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순간 실례된 행동을 했다는 판단에 사과했다.
“죄송해요. 나쁜 뜻은 아니었습니다. 중국분이 한국에서 전통방식으로 공예를 하고 계셔서 놀랐네요.”
“괜찮습니다. 다들 놀라 하시거든요. 뭘 사러 오셨습니까?”
“아…. 그게.”
나는 명함 한 장을 그에게 내밀며 우리의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주인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작은 테이블에 우리를 안내했다.
“여보. 음료수 좀내와 줘요.”
“네.”
아내로 보이는 분은 손에 장애가 있는 듯 움직이는 형태가 불편해 보였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음료를 내오셨다.
“사모님도 같이 앉으시죠. 같이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내 말에 잠시 멈칫하시더니 이내 남편이 빼준 의자에 앉으셨다.
“아내가 손이 조금 불편합니다. 이해해주세요.”
“개의치 마세요. 저희가 부탁하는 처지인데요.”
둘은 나에게 집중했다.
“저희한테 주문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혹시 저희 브랜드 들어보셨습니까?”
그때 주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부인이 생각이 났다면서 손뼉을 치셨다.
“그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패션쇼 할 때 나온 분 아니에요? 패션 나인인가.”
“맞습니다. 아리raM 대표 차진혁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분이 저희 가게를 다 찾아주시고 감사드려요.”
“별말씀을요. 밖에 작품을 보고 너무 섬세하게 잘 되어있어서 바로 들어오게 된 건데요.”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근데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한국에서 자개 공예를 시작하신 거예요?”
“아 저희는 중국에서도 자개 공예를 했었습니다. 근데 한국의 자개 공예가 훨씬 더 발전되었고 기술도 좋아서 배우러 왔는데 자개가 아닌 한국이라는 나라에 빠져서 이렇게 살게 됐습니다.”
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공예를 배우러 와 문화에 심취했다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시다시피 아내랑 저랑 둘밖에 없어서 그 많은 작업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괜히 누가 되지 않을까요?”
그는 처음부터 겸손한 태도로 우리를 대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더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주인 남자도 아쉬운지 말을 흐렸다.
그때 옆에 있던 부인이 먼저 나서며 우리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죠. 뭐. 그리고 아리raM 대표님?”
“네.”
“대표님이 허락만 하시면 중국 자개 장인들도 한국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요즘은 기성품들이나 값싼 물건들이 많이 나오니 중국에서도 큰돈이 안 되거든요.”
“정말 그게 가능합니까?”
“네. 이 사람 친구들이 다 자개 공예하고 있습니다. 물어봐야겠지만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최소 20명은 오려고 할 겁니다.”
뜻밖의 성과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자개 공예가 발전한 곳이 중국이다.
처음 나전 공예가 발생한 곳도 중국으로.
나전장들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탄생해서 한국에서 꽃을 피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분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시크릿 백 생산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다.
“그럼 저희와 계약하시죠.”
그 순간 내 말을 듣고 있던 신지혜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다.
“아야.”
“사장님….”
그녀는 내 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실력 확인 안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한번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 네 해야죠.”
내가 너무 섣부르게 행동했다.
밝은 빛과 이들이 했던 나전 공예품을 보는 순간.
나는 이들을 실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버렸다.
하지만 신지혜에게는 중요한 사항인 듯했다.
계약을 하게 되면 오랜 시간 함께 작업을 이어나가야 하기에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었다.
“죄송한데. 공예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나는 전과 같이 옻칠이 마무리된 가죽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이 디자인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네.”
주인 남자와 그의 아내는 내가 준 가죽을 들고 작업대로 이동했다.
남자 사장이 자개를 칼로 일정하게 절단해 아내에게 전달했다.
‘손이 불편해 보이는데 정말 정교하게 잘하시네.’
둔해 보이는 손이지만 한치의 떨림과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공예를 이어갔다.
둘의 호흡이 물이 흘러가듯 흐르고 있었다.
“대단한데요.”
신지혜가 둘의 호흡을 보며 사뭇 놀라 하고 있었다.
보는 나도 손에 땀이 차오를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 사장은 실톱을 이용해 목련의 꽃잎 하나하나를 잘라 나갔다.
그리고 아내가 칠죽을 바른 가죽 위에 꽃잎을 하나하나 붙여 나가자.
한 송이의 목련이 두 송이 세 송이로 늘어났다.
“자개를 붙이는 과정은 끝났습니다. 마르는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둘의 틈이 없는 과정 때문인지 작업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벌써요?”
“네. 저희가 손이 좀 빠른 편이라.”
“그래도 그렇지.”
칠죽이 마르는 시간을 기다리며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지혜도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우리의 조건을 듣는 부부는 손을 맞잡으며 기뻐했다.
“요즘 들어 손님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나.”
“아닙니다. 저희도 곤란한 상황이었는데요. 근데 중국에서 오실 수 있는 분들의 실력은 어떻습니까?”
“저희랑 비슷할 겁니다. 공예는 투자한 만큼 실력이 늘어나는데 그쪽에서는 하루에 엄청난 양을 찍어내거든요.”
그의 말에 어떤 스타일로 제작되는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량 생산을 위해 옻나무 진액을 대신해 합성원료인 테라핀과 카슈를 이용할 거다.
빠르게 마르고 합성 화학 원료라 값이 저렴하다.
“그분들은 이곳에 오면 한국전통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습니까?”
“흠…. 조금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이 주 정도면 배울 겁니다.”
“그렇군요.”
“근데 대표님 비자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까?”
“네, 그럼요. 모두 직원으로 채용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공예품의 건조시간이 끝이 났다.
남자 사장은 상사 칼을 꺼내 들고 자개 위에 붙은 옻을 살살 긁어내기 시작했다.
“와….”
“이 정도면 훌륭하네요. 신영길 선생님 정도는 아니라도 엄청난 실력자예요.”
“그러게요. 근데 진짜 어떻게 바로 알아보신 거예요?”
“영업 비밀입니다.”
나는 이 부부와 중국 장인들까지 모두 모인다면 신영길 선생님을 소개해줄 생각이다.
서로가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터였다.
“저희와 계약하시죠.”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지혜와 나는 광주에서 큰 짐을 덜어내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 * *
아리raM은 시크릿 백 3종과 기존의 온리 원 백 30보다 큰 35와 작은 25 크기를 함께 출시하기로 했다.
그로 인해 철형을 새롭게 모두 제작해야 했다.
나는 제도 프로그램인 CAD를 이용해 가방의 세부적인 도면을 만들어나갔다.
한창 집중하는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리raM 대표 차진혁입니다.”
“차 대표님. 경호 1팀 유해수입니다.”
“네 팀장님.”
“이번 주 토요일에 영부인께서 보육원에서 봉사활동 예정이신데. 그때 만나면 될 거 같아요. 영부인도 일정을 빼기가 쉽지 않다고 부탁드린답니다.”
“네 저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럼 다른 궁금한 점이나 질문 있으면 연락해주십시오.”
“아 팀장님 제가 영부인 만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요.”
나는 영부인을 만나기 전 기초적인 디자인은 잡아갈 생각이다.
만나기도 어려운 분이다.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자니 불편한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접촉을 줄이고 그녀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나는 유해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네 말씀하세요.”
“영부인 성격은 어떠세요?”
“의상 취향이라…. 성격은 뭐 털털하세요. 거침없으시고 괜히 대통령님 영부인 아니더라고요. 포용력도 좋으십니다.”
“그럼 평상시 입고 다니는 의상은 어떠세요?”
“대외적일 때야 단색의 정장을 입으시는데 평상시에는 화려하면서도 밝은색을 선호하시는 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요. 보기에 따라 다르지만 트렌드를 따라오려고 하십니까?”
“그 부분은 확실하게 엄청 트렌드에 예민하세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그럼 전 바빠서.”
“네. 수고하세요.”
유해수를 통해 영부인의 취향과 선호하는 스타일을 파악했다.
이제 영부인에 취향에 맞춰 디자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누구 전화예요?”
“청와대 경호팀장님이요. 제가 전에 영부인 스케줄 빌 때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했거든요. 이제야 연락을 주셨네요.”
“와. 영부인까지. 저도 한번 보고 싶은데.”
“다음에요. 저도 처음 보는 거라. 누굴 데리고 가기가 그래요.”
“그럼요. 그럼 영부인 의상은 언제부터 만드시려고요?”
“가방 출시 끝나면 만들어야죠.”
나와 아리raM의 직원 모두 새로운 도약 지점에 서 있었다.
새롭게 출시될 시크릿 백과 온리 원 백의 가격을 모두 새롭게 측정했다.
메인 시크릿 백의 가격은 3백만 원 후반대 그리고 클러치 백의 모습을 한 러브 시크릿은 2백만 원 중반대다.
그보다 크기가 크고 헤비한 느낌이 강한 마이 시크릿 백은 3백만 원 중반대의 가격을 책정했다.
이 가격에 판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아리raM은 한층 더 성숙해질 거다.
하나의 상품이 높은 가격에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의상과 액세서리의 가격도 매우 높은 가격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기준이 잡힐 거다.
‘정말 이제 시작일지도….’
* * *
드디어 자정을 기해 출시된다.
“떨리네요.”
“저도요. 광고도 충분히 했으니까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아요.”
모두 내색은 하고 있지 않지만 모두가 기대하는 눈치들이다.
신지혜 덕분에 새로운 방식의 광고를 제작했다.
CGI 라이브러리.
웹브라우저 안에 새로운 디스플레이 공간을 만들어 생동감 있게 가방 디자인을 보여준다.
콘셉트는시크릿한 숲의 아리raM이다.
우거진 풀숲에서 카메라 앵글이 움직이며 숨겨져 있는 가방을 하나하나 찾는다.
그 모습이 생동감이 있고 궁금증을 유발했다.
350만의 팔로우를 보유한 장하나의 인스타와 아리raM의 공식 인스타 그리고 홈페이지를 통해 광고가 기재되었다.
“와! 이런 게 있네요.”
“새롭게 생긴 기법이에요. 저도 얼마 전에 광고사 사람들 만나서 알게 됐어요.”
“그럼 가상에서 가방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는 거죠.”
“네 영상을 재생시키면 차례로 여러 가방이 나오고 자신이 원하는 가방을 클릭하면 브라우저가 3D로 넘어가서 세세한 포인트까지 구경할 수 있어요.”
내가 겪어보지 못한 광고 방식이다.
최근 들어 이런 방식의 영상기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요즘에는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추세가 아니라서 새롭게 기법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광고 쪽도 신경 써야겠어요.”
“네. 아니면 광고 쪽 직원을 더 충원해주세요. 조금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웹디자이너랑 광고업체도 새로 알아 보주세요.”
“네.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시 시간이 다가왔다.
모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모니터 화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12시예요!”
독립운동가의 후손 1.
* * *
나는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왔다.
시간을 기다리자니 숨이 턱턱 막혀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다.
“잘될 거야.”
만약 생각만큼의 소득이 없다면 시크릿 백은 실패로 돌아간다.
새롭게 가격을 측정해야 하고 브랜드 이미지에 누가 될 수밖에 없다.
다시 원점이 아닌 마이너스라 볼 수 있다.
내가 옥상을 내려와 사무실에 돌아오는 그때.
류미리가 소리쳤다.
“대박이에요! 대박!”
“왜요? 주문량 없어요?”
“…그게.”
그때 신지혜가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한번 보세요. 긴장된다고 피하시지 말고요.”
“네. 피한 거 아니에요. 그냥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온 거죠.”
“그럼 그 답답함 한 번에 뚫어 드릴게요.”
신지혜가 내민 종이에는 30분간 팔려나간 초도 주문 물량이 적힌 데이터가 적혀있었다.
“1500개?”
“네. 5종 주문량이 1500개예요. 완전 대박이에요. 그리고 클러치백인 러브 시크릿의 판매량이 가장 높아요. 방금 400개 팔려나갔어요.”
메인 시크릿 백과 러브 시크릿 백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높다.
뒤를 이어 마이 시크릿 백이 판매량 3위를 차지했다.
“보시면 온리 원 백 사이즈 변형도 잘한 거 같아요. 기존에 판매량이 많아서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어요.”
“그러게요. 확실히 고객들 선호도랑 의견 분석한 게 도움이 됐네요.”
“차후에 이벤트도 한 번 더 진행할 생각이에요. 설문 조사 이벤트 덕분에 광고효과도 톡톡히 봤거든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