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200)

“없어…. 다행이다.”

다행히 우리가 숨겨둔 일련번호까지는 카피하지 못했다.

나는 뜯어진 가죽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폈다.

‘분명 도면의 파일이 존재할 텐데. 찾아서 없애야 하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을 그때.

“팀장님 이 안에 컴퓨터 있는데요.”

“잠시만.”

나는 경찰의 말을 듣고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팀장이라는 경찰관이 나를 막아 세웠다.

“신고자분이시죠?”

“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나가주세요.”

“잠시면 됩니다. 저희 브랜드 디자인이 도용돼서요.”

“하……. 어차피 사건 종료되면 다 삭제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나가 계세요.”

“네….”

나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공권력을 믿을 수밖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기로 했다.

온리 원 백의 철형을 프레스기에 가로로 올려두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순간 쇳덩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는 프레스가 작동을 멈추었다.

“끝났네요. 가시죠.”

“하. 사장님이랑 있으니까 몇 년을 늙는 거 같아요. 이걸로 끝난 거죠?”

“아직 모르겠어요. 여기 말고 다른 제조 공장이 있을 수도 있죠. 일단은 잘 마무리된 거 같네요.”

우리는 담당 형사에게 말을 남기고 회사로 돌아왔다.

.

.

.

다음 날이 되어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G20 정상회담 1.

* * *

어제에 있었던 일이 뉴스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언론을 시작으로 블로그와 인스타까지 아리raM의 누명이 벗겨진 이야기로 가득 찼다.

“짝퉁 가방과 의류를 제조한 일당이 무더기로 잡혔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종서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네 현재 종로경찰서에 나와 있는 김종서 기자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어젯밤 10시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모두 검거되었습니다.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에도 두 개의 공장을 더 운영 중이었고 새벽 시간 빠르게 대처한 경찰에 의해 모두 일망타진되었습니다.”

“피해를 본 브랜드들도 많았겠군요.”

“그렇습니다. 샤네르, 루이바통 세계 각국의 명품과 현재 떠오르는 기업 아리raM까지 고가의 가방을 제조‧판매했습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300억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나는 흘러나오는 뉴스를 꺼버렸다.

“쌤통이다. 하 이제 일을 해야지.”

곧 있을 G20에 쓰일 영부인의 의상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수제로 제작해야 하기에 디자인작업을 더는 늦출 수 없었다.

내가 한창 자료를 찾아 디자인을 시작하려는 그때.

“사장님!”

“네. 무슨 일이세요? 저 부르실 때마다 무슨 일 있나 조마조마하네요.”

“그런 건 아니고요. 이거 한번 보세요.”

그녀가 내미는 휴대전화 화면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누가 이런 짓을? 초상권 보호 좀 해주지….”

“그래서 더 좋은 거죠. 얼굴이 나와서.”

영상에는 내 얼굴이 흐릿하게 나왔고 공방 주인의 신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얼굴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 저 여자 아리raM 동영상에 소리 지르던 그 여자 아님?

└ 맞네! 그 돼지 아줌마 뭐야 그럼 짝퉁 만들려고 그 소란을 피운 거야.

└ 대박 근데 저 뒤에 남자는 누구냐? 개 잘생겼는데.

└ 저거 아리raM 대표 아니냐 차진혁인가.

└ 맞는 거 같은데.

└ 뭐야 저놈이 저 여자 잡은 거야?

└ 그럼 아리raM 가방은 별 이상 없는 거예요. 님들?

└ 어제 동영상 안 봤냐. 뉴튜브 좀 봐라.

네티즌과 고객들의 반응이 다시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뉴튜브 영상 올린 사람도 미안하다고 영상 내리고 사과문 올렸어요. 왠지 네티즌들이 헛소문 올렸다고 댓글 폭탄 터트린 거 같아요.”

“정말요?!”

“네, 아침에 쉰 소리로 전화 와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사장님 뉴튜브 조회 수가 200만 명 돌파했어요. 축하드려요.”

“……네. 뭐 좋은 거죠. 광고도 되고.”

“앗 데이비드도 고맙다고 하던데요. 정기구독자 수가 하루 사이에 상당히 늘어났다네요. 우리 매출도 일정 부분 상승했습니다.”

“서로 잘된 거네요.”

그녀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영부인의 의상 디자인에 집중했다.

“서로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만드는 게 좋겠는데.”

특별한 일을 특별한 의상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민들레 수를 디자인에 채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형 드레스로 변경시키고 스와브로스키를 이용하면.”

전체적인 기초는 H형 드레스로 핏 전체가 편안하게 아래로 떨어지는 스타일이다.

무난하고 단아한 느낌이 강하게 들 거다.

‘이러면 밋밋하니까.’

나는 밋밋한 코디를 가죽을 이용한 벨트를 채용해.

트렌디함을 집어넣을 생각이다.

“처음과 끝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은데….”

내가 잠시 고민에 빠져있는 순간.

류미리가 내게 다가왔다.

“사장님 S/S 패션위크 의상 총합본 보내 놓았습니다.”

“네 확인할게요.”

“영부인 의상 새로 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때 참 예뻤는데.”

류미리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려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내 디자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고 계시는 거 혹시 플라워 프린팅이에요?”

“프린팅이요 무슨. 이런 고급의상에 프린팅을 어떻게 해요.”

“그렇죠. 그럼 자수를 넣으실 건가요?”

“네 그럴 생각이에요.”

“원단은?”

“한지 원단으로 해볼 생각 중이에요. 의미가 좀 있어서요.”

평생을 한지장으로 살아온 이지석 선생님의 모든 것.

그걸 영부인이 입게 될 드레스에 담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무슨?”

“제가 자수장이신 한명수 선생님 제자거든요. 제 부탁이라면 직접 해주실 거 같은데.”

내 생각이 짧았다.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류미리는 침선장의 손녀로 어릴 때부터 여러 장인의 손을 거쳤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복과 가장 관련이 깊은 자수장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류미리가 자신을 자수장의 제자라고 말할 정도면 그녀의 실력도 분명 훌륭할 거다.

‘장인이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하지만…. 류미리가 직접 한다면?’

“직접 해보는 건 어때요?”

“제가요?! 그래도 영부인 의상인데 자수 장인이 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하…. 그래요. 그럼 자수장 선생님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

“네 제가 연락해둘게요.”

* * *

이른 시간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영부인의 호출에 나는 일찍이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왔다.

“영부인이랑 약속이 되어 있는데요.”

“혹시 아리raM 대표님이십니까?”

“네.”

“일단 신원만 확인하고 문 열어드리겠습니다.”

민간인의 통행이 엄격히 막혀있는 청와대이기에 검문은 필수다.

나는 무사히 정문을 통과해 청와대 내부로 이동했다.

내가 차를 주차하고 내리자.

유해수가 나를 찾아왔다.

“오랜만이네요. 차 대표님.”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부터 죄송하네요.”

“뭘요 제 일인데요. 따라오시죠.”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청와대에 마련된 귀빈실로 들어갔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여사님 곧 오실 겁니다. 오늘 외부일정이 있어서 오랜 대화는 삼가세요.”

“네.”

나에게 말을 남기고 유해수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영부인과 대통령이 함께 귀빈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이네요. 차 대표.”

“안녕하십니까.”

이른 아침이지만 깔끔하게 차려입은 대통령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정중하게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디자인이 완성됐다면서요. 아내가 얼마나 기대하던지 어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저번에 제가 실수를 해서 이번에는 꼭 기대에 부응해야죠.”

“별말씀을 저번 것도 마음에 들었다고 하던데요.”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영부인이 슬며시 앞으로 다가오더니 대통령에게 말을 이었다.

“당신은 차 대표 부담가지게 왜 그러신데. 내 손님이니 볼일 봐요.”

“하하하 그런가. 알겠네. 둘이 대화 나누게 나는 집무실에 있을 테니.”

문명진은 너털웃음을 남기고 귀빈실을 빠져나갔다.

“차 대표 괜히 저 사람 와서 불편했죠?”

“아닙니다. 저야 영광이죠.”

“그렇게 말해주면 우리야 고맙죠. 다들 어려워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부담가질까 봐 걱정했는데 가져온 디자인 한번 볼까요?”

“네.”

나는 일주일 동안 최대한 의상 디자인을 손봤다.

그녀가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을 삭제하고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내가 한 장의 최종 시안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흠…….”

“어떠십니까?”

한참 동안 그녀는 의상 디자인을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다.

그런데 잠시 후.

눈이 붉게 물들더니 눈물이 조금씩 최종 시안에 떨어졌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아프세요?”

“아니요. 너무 좋아서. 그리고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제가 실수했네요.”

“네….”

“우리 어머니는 이런 옷 한번 입지도 못하고 돌아가셨거든요.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네요. 너무 이뻐요.”

내가 디자인한 영부인의 최종 드레스는 H라인의 일자형 드레스다.

허리를 감싸는 벨트를 V자 형태로 만들어 떨어지는 부위를 감싸주어 더욱 센시티브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드러난 어깨를 숨길 수 있는 실크 롱 스카프가 더 고풍스러운 느낌을 살려주고 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애 아빠랑 같이 서 있으면 그이가 더 돋보일 거 같네요.”

여념 없이 대통령의 내조를 생각하는 영부인의 모습에 정말 둘의 사이가 질투가 날 정도였다.

“그리고 이 꽃 자수 민들레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정말 감동적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사님 제가 붙여놓은 원단 한번 만져 보시겠어요.”

“원단이요?”

최종 시안에는 의상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샘플 원단을 부착시켜 두었다.

“한지? 인가요.”

“한지 섬유라고 하는 겁니다. 이지석 장인이 개발한 원단의 일종입니다.”

“원주에 한지 장인분이요?!”

“네, 두 분의 오래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디자인입니다. 치마 밑단을 보시면 전면에는 스와브로스키를 부착해 민들레 씨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연상시키게 디자인했습니다.”

“그러네요. 뭔가 했는데.”

“민들레 씨가 바람을 타고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민들레꽃밭이 아름답게 피어나듯 나타날 겁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부인이 내 손을 부여잡고 힘을 주었다.

그녀의 마음에 민들레가 피어나듯.

나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셨다.

“고마워요. 마음에 무척 드네요. 이대로만 만들어 주세요. 제가 비행기 내릴 때도 파티에 참석할 때도 입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아 맞다.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거 있죠.”

“네.”

“제가 말했는데. 애 아빠도 차 대표가 함께 G20에 가줬으면 했다네요. 저희 일정이 끝날 때까지 함께해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저는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오늘은 일정이 조금 바빠서.”

“네, 의상제작 완성되면 제가 그날 직접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럴 거 없이 떠나는 날 들고 와요.”

그녀가 귀빈실을 빠져나가고 나는 서류를 챙겨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유해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되신 모양입니다. 표정이 좋으신데요.”

“네, 잘 풀린 거죠.”

“그러고 보니 차 대표님도 인도네시아로 가신다면서요.”

“네, 팀장님은 안 가십니까?”

“저는 이번에는 못 가게 되었습니다. 곧 아내가 출산하거든요. 2팀장이랑 3팀장이 따라갈 겁니다. 그리고 그쪽에 경호원들도 있으니 걱정 없을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나가시죠. 차 있는 데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그의 배웅을 받으며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이제 제작만 하면 되겠는데.”

* * *

원단은 원주에 의뢰했다.

그런데 영부인의 맞춤복을 만든다니 원단비도 받지 않고 보내셨다.

“선생님 물건 잘 받았습니다. 근데 원단비를 받으셔야….”

“무슨 소리야! 그런 소리 말어. 영부인이 어떤 분이신데 우리 할아버지 은인의 자손 아닌가. 그 정도는 해야지. 필요하면 또 연락하고 차 대표 고마워 내가 못하는 걸 자네가 대신해주니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다음에 원주 오면 내가 진짜 비싼 소고기 사줄 거니까 밥도 먹지 말고 부모님이랑 같이 와. 애인 있으면 데리고 오고.”

“네 선생님 그럴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