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습니다. 두 분 다 라인이 이뻐서 사진 정말 잘 나오네요.”
사진작가는 연신 감탄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더욱더 자신 있게 동작을 해가며 사진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 촬영을 지켜보던 데이비드가 말을 이었다.
“작가님 두 분 밀착해서 운동하는 동작도 촬영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네.”
그 말을 들은 시범 트레이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제부터 조금 힘들어지실 겁니다.”
트레이너는 짧게 나에게 말을 남기고는 나를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장하나와 손을 맞잡게 하고 그녀를 팔굽혀펴기 자세로 만들어 버렸다.
“내려가세요. 천천히. 잘못하면 뽀뽀합니다. 조심하시고요.”
트레이너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뭐야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나는 최대한 그녀가 안전하게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움직임 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그런데 장하나의 팔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종일 이어진 촬영 강행으로 힘이 빠져버린 듯 보였다.
“장하나 씨 제가 내릴게요. 가만히만 계세요.”
“네.”
나는 그녀를 프레스를 들어 올리듯 위아래로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촬영은 이어졌고 우리의 역동적인 장면이 카메라에 실렸다.
다행히 사진작가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좋습니다. 다른 자세로 가시죠.”
사진작가의 말을 듣고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다시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올려 그를 막아 세웠다.
“제가 할게요.”
나는 고무 스트랩을 이용해.
그녀의 다리와 복부를 휘어 감은 뒤.
운동의 기본이 되는 데드리프트를 시작했다.
그때 내 자세를 바라보던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말을 이었다.
“운동을 많이 하셨나 봐요. 자세가 완벽하네요. 저게 잘못하다가는 허리 다치기에 십상인데.”
뒤를 이어 나는 몇 가지 커플 운동과 커플 스트레칭을 이어 갔다.
다행히 신속하게 움직인 결과 피트니스 촬영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조금 쉬다가 클라이밍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사진작가의 말에 장하나와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잡아보는 홀드이기에 연습할 요량으로 암벽으로 향했다.
“사장님.”
“네?”
“저도 좀 가르쳐 주세요. 저는 완전 처음 해봐요.”
“저기 보시면 관장님 있는데 저보다 잘 가르쳐 줄 겁니다.”
“아 그냥 좀 가르쳐 줘요. 되게 딱딱하게 구시네.”
“제가요? 저 엄청 부드러운데.”
“저한테만 그러시는 거죠?”
“아닌데…. 뭐 저라도 괜찮으시면 가르쳐 드릴게요. 앞으로 와보시겠어요.”
“진작 그러시지.”
그녀는 다시 해맑게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짧게 시범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 홀드가 있잖아요.”
“네.”
“발이랑 팔을 삼각형이 되게 만들면서 움직여야 해요. 자보세요.”
나는 홀드에 지탱한 다리와 팔을 교차해가며 실내암벽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와….”
3m 정도 올라간 후.
나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엄청 쉽게 올라가시는데요. 그럼 저도.”
“장하나 씨는 올라가지는 말고 밑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부터 연습하세요. 올라가면 위험할 수도 있어서요.”
“네.”
그녀는 곧잘 내가 가르쳐준 자세를 따라 하며 옆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한참 동안 그 동작을 이어가던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진짜 힘들어요. 팔이…….”
“아. 팔을 털어주세요. 근육이 엄청 긴장되는 운동이라 젖산이 팔에 많이 쌓이거든요. 살살 털어주면 좋아요.”
“아…. 근데…. 오랜만에 땀 빼니까 기분은 좋은데요.”
“그렇죠. 꾸준히 운동하면 좋죠.”
“드라마 촬영 때문에 운동할 시간도 없어요.”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시작했겠네요.”
“네 촬영 시작한 지 한 달 됐거든요. 관심 좀 가져주시죠.”
“네. 뭐.”
“아 근데 아리raM은 가방 협찬 안 해요?”
“협찬이라…….”
그녀의 말에 선뜻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협찬이란 말이 굉장히 광고와 홍보에는 좋은 요소긴 하다.
하지만 정말 고급화된 명품은 협찬의 개념이 없다.
명품은 권리, 품위 그리고 차별이다.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을 드라마의 악역이나 비호감 캐릭터가 들고 나타난다면 어떨까?
분명 싫어하는 고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것 또한 컴플레인의 일종이라 사전에 일을 발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아 그래요…. 저한테 물어보던 사람이 있어서.”
“누가요?”
“전지연 씨가요. 지금 저희 드라마 주연이신데 제가 아리raM 메인 모델이라는거 듣고 직접 대기실로 와서 물어보셨어요.”
“전지연?!”
“네. 협찬이 아니라 구매해도 되는데 빨리 좀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던데요. 주문했는데 3달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저한테 막 힘들다고 투정 부리셨어요.”
“전지연 씨라…….”
그럼, 말이 달라진다.
그녀는 자타공인 국민 배우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다니는 모든 게 트렌드가 된다.
“그럼. 협찬이 아닌 선물을 한다고 전해주세요.”
“네?! 진짜요?”
“네.”
“속물!”
“무슨?! 비즈니스인데요. 장하나 씨 것도 준비해드릴 건데 싫으시면 말고요.”
“아. 역시 사장님 최고.”
장하나는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리며 나에게 내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거 같았다.
‘아니지 무슨 생각하는 거야.’
.
.
.
사진 촬영이 다시 이어졌다.
전문 클라이밍 강사가 우리에게 안전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힘드시면 그냥 몸을 줄에 지탱하시면 됩니다. 발버둥 치시다가 홀드나 벽에 부딪히면 더 큰 사고 발생합니다.”
“네.”
“그리고 여자 모델분은 3m 이상을 안 올라가는 게 나으실 겁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고 촬영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장하나가 벽에 매달려 정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하나 씨 표정 장난 아닌데요.”
“그러게요. 배우는 배우네요.”
정작 눈앞에는 2m도 되지 않는 높이인데.
표정만은 히말라야의 정상을 향해가는 모습이었다.
장하나의 촬영이 마무리될 때쯤.
나는 뉴튜브 촬영 기사에게 다가갔다.
“혹시 라이브로 송출 가능한가요?”
“가능은 한데. 위험해 보이는데 라이브로 가능하겠습니까?”
“괜찮으니 라이브로 해주세요. 섬네일은 VOKE 6월호 트레일러(예고 영상)로 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하네스라는 안전장비를 착용했다.
그리고 초크 백을 옆에 부착시켰다.
내가 암벽으로 다가가니 사진작가의 셔터가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뉴튜브 촬영기사가 가까이 붙었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장하나와 신지혜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이런 거였구나. 왜 가방이 걸려있나 했어요.”
나는 그들을 향해 살짝 웃어 보이고는 홀드를 부여잡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5m까지는 홀드를 잡고 올라간 후.
그 이후로 아리raM의 온리 원 백과 메인 시크릿 백에 몸을 맡기고 등반할 예정이다.
“저분 뭐 하는 분이에요?”
“네?!”
클라이밍장 관장이 신기한 광경을 본다는 듯 신지혜에게 슬쩍 다가와 질문했다.
“패션디자이너요.”
“네?! 운동하는 분 아니에요?”
“네…. 왜 그러세요?”
“아니. 클라이밍 아마추어 선수인가 했어요. 너무 잘하는데.”
“그 정도예요.”
“네. 저게 쉽게 보여도 지금 코스 자체가 어려운 코스예요. 저 홀드들이 막 붙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난이도 맞춰서 제가 부착시켜 놓은 건데.”
“……아휴. 원래 쉬운 길도 어렵게 가시는 분이라 그런가 봐요.”
사실 5m까지 쉬운 코스로 갈려 했다.
하지만 뉴튜브 실시간 방송을 하기에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
하는 김에 확실히 하고 싶었다.
“기사님 이제부터 확실하게 찍어주세요.”
“네. 방송 중입니다. 현재 4000명 들어와 있습니다.”
└ 뭐야? VOKE 잡지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웬 암벽등반?!
└ 6월호 피트니스에 클라이밍이라는 거 같은데.
└ 저 사람 아리raM 대표 아님?
└ 맞는 거 같은데.
└ 완전 몸 좋은데…. 얼굴도 잘생겼고.
└ 개 오버다. 저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가방이 그렇게 튼튼한가?
└ 어제인가 아리raM 가방 실밥 잘 터진다고 하지 않았음. 왜 저런 짓 함 위험하게.
실시간으로 채팅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나는 5m가 되는 위치에서 초크를 손에 한 번 다시 묻히고 가방 등반을 시작했다.
“잘 걸려있는지만 확인하자.”
나는 천천히 컴플레인이 걸린 실밥이 터진다는 전면부를 부여잡고 등반을 시작했다.
가방에 온몸을 맡기며 1m 1m를 올라갔다.
└ 미쳤다. 완전 튼튼하네. 아무리 그래도 70킬로는 될 텐데.
└ 컴플레인그건 뭐냐?
└ 그러게.
└ 아리raM 가방 개 튼튼함. 내가 쓰고 있는데. 컴플레인 의심해봐야 함.
└ 어제 올라온 영상에 그 횡포 부리던 고객 우리 집 앞에 가죽공방 한다. 뻥 아님 진짜임 인증 가능.
└ 진짜?
.
.
.
마지막 1m를 남겨둔 위치는 볼록 튀어나온 절벽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나는 오른팔로 그 꼭대기에 매어놓은 온리 원 백의 전면부를 부여잡았다.
“보여줄 게 얼마나 튼튼한지.”
온몸을 하나의 가방에 지탱했다.
그리고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주위에 가방을 하나하나 발로 차 떨어트렸다.
주위에는 더 이상 나를 지탱해줄 가방이 없다.
오로지 내가 오른손으로 잡은 가방 하나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위에 데이비드와 신지혜, 장하나 사진작가까지 함성을 터트렸다.
“악!”
“뭐 하는 거예요!”
“사장님 진짜!”
“대박….”
모두 놀랐는지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가방을 가슴 쪽으로 끌어 올려 정상에 올라섰다.
그리고 멀쩡한 온리 원 백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VOKE 5.
* * *
샤워하고 대기실을 빠져나오자.
신지혜와 뉴튜브 촬영기사가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반응은 어땠어요?”
“어떨 거 같아요. 그렇게 위험한 퍼포먼스를 했는데 어떨 거 같냐고요. 그런 건 상의 좀 하세요. 진짜 가슴 졸여 죽는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말하면 못 하게 하실 거 같아서.”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게 뭐라고 목숨을 걸어요.”
“안전장치 다 했는데요.”
“아휴….”
나는 그녀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촬영본을 확인했다.
댓글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지만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거 한번 보세요. 다니엘 씨랑 사장님 말이 맞는 거 같네요. 컴플레인 고객이 찍힌 영상을 본 사람 중에 그분 소재지를 적어놓은 분이 있더라고요.”
“소재지?!”
“네. 강북 근처에 가죽공방이요.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인가 봐요.”
“……역시. 한번 가보죠. A/S랑은 별개의 문제라서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와 신지혜가 대화를 이어갈 때.
장하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저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오늘 수고하셨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네. 그리고 약속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그럼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그리고 전지연 씨한테 회사로 전화 좀 달라고 해주세요.”
“네. 전달할게요.”
안현수도 뒤늦게 촬영장에 나타났다.
장하나를 숙소로 바래다주기 위해서 온 듯 보였다.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바쁘시죠.”
“네, 그래도 기분 좋습니다. 이제 진짜 매니저 같아서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별말씀을. 한 대표님한테 감사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