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raM은 도용과 짝퉁제작을 방지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일련번호를 찍어 놓았다.
가죽과 가죽이 맞닿는 부분.
붙여놓은 가죽을 뜯어내지 않는 이상 절대 알 수 없다.
진품과 가품을 손쉽게 가려낼 수 있다.
“근데 이걸 새 가방을 보내준다고 해결될 게 아닌 거 같은데.”
다니엘과 내가 한참 동안 상의를 하는 과정 중 또 다른 일이 발생했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무슨?”
“아까 디스플레이 관 들렀던 고객님 중에 한 분이 뉴튜브에 오늘 사건 영상 올렸어요.”
“하….”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다니엘에게 컴플레인 가방부터 제작해달라고 부탁한 후.
사무실로 이동했다.
“네. 죄송합니다. 착오가 있었나 본데. 영상 좀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
“네, 네.”
사무실로 들어가자.
신지혜가 전화를 내려놓고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브랜드에서 전화한 거까지 올린다네요.”
“문제가 커지겠는데요.”
.
.
.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인스타와 블로그에까지 영상이 퍼져나갔고 실시간 순위에 브랜드명이 올라온 상태다,
“전 국민이 다 알겠네요. 가방 취소 요청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어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는 속담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신지혜와 내가 한창 정신이 없는 사이.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사장님. 데이비드예요. 하….”
갑작스러운 소식에 VOKE 편집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차 대표님 VOKE 편집장입니다. 상황 좀 듣고 싶은데요.”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다.
“이상 없습니다. 저희 문제가 아니거든요.”
“확신하신다면 믿고 화보 진행하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거기에 대한 책임도 지셔야 할 겁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신지혜와의 친분을 벗겨낸 비즈니스적인 모습이 강했다.
그 순간 아까 그와 했던 대화 내용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피트니스 부분 추가될 거라 했지.’
“데이비드!”
“네 말씀하세요.”
“피트니스 부분 모델 누가 맡는 거죠?”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지금 몇 명 간추리고 있어요. 왜 그러시죠?”
“그거 제가 하겠습니다. 장하나 씨랑 같이 커플로.”
“커플 피트니스라….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하죠. 장하나 씨 쪽은 저희가 연락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장소는 제가 정해도 될까요?”
“그러시죠. 그 정도야 저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 빨리 처리하세요. 저도 리스크를 가지고 가고 싶지 않거든요.”
그와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신지혜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신지혜가 통화를 종료하고 나에게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번 일을 한 번에 해결할 일이요.”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쟐에게 잡혀 다니며 운동했던 버릇이 남아 있는지.
나는 틈틈이 운동을 이어갔다.
나름 피트니스 화보를 찍는다고 해도 자신이 있었다.
“장하나 씨한테 미안하긴 하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 뒤.
장하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사장님! 정말 이럴 거예요. 갑자기 피트니스 화보라니.”
“죄송합니다. 정말 급한 사항이라 급하게 잡았습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나는 정말 간절했다.
지금의 여파를 잠재울 방법은 이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 요즘 운동 안 해서 몸이 안 좋을 거 같은데 그리고 며칠 엄청나게 먹었는데….”
역시 이럴 때는 칭찬밖에 없다.
“에이 장하나 씨 정도면 충분하죠.”
“지금 제가 화보 안 찍을까 봐 거짓말하는 거죠?”
눈치는 빨라 가지고.
“아니에요. 정말 좋으신데.”
장하나는 인스타로 데뷔한 인플루언서다.
하지만 탑 모델들도 부러움을 살 정도의 남다른 몸매의 소유자다.
충분히 피트니스 화보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이번에 제 부탁 들어주시면 다음에 정말 맛있는 소고기 사드릴게요.”
“오. 그럼 단둘이 가능?”
“…….”
“사장님?!”
잠시 내가 왜?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이 생각을 버렸다.
현재 그녀가 필요하다.
‘뭐 어때? 비즈니스인데.’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네 그러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앗싸 내일 봬요.”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인터넷에 올라온 블로그와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확인했다.
“하 심각하긴 하네.”
* * *
장하나의 드라마 콘셉트 화보로 인해 커플 피트니스 화보 촬영은 늦은 밤으로 정해졌다.
종일 촬영을 하고 우리를 위해 승낙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 인근에 있는 실내 인공암벽장으로 향했다.
“장하나 씨한테 빚진 거 같네요.”
“진짜 하나 씨 아니었음. 저희 오늘 촬영 못 할 뻔했어요.”
“HH 대표님. 저한테도 연락 왔더라고요.”
“진짜요. 하율이 언니 저한테도 전화 와서 애 몸 상태 안 좋은데 무슨 연달아 촬영하냐고 난리였어요. 하나 씨가 괜찮다고 해 줘서 오늘 촬영 가능한 거예요.”
“하……. 다음에 밥 한번 크게 사야겠네요. 가방도 선물로 하나 드려야겠어요.”
“뭐 사장님이. 직접 해주면 좋아하겠네요.”
전날 밤늦게 한하율 쪽에서 촬영날짜를 새롭게 조정하자는 전화가 왔다.
우리 사정을 말했지만 VOKE 촬영이 한두 시간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기에.
피로 누적에 대한 걱정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저희 정말 급해요.”
“……안 된다니까요.”
“하…….”
그렇게 통화를 종료하고 시간이 지나 장하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사장님 내일 오후 괜찮으시죠?”
“네. 당연하죠. 한하율 대표 설득하신 거예요?”
“네. 제가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오후 5시부터 촬영을 강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클라이밍장에 들어서자.
관리자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암벽장 관장입니다. 어제 연락 주셨던 분 맞죠?”
“네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어제 요청해주신 대로 세팅해뒀습니다. 근데 가능하시겠어요? 저게 낮게 보여도 상당히 높아요. 10m는 족히 됩니다.”
“뭐. 괜찮을 겁니다.”
“클라이밍은 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게 보기랑 다르게 기술이 필요해서.”
“네. 천천히 올라갈 정도는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암벽장 관장과의 대화를 듣던 신지혜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무슨 말이에요? 10m라니.”
“아…. 걱정할까 봐 미리 말을 못 했는데. 저기 보이는 홀드에 가방을 걸어서 그걸 밟고 암벽을 올라갈 겁니다.”
“네?!”
신지혜가 내 말에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정석대로 A/S 해주고 사과 공지문 올리면 되는데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저는 우리 가방의 내구성을 믿거든요. 끄떡없을 거예요. 영상제작은 어제 제가 따로 의뢰해뒀으니 확인만 해주세요.”
“설마….”
“네, 영상 촬영해서 뉴튜브에 올릴 거예요.”
“그 방법이 확실하긴 한데……. 안전장치는요?”
“줄 하나는 매달고 올라가야죠.”
“아휴…….”
신지혜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잔소리할 것도 아니었고.
이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VOKE 촬영팀과 뉴튜브 영상 촬영기사도 도착했다.
뒤를 이어 편집장인 박무식도 촬영장에 나타났다.
박무식은 도착하자마자.
홀드에 걸려있는 아리raM의 가방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설마 저걸 타고 올라가려고 하는 거예요?”
“네.”
“……뭘 이렇게까지. 위험할 거 같은데.”
“전혀 안 위험합니다. 그만큼 내구성에 자신 있거든요.”
“뭐 대표님이 그렇다는데 말릴 수는 없고. 저희로서 그림 나오니까 하지 말라고는 못 하겠네요.”
뉴튜브에 클라이밍 하는 영상 올리는 거 괜찮으시죠?”
“네, 어젯밤에 차 대표님 연락받고 확인하니. 이상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쪽에서는 더 좋아하는 눈치예요. 광고가 확실히 되니까.”
박무식은 촬영팀에게 준비하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멀리서 바라보니 신 디렉터와 수다 삼매경이다.
‘무슨 이야기를 맨날 저렇게 한대.’
나는 몸을 풀며 클라이밍장 암벽을 올려다보았다.
“높긴 높네. 오랜만에 하려니 긴장되네….”
내가 고개를 떨구자.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VOKE 4.
* * *
“아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라요. 사람 무안하게.”
“소리도 없이 옆에서 나타났는데 안 놀랍니까? 언제 오셨어요.”
“방금이요. 근데 사장님 촬영장 배경치고 너무 화려한 거 아니에요? 가방은 왜 다 걸어 놓으신 거예요.”
“그런 게 있습니다.”
“뭔데요? 왜 말을 안 해주시지.”
장하나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이으려는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준비해주세요.”
나는 그 소리에 장하나를 뒤로하고 메이크업과 머리카락을 만지기 위해 분장실로 이동했다.
그런 내 모습에 뚱한 표정으로 그녀도 내 뒤를 따랐다.
“이건 콘셉트랑 콘티예요. 헬스트레이너분이 나오셔서 몇 가지 스트레칭 동작을 알려주실 거예요. 메인은 암벽등반이고. 클라이밍은 전문 강사님이 직접 지도해주실 거예요.”
“네.”
촬영팀의 막내로 보이는 사람이 일일이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장하나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어디 안 좋아요?”
“아 저 클라이밍은 처음이라…. 아까 보니 엄청 높던데.”
“다 올라갈 필요는 없어요. 밑에서 올라가는 자세만 취하면 될 거예요. 카메라 구도를 바꾸면 높게 보이거든요.”
“아 그래요. 사장님은 잘 아시네요.”
“뭐. 예전에 조금 해봤어요.”
“진짜 못 하는 게 없는 거 같아요.”
“못하는 거 많습니다. 저도 사람인데요.”
우리는 메이크업 끝내고 협찬을 받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5부 반바지에 상의는 민소매 컴프레션으로 타이트하지만 몸을 단단하게 감아주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의상을 갈아입고 촬영장으로 나가니 장하나가 먼저 나와 있었다.
“…….”
장하나는 상의는 배꼽이 훤히 드러난 탱크톱을 착용했다.
정말 군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레깅스를 입은 하체가 도드라져 S자 몸매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보세요?”
“아니요. 운동 안 했다고 칭얼거리셔서 살찐 줄 알았는데. 그대로시네요.”
“나름 배우예요. 관리해야죠.”
“그럼 1대1 데이트는 없던 거로?”
“무슨 소리 하시는 거죠. 그건 그거죠.”
나와 장하나가 대화를 이어갈 때.
사진작가의 큐사인이 떨어졌다.
그 순간 신지혜와 데이비드도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사장님 멋져요.”
내가 메인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신지혜가 손을 올려 환호했다.
“네…. 에.”
나는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솔직히 고마운 것인지 그냥 예의상 한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콘티를 따라 전문 강사의 자세를 보면서 촬영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