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200)

생산설비를 만든다고 해도 좋은 옷을 만들 사람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재봉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도 드물다.

재봉틀도 장인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전문적인 분야다.

‘이게 문제긴 한데. 해외에서 데리고 올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럼 업체로 가자는 거야?”

“그게 안전하긴 하지. 일단은 숙련자잖아 불량 나면 다시 주문하면 되고.”

다니엘의 말을 듣고 신지혜가 말을 이었다.

“다니엘 그건 불가능해요. 불량분은 우리가 감수해야 합니다.”

“왜?! 업체가 불량 냈는데.”

“한국은 그래요.”

“……말도 안 돼.”

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 문제점이 많네.”

우리가 모두 말이 없자.

우리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던 류미리가 해법을 꺼내 들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아요. 숙련자 구할 수 있어요.”

“어떻게?”

“뭐 공개채용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더 쉬운 방법이 있죠. 산학협약이요.”

“산학협약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텐데요.”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한국대학교 재봉틀 특설반이 있으니까요.”

“재봉틀 특설반?”

“네 2년 전에 생겼어요. 재봉틀도 전문분야로 인정받으면서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어디서 그런 정보를?”

“안선영 교수님이라고 할머니와 친분 있는 분에게 직접 들었어요.”

“안선영? 어….”

“맞아요. 오트 쿠튀르 경연대회 심사위원. 그리고 현재 디자인협회 회장이에요. 잠시 교수직은 쉬고 계시지만 여쭤보면 도움 주실 겁니다.”

그녀의 의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날 안선영과 약속을 잡고 디자인협회로 향했다.

“어쩐 일이야? 미리가 먼저 연락을 다 하고.”

“아 부탁 좀 드릴 게 있어서요.”

“그럼 그렇지 요것이 선생님 닮아서 전화 한 통 없다가 이럴 때만 연락하지.”

류미리는 애교 섞인 말투로 안선영에게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들어주실 거죠?”

“그래 들어보고. 일단 앉아.”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안선영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차진혁. 너 설마 나 기억 못 하는 거야?”

“네?!”

“너 예전에 내 전공과목 들었는데 기억 안 나?”

“아 제가 그랬나요?”

그녀의 질문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한국대라면 차진혁의 모교였다.

‘아 실수했다. 잊고 있었어.’

내가 당황하는 모습에 안선영이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나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다니. 씁쓸하네.”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력이 좀…….”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억력을 내세워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차진혁 미안하다….’

“뭐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뭘 부탁하려고 오셨을까 두 분은.”

류미리가 내게 말하라며 부추겼다.

“사장님이 말하세요. 대표잖아요.”

“아 네.”

나는 서류 한 장을 내밀며 우리가 원하는 바를 문서로 먼저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 부가 설명이 이어졌다.

“산학협약을 맺고 싶습니다. 일반 기업들과 다르게 실습 위주가 아닌 고용으로 말이죠.”

“오 그래. 좋은 소식이네. 요새 일자리 부족해서 난리인데 일단 잠시만 서류 확인 좀 할게.”

그녀는 동그란 안경을 끼며 내가 내민 서류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네. 정규직 고용이고 연봉도 상당히 높네! 역시 아리raM인가 기술직에 대한 혜택이 높기는 하네.”

“그리고 서류에는 없지만 제가 인정하는 수준에 올라서면 연봉과 직급은 능력제로 할 겁니다.”

“경쟁이라…. 신선한 자극제이긴 하지. 근데 문제가 있어 아리raM이 원하는 재봉틀 특설반 애들은 벌써 다른 기업에서 고용이 이루어졌거든.”

“네?!”

“그 학생들 벌써 다른 기업 작업장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어. 하…. 이걸 어쩐다 잠시만.”

내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리 쉬는 그때.

안선영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현진아. 잠시만 사무실로 들어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갓 졸업한듯한 앳된 얼굴의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 친구도 재봉틀 특설반 출신인데. 사무 능력이 좋아서 내가 협회로 데리고 왔거든. 이 친구 이야기 좀 들어봐.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거야.”

“무슨?”

안선영은 자신의 제자를 불러 산학협약의 문제점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녀의 제자에게 우리의 입장과 조건을 말해주었다.

“그러시다면, 제가 친구들을 모아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모두 기업에 들어가서 힘들어하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모두 속았어요. 산학협약 신청설명회 때랑 너무 달랐거든요. 순진하게 학교와 기업의 말을 믿어버려서.”

처음에는 입에 발린 소리와 이미지로 장인이 될 수 있다며 그들을 회유했다.

하지만 실상은 단순노동직으로 온종일 같은 부분만 만들고 있단다.

안선영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고 있지 못했다.

“왜 안 말리셨습니까?”

“다른 교수님이 추진한 일이기도 했고 항의를 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고.”

“이유라니….”

나는 안선영 옆에 있는 황현진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재봉틀 숙련자라면 어디든지 취직이 가능할 텐데.’

“그런 환경이면 그만두면 되잖아요.”

“그게 특설반 친구들 모두 2년 치 학비를 지원받았거든요.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쉽게 나올 수가 없어요. 4년 동안 의무적으로 일을 하거나 받은 장학금을 모두 뱉어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요. 저는 교수님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어떻게 학교의 교수가 자신의 제자들을 이런 곳으로 취직시켰을까.

그것도 장학금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올가미를 채우는 식으로 말이다.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근데 이게 말이 되어가는 거지. 패션업계가 보기만 좋지 취직절벽에다가 시장은 커졌지만, 학생들은 취업할 데가 없어.”

“명품시장만 커져서 데이터만 상회하니까.”

“맞아. 그러니 해당 교수를 나무랄 수도 없어. 졸업생들은 넘쳐나고 취업할 자리는 부족하지. 그 해법으로 산업협약을 맺은 거니까.”

“하지만…….”

“그분도 생각이 있었겠지. 가난한 제자들 생각해서 했던 일인데 이렇게 된 거니. 그리고 학비가 없어서 학교도 졸업 못 하는 애들 많으니 기업이 내민 손이 반가웠을 거야.”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들을 우리 회사로 불러들이는 방법을.

산학협약 2.

* * *

* * *

“공장장! 왜 이렇게 작업이 느려. 나한테 직접 전화 오게 하지 말랬지!”

대머리에 배가 남산처럼 나온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공장장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분이 안 풀렸는지 공장장의 정강이를 까려다.

주위의 눈치를 보며 다시 발을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오늘 안에 처리하겠습니다.”

“빨리 보내라. 다시 연락 오면 진짜 짐 싸게 해줄 테니까.”

“네. 죄송합니다.”

산화 모직은 개인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의상제작 하청이다.

그런 이유에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종류의 의상을 찍어낸다.

하지만 직원 수는 중견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현저히 부족했다.

그런 이유에 이곳 직원들은 밀려드는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주말도 반납해 가며 매일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야말로 노동력 착취에 가까웠다.

“형준아.”

“응?”

“사장 내려왔다. 너 이야기할 거 있다며.”

“아. 그래.”

그때 한 청년이 지시를 내리고 있는 사장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이번 달 월급이 조금 덜 들어왔던데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회계팀에 가서 따져야지!”

“회계팀장님이 사장님 지시로 그렇게 되었다고 사장님한테 말해보라고 해서….”

“무슨 말이야? 내가 뭘 지시해.”

사장은 주위에 있던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더 큰 소리로 그의 말에 반박했다.

김형준은 더 간절하게 사장에게 부탁했다.

“정말입니다.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하 씨 짜증 나네. 따라와.”

사장은 김형준을 데리고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들어왔다.

“야 앉아.”

“네.”

형준은 주눅이 들어 사장의 눈도 못 마주친 채 바닥만 바라보았다.

“너 이 새끼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네?!”

“회계팀에서 나보고 말하라는 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라는 거 아니야? 눈치 없어. 이래서 어린 새끼들은 안 돼!”

“사장님….”

그때 배불뚝이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 한 장을 꺼내왔다.

“너 이거 한번 봐봐.”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김형준이 받아든 서류에는 자신과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받은 장학금 내역과 대출 내역이 빡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요새 회사 사정 안 좋아. 그래서 너희 장학금 면목으로 준 거에서 조금 차감 좀 시켰다. 어차피 너희들이 까야 하는 거야 시간으로 까나 돈으로 까나 똑같은 거잖아.”

“그렇지만 그 금액을 깐다고 기한이 줄어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야 솔직히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너희도 희생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것들은 은혜도 모르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주말에 평일까지 일하면 월 250은 되잖아. 근데 그거 얼마 줄었다고 X발 나한테 따지는 거야? 월급 안 주면 뭐 죽이겠다?”

“…….”

“왜 말이 없어. 싫어? 그럼 내가 준 거 다 뱉어내고 나가! 그럼 되잖아.”

“그 큰돈을……. 하.”

“이 새끼가 어디서 한숨을 쉬고 그래.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아닙니다. 일하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러는 게 맞지. 힘들 때 서로 돕고 해야지.”

사장은 형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형준은 그 역겨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점심때 먹은 음식이 올라올 거 같았다.

사실 사장은 김형준과 산학협약으로 들어온 학생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대부분 환경이 힘들기에 쉽게 회사를 나가지 못한다는 걸.

“거지 같은 게! 학교 졸업시켜주고 일까지 시켜주는데 바라는 게 많아. 김 양 커피 한 잔 가져와.”

“네.”

.

.

.

형준이 돌아오자.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다가와.

일이 잘 해결되었는지 물어왔다.

“형준아 돈 준대?”

“아니…. 하.”

“왜 너한테만 유독 심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

말을 이렇게 해도 모두 조금씩 금액이 차감되었다.

모두 똥을 밟았다는 생각으로 넘어갔지만, 김형준은 그러지 못했다.

“진짜 어쩌냐 곧 어머니 수술이라면서 돈 부족한 거 아니야?”

“하…. 미치겠네.”

“대출도 한도까지 다 받았다면서.”

“금융권에 알아봐야지 뭐. 신경 쓰지 마. 괜찮아.”

“야 그런데 함부로 받는 거 아니라더라. 조심해.”

형준을 머리를 헝클이며 자신을 자책했다.

‘학교 따위 가는 게 아니었어. 내 주제에 무슨 대학교를 졸업한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형준은 대학을 졸업한 걸 후회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겨우겨우 한국대에 들어갔지만 매해 학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때 단비같이 학교에서 산학협약이라는 장학제도가 생겼다.

형준은 산학협약의 혜택을 받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더 밝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 그런데 그게 악으로 다가왔다.

“산학협약은 무슨…. 이딴 회사에 처박기나 하고.”

산학협약은 빛 좋은 개살구다.

학비를 지원해준다는 명목하에 학생들을 노예로 만드는 제도다.

산학협력 설명회를 듣고 나서 정신이 홀린 듯 신청했다.

그때는 분명히 좋았다.

좋은 환경, 복지를 제공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으니까.

‘사진 속의 그 좋은 환경은…. 다 거짓말이었어!’

하지만 실상은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달랐다.

디자이너, 의류 장인을 꿈꾸던 모두에게 좌절감을 심어줄 정도로 말이다.

현실은 오로지 대량생산으로 하루에 수백 장, 수천 장의 옷을 찍어내는 기계로 쓰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 사악한 근무시간.

12시간 동안 밥때를 제외하고 휴식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몸이 많이 지쳤다.

“힘내자. 괜히 내가 다 미안하다.”

“네가 왜 미안해. 일이나 하자. 사장 새끼 또 내려올라.”

이들 모두 사회의 약자일 뿐이다.

모아둔 돈으로 회사를 빠져나간다고 할지라도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1년에서 2년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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