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200)

영부인의 말에 다니엘이 코를 긁으며 어색해했다.

맨날 자기 입으로 자기 칭찬하던 놈이 또 남이 해주니까 어색한가 보다.

“이분은 제 아버지세요.”

“차 대표 아버님이요. 와 대단한 아드님 두셨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실물로 뵈니 엄청난 미인이십니다.”

“그 말도 과찬이시네요. 하하하.”

나는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식구들을 소개했다.

누군가를 소개해준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그 상대가 영부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인사를 한 우리는 재료와 공구를 건물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내 옆으로 영부인이 다가와 질문했다.

“근데 차 대표.”

“네 여사님.”

“다이마루 원단은 어디다 쓰려고 이렇게나 많이 사 오라 했어요?”

“아….”

나는 가방 말고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도 함께 확인했다.

근데 목이 다 늘어나 있었다.

이걸 돌려 입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쓰일 수밖에.

“애들 옷이 많이 낡았더라고요. 저희가 만들면 원단값만 들이면 좋은 옷을 입힐 수 있을 거 같아서 부탁드린 겁니다.”

“차 대표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네요. 저는 이런 생각한 적이 없는데 부끄럽네요.”

“저보다 오늘 같이 온 직원들이 더 따뜻한 분들이에요.”

“차 대표 그거 알아요?”

“네?!”

“차 대표가 좋은 사람이니까 주위에 좋은 사람이 끊이질 않는 거랍니다. 그러니 자신을 더 높게 보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새삼 그녀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녀의 말처럼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때 영부인의 주머니에서 밝은 빛무리가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

“여사님 혹시 주머니에 뭐가 있나요?”

“왜요? 주머니에.”

그녀는 손을 치마 주머니에 넣고 빼더니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저 흰색 꽃잎, 민들레 수…. 같다.’

내가 잠시 생각을 이어갈 때쯤.

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간이 멈추었다.

여느 때처럼 내 눈에는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들고 있던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한 사내가 골목 한중간으로 향했다.

사내의 앞에는 관복을 입은 사람이 인력거에 앉아 있었다.

주위는 그를 지키려는 듯 순사들이 경계 중이다.

“훠이 비키지 못할까. 내가 누군지 알고 길을 막는 것이냐!”

“네가 누군지 잘 아니까 막은 건디.”

“뭐라 이놈이. 여봐라 저놈을 당장 끌고 와 내 앞에 무릎 꿇려라!”

사내는 관복을 입은 사람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그를 향해 걸어 나갔다.

“저놈을 막아라. 어디서 감히 양반의 앞을 막는단 말이냐!”

“양반이나 되는 놈이 나라를 팔아먹고 호의호식한단 말이냐!”

그의 뒷모습에는 기개가 가득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힘과 기백이 느껴졌으며 두려움이 없었다.

사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인력거에 타고 있는 양반에게 크게 외쳤다.

“나라를 팔아먹은 놈! 죄를 달게 받거라!”

말이 끝나는 순간.

사내는 가슴 품에 숨겨놓았던 총을 빼 들었다.

그리고 인력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탄이 불발인 듯 발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젠장!”

허둥대던 순사들도 그의 총이 발사되지 않자.

총부리를 들어 올려 사내에게 총탄을 발사했다.

탕! 탕!

“…….”

상황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챈 동료 둘이 그에게 달려갔다.

가장 어린 동생이 사내를 챙기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명이 자신의 총탄을 인력거를 향해 발사했다.

하지만 인력거에는 아무도 없었다.

암살의 대상자는 벌써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사는 실패했다. 몸을 피해라.”

탕! 탕!

일대는 완전 아수라장이 되었다.

피가 온 사방에 튀어 올랐다.

“형님!”

“먼저 가거라. 나는 뒤따를 테니.”

우두머리가 길목을 지킨 덕분에 젊은 사내는 다른 청년을 부축하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탕! 탕!

연이어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격전이 이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성은 멈추었고 잠시 고요한 적막함이 흘렀다.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갔다.

“순사 놈들을 이쪽으로 유인해야 한다.”

우두머리의 사내는 나무 상자 가득 쌓인 공간에 몸을 숨긴 상태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이 동생들을 대신해 순사들의 이목을 이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걸.

그리고 여기가 죽을 자리라는 걸 말이다.

“느낌이 좋지 않더니 오늘이구나. 그러고 보니 손수건도 그놈한테 줘버렸네. 새끼 고뿔이나 걸리고.”

그는 나무 상자를 무너트리며 크게 소리쳤다.

“나! 나인철이 여기에 있다. 이 일본 순사 놈들아!”

그 순간 흩어져 수색 중이던 순사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죽을 때가 되니 자네의 얼굴이 떠오르는구려.”

탕! 탕! 탕!

일제히 순사들의 총부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우두머리가 총알 세례를 받고 바닥에 쓰러지는 걸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젠장!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죽음을 간접적으로 몇 번이나 겪고 있지만, 적응되지 않았다.

“차 대표. 왜 또 멍하니 서 있어요.”

“그 손수건…….”

“손수건이 왜요?”

“아 아닙니다. 들어가실까요?”

“그래요.”

한지장 이지석 장인 집에서 보았던 영상과 지금 흘러나오는 영상의 연결성.

순간 이지석 장인이 찾고 있는 사람이 어쩌면 영부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갔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 일부터 해결하고 물어보자.’

나는 일단은 지금 일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은 벌여놓은 보육원의 일이 더 급했다.

.

.

.

짐을 모두 옮기고 우리는 제작에 들어갔다.

“나는 재단하고 아버지는 부자재랑 접착 부탁드려요. 다니엘은 재봉틀 맡고.”

내가 재단한 가죽을 아버지께 넘기면 아버지가 부자재를 결착 후.

바로 다니엘이 재봉작업을 이어갔다.

우리는 대량생산에 특화된 듯.

20분에 하나씩 찍어내기 시작했다.

“와 진짜 세 분만 붙으면 가방이 뚝딱뚝딱 나오는 거 같아요.”

“미리 씨 나는 매번 봐도 놀라워. 그리고 저 다니엘 씨가 장인인 게 더 놀랍고.”

“저도요. 다니엘 씨 진짜 장난기가 하도 심해서 장인인 게 아직도 신기해요.”

신지혜와 류미리가 수다를 떨고 있자.

내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지 말고 옷 만드세요.”

“앗, 네.”

그 모습에 영부인도 덩달아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차 대표. 이제 보니까 직원들한테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요.”

“저희 사장님 일할 땐 좀 그런 게 있죠. 제가 그래서 반했다니까요.”

“반할 정도인가요. 하하하 총괄 디렉터라고 했죠.”

“네, 영부인.”

“정말 컬렉션 퍼포먼스 잘 봤어요. 제가 본 컬렉션 중의 최고였어요.”

“감사해요. 기억해주셔서.”

“근데 진짜 아리raM에서는 얼굴만 보고 뽑나 봐요. 다들 미남미녀만 있네요.”

그 순간 아버지가 접착제를 가죽에 바르다 말고 말을 이었다.

“저도 포함입니까? 영부인님.”

“그럼요. 차 대표 아버님도 포함이죠.”

“카. 영부인님도 미녀이십니다.”

나는 저 말을 듣는 순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

그 순간 집을 나오면서 들었던 어머니 말이 떠올랐다.

‘나 때문이 아니야 아버지는 야망이 있어.’

독립운동가의 후손 5.

* * *

모두 바쁘게 자기 일에 집중했다.

다니엘은 재봉틀을 멈추고 바닥의 바운딩 부분을 손으로 바느질 중이다.

대량 생산되는 가방이라도 바닥의 바운딩 부분은 직접 손으로 해야 더 튼튼하기에 이 방법을 택했다.

그때 정수라는 꼬마가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아저씨.”

“응?!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닌데.”

“형.”

자식이 눈치는 빠르네.

“그래 왜?”

“혹시 저 가죽으로 이런 인형도 만들 수 있어요?”

정수가 내민 종이에는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작은 곰 인형이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젊은 수녀님이 정수라는 꼬마에게 다가왔다.

“안정수 가방도 만들어주시는데. 그런 부탁드리면 어떻게 해. 차 대표님이랑 얼마나 바쁘신데.”

“…….”

나는 수녀님에게 고개를 저으며 정수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다. 인형 만들어 줄까? 요새는 이런 게 유행이구나.”

정수는 수녀님의 눈치를 보고 있다.

“괜찮아. 수녀님도 괜찮다고 하셨어.”

수녀님은 내 말을 듣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듯 보였다.

“네, 요새 제 친구들 다 가지고 다녀요. 가방에 달리는 인형 하나만 만들어주세요.”

“그래. 그럼, 여기 친구들 것도 다 만들어줄게.”

“정말요?!”

“그럼.”

내 말에 뛸 듯이 기뻐하는 정수의 표정을 보니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때 다니엘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사장.”

“왜?”

“내가 만들 거다. 인형은.”

다니엘은 선뜻 나서 궂은일을 자처했다.

제작이 어려운 건 아니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그러든지. 가방 바닥은 내가 할게.”

“그럼 내가 엘레강스한 명품 곰 인형을 만들어줘야겠군.”

가방에 달리는 액세서리는 명품에서도 많이 출시하는 품목 중 하나다.

가방, 인형, 로고, 자동차 모양까지 다양하다.

살짝 포인트를 주기 위해 선호하는 고객들이 많아서다.

다니엘 정도면 어렵지 않게 제작이 가능할 것이다.

.

.

.

어느덧 시간이 빠르게 지나.

깜깜한 밤이 찾아왔다.

작은 가방 30개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쓸 수 있는 가방 20개가 완성되었다.

그 뒤로 사이즈별로 티셔츠 150개가 완성됐다.

나는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녀님 이제 애들 불러주시겠어요?”

“고생하셨어요. 애들도 좋아하겠네요.”

수북이 쌓인 가방을 바라보며 수녀님도 신이 난 듯.

아이들이 거주하는 방으로 달려가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갓 학교를 들어간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였다.

내가 안젤리나 수녀님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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