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200)

안현수는 HH엔터테인먼트로 이동하고 두 달 만에 실장으로 승진했다고 들었다.

그가 관리하는 모델만 3명에다.

신인 발굴에도 특별한 능력을 보인다고 전달받았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나 좀 쉬고 내일 오후부터 다시 드라마 촬영 들어가야 해서요.”

“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에이 아닙니다. 저희가 신세 진 게 얼만데요. 하나야 가자.”

“오빠 사장님이랑 디렉터님이랑 차나 한잔하자.”

“안 되거든 너 쉬어야 하니까 다음에 해.”

“칫.”

그의 말에 장하나가 짐을 싸 들고 나에게 인사한 뒤 암벽장을 빠져나갔다.

둘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친오빠와 여동생 같았다.

티격태격하지만 서로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다시 영상을 확인했다.

“이대로 편집만 잘해서 올려주세요. 신 디렉터님은 홈페이지랑 인스타에도 같이 올려주세요.”

“네 그럴게요.”

우리가 이야기를 이어갈 때쯤.

박무식이 다가와 말을 이었다.

“차 대표님 반응 뜨거운데요. 제가 아는 인터넷 신문 기자 몇 명이 연락 왔는데. 인터뷰하실래요?”

“아니요. VOKE 6월호 발행될 때까지 인터뷰 안 하겠습니다.”

“오호. 저희 잡지사 생각도 해주시는 겁니까. 감동인데요.”

인터뷰의 중복으로 잡지사의 매출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박무식에게는 큰 도움을 받은 거였기에.

나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감동인데요. 그럼 제가 정정 기사 몇 개 실어드릴게요. 이 정도는 6월호 메인 브랜드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래만 주시면 감사하죠.”

나와 신지혜는 암벽등반에 사용한 가방을 챙긴 후. 암벽장을빠져나왔다.

“회사로 가실 거예요?”

“아니요. 그 공방으로 가시죠.”

“너무 늦었는데?”

“원래 불법적인 일은 밤에 일어나는 법이잖아요.”

“어휴…. 말이나 못 하면.”

“네?!”

“아니에요. 출발합니다.”

* * *

“아직 불이 켜져 있네요.”

“그러게요, 벌써 10시가 다 되었는데.”

강북에 있는 허름한 공방이다.

그런데 입구에서 보이는 공방 내부는 작고 별 특별한 게 없었다.

우리가 공방에 들어서자.

온몸에 문신한 뚱뚱한 남자와 컴플레인 고객이

커튼은 젖히고 함께 나타났다.

“김말숙 고객님이시죠?”

“누구세요?”

“아리raM 대표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컴플레인 건으로 찾아왔는데요.”

“아…….”

순간 공방 주인인 김말숙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던 남자의 팔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잠시만요.”

“왜 이래?!”

“잠시만!”

그들은 속삭이더니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뭐 한다고 안 나와요?”

“저도 모르죠. 증거 은폐라도 하나.”

주위들 둘러보니.

일상적인 공방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가죽용 재봉틀, 널브러진 가죽 도구들.

‘가방을 하나만 만들려고 그런 쇼를 했다고? 절대 아닐 거야.’

만약 수강생의 요청이나 주문이 들어온 가방이라면 치수와 외형만으로 비슷하게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김말숙은 정품가방 전체를 해부했다.

그리고 정품 넘버가 찍힌 위치와 형태까지 확인했다는 건 가방 패턴을 복제해.

대량으로 판매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커튼 뒤에 뭐가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커튼 가까이 다가가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답답해서 안 되겠네요. 5분 안에 안 나오면 경찰에 신고하세요.”

“어찌하시려고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신지혜를 뒤로하고 커튼을 젖혔다.

커튼 반대편으로 들어서자.

“뭐야….”

김말숙 고객님과 큰 덩치의 사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귀찮게 하네.”

과거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짝퉁 제작소를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들은 마피아와 연계해 아시아권과 미주권에 물량을 뿌리는 집단이었다.

“하여튼 나쁜 짓 하는 것들은 하는 짓도 똑같아요.”

짝퉁제작소는 엄청난 물량은 숨어서 제작했다.

대놓고 하기에는 브랜드의 눈치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 채소 가게나 선물 가게를 위장해.

짝퉁을 제작했다.

“이쯤에 있을 텐데.”

내가 전체의 벽 조심스레 살살 두드리자.

어느 한 부분에서 시멘트의 묵직한 소리가 아닌 나무를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구나.”

가벽이다.

임시 벽을 만들어 비밀공간을 만든 거다.

경찰이 단속을 나온다고 해도 절대 들키지 않기에 많이들 쓰는 수법이다.

분명 반대편 건물은 확장해서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다.

“이게 반대편 집이랑도 연결이 되어있나 본데.”

나는 다시 커튼을 젖히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디로 도망쳤네요.”

“네?!”

“경찰에 연락해 주세요. 폭행 사건으로 사람이 반쯤 죽어간다고.”

“네?”

“이제부터는 공권력의 힘을 빌려봐야죠.”

“아….”

“그리고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거예요. 자기들이 도망쳐봤자. 어디 가겠어요.”

돈을 들여서 차려놓은 작업장을 쉽게 버리고 갈 수 없을 거다.

짝퉁을 만드는 과정도 진품과 흡사하게 복잡하고 가죽 도구도 똑같이 든다.

그런 이유에 그들은 쉽게 이곳을 버리지 못할 거다.

“카피한 가방을 새 걸로 바꾸러 오는 사람이 이곳을 버린다고 천성이 어디 가겠어.”

나는 가게를 빠져나가.

공방 양옆으로 있는 가게들을 확인했다.

하나는 공실이고 하나는 슈퍼마켓이다.

나는 가벽이 위치한 방향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젊은 남자가 계산대에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우유 좀 사려고 그러는데.”

“우유요……. 우유가 있나.”

“저기 있네요.”

나는 작은 냉장고에 가서 우유를 꺼내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11월…. 먹고 죽으라는 거지?’

현재 5월 초다.

그렇다는 건 6개월이 더 지났다는 소리.

나는 우유를 들고서 가게를 훑어보았다.

‘작아. 공방보다 더 작게 개조했네.’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이곳이 가죽공방과 연결된 작업장이라는 것을.

“계산이요.”

“네?!”

“얼마냐고요?”

“흠……. 2천 원이요.”

가격도 모르는 게 계산대에 앉아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우유를 그 자리에서 오픈시켰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아 잠시만요. 제가 먹을 게 아니라서요.”

“그럼?!”

“네가 먹어야지. 이거나 먹어라.”

나는 우유를 상대의 얼굴에 부어버렸다.

얼굴에 썩은 우유를 묻히고 허둥대는 그를 밀치고는 나는 몸을 던져 남자의 뒤편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이구 완전 짝퉁 시장을 만들어 뒀네.”

“이 미친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공방에 있던 문신남이 나를 발견하고 욕을 뱉으며 달려왔다.

“왜 때리게?”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아니나 다를까 식식거리며 주먹을 날린다.

나는 몸을 숙여 그의 주먹을 피한 후.

머리로 그의 턱을 가격해버렸다.

윽!

“막 들이대고 그래.”

내 눈앞에는 쓰러진 문신남과 외국인노동자 3명, 부하로 보이는 건달 2명 그리고 컴플레인을 건 김말숙 고객님이 보였다.

그리고 각종 브랜드의 가방들이 가판대에 놓여있다.

‘참나 샤네르에 루이 바통에 다올….’

“다들 조용히 있어. 경찰이 곧 올 거니까.”

나는 일어나려는 문신남의 배를 있는 힘껏 까버렸다.

그러자 배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구르고 난리가 났다.

문신남의 부하들은 주위에 보이는 무기가 될만한 흉기를 들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리라니까.”

흉기는 좀 위험한데.

‘올 때가 됐는데.’

“어이 고객님. 디자인 도용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1억 이하의 벌금인데 괜찮겠어요? 그리고 너희는 나 다치게 하면 가중처벌이야.”

그 말에 나에게 다가오던 부하 두 명도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김말숙은 초조한지 손을 벌벌 떨며 말을 이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했어요. 공방 작게 운영만 하려고 했는데 이놈들이 와서 시키는 일만 하면 큰돈 주겠다고 해서.”

어이가 없는 답변이지만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김말숙의 말이 틀려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 누워있는 문신남이 문제라는 건데.

“야 쳐!”

잠시 고개를 떨구어 문신남을 바라보는 사이 부하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잠겨있던 문을 열리고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쾅!

“경찰이다! 다들 들고 있는 거 내려놔!”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을 뻔했네.”

그때 신지혜가 달려왔다.

“진짜 이런 식으로 하세요. 계속!”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다친 데는?”

“없습니다. 다행히 경찰이 타이밍 맞춰서 와줬네요.”

“…진짜 무모한 거 하나는 일등이네요. 저는 슈퍼 가길래 뭐하나 했어요. 우유 뿌리는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리고 밖에 있던 사람 칼도 들고 있었어요.”

“헉, 정말요!”

“진짜……. 할 말이 없네요.”

나는 신지혜를 진정시키고 주위에 만들다 만 널브러진 가방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렇게 찾다 패턴 가죽을 모아놓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여기 있네요. 온리 원 백 철형이랑 패턴.”

내가 철형을 들어 올리자.

신지혜가 놀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나 똑같이 만들다니….”

“전문가들이에요. 저놈 혼자 한 게 아닌 거 같은데. 일단을 경찰이 알아서 하겠죠.”

나는 철형을 옆에 내려두고 패턴이 되는 종이는 모조리 찢어버렸다.

그리고 가방의 가죽을 뜯어내 일련번호를 확인했다.

“다 찍어놨네.”

정확히 우리가 일련번호를 표시하는 곳에 변경된 일련번호를 찍어 놓았다.

정말 아리raM의 가죽장인이 아닌 일반인이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가죽을 뜯어 가죽 사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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