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00)

“수녀님 이제 나눠주시죠. 큰 거는 중학생 친구들 작은 건 초등학생 친구들 거예요.”

“그러지 말고 차 대표님이랑 직원분들이 나눠주시는 건 어때요? 왠지 더 보람찰 거 같은데.”

“그런가요. 네 그러겠습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리나 수녀의 말을 듣고 있던 젊은 수녀님이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얘들아 여기 모이신 분들이 이쁜 가방이랑 너희가 입을 수 있는 티셔츠 만들어주셨어. 그러니 다들 인사하고 가방이랑 옷 받아가.”

“네.”

아리raM의 직원들은 줄지어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만든 물건들을 전해 주었다.

아이들의 미소와 직원들의 미소가 합쳐지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쁘게 입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잘 들고 다녀.”

“감사합니다.”

그때 다니엘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 느낌이 뭐랄까 엄청 좋다 그지.”

“그러게. 정말 좋네.”

기업의 사회공헌과 기부는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실천을 하지 못했다.

이번을 계기로 꾸준히 직원들과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옆에 있던 신지혜와 류미리도 합세했다.

“저도 너무 좋아요.”

“제가 상진이 조져서 사회공헌비 빼내겠습니다.”

“역시 신 디렉터.”

“다니엘 씨 월급에서도?”

“역시……. 내 생각을 뛰어넘네.”

나는 둘을 바라보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비웃냐 사장?”

“아니거든.”

역시 따뜻한 감정을 가진 신 디렉터.

그리고 순박한 다니엘, 부지런한 류미리 그리고 아버지와 여사님들까지.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문득 낯간지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라 다행인 건가.’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수라는 꼬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수야 이제 울면 안 돼.”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인형은 마음에 들어?”

“네, 제 인형이 친구들 것보다 백배는 좋은 거 같아요. 고급스럽고 알록달록하고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니엘이 쓱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만들었다. 나한테 고맙다 해줘.”

“감사합니다.”

“캬. 다음에 또 만들어줄게.”

그렇게 우리의 첫 봉사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생겨 모두가 모였지만 아주 뜻깊은 자리였다.

아리raM의 식구들이 모두 뿌듯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

영부인과 수녀님 두 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셨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뭘요. 저희도 좋아서 한 건데요. 기회가 되면 다시 오겠습니다.”

“말이라도 감사하네요.”

안젤리나 수녀의 말이 끝나자.

영부인이 앞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이었다.

“모두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큰 도움이 못 돼서 마음이 불편한데.”

“별말씀을….”

“그래서 말인데. 제가 저녁 식사 대접하고 싶은데. 저녁 괜찮으세요?”

모두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빤히 나만 바라보고 있다.

“왜 다들?! 저는 가능해요.”

내 말이 떨어지자.

모두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저희도 가능합니다.”

.

.

.

우리는 인근에 있는 영부인이 소개한 한정식집으로 이동했다.

수녀님 두 분은 아이들을 관리해야 해 오지 못했다.

나는 영부인의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여사님. 피곤하실 텐데. 식사까지 준비해주시고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오늘 한 게 없는데요.”

“왜 한 게 없어요. 아까 보니까 주변 청소도 쉬지 않고 해주셔서 큰 도움 됐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요. 차 대표도 어서 식사하세요.”

“네.”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쯤.

나는 조심스레 손수건에 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여사님 죄송한데 아까 그 손수건 어디서 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머니가 보관하고 계시던 아버지의 유품이에요. 근데 왜 그래요?”

“아. 아닙니다. 제가 비슷한 손수건을 본 거 같아서요.”

“그래요 신기하네! 이. 민들레 수 증조할머니가 직접 놓은 거라고 들었는데.”

“증조할머니가요?”

“네……. 신기하네요. 특이한 수라서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녀가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다시 내 앞에 내밀었다.

“자세히 봐봐요. 정말 이게 맞아요?”

“완전히 똑같은 건지는 자세히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이 민들레 수의 꽃잎이 하얀 건 기억이 납니다.”

“수가 같은 손수건이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서 봤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제가 한번 찾아보고 싶은데.”

“흠….”

그녀도 내심 궁금해하는 눈치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여사님.”

“네.”

“혹시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요?”

“사연이라. 거창한 건 아니지만, 예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긴 했죠.”

“그게 뭔데요?”

“음……. 아버지 유품이니 잘 간직하라고 꼭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하셨죠. 진짜 어머니 말대로 좋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는 거고.”

나는 그녀와 이지석 장인의 손수건이 왜 같은지 잠시 생각했다.

첫 영상에서 우두머리가 동생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 영상에서 손수건을 동생에게 건넨 나인철이 일본 순사들에 의해 전사했다.

만약 그 동생이 이지석 선생님의 증조부이시고 나진숙 여사의 할아버지가 나인철이라는 분이라면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여사님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어디 좀 갈 수 있을까요?”

“어딜?”

“그 손수건과 비슷한 손수건이 있는 곳이요.”

“흠…. 내일이라도 시간 내볼게요. 혼자는 못 움직이고 경호원 대동해야 할 겁니다.”

“그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 * *

나와 영부인은 따로 이지석 선생님의 집으로 향했다.

청와대에 거주하는 그녀였기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고 경호원을 대동해야 하기에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먼저 이지석 선생님 집 앞에 도착하니.

이지석 선생님과 부인분까지 단정하게 차려입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선생님.”

“차 대표! 오느라 고생했네. 영부인은 어디 계신가?”

“조금 있으면 도착하실 겁니다.”

“어제 갑자기 의선이 연락받아서 얼마나 놀랐던지 어찌 된 일이야?”

“그게 영부인 오시면 말씀드려도 될까요?”

“뭐 차 대표가 그러자면 그래야지.”

괜히 설레발로 이지석의 마음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영부인이 와서 손수건에 놓인 민들레 수를 확인하는 게 더 정확하다.

만일이지만 정말 두 개가 같은 분이 만든 거라면 영부인도 모르고 있던 증조부의 신원이 정확히 밝혀질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세단 두 대가 골목길로 진입했다.

“도착하셨나 보네요.”

“저 차인가?”

“네 그런 거 같아요.”

두 대의 차가 우리 앞에 멈추었다.

한 대의 차에서 경호원들이 먼저 내려 주위를 살핀 후에야 영부인이 내리셨다.

영부인이 나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다가왔다.

“차 대표. 먼저 도착했네요.”

“네 제가 먼저 와있어야죠. 아 그리고 이쪽은 이지석 한지장이십니다. 그리고 옆에는 부인이시고요.”

내가 옆에 있던 선생님 내외를 소개하자.

영부인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진숙이라고 합니다. 현재 대통령의 아내이기도 하고요.”

“알다마다요. 영광입니다. 이런 누추한 데까지 방문하시고.”

“누추하다니요. 공기도 좋고, 무형문화재라는 대단하신 분을 만나는 자리인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지석의 안내를 받아 넷은 집으로 행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부인께서 차려놓은 간식이 테이블에 한가득 놓여있었다.

“뭘 이런 걸 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셔서. 이 사람이 아침부터 전통 제과하는 분 찾아가서 직접 가져왔습니다.”

“감사드려요.”

이지석은 손사래 치며 어색함을 달랬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는데.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모두 묵언 수행하듯 말이 없다.

이지석 선생님은 한결같이 나를 바라보며 무슨 일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보라는 눈치를 주시고 있다.

그때 나보다 나진숙 여사가 먼저 나섰다.

한마디 말도 없이 주머니 속에 간직했던 손수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이지석 선생님이 화들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이 손수건이 왜?”

“혹시 이 손수건과 같은 손수건 가지고 계신 건가요? 정말 차 대표 말대로 비슷한가요 아니 똑같은가요?”

나진숙의 물음에 이지석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장식장 서랍 안 깊숙이 숨겨둔 철제보관함을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고이 보관해둔 손수건을 꺼내었다.

이지석이 나진숙에게 손수건을 내밀자.

나진숙의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맞네요. 같아요. 증조할머니가 만든 손수건이 맞아요. 재질도 같고 수도 똑같네요.”

그때 나진숙이 두 개의 손수건의 수를 하나로 합치니 한뿌리에서 자라난 두 송이의 민들레가 완성되었다.

그 순간 두 손수건에서 주위를 뒤덮을 만큼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또 이런다고….’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영상의 연속성이라니.

뿜어져 나오던 빛이 사그라지며 주위가 멈추었고 내 눈앞에는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VOKE 1.

* * *

익숙한 풍경이 내 눈에 나타났다.

바닥에는 그날의 처참한 모습이 핏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여긴….”

침선장과 그의 동료들이 총과 칼에 죽은 그곳이다.

주위는 온통 풀과 나무만이 울창하게 솟아 있을 뿐.

인기척이라고는 바람 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귐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이 흘러.

“…….”

풀숲에서 누군가가 쓰러지듯 나타났다.

며칠은 굶었는지 피골이 상접했고 이마와 얼굴에는 피딱지가 가득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하…. 문희?”

박주선이 내게 주었던 열쇠에서 뿜어져 나온 영상에서 보았던 그녀다.

‘어째서 이런 곳에.’

더욱 놀라운 건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얼굴에 젖살이 가득한 앳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굶었는지 젖살마저도 모두 빠져 버린 상태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나무를 지팡이 삼아 안간힘을 써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저는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의 모습으로 겨우겨우 힘을 짜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위는 벌써 노을이 져 가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과 다르게 노을에 비친 나무와 풀들이 어울려 아름답게 그늘졌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한참을 걸어 내려가던 하문희가 큰 바위에 걸터앉았다.

더는 걸어갈 힘이 없어 보였다.

풀썩!

한참 노을 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 내 울어보지만, 너무 굶주려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흘릴 눈물마저도 그녀에게 용납되지 않는 걸까.

그녀는 억울한 마음에 가슴만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 순간 길을 가던 여인 한 명이 하문희를 발견하고 앞에 멈춰 섰다.

배가 나와 있는 것이 보아 임신부인듯하다.

“이보시오. 괜찮소!”

“네. 괜찮습니다.”

여인은 하문희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며칠을 굶었는지 얼굴이 형편없었고 온몸에는 피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거라도 드시오.”

지나가던 여인은 반으로 쪼개진 옥수수 하나를 하문희에게 내밀었다.

하문희는 잠시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었다.

정말 며칠을 물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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