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200)

이들도 프랑스의 패션 시장을 탐내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불만을 드러냈다.

패션사업의 규모로 따지면 프랑스나 미국이나 도긴개긴이기 때문이다.

“일단 시간을 가지고 결정합시다. 의제일 뿐이지 결정지을 것도 아니니까.”

미국 대통령의 말에 문명진의 주제는 잠시 묻힌 듯 보였다.

시간이 흘러 정상회담은 몇 가지의 의제를 끝으로 휴정에 들어갔다.

3일 동안 이어지는 회의이기에 급할 필요가 없었다.

문명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참모들과 이동하려는 그때.

프랑스 총리가 문명진에게 다가왔다.

“프레지던트 문!”

“무슨 일로?”

“아까 이야기했던 브랜드 체인 인상 깊었습니다. 이야기 좀 나누시죠.”

“좋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참모진이 한데 모여 둘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본과 중국 대표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한국 따위가!”

* * *

일본 총리부인 키미코가 등장했다.

주위가 한순간에 어수선해졌다.

우리와 대화 중이던 이사벨과 엠마도 대화를 멈추고 몸을 돌렸다.

둘은 문으로 다가가.

키미코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인사했다.

‘와 소름 돋네. 정치인 부인들이라 이거지.’

이사벨과 엠마와 인사를 한 후.

키미코가 나진숙에게 다가왔다.

“영부인. 그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제가 술이 과해서.”

“별말씀을요 다 지나간 일입니다.”

정말 적응 안 되는 순간의 연속이다.

싸울 거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던 키미코의 사과와 그걸 흔쾌히 받아들이는 영부인의 모습에 정말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근데 옆에 분은 누구시죠?”

“저랑 대동한 의류브랜드 대표입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아까 흘러나온 영상을 생각하면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지만 억눌렀다.

‘참자 참아. 영부인도 참고 있는데 내가 나설 필요는 없지.’

“아리raM 대표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아리raM? 그 독립운동가 퍼포먼스를 했던 그 아리raM 말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순간 키미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군요. 반가웠어요.”

자리를 뜨려는 키미코의 팔을 뒤에 있는 여자가 잡아끌었다.

“키미코 상 저에게도 소개해주세요.”

“소개라니….”

“저 잘생긴 분이랑 저도 친해지고 싶거든요.”

무슨 영문인지 살짝은 강압적인 부탁이다.

키미코는 무례한 행동에도 되레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실수했네. 이쪽은 나나세라고 합니다.”

키미코는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나나세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왜 일본 총리 아내가 꼼짝도 못 하는 거야?’

그런데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나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브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나나세라고 합니다.”

“아리raM 대표 차진혁입니다.”

“사실 차진혁 대표님 알고 있습니다. 꽤 빠르게 성장하신 브랜드 디자이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일본 분이 알고 있다니 신기하네요.”

“업계 정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대화를 이어가던 중.

나나세가 내 옆에 있던 영부인의 의상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G20 정상회담 6.

* * *

프랑스 총리와 문명진은 작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제 의견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저도 생각했던 내용이라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뿐이니까요.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제가 두 분 더 불렀습니다.”

문명진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가진 자는 프랑스 쪽이다. 그럼 우리는 부탁해야 하는 처지고 그럼 두 명은 어느 쪽이란 말이야.’

문명진은 저 회의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표가 이탈리아와 미국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이 세 나라의 시장을 함께 공유한다면 한국의 의류사업 아니 디자인사업 전체가 커질 게 분명하다.

문명진이 생각을 이어가는 가운데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저희가 조금 늦었습니다.”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주석 시진붕과 일본 총리 고베다.

‘역시…. 욕심이었나.’

이 둘의 등장으로 프랑스 총리의 의중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프랑스 하나와 아시아 경제 3국을 다 가지겠다는 심산인가. 계산이 너무 차이가 나는데.’

“앉으시죠. 조금 전에 보니 두 분도 상당히 관심 있어 하시던데.”

“이렇게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베가 너털웃음을 피우며 프랑스 총리와 악수했다.

중국 주석인 시진붕은 분위기로 봐서 중간 입장인 거 같다.

“서로서로 의견을 들어보죠. 한국은 벌써 이야기했고 중국 쪽이랑 일본 쪽은 어떠십니까?”

“일본은 찬성입니다. 의류산업의 시장확대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그럼 중국 쪽은요?”

시진붕은 손을 턱 끝에 올리며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가 얻는 건 뭡니까? 솔직히 말해서 중국은 소비시장으로는 유럽보다 앞서고 있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데요.”

“체인을 맺음으로써 의류 명품화로 중국 시장도 해외시장도 크게 넓힐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중국은 다른 사업도 전문성이 더 필요할 텐데요.”

“흠…….”

프랑스 총리의 비수 같은 일침에 시진붕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문명진은 이 대화의 분위기와 그들의 행동에서 서로가 원하는 걸 파악했다.

프랑스 총리는 자국의 브랜드 소비량을 올리기 위해 아시아 시장을 가지고 싶어 한다.

중국은 국가의 이미지 변화와 분야별 기술공유로 보인다.

‘말이 좋아 공유지 훔치겠다는 심산이겠지.’

그리고 일본은 한국과 같은 시장확장이다.

솔직히 한국과 일본의 처지에서는 저들의 조건이 무엇이건 큰 손해는 없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문명진은 한발 물러나는 척했다.

현재로서 내어줄 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사업을 내세운다면 거래는 불발될 게 분명하다.

‘우리는 전자산업과 조선, 건설업이 발전한 나라야. 이들보다 앞서는걸. 제시해야 해.’

문명진은 가지지 않은 산업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후에 생각할 일일 뿐이다.

가지고 있는 산업은 그때 다시 지키면 된다.

“한국은 패션 체인이 성공한다면 전자, 건설, 조선, 자동차 사업의 시장 공유도 함께 추진하겠습니다.”

문명진의 말에 프랑스와 중국 쪽 관계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때 프랑스 총리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일본은 뭘 제시할 거죠?”

“…….”

* * *

“근데 아까부터 저 꽃무늬들이 눈에 거슬리네요. 영부인 의상은 누가 만든 거죠? 엄청 촌스럽네요. 제가 만들었다면 훨씬 트렌디하고 아름다웠을 텐데 아쉽네요.”

나나세의 말에 영부인은 내 옷깃을 당겼다.

조금만 참으라는 표시였다.

하지만 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일본 총리의 아내도 아니고 나와 같은 브랜드의 CEO일 뿐이다.

“죄송하게 됐네요. 제가 만든 디자인이 이상했나 보군요.”

“아…. 차진혁 대표님 의상이군요. 제가 실수했네요. 근데 제가 거짓말을 못 해서요. 좀 촌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왜 이런 디자인을 만든 거죠?”

“그러게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겠죠. 나나세 씨는 보는 눈이 없나 봅니다.”

“뭐요?!”

“이 드레스는 영부인의 추억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이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완성했지요. 그걸 못 알아보는 디자이너라니 이브의 장래도 어둡네요.”

내 말에 나나세의 얼굴에 핏기가 오르며 입술을 일자로 강하게 다무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열 좀 받았나 보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미국의 이사벨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길래 이래요?”

그녀의 질문에 나나세가 고개를 치켜세우며 뻔뻔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한국의 영부인 의상에 대해 조언을 해준 거뿐인데 화를 내네요.”

이사벨은 나나세의 말에 무슨 상황인지 금방 눈치챘다.

“그랬군요. 뭐 서로가 조금씩 의견이 다를 수 있죠. 서로 존중해주면 좋을 텐데요.”

“뭐 실력문제겠죠. 좋은 디자이너라면 상대의 조언도 곱게 받아야 할 텐데. 차진혁 대표는 그렇지 못하네요.”

이사벨이 중간에서 중재를 시도하려 해도 나나세는 끊임없이 나를 도발해 왔다.

그때 옆에 있던 엠마가 나서서 말을 이었다.

“그럼 둘이 어느 쪽이 실력이 있는지 시합해보면 되겠네! 어때요? 재밌겠다. 그죠 이사벨.”

“물론 재미있다면 찬성입니다. 시간도 아직 여유롭고요.”

“둘의 의견이 어때요?”

둘은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우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여유로운 미소로 이사벨과 엠마에게 답했다.

“좋습니다. 시합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대답에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나세도 그녀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저도 좋습니다. 물러설 필요를 못 느껴서요.”

나는 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저 여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졌다.

‘그래 언제까지 그따위 태도인가 보자.’

“그럼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상품을 걸도록 하죠. 흠 뭐가 좋을까?”

이사벨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엠마가 먼저 조건을 내세웠다.

“저는 LVMH 그룹 회장과 저녁 만찬에 초대하죠. 나쁘지 않은 조건이죠? 사업하는 두 분에게는 최고의 상일 거 같은데.”

비즈니스 파트너를 소개해준다는 소리.

세계 3대 패션그룹의 수장이라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친분을 쌓는 것만으로 충분히 패션기업의 대표라면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끌리는 상이 아니다.

‘왜 하필 LVMH야.’

죽기 전 투자를 받기로 되어있던 그룹이다.

‘그 성격이 고약하기로 유명한 영감하고 식사한다고! 일을 같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밥 먹다가 안 체하면 다행이야.’

엠마의 조건을 들은 이사벨이 자극을 받았는지.

모델 출신의 자신도 그 정도 인맥은 움직일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나는 토미 힐피거를 만나게 해줄게요.”

나는 순간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의심했다.

‘미친!’

토미 힐피거 미국 스피릿 패션과 아이콘을 선도했던 장본인으로 데님 소재를 자유자재로 디자인해 엄청난 인기를 끌게 한 사람이다.

미국 PVH 그룹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문으로 토미는 작은 친분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토미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에게는 아니 아리raM에는 엄청난 기회가 될 거다.

“어때요? 제 조건은.”

“좋습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사벨의 질문에 답했다.

나나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이 판이 얼마나 커졌는지.

우리 둘의 대답을 듣고 난 후.

이사벨과 엠마는 어떻게 시합을 해야 좋을지에 대해 상의했다.

그리고 한참 뒤 엠마가 나서서 말을 이었다.

“심사 위원은 여기 모인 G20 정상들의 부인분들이 하는 거로 하죠. 그리고 재료는 이 파티장에 있는 모든 걸 사용해서 해주면 됩니다. 두 분 모두 괜찮으시죠?”

“네 물론이죠.”

“네.”

“잠시 뒤면 이사벨이 가위와 실, 바늘을 지급해 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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