이 그렇다니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손해 볼까 봐 조마조마했거든요.”

“부담가지지 마세요. 현재 가방도 꾸준히 매출 올라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원단은 디자인 나오는 대로 구매할 예정인데 괜찮나요?”

“흠…. 그럼 너무 빡빡할 거 같고 영국, 이태리 원단수입업체 미리 알아봐 주세요.”

“네, 바로 연락 취할게요.”

나는 최고급 원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안 남기기로 한 거 다 써버리지 뭐.’

다른 의상에 비해 정장에 사용되는 원단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정장은 굉장히 단순한 디자인이다.

그런 만큼 원단의 종류와 품질에 따라 옷의 퀄리티가 달라 보인다.

“가격이 문제지. 제냐나 쉐리의 원단이 좋기는 한데.”

세계적인 원단 생산지로 영국과 이태리, 프랑스.

그중 정장 원단으로 따지면 영국과 이태리가 세계 3대 프리미엄 정장 원단을 생산한다.

그중 이태리의 제냐, 로로피아나, 영국의 홀랜드 앤 쉐리의 원단은 상위급 원단으로 쳐주고 있다.

몇몇 브랜드가 더 존재하지만, 개인 브랜드를 창설하거나 원단을 투자사에만 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재킷 디자인부터.”

정장디자인은 단순하지만 어렵고 정교하다.

예를 들어 고층의 건물을 올리는 경우.

건물을 올리는 과정보다 기초공사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더 길다 왜일까?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가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정장도 이와 같다.

“어깨선을 강하게 넣어야겠어.”

어깨선을 강하게 만들어 독립운동가 자손들의 권위와 기상을 강하게 표현했다.

그들의 처진 어깨를 끌어올려 주고 싶었다.

“형태는 싱글 투 버튼으로 하고.”

재킷의 형태를 가장 편하게 알 방법이 여밈과 버튼의 형태다.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의 앞 여밈이 싱글로 된 것을 말하며 버튼의 수에 따라 달리 불린다.

정장에는 여러 형태가 존재하지만 나는 모두가 가장 선호하는 정장디자인인 싱글 브레스티드를 선택했다.

“벤트는 싱글로 가는 게 났겠고.”

벤트[뒤트임]는 실용성을 위해 뒷부분의 밑단을 펼치는 걸 의미한다.

종류로는 3가지로 싱글, 더블, 노 밴드로 나뉜다.

모두 특색이 있지만 나는 싱글을 택했다.

싱글은 가장 실용적이고 클래식한 느낌이 강하며 깔끔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런 이유에 가장 광복절 행사와 어울린다는 판단을 했다.

“이 정도면 된 거 같은데.”

라펠은 와이드 노치드.

소매에는 나폴리탄을 그려 넣었다.

두 종류 모두 격식과 클래식함이 묻어나는 종류다.

한창 집중해 스케치를 이어가는 그때.

류미리가 나에게로 살며시 다가와 말을 이었다.

“사장님 디자인 다 완성했습니다. 확인 좀 부탁드려요.”

“아 그래요. 한번 볼까요.”

행사에 쓸 여성 의상은 류미리가 담당하기로 했다.

회의를 통해 여성 의상의 형태를 정했고 한복을 개량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보다 뛰어난 디자이너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흠……. 나쁘지는 않은데 한복의 느낌이 너무 강한 거 같은데요. 개량 저고리라……. 상의는 정장 재킷으로 가는 건 어때요?”

“아리raM의 의상으로는 좋겠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어울리는 의상은 아닌 거 같아서….”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

자손들의 나이를 고려해보면 4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가 넓다.

그런 분들에게 의상을 퓨전 시킨다면 꺼리실 수도 있었다.

“제 생각인데 아예 한복으로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럼 실용성이 너무 떨어져요.”

“그렇기는 하죠. 한복은 평상시에 입기는 불편하기는 하니까.”

한복이라 해봐야.

집안에 큰일이 있거나 명절에 잠시 입는 경우가 다이지 않은가.

나는 이런 부분을 고려해.

행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우리가 만든 의상을 입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실용성이라…. 실용성. 아……. 이건 어때요?”

“네, 말씀해보세요.”

“재킷은 없애버리고 투피스로 치마는 길이만 미디로 조절하고 상의는 자보 블라우스로 목에 두르는 스카프와 블라우스 모두 드리면 일상복이나 어디 나갈 때도 쓸 수 있으니까 좋을 거 같은데.”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다시 초안 만들어서 드릴게요.”

“네.”

점점 디자인의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

.

.

잠시 후 신지혜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제가 찾은 수입업체 리스트예요. 고급 이태리 수입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두 군데밖에 없더라고요. 그리고 영국은 세 군데였어요.”

나는 신지혜가 내민 서류를 자세히 확인했다.

“파이널 인터내셔널. 이 업체 좋은데요.”

“네, 원단 수입업체로 유명한 곳이에요.”

“리스트에 있는 원단 브랜드 다는 필요 없고 제냐, 로로피아나, 아리스톤 세 군데 원단으로 부탁해요.”

“그 브랜드들은 고가 브랜드 아니에요? 가격대가 너무 높아질 거 같은데.”

“이익 안 남기기로 한 거 조금 더 투자해서 좋은 원단으로 오래 입을 수 있게 만들어 드리죠.”

“네. 사장님 마음 알겠습니다. 제가 샘플 신청해둘게요.”

“감사합니다.”

신 디렉터와의 대화가 끝나는 그때.

디자인팀에 새롭게 배속된 김형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기증자가 나타났다고요….”

그의 목소리에 반대편 파티션에 있던 MD팀 사원들까지 디자인팀 파티션에 집중했다.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가 김형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아…. 어머니가 계시는데. 이럴 때가 아닌데.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 오늘 하루만 더 쉬면 안 될까요. 바로 병원으로 가봐야 할 거 같아서요.”

“그래요. 어서 가봐요.”

김형준은 크로스백을 들쳐메고 헐레벌떡 회사를 빠져나갔다.

그때 신지혜가 말을 이었다.

“기증자가 나타났나 봐요. 잘됐네요. 어머니가 크게 아프셨구나.”

“잘된 거죠…….”

김형준의 가정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분명 장기기증을 받더라도 이식수술은 큰돈이 필요할 텐데 나는 걱정이 앞섰다.

“그 반응은 뭐예요? 잘된 거죠. 라니?”

“아…. 그냥 걱정돼서요.”

“걱정이라니?”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에게 구구절절 설명한다고 와닿겠느냐는 생각이 스치며 나는 말을 돌려버렸다.

“별거 아니에요.”

“싱거우시긴. 저는 업체에 연락부터 해볼게요.”

“네, 부탁드릴게요.”

MD 파티션으로 이동하는 신 디렉터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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