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200)

나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직 대통령과 영부인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대통령님은 언제쯤 오시죠?”

“곧 오실 겁니다. 안내 사항으로 먼저 대통령님과 영부인, 참모진이 먼저 비행기에 탑승할 겁니다. 그 뒤에 차진혁 대표님이 탑승하시면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기자단이나 관계자랑 섞여서 탑승할지도 모르니 유념해주십시오.”

“네. 뭐 어렵지는 않네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깐깐한 여자다.

중요사항과 위험한 행동에 관해 설명을 하나부터 열까지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읊조리고 있었다.

“아직도 남았어요? 전혀 저랑 해당 사항이 전혀 없는 거 같은데.”

“VIP 고객 응대 매뉴얼대로 행합니다.”

“혹시 신입사원이세요?”

“네 맞습니다. 1년 차입니다.”

“아…. 네 설명하세요.”

1년 차라는 말에 모든 걸 내려놓았다.

이 딱딱한 경호원이라는 직업에 그것도 청와대의 경호원 1년 차란다.

나는 한숨을 내리 쉬며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들어주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일정 중 단독행동은 금지입니다.”

“드디어 끝났네요.”

“길었다면 죄송합니다. 매뉴얼이 그렇습니다.”

“네, 네.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우렁찬 소리에 살짝 웃음이 흘러나왔다.

‘직업 잘 고르셨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통령 차량이 공항으로 들어왔다.

비행기 앞쪽에 세단 한 대가 멈춰 섰고 대통령과 영부인이 차량에서 내렸다.

대통령은 주위에 몰려든 정치인들과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찍기 위해 카메라가 수시로 돌아갔고 플래시가 수시로 터져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과 영부인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가시죠.”

“네.”

내가 비행기에 올라타려는 그때.

기자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아리raM 대표 아니야?”

“어 어디? 맞네.”

“뭐야 이번 경제 분야 주제가 패션 시장이라던 게 사실이었어?”

“모르지 근데 기업대표로 아리raM이 가는 거야?”

그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김예림이 내 뒤를 막으며 카메라 촬영을 막아섰다.

“VIP 고객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촬영은 금지합니다!”

그녀의 말에 순식간에 카메라 플래시가 멈추었다.

‘제법인데.’

.

.

.

내가 비행기에 올라타자.

영부인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 대표 이쪽으로 와요.”

“제 자리는 저기라고 들었는데.”

“뭐 어때요. 대통령님도 할 말 있다니까 따라와요.”

“네.”

나는 영부인을 따라 비행기 앞쪽으로 이동했다.

앞칸에는 참모진과 주무관급 인사들이 가득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사람들이었다.

“어서 와요. 차 대표. 내가 긴히 보자고 했어요.”

“네.”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자.

한 장의 서류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G20 정상회담 4.

* * *

대통령이 내민 한 장의 서류.

“차 대표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나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서류를 들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의 기반 산업들도 발전은 하고 있지만 큰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형국이지. 더는 발전에 큰 기대를 하기가 힘들다는 소리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패션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네.”

“그러셨군요.”

“이번 경제 부분 회의에서 우리는 패션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자네 같은 신성의 의견도 중요할 거 같아서 말이지.”

“……제 생각이라.”

서류에는 전 세계에 흐르고 있는 패션에 대한 수요와 매출액이 자세히 자료화되어 있었다.

한국의 패션 시장은 45조 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물품의 수요가 늘어나며 새어나가는 돈도 많다.

그만큼 오차범위가 발생한다.

현재 중국의 패션 시장은 200조 이상을 형성하고 있고 미국은 우리의 10배는 되는 패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서류대로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도박이야.’

대통령이 내민 서류에는 큰 틀로 보아.

발굴과 지원 그리고 수출지원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모두가 천재 디자이너가 아니며 수출을 한다고 해도 시장에서 망하기 일쑤다.

국내에서 성공한 브랜드가 해외 진출을 시도하다 큰 피해를 보고 망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계는 넓고 한국의 패션은 도태되어 있다.

지금부터 신인 디자이너와 디자인산업을 성장시킨다고 해서 큰 이변을 찾기 힘들 거다.

‘벤처사업지원과 신인 디자이너 발굴이라. 미래 없는 싸움인데 이건.’

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대통령에게 내 의견을 전달했다.

“서류의 내용은 참 좋습니다.”

“그래. 자네 생각도 괜찮다는 거지?”

“좋습니다, 근데. 이건 너무 데이터적인이야기인 거 같습니다. 대통령님과 참모진이 말하는 여기 적혀있는 LVMH, 켈링 같은 브랜드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근데 불가능합니다. 이들의 역사와 시간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이 한국에 오지 않는 이상은요.”

“그런가….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인가.”

대통령은 내 말을 듣고 속이 타는지 냉수 한 잔을 바닥이 드러나게 마셨다.

분명 자신들도 생각한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생각해 추진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다른 방안도 있습니다.”

“뭔데? 빨리 말해봐.”

“패션 체인입니다.”

“패션 체인?”

“그들처럼 될 수 없다면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G20은 서로의 경제를 함께 성장하고 유지하려는 회의니까. 분명 선진국들도 기득권을 챙기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제시해보는 건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렇겠지. 자네 말은 패션 동맹을 해보자는 거지?”

“네 맞습니다. 체인으로 연결하고 시장을 넓혀야 합니다. 신인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패션벤처를 지원한다 해도 나아갈 시장이 없으면 한국 안에서만 팔 수밖에 없습니다. 수출을 지원한다 해도 망해버린다면 다시 원점일 뿐이고요. 그러니 그들의 시장과 이미지를 빌릴 수만 있다면 엄청난 경제 이득이 발생할 겁니다.”

순간 대통령은 옆에 있던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참모들 지금 당장 모아줘요.”

전화기를 끊고는 내 앞에 다가와 그가 말을 이었다.

“차 대표한테 안 물어봤으면 큰일 날 뻔했네. 내 가슴속에 답답한 걸 한 번에 해결해 줬어.”

“저야 제 의견을 전달해 드린 거뿐인데요. 시장이 성장하면 제가 운영하는 브랜드에도 이득이 될 테니 저한테도 좋은 일이고요.”

“고맙네. 회의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지.”

“네.”

대통령은 속이 시원하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정말 나라의 경제를 걱정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영부인도 말을 이었다.

“차 대표한테 맨날 신세만 지는 거 같네요. 애 아빠가 다른 건 둘째치고 경제문제에서 맨날 머리 아파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젊은 친구가 능력이 대단하다니까. 그리고 겸손하기까지 하니 이거 참.”

둘의 칭찬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생각했던 내용을 그에게 전달한 거뿐이다.

‘패션 체인이라…. 된다면야.’

문제는 정작 시장을 쥐고 있는 명품 브랜드와 유명기업들이 여기에 참여할 거냐는 거다.

자신들의 시장을 아시아의 나라들과 함께 나눈다.

절대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방향이 있긴 하다.

‘더 큰 걸 내어줘야겠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다음에 또 대화합시다.”

내가 앞칸에서 나오자.

참모진이 대통령이 있는 칸으로 이동했다.

‘머리 좀 아플 거다.’

* * *

“잠들었나 보네.”

내가 눈을 뜨자.

의자에 부착된 모니터에서 인도네시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거의 다 왔네. 너무 많이 자버렸어.”

며칠 동안 쌓인 피로 때문인지.

비행기에서 깊게 잠들어 버렸다.

나는 지나가는 스튜어디스에게 물을 요청하고 태블릿 PC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은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S/S 시즌 의상을 준비한 류미리의 의상디자인이다.

내가 시킨 대로 최대한 그녀의 색을 뺀 일상적인 현대적 의상을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패션위크 일명 프레타 포르테는 오트 쿠튀르랑은 다른 성향의 패션쇼다.

기성복으로 고객 누구나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

“점점 좋아지네. 이제 한국적 이미지를 입혀보라고 해야겠어.”

그녀에게 현대적 의상디자인에 대한 식견을 넓혀주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류미리의 능력은 모든 디자인에 한국적 이미지를 잘 입히는 거다.

하지만 현대 의상을 디자인하는 능력은 한참 부족했다.

“빨리 성장해줘야 할 텐데.”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분명 사업이 확장되면 디자이너가 늘어날 것이다.

그럼 그들을 지휘, 통제하기 위해서는 총괄의 폭넓은 식견과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그릇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자카르타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모두 좌석벨트를 매어 주시고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을 원위치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착륙 안내방송이 나왔다.

“벌써 도착인가.”

7시간의 긴 비행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기울어지며 공항의 활주로를 밟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 *

호텔로 도착해 로비에 도착하니.

김예림이 나에게 다가와 오늘의 일정을 전달했다.

“7시 이후 저녁 식사와 함께 연회가 있습니다. 각국 수상의 부인들만 모이는 자리이니 불편하겠지만 여사님이 꼭 같이 참석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대통령과 영부인은 따로 움직이게 되어있었다.

대통령은 도착과 동시에 G20 정상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나는 영부인을 케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행이다. 그 빡빡한 분위기 보는 거보다야 훨씬 낫겠지.”

.

.

.

얼마 쉬지 못하고 영부인이 머무는 스위트룸으로 이동했다.

그녀를 오늘 최고의 퍼스트레이디로 만들기 위해.

“제가 준비한 의상입니다.”

“기대되는데요.”

영부인은 내가 내미는 드레스 케이스를 받아들고 조심히 덮개의 지퍼를 열었다.

그 순간 예상 못 한 일이 발생했다.

‘젠장!’

드레스에서 검붉은 빛이 일렁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갑자기 왜?’

내가 룸에서 확인할 때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순간 검붉은 빛이 더 강해지며 내 눈동자를 집어삼켰다.

눈을 떠보니 화려한 파티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는….”

주위에 각국 정상들의 아내와 영부인의 모습이 드리웠다.

“갑자기 이게 무슨. 미래를 보여준다고?!”

얼핏 보기에 내가 만든 드레스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미래가 아니라는 건데. 그럼 언제라는 거야?”

나는 유심히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주위는 조용했으나 그녀들이 모여있는 곳만큼은 아주 시끄러웠다.

마치 작은 정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영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은 부인의 패션에 관심이 없나 봅니다. 이런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오다니.”

“아…. 이거요. 그냥 무난해서 입고 왔습니다. 자리가 중요한 거지 이 옷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많이 이상한가요?”

영부인은 고개를 떨구며 자신이 입고 있던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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