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200)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사벨이 엠마가 말한 것들을 들고 나타났다.

“호텔에 있는 거로 가져왔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그리고 우리만 보기 심심하니까. 작은 이벤트로 기자 몇 명도 불러왔어. 이런 세기의 대결을 놓칠 수 없잖아.”

이사벨 뒤로 유명언론사의 기자 5명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나진숙은 들어오는 카메라를 보고 기겁하듯 나에게 말을 이었다.

“차 대표 괜찮겠어요? 만약 지기라도 한다면 세계적으로 브랜드 이름이 나갈 텐데.”

“네. 이기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재미있을 거 같은데요.”

영부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녀에게 자신 있게 말은 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심사 위원은 여기 모인 G20 수장들의 아내들이다.

그녀들의 취향, 성격,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모두 다르다.

그걸 모두 부합해야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재료도 부족하고 말이야.’

나는 고개를 돌려 파티장 홀에 쓰일 수 있는 패션 재료를 파악했다.

‘식탁보, 커튼…….’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이사벨이 우리 둘에게 신호했다.

“시간은 1시간 완벽할 필요는 없어요. 둘의 역량만 볼 테니까. 시작하죠.”

.

.

.

나는 가장 먼저 테이블 위에 있는 유리판 하나를 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부숴야 하는데.”

테이블 위에 깔린 식탁보를 빼내.

유리판 위에 덮고 발로 강하게 내리쳤다.

쨍그랑!

쾅! 쾅!

나는 식탁보를 들어 올려 유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 정도면 되겠어.”

내가 발로 차 으스러진 부분을 제외한 손바닥 반만 한 유리 조각을 식탁보에 조심히 담았다.

“다음은….”

나는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연결선을 가지고 내려왔다.

‘이제 저것만 절단하면 되겠는데.’

내가 이동하는 곳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신기해하는 눈빛과 저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들이다.

나는 홀의 중심으로 이동해 한쪽 무릎을 꿇고 가위를 들이밀었다.

찌이익!

레드카펫.

보통 미끄럼을 방지하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 부직포나 벨벳 소재의 원단을 이용해 만든다.

‘다행히 벨벳이다.’

5성급 호텔이다.

당연히 부직포일 리가 없다는 내 판단이 맞았다.

벨벳은 나름 고급소재 원단이다.

짧고 부드러운 솜털이 고급스러운 멋을 자아내 줄 거다.

색상도 적색이기에 무채색의 식탁보나 커튼보다는 훨씬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이거면 충분하겠는데.’

나는 재료를 한 움큼 들고 엠마에게 다가갔다.

“레이디 제 모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영광이죠.”

그녀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걸 사용해도 된다.

솔직히 처음에는 영부인들의 의상을 도려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저 카메라에 몰매를 맞을지도 몰랐다.

‘입국 금지당할 수는 없지….’

나는 줄자가 없는 대신 손을 이용해 단면적인 치수를 계산했다.

눈대중으로 치수를 가늠할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들려는 디자인은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일단 마이크 선부터.”

나는 마이크의 전선을 분해해 길쭉한 구리선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고무 소재인 덕분에 손쉽게 절단이 되었다.

하지만 길이가 10m는 되는 전선이기에 시간이 꽤 소요됐다.

내가 작업을 이어가는 그때.

갑자기 옆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G20 정상회담 7.

* * *

프랑스 총리의 질문에 고베는 쓴웃음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조건들이 욕심은 나지만 가진 걸 내어주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다.

“뭘 가지고 싶으십니까?”

“뭐 일본이라면 각종 특허권 공유 어떻습니까?”

“흠…….”

고베는 프랑스 총리의 답변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일본이 성장하는 데 기반이 되고 힘을 발휘하고 있는 분야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고뇌하고 했다.

‘젠장! 이렇게 나온단 말이야. 뭐 어쩔 수 없나.’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프랑스는 패션 브랜드에 말해 체인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중이떠중이 같은 브랜드는 안 됩니다. 정말 실력 있고 프랑스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여야 할 겁니다.”

순간 프랑스 총리의 말에 3국의 대표들의 눈꺼풀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전통과 예술을 중시하는 나라이고 우리는 최고가 아니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정부가 압박한들 시장이라는 데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럼 당연히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겠죠.”

문명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뭘 원합니까?”

“아시아 패션 어워드 어떻습니까? 뭐 떨어져 나간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죠. 1등만 하면 프랑스 명품기업들도 군말 없을 겁니다.”

고베, 시진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둘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다.

‘자신 있다는 거네. 그럼 한국은.’

문명진은 한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저도 좋습니다.”

승자독식이다.

이기는 자가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거다.

하지만 문명진은 내키지 않았다.

느낌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싸움을 붙였어. 모두에게 시장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속셈이군.’

“그럼 내년 초를 기해서 시작하죠. 너무 성급할 필요는 없으니까. 주최 측은 프랑스로 하겠습니다.”

“네.”

차후에 조약을 체결함을 약속하고 모두 헤어졌다.

회의실에는 프랑스 총리인 르쉐르 에릭과 프랑스 관계자만이 자리를 지켰다.

“모두 나가 있겠어요.”

“네 총리님.”

이제야 혼자가 된 에릭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을 수면으로 끌어 올릴 기회야 잘 부탁하네.”

“네.”

* * *

내가 고개를 돌리자.

호텔 직원이 내가 유리를 발로 깰 때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왜 저러는 거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피니 나나세가 가위를 들고 커다란 소파의 가죽을 절단하고 있었다.

호텔 직원은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나나세에게 다가갔다.

“그 소파는 3만 달러가 넘어가는 건데. 그렇게 절단하시면….”

호텔 직원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

가죽을 낑낑거리며 절단하고 있던 나나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내가 물어주면 되잖아. 이까짓 거! 나는 이 경기에서 이겨야 하니까 저리 꺼져.”

많이 예민해져 있는지 입이 더 거칠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개의치 않고 내 작업에 더 몰두했다.

‘재수 없는 년.’

나는 벨벳 원단을 엠마에게 가져다 대며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집게가 없어서 불편하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침 적당히 고정해줄 만한 물건을 발견했다.

“커튼 핀. 손상이 가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커튼을 고정하는 커튼 핀을 모조리 빼내 와 원단을 고정했다.

잠시 디자인을 유지해주는 역할이다.

원단에 손상이 가기는 하지만 바느질할 때 숨기면 된다.

“Mr. 차. 아이디어 좋은데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집중하자.’

어느덧 20분이 흘러버렸다.

“가만히 있어 주세요. 이대로 바느질할 겁니다.”

“오케이.”

나는 엠마가 걸치고 있는 벨벳 원단을 유심히 바라보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을 파악했다.

“열 군데 일단 고정하자.”

나는 최대한 빠르게 커튼 핀이 꽂혀있는 부분부터 바느질을 이어갔다.

“다됐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마이크 연결선에서 뽑아낸 구리선을 가져와.

벨벳 드레스 하단에 지그재그로 구리선을 넣기 시작했다.

길이가 상당했기에 작업시간은 꽤 길어졌다.

“이제 어쩔 생각이에요. 이게 끝인가요?”

“아직 남았습니다.”

유리 조각을 담아둔 테이블보를 펼치며 그녀의 치마에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구리선에 유리 조각을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했다.

“살짝 무거울 수는 있지만 버텨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이 정도쯤이야.”

그녀는 흥미를 느끼며 내가 만들어가는 드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해야지 잘못하다가는 찢어지겠는데.”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을 구리선 위에 하나하나 올려 나갔다.

“Mr. 차 20분 남았네요.”

“네.”

시간이 없다.

나는 비지땀을 흘리며 마지막 유리를 드레스에 올렸다.

다행히 모자람 없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곳.

모두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웠다.

“이제 끝인가요?”

“이제 한 가지 남았습니다.”

나는 옆에 보이는 깨끗한 식탁보를 빼냈다.

“팔 좀 들어 주시겠어요.”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팔을 양쪽으로 들어 올렸다.

쫙!

식탁보 끝부분을 살짝 남겨두고 반으로 잘랐다.

나는 그녀의 오른쪽 팔을 시작으로 왼쪽 팔 그리고 허리까지 흰색 천으로 상의 전체에 휘어 감았다.

듬성듬성 붉은 벨벳이 보였지만 괜찮다.

“이제 끝났습니다.”

내가 모든 걸 끝내고 나나세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사벨의 몸에 식탁보를 부착시켜 바느질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놓여있는 식탁 위에는 가죽으로 만든 특이한 치마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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