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raM은 주문제작 형태이기에 바로바로 구매는 할 수 없지만 좋은 품질의 가죽과 제작 과정을 즉시 볼 수 있는 서비스가 가장 필요했다.
2층은 작업실로 벽을 모두 뜯어내고 통유리로 마감했다.
“사장.”
“왜?”
“작업장 왜 통유리야. 신경 쓰이게.”
“서비스 차원에서 필요한 거야. 제작 과정을 봐야 장인들의 노고와 내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알 거 아니야.”
“아…. 그래도 신경 쓰이는데.”
“그리고 학생들 견학도 할 목적이니까 태클은 사양이야.”
“아 그래….”
“애들한테 이런 문화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렇다면 오케이.”
“네가 오케이 안 해도 할 생각이었거든.”
“독재자 사장 놈….”
“아오. 이걸.”
이번에 새롭게 생각해낸 학생들의 견학 시스템.
전통을 알리는 요소도 있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는 장인들의 커리큘럼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 맞다. 조금 이따 작업실에서 보자.”
“너까지 안 와도 돼. 물량 예약 순으로 잘 나가고 있는데.”
“시크릿 백 출시해야 할 거 같아서. 도면이랑 기성품으로 변형도 좀 시켜야 해서. 회의 좀 해야 할 거 같아.”
“내 자유시간은 파국이구나….”
다니엘은 팔을 넓게 벌리고 소리 질렀다.
나는 그 모습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의류 디자인 회의도 해야 하고.”
그 순간. 엄청난 덩치의 사람이 나를 찾아 아리raM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대통령의 호출.
* * *
손수레 할아버지의 인터뷰로 인해 시민단체와 기업들의 후원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어렵게 살고 있던 독립운동 후손분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 활동까지 일어나는 추세다.
청와대.
“대통령님 특별 연설 준비 끝냈습니다. 바로 접견실로 이동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요. 야당 분위기는 어떤가요?”
“아직 조용합니다. 이 분위기에 쉽게 나설 수 없을 겁니다.”
“그럼 연설문대로 일 추진해주세요. 기획재정부 장관 바로 들라 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대통령 문명진이 기자회견실로 입장했다.
접견실에 모여든 기자들은 서로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서로 줄이 다른 언론인들이 분명했다.
“연설문을 발표하겠습니다.”
순간 카메라가 돌아가고 라이브로 방송이 송출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친애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 문명진입니다. 저는 이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힘든 생활을 지켜보며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습니다. 그런 이유에 독립후손들의 특별지원금을 조성하여 그분들의 노고와 아픔을 달래려 합니다.”
긴 연설문이 끝이 나고 분열되어 보였던 기자들이 같은 마음이 되어 진심 어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기자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반대로 친일파 집안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들도 지금은 우리나라의 국민입니다. 하지만 자국민의 피로 배를 불렸던 재산은 모두 압류할 생각입니다.”
* * *
거구의 사내가 3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왔다.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정장 그리고 왼쪽 정장 깃에 붙어 있는 청와대 경호 배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아리람 대표님 어디 가면 볼 수 있습니까?”
“제가 아리raM 대표입니다.”
다니엘과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이쪽으로 쏠렸다.
“안녕하십니까. 청와대 경호 1팀장 유해수라고 합니다.”
“근데 무슨 일로?”
“대통령님이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바로 가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상태로 멍하니 서 있었다.
대통령이 왜?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옷 좀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네.”
나는 사무실로 이동해 편안한 복장을 벗어 던지고 와이셔츠와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대통령이라니.’
“가시죠.”
“네.”
나는 건물을 빠져나와 청와대 로고가 붙어 있는 승용차에 올라탔다.
.
.
.
나는 경호 1팀장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로 향했다.
그때 유해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청와대는 처음입니까?”
“네.”
“들어가시면 큰 액션은 피해주십시오. 저희 애들이 CCTV로 보고 있는데 좀 예민하거든요.”
“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통령님 참 좋은 분이시거든요.”
“근데 저를 왜 부르신 거죠?”
“그건 제가 답해 드릴 사항이 아니라서요. 자 여기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때 유해수가 집무실 앞에서 말을 이었다.
“대통령님 1팀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그때 우리가 열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대통령인 문명진이 다가와 열어준 것이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인자한 외모에 다부진 몸을 가진 중년의 남성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1팀장님은 잠시 밖에서 대기해 주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문이 다시 닫히고 문명진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문명진이라고 합니다.”
“네, 대통령님.”
“편안하게 하세요. 정치하는 분도 아니고 사업을 하는 젊은 사업가인데 어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일단 앉죠.”
내가 소파 오른쪽에 앉자 문명진이 나를 마주 보며 앉았다.
보통은 상석인 중앙에 있는 소파에 앉을 텐데 의외였다.
“근데 저를 무슨 일로?”
“이번 독립운동가 어르신을 미디어에 올린 게 차 대표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그걸 어떻게!?”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인데 그 정도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닙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죠.”
“괜찮습니다.”
내가 KTB 안혜진 PD에게만 조용히 부탁한 일을 대통령이 알고 있다니 새삼 청와대 정보취득 능력에 놀랐다.
“혹시 어제 제가 한 연설 보셨나요?”
“네. 봤습니다.”
“저희 정부는 독립후손들의 특별지원금을 조성하고 특별히 이번 광복절에 살아계시는 독립운동가분들과 후손들에게 옷을 선물할까 합니다.”
“그렇군요. 근데 왜 저를….”
“이번 컬렉션도 영상을 통해서 봤습니다. 정말 인상적이더군요. 마지막에는 정말 코가 찡했습니다. 그런 이유에 차 대표가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디자이너라면 충분히 제가 원하는 방향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정말 영광스러운 기회라 여겨졌다.
“차 대표. 독립운동가라서 자랑스럽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옷을 만들어주세요. 그 시대 아니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조상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정치권에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국에 대해 알아갈 때마다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독도 문제 등.
많은 미디어에서 떠들고 국민이 소리 높여도 정부는 늘 묵묵부답이다.
그런 이유에 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부탁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네, 말씀하시죠.”
“곧 있으면 G20 정상회담이 시작될 겁니다. 제 아내가 차 대표님 팬이에요. 그러니 영부인에게 의상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스케줄 확인해서 바로 디자인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제 이야기는 다 끝났습니다. 많은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요.”
“아닙니다. 좋은 일인데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정말 고맙죠. 그럼 이만하죠. 저는 일정이 있어서.”
“네.”
“차 대표님 어려운 일이나 부탁할 일이 있으면 1팀장을 통해서 전달해주세요. 그럼 제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대통령님.”
나는 집무실을 빠져나와 다시 1팀장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너무 급작스럽게 많은 일이 벌어져서 정신이 혼미했다.
“혼이 다 빠지신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이게 무슨 일인지.”
“대통령님은 한번 정한 일이면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적응되면 괜찮은데 처음 보신 분들은 어리둥절하실 겁니다.”
“그래도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영부인을 한번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흠. 스케줄 확인해야겠지만 대외활동하실 때 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제가 여쭈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 우리가 타고 있던 승용차가 아리raM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태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신지혜와 다니엘이 나를 맞이했다.
“굿 프레지던트!”
“내가 대통령이냐. 장난 좀 그만 쳐라.”
진지한 표정으로 다니엘 옆에 서 있던 신지혜가 슬며시 다가왔다.
“뭐라시던가요? 대기업 총수들이 초청받는 건 많이 봤는데. 신생기업 CEO가 개인적으로 불려가는 건 생전 처음 보네요.”
“뭐.”
“뜸 들이지 말고요.”
“뭐부터 말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나 있어요? 가장 소름 끼친 거부터요.”
내 말에 둘을 제외한 사무실 직원과 류미리까지 모두 모여들기 시작했다.
“국가기밀이라 말 못 하겠어요.”
“…….”
내가 툭 말을 내뱉고 사장실로 들어가려 하자.
다니엘과 신지혜가 주축이 되어 내가 가는 통로를 막아버렸다.
“막아!”
당연히 거짓말이라는 걸 눈치챈 두 사람이었다.
“알겠어요. 말할게요.”
“진작 그러셔야죠.”
“광복절날 행사 때 독립운동가분들이랑 후손분들 입을 옷 제작 부탁받았어요.”
“네?! 그걸 대통령님이 직접 부탁했다고요. 대박이네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있기는 한데.”
“뭔데요. 빨리 말해주세요.”
“G20 정상회담에 입고 갈 영부인의 의상제작이요.”
“…….”
모두 놀라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놀란 표정이다.
그중 신지혜가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박!”
“그게 뭐라고 그렇게 놀라요.”
“사장님 G20이에요. 세계 경제를 휘어잡고 있는 20개국의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라고요.”
“그렇죠.”
나는 왜 그녀가 흥분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브랜드에 있었지만, 전혀 영향력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나였다.
신지혜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흥분돼 보였다.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에 영부인들이 다 모이잖아요. 그럼 그분들이 시장에 파는 옷 입고 올 거 같아요? 최소 준명품에서 샤네르, 에르메스까지 걸치고 올 거란 말이죠.”
“이름있는 브랜드를 걸친 영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겠죠.”
“정답. 그러니 무리해서라도 우리가 가장 돋보여야 해요. 화려하고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왜? 꼭 다른 브랜드보다 돋보여야 할 필요는 없다.
정도[正道]를 걷는 것도 하나의 좋은 예다.
브랜드마다 각자의 색이 있는데 잠시 튀어 보이려고 그 색을 무색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하지만 그 색을 살려서 돋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다.
“저한테 맡겨주세요. 신 디렉터가 생각하는 대로 될 테니까.”
* * *
늦은 감이 있었지만, 대회가 끝나고 다음 날 경찰서로 향했다.
공방에 불을 지른 이유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이랬는지 알고 싶었다.
솔직히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다.
내 추측이지만 YK 송원일을 의심하고 있다.
대회의 막바지에 공방이 불타버렸고 그 안에 있던 의상들이 전소되었다.
가장 이득은 보는 놈을 꼽으라면 송원일 뿐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안녕하세요. 아리raM에서 왔는데요.”
“아. 여기 앉으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근데 범인이 자백했나요? 불은 왜 질렀다고 하던가요?”
“그게 말을 안 한다네요. 근데 현장에서 잡혔고 방화를 저지른 건 확실하니 바로 구속될 겁니다. 오늘이나 내일 검찰에 넘길 겁니다. 조금 이따 담당 형사님 오시면 이야기해 보시죠.”
“네.”
“마침 저기 오네요.”
내가 젊은 형사와 대화를 이어갈 때 또 다른 형사가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새끼 말 한마디를 안 하네.”
“선배님 이분 아리raM 대표이신데.”
“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