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200)

“김형진 열사, 김우진 열사.”

순간 모든 소리가 묻어져 버릴 정도의 적막이 흘렀다.

흐느끼는 관객도 눈에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속촌이 울릴 정도의 박수 소리와 함성에 나는 소름이 돋아났다.

― 미쳤다.

― 이게 패션쇼라고? 손에 땀이 다 나네.

― 독립운동가분들 이름이었네. 개념 브랜드였네 아리raM.

― 진짜 멋지다.

― 아리람 최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함성 그리고 환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떨리던 심장도 두근거림을 멈추었다.

이제야 나는 이 긴장감이 설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컬렉션이 종료되고 마지막 시상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모든 아리raM 식구들의 함박웃음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

우리 모두 긴장하며 집계 결과를 기다렸다.

컬렉션이 시작하는 동시에 집계방식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된 우리였다.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아닌 오로지 국민들의 평가가 반영된 방식.

우리로서는 정말 다행이었다.

15분 정도의 광고시간이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메인 MC 전형무가 민속촌의 무대에 올라섰다.

“여러분 기대하고 기대하던 한국의 오트 쿠튀르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종이 안에 우승자가 적혀 있는데요.”

전형무가 들고 있던 종이를 오픈하며 우승자를 발표했다.

“우승은!”

* * *

이름이 알려진 독립운동가분들도 있지만 이름을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름 대신 나라의 독립을 염원한 독립운동가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손수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은 작가가 임의로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그 점을 유념해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제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특별한 열쇠.

* * *

* * *

“우승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패션으로 승화시킨 브랜드 아리raM입니다.”

아직 떠나지 않은 관람객과 셀럽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나를 주축으로 아버지, 신지혜, 다니엘, 류미리, 장하나, 런웨이를 장식해 준 모델들까지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했다.

그때 전형무가 마이크를 나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차진혁 디자이너님 우승 소감 부탁드릴게요.”

“여기까지 함께 고생해준 우리 아리raM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큰 영감을 주신 무형문화재 선생님들과 항상 어려운 사람들은 돕고 있는 손수레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차후 계획이 있다면 말해주시겠어요.”

“아리raM은 더욱 한국의 전통을 알리기 위해 세계무대로 진출할 생각입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이렇게 긴 여정의 대회가 끝이 났습니다. 우승자는 브랜드 아리raM이었습니다.”

전형무의 마지막 멘트로 모든 대회가 끝이 났다.

나는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승리의 트로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모두가 무대를 내려와.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축하했다.

그때 멀리서 팔짱을 끼고 심통스러운 모습으로 박주선이 우리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는 류미리의 팔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어서 가봐요. 미리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류미리가 활짝 웃으며 박주선에게 뛰어갔다.

대회의 우승을 가장 간절히 바랐던 그녀다.

가족에게 인정받으며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그녀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내가 고개를 돌리니 류미리가 팔을 들어 올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박선주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차 대표님 축하해요. 뭐라 말해야 하나.”

“무슨?”

“그때는 미안했어요. 그날은 너무 무례했네요.”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잘한 거 없는데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마워요. 그리고 이거 받아주겠어요.”

“네?”

그녀가 내민 작은 보석함.

나는 어리둥절하게 보석함을 바라봤다.

그런데 보석함 속 무언가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이 열쇠의 주인은 차 대표인 거 같아서 받아주겠어요?”

“열쇠라니.”

“내 스승의 스승이었던 조선 시대의 마지막 상의원의 궁녀였던 하문희 선생님이 남긴 유품이에요.”

“근데 이걸 왜 저한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문희 선생님은 여자였지만 침선장의 총애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상의원과 관계된 모두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죠.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말이에요. 그런 이유에 역사는 그들을 폄훼하고 욕보이고 있어요.”

“…….”

“하지만 스승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비밀에 이 열쇠가 답이 될 수 있다며 제 스승님은 한결같이 이 열쇠를 애지중지하셨답니다.”

“열쇠라….”

“저는 이제 늙었습니다. 하나뿐인 손녀는 이제 제 손을 떠났고 차 대표 옆에서 일을 할 테니 이 열쇠의 무거운 짐을 맡아 줬으면 해요.”

내가 이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냐는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나는 고개를 돌려 류미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간절함.

그녀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제가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제야 큰 짐을 덜어낸 거 같군요.”

나는 그녀에게 보석함을 전달받은 후.

함의 머리를 열었다.

그 순간!

보석함에서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빛이 하늘 위로 솟구친 후.

나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간이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아득하기만 한 시간이 흘러가고 내 눈에 선명한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르신!”

“나는 이 함을 가지고 갈 터이니. 너는 이 함의 열쇠를 가지고 가거라.”

“…….”

“어서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정해준 시일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무사히 만나자꾸나.”

“네 어르신.”

내 눈에는 궁녀 차림의 여성 한 명과 관복을 입은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남성의 인상이 낯설다.

“그 사람이야….”

국립민속 박물관 장인들의 공예 전시가 펼쳐지던 그곳에서 흘러나온 영상 속에서 본 사람이다.

한없이 슬픈 모습으로 내 앞에서 총과 칼에 난도질당하며 죽어갔던 그 사람이 다시 영상 속에서 나타났다.

“정확히 열흘 뒤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만나자꾸나.”

“예 침선장 어른.”

두 남녀는 발걸음을 달리했다.

상황은 급박해 보였고 들고 있는 물건을 숨겨야 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나한테 전해주려고 했던….”

남자는 함을 보자기에 동여맨 후 빠르게 사라졌다.

그 순간 침선장과 같은 관복을 입고 있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게냐.”

“그냥 궁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출타하려 합니다.”

“어디서 나에게 거짓을 고하는 것이냐!”

남자는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부여잡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힘에 제압당해 여자는 질질 끌려가듯 남자의 손에 잡혀갔다.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침선장 그놈이 들고 간 물건은 어디 있어!?”

“저는 정말 모릅니다.”

“이년이 아직 매서운 맛을 더 봐야겠구나.”

남자는 책들이 무수히 꽂혀있는 조용한 방으로 여자를 끌고 가 겁탈하기 시작했다.

옷고름이 풀리고 아녀자의 흰 살결이 드러났다.

“순순히 입을 열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에서야 네년의 살결을 맛보겠구나.”

“이러지 마시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발악하는 것이 아주 흥분되는구나!”

그 순간 방심하고 있던 남자의 뒤통수를 누군가가 강하게 후려쳤다.

쾅!

“진영아. 괜찮은 것이냐?”

“흑흑흑…….”

“옷을 추스르거라. 어서 나가자꾸나. 침선장 어르신이 너를 부탁한다고 당부하셨다.”

김진영은 흐트러진 저고리를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잠시 정신을 잃은 남성이 일어나 품에서 단도를 꺼내 휘둘렀다.

“윽!”

“진영아…….”

그 순간 진영이라는 궁녀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문희야. 이거 받거라. 그리고 멀리 도망치거라.”

진영은 있는 힘껏 관리를 감싸 안았다.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한 남자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지만, 진영이 강하게 잡고 있어 허둥거릴 뿐이었다.

하문희는 열쇠를 받아들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예법에 궁녀가 궁에서 뛰어서는 안 되지만 멈추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렇게 영상이 끝이 났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영상이 처음으로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모두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 대표?!”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생각에 잠겨서.”

“하여튼 고마워요. 우리 미리도 그 열쇠도 잘 부탁합니다.”

“네, 선생님.”

나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아직도 정신이 혼란스럽다.

국립 박물관과 이 보석함에 있는 녹이 슨 열쇠, 그리고 침선장이라 했던 남자가 들고 있던 함.

“하….”

세 가지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왜 이런 영상들이 나에게 흘러나오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는 거 같았다.

내가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겨있을 그때 모두가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에요.”

“이제 회사로 들어가시죠. 오늘 축하 파티해야죠.”

“그럼요.”

우리는 그렇게 대회를 마무리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

.

.

우승 소식이 방송을 통해 퍼지자.

많은 사람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친구 놈들이 축하한다고 난리네. 공방 앞에 사람들 몰려들고 난리가 났데.”

“장인 선생님들한테도 전화 빗발친대요.”

모두가 흥분한 상태다.

노력에 대한 보상인 만큼 훨씬 더 달콤할 수밖에 없다.

그때 내 휴대전화에 박창식의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 송영태 클럽 사건도 마무리돼 가는데. 다른 서류 넘겨라. 한 번에 엮어야지 가중처벌로 평생 살게 하지!

이제 묵은 때를 벗길 차례다.

하지만 오늘은 모두를 위해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로 했다.

“우리 거기로 갈까요?”

“어디?”

“저희가 처음 회식한 곳이요.”

“신설동 전집?”

“네.”

“좋아요. 가게 통째로 예약할게요. 그리고 하율이 언니한테도 전달할게요.”

“네 그래 주세요. 그리고 주위에 공방 장인분들도 모두 연락해주세요.”

“당연하죠.”

* * *

모두에게 이틀의 휴가를 주어졌고 우리는 새로운 공간으로 회사를 이전했다.

아버지의 공방은 리모델링 이후 아리raM의 디스플레이 공간과 아버지의 개인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강남은 강남이네.”

주변 상권과 유동인구가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저희는 개인매장이 따로 없으니까. 1층은 아리raM 디스플레이 관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데요.”

“저도 그렇게 계획 중이에요. 인테리어 회사에 말해 놓을게요.”

이제부터 광고효과와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근데 이 건물 얼마에 사들이신 거예요? 꽤 비쌌을 텐데.”

“임대죠. 평생 무료임대.”

“임대인데 평생 무료는 무슨?”

“아……. 그게.”

신지혜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사실 제 건물이에요.”

“네?!”

그녀가 돈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많은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

“사장님?”

“네. 아 잠시 신 디렉터님의 재력에 놀랐어요. 손해 보지 마시고 시세에 맞게 임대료 받아가세요.”

“제가 급하면 말할게요. 그때 챙겨주세요. 제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네.”

진짜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플렉스에 잠시 심쿵했다.

그리고 신지혜가 바라는 이상은 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인테리어 비용이랑 회사 이전 비용 부족하지는 않았어요?”

“네, 사내유보금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대부분 사용했어요. 관례는 아니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어서요. 그리고 해외 진출 건으로 상금 10억이랑 투자비 10억가량은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해뒀어요. 상진이랑도 충분히 상의했습니다.”

신지혜는 유난히 해외 진출에 예민하다.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아리raM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기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녀가 먼저 나에게 설명해줄 거라 믿고 있었다.

“일단 안정화될 때까지는 신경 써주세요.”

“네.”

4층짜리 건물로 공간이 상당히 넓다.

1층은 디스플레이 2층은 장인들의 작업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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