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200)

이기석은 들뜬 목소리로 나를 향해 이야기를 이으셨다.

‘선생님도 참…. 우리 할아버지처럼 맨날 주기만 하시려고 하네.’

순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내 기억과 차진혁의 기억 혼돈이 일어난 걸까?

“아니겠지.”

문득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며 이상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을 떨쳐 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G20 정상회담 2.

* * *

하나부터 열까지 신중히 처리해 완성했다.

이제 민들레 수만이 남았다.

“사장님 출발하시죠.”

“네. 부산까지 내려가려면 오래 걸리겠네요.”

“만반의 준비를 끝냈어요.”

류미리는 검은 봉지를 들어 올리며 간식거리를 준비했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갔다 올게요.”

나와 류미리는 완성된 의상을 챙겨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선생님 성격은 어때요?”

“성격이라…. 좀 까칠하시죠. 사람 가리시는 경향이 좀 있어요. 관상을 좀 보신다고 할까?”

“아. 그래요.”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뭐 사장님 정도면 패스죠.”

장난스럽게 말하는 류미라와는 다르게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인들 한 분 한 분 특색이 강하다.

그런 이유에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참을 달려 부산 동래에 있는 장인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주택과 상가가 어울려져 부산만의 특별한 풍경을 자아냈다.

“여기예요.”

마당이 있는 오래된 고택 앞에 류미리가 멈춰 섰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벨도 누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생님. 저 왔어요. 사랑스러운 제자가 왔습니다.”

그때 리모델링된 미닫이문이 옆으로 밀리더니.

자수장 한명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刺繡匠).

자수는 왕의 의복, 관복, 병풍, 이불에 이르기까지 쓰임이 폭넓다.

그런 만큼 아직도 많은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아녀자가 어디서 소리를 그리 꽥꽥 지르고 있누.”

“선생님 또 그러신다. 조선 시대 아니거든요.”

잔소리하는 한명숙에게 류미리가 달려가 포근하게 안기니.

그녀도 웃는 얼굴로 류미리를 꽉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뭐고 결혼할 남편 데리고 왔나.”

“…….”

왜 아무 말을 안 하는 거지?

류미리는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한명숙에게 다가가 나를 소개했다.

“류미리 씨랑 같이 일하고 있는 아리raM 대표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남편 될 사람 아니고요.”

“아 그래. 근데 왜 그리 정색하누. 미리가 어때서.”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류미리가 미안한지 말을 이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잠시 생각에 잠겨서.”

“아닙니다.”

“선생님 장난 좀 그만 치세요. 사장님 놀라요.”

류미리의 말에 한명숙은 살짝 웃어 보이고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 인물이 훤칠해서 장난 좀 쳤으니 놀라지 마라. 그리고 우리 미리랑 잘해보면 좋고.”

“네….”

그녀는 류미리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어서 들어와.”

“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다과를 가져와 우리 앞에 내밀었다.

“줄 것도 없다 이거나 무라.”

그녀가 내민 건 통영의 명물 꿀빵이었다.

“맛있습니다.”

“그래 마이 무라. 근데 무슨 일로 이까지 왔나. 요새 도로가 암만 잘돼있어도 멀 건데.”

“선생님께 부탁 좀 하려고 왔죠.”

“이거 봐라. 고얀 년 맨날 안부 전화만 하고 얼굴 한번 안 비추더니 부탁하려고 와.”

“그래서 안 해주실 것도 아니면서.”

“그래 들어나 보자. 뭔데?”

나는 그녀의 말에 완성된 드레스를 꺼내 보였다.

“아이고 곱다. 누가 만든 솜씨고.”

“사장님이 만든 거예요. 영부인이 이번 정상회담 가실 때 입을 거예요.”

“뭐라고. 영부인이.”

“네.”

“그럼 진작 말하지. 내가 영부인 한복 만든 지 몇 년째인데.”

당연히 그럴 거다.

행사 때 한복을 자주 입는 영부인의 한복은 침선장이, 수는 자수장이 놓는 걸 얼핏 들은 바 있었다.

“그래서 여기 뭐 하면 되는데?”

나는 그녀의 질문에 최종 디자인 시안의 자수 부분을 내밀었다.

“민들레라. 이만큼 수 놓으려면 이틀은 걸릴 거 같은데.”

“시간은 넉넉합니다.”

“근데 이 정도면 미리 네가 해도 될 건데 뭐하러 이까지 내려왔어.”

그녀의 질문에 류미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부인의 의상이기도 하고 제가 손대기 좀 그래서요.”

“네가 하면 내가 뭐라 하겠나. 걱정도 팔자다. 네 할머니 성격 빼다 박아서.”

“할머니랑 비교하지 좀 마세요.”

“비교는 무슨 똑같은데.”

둘의 대화를 듣는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미리 씨랑 박주선 장인이랑 성격이 비슷하다고……. 위험한데.’

“사장님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할머니랑 다르거든요.”

“네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거짓말 마요. 꼭 생각하실 때 멍하니 바닥 보시잖아요.”

“아 제가 그랬나요.”

우리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자.

자수장이 웃으며 서랍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내 오셨다.

“다들 조용하여라. 집중해야 하니까.”

그녀는 의상에 흰색 팬으로 민들레를 그려나갔다.

디자인된 민들레보다는 살짝 작았지만 내가 그린 스케치를 옮겨놓은 듯 정확했다.

“대단하시네요.”

“선생님 그림 옮기는 솜씨 대단하세요. 미술을 전공하셨어도 크게 성공하셨을 거예요.”

“조용히 하라 했다.”

“네….”

그림은 모두 완성한 그녀가 상자에서 엄청나게 오래되어 보이는 바늘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방 안 가득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무리가 나타났다.

‘빛이 왜?’

주위에 있던 한명숙과 류미리의 행동이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그리고 아득한 밝은 빛이 내 눈을 집어삼키려 다가왔다.

“여긴.”

궁궐 내부의 모습이 내 눈에 비쳤다.

주위는 아득히 어두웠고 작은 호롱불 하나에 기대어 누군가가 옷을 여미고 있었다.

“자네인가?”

“이 사람 귀도 밝네그려.”

“어찌 이 시간에 찾아왔는가?”

“자네가 하는 수 한 폭을 구경하려고 왔지 않겠나.”

그들의 대화와는 다르게 무거운 공기가 어두운 공간에 가득 찼다.

“그래서 어찌할 생각이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이 일만 하고 인제 그만할 걸세. 가족들을 지키고 싶네.”

“그래 자네는 그 길을 걷게나 내가 자네 몫까지 열심히 함세. 그러니 마지막 한 수는 자네에게 맡김세.”

순간 호롱불을 지나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본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침선장….”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일들이 꼬여버린 걸까.

두서없이 영상이 흘러나오는 나로서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침선장이 사라지고 자수를 놓고 있던 남성이 혼잣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 한낱 실과 비단도 얽히고설켜서 하나가 되는데 어찌 이 나라의 대신들은 백성을 짓밟고 왕조를 무너트리는가….”

그는 무거운 말을 남기며 자수를 이어갔다.

내 눈에 비치는 모습은 소매 부분으로 불꽃과 꿩으로 보이는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옷이길래?”

그는 바늘 하나의 온 정신을 집중해 가며 바느질을 이어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마지막 문양인 수초모양을 수놓고 나서 옷과 바늘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완성된 커다란 옷을 고이 개어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발짝 두 발짝을 물러나더니.

옷을 향해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저 옷이 뭐길래. 저러는 거야?”

절을 한 번 크게 올리고는 커다란 함을 들고 나타났다.

유심히 내부를 바라보니.

신비하게도 함의 상단과 하단 부위에 울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 액체인듯하다.

그는 커다란 옷을 고이 접어서 함 속에 넣고 열쇠로 함을 걸어 잠갔다.

나는 이 함이 무엇인지 인제야 알 수 있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저 함만은 뚜렷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저 함!”

저 함은 침선장이 참변을 당할 때 들고 있던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그 일이 있기 전의 영상이 분명하다.

“옷이 들어있었구나.”

드디어 가장 큰 의문이 풀렸다.

함 속의 내용물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에 쓰이는 옷인지는 알 수 없다.

“옷인 건 분명해 졌고. 저 액체장치가 되어있다는 건 열쇠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내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

주위의 어둠이 내 눈 앞을 가리며 영상이 끝이 났다.

“사장님?”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닙니다.”

내 눈앞에는 바늘을 들고 하염없이 하얀 꽃잎은 수놓는 자수장의 모습이 드리웠다.

‘저 바늘이 영상 속에서 쓰이던 바늘이란 건가?’

나는 이제야 작은 그림 한 조각을 맞췄다는 거에 짜증이 밀려왔다.

이때까지 함 속의 무언가를 찾기만 하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있지 않냐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정작 그걸 알고 나니 더 복잡해졌다.

‘함 속의 옷은 뭐고.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데.’

고민해본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이 영상들이 흘러나오고 하나하나 사건을 해결해 나갈수록 작은 퍼즐들이 맞춰진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내 생각이 정리될 때쯤.

한명숙 선생님의 작은 민들레 하나가 완성되었다.

“자 한번 보게나.”

“네.”

나는 한명숙이 앉아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드레스의 치맛단을 확인했다.

정말 완벽한 자수였고 마치 생화를 뜯어 붙여놓은 듯 생동감이 넘쳤다.

마치 식물이지만 살아있는 생물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생동감을 더해 주었다.

“대단하세요. 마치 진짜 꽃이 바람에 휘날리는 거 같습니다.”

“저도 한번 봐요.”

내 표현에 놀란 류미리가 내 옆으로 다가와 자수를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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