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200)

대회 3일 전 디스플레이 전시관이 철거되며 메인 의상 3벌을 조심히 공방으로 옮겼다.

현재 아리raM 공방에는 컬렉션에 쓰일 소품들과 한국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사용될 의상 모두가 보관되어 있다.

“이제 마지막 컬렉션만 남았네요.”

“그러게요. 두 달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제가 뭐한 게 있나요. 사장님이랑 아버님이랑 다니엘 씨, 미리 씨가 고생했죠.”

완성된 의상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만든 브랜드에 처음 열리는 컬렉션이라니 과거에 꿈꿔오던 일을 차진혁의 몸으로 이루고 있었다.

“3일만 더 고생하죠.”

“3일 뒤면 더 바빠질 거 같은데요. 해외 진출 기획안 만들어야죠.”

“그런가요. 너무 김칫국 마시면 실망만 커질 텐데 괜찮겠어요?”

“김칫국 아니고 확신이에요.”

신지혜는 나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확신할 수 없는 대회다.

사실 실력만으로 우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또 장난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1차전도 그러했고 2차전에서는 누구나 느낄 정도로 편파적이었다.

그렇다면 3차전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자료는 어렵게 구했는데 한번 보세요.”

“뭔데요?”

“제너락이랑 이안섭 하우스 기획안이요.”

“이걸 어떻게.”

“대회 3일 전이기도 하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저도 그 알 사람 중에서 한사람이고요. 일단 보세요.”

나는 경쟁브랜드의 기획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안섭 하우스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제너락의 무대기획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제임스 딘?”

“저도 좀 보고 놀랐어요.”

“세계적인 무대 기획디자이너잖아요. 이 사람이 왜 여길?”

“이 주 전에 미국에서 건너왔다고 하더라고요. 장기계약이 아니고 이번 한 번만 무대 기획해주는 조건인 거 같아요.”

제임스 딘.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다.

전자제품, 자동차 등 신제품이 출시되는 무대를 기획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했다.

나는 그가 기획한 제너락의 기획서를 들여다보았다.

“호수?”

“대단하죠. 저도 좀 놀라기는 했는데 짧은 시간에 준비한 거 같지는 않아요.”

“근데 의상과는 대조되지 않아요?”

“저도 그게 좀 의아하긴 해요. 제너락의 메인 드레스가 다 화이트 계열인데. 그럼 물이 올라타지 않아요?”

제임스 딘의 기획안의 키워드는 백조의 호수다.

말 그대로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를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묻어났다.

물이 발목까지 올라오게 무대를 설치해 마치 물 위를 유영하는 백조의 모습을 나타내고 싶은 눈치였다.

“제임스 딘 이 사람 의상 쪽은 처음인 거 같은데?”

“설마요.”

“제 말이 맞을 겁니다. 기획안은 정말 획기적이고 놀라워요. 근데 흰 드레스만 생각하고 만든 거 같단 말이죠.”

“잠시만요.”

신지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제임스 딘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이에요. 패션 쪽 무대디자인은 처음인 거 같아요.”

“재미있어지겠네요.”

* * *

[속보]

오늘 새벽 3시경,신설동에 위치한 브랜드 아리raM의 공방에서 불이 피어올랐습니다. 인근 소방서의 진화작업으로 현재는 소강상태입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불법체류자인 A 씨로 현장에서 검거되었습니다. 현재 경찰이 불을 지른 연유에 대해 조사 중입니다.

경연대회 [컬렉션] 2.

* * *

급작스러운 소식에 나와 가족 모두 공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정말 흔적도 없이 모든 게 사라졌다.

“젠장!”

컬렉션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떡하니. 진혁아 괜찮니?!”

어머니는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계셨다.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불타버린 자신의 공방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평생을 이곳에서 생활하셨고 모든 추억이 깃든 곳이었기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어머니 아버지부터 챙겨 주세요. 그리고 집에 가서 쉬고 계세요. 저는 괜찮아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버지의 팔을 끌며 집으로 향했다.

나는 어디서부터 일을 해결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 졌다.

“미치겠네.”

불타버린 공방이야 재건하면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준비한 한국의 오트 쿠튀르에 쓰일 메인 의상을 만들려면 최소한 2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원단이다.

모두 프랑스산 최상품의 실크 원단으로 만들어진 의상들이다.

그럼 다시 원단을 구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내가 고민을 하는 그때 멀리에서 다니엘과 신지혜가 달려왔다.

“이게 무슨….”

“사장님.”

그들은 불타버린 공방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멍하니 가만히 공방을 바라보고만 있자 신지혜가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다고 수가 생기는 거 아니니까 새로 구해놓은 사무실로 가시죠.”

아리raM은 컬렉션이 끝나는 기점으로 사무실을 옮기려 했다.

그런 이유에 작업할 공간만큼은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공구며 기구들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다.

* * *

아리raM 직원 모두가 임시 사무실로 모였다.

일단 급한 사항을 정리하고 문제 타개를 위해 의견을 모아야 한다.

“모두 모였어요. 회의 시작하시죠. 무형문화재 선생님들도 조금 이따 도착하신다고 하셨어요.”

“네. 저희만이라도 빨리 회의 시작하죠.”

모두가 한곳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때 신지혜가 말을 이었다.

“포기하기는 아직 일러요. 국산 원단이나 프랑스 원단 취급 업체를 찾아보면 구할 수 있는 방도는 충분합니다.”

신지혜의 말에 제작 담당인 류미리가 말을 이었다.

“대회가 이틀 뒤예요. 구한다고 해도 제작이 어려워요.”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화혜장 황의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를 이어 안윤호, 신영길까지 모두가 무거운 표정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셨다.

“우리가 좀 늦었지.”

“저희도 방금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별소리를 다 한다. 다들 고생하는데 우리도 와야지.”

“근데 손에 드신 게?”

‘원단?’

원단이라고 하기에는 종이 같은 질감이 강하다.

내 눈빛을 읽은 걸까? 선생님이 들고 있던 물건을 나에게 건네셨다.

“이건?!”

“한지야 한지…. 근데 특이하지.”

“한지를 왜?”

“한번 펼쳐봐.”

나는 둘둘 말려있는 한지를 크게 펼쳤다.

그런데 상당히 두꺼운 한지인데도 원단처럼 탄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한지장이 개발한 건데. 한지를 실처럼 뽑아내서 원단처럼 엮어낸 거야. 한지 섬유라고 하더구먼. 풀로도 접착할 수 있고 아주 튼튼해.”

그 순간 고민을 하고 있던 문제점들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재단과 붙임만으로 옷을 만든다면 이틀 안에 20가지 모두 만들어 낼 수 있다.

“더 구할 수 있을까요?”

“그럼, 색을 입힌 것도 준비해놓으라고 했네. 내가 연락해서 바로 보내라고 하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가 들고 있던 원단을 내려놓자.

류미리와 바느질 장인 세 분이 붙어 확인했다.

그들도 모두 놀라며 대단하다는 말을 연이어 뱉어냈다.

“모두 붙임공법으로는 안될 겁니다. 제가 표시해둔 데는 바느질해주세요. 그리고 신 디렉터님은 공구만 빨리 구해주세요.”

“네.”

천운이다.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이 아니라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였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사장님 할 말 있는데.”

“무슨 일이시죠?”

“기획을 바꿔야 할 거 같아요.”

“그게 무슨?”

“뮤지컬이 끝나고 안윤호 장인과 함께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추가하고 싶어요. 저 원단이라면 가능할 거 같은데.”

“한번 들어나 보죠.”

신지혜는 원단을 보는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퍼포먼스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다시 한번 온몸에서 소름이 피어올랐다.

아리raM과 장인들 모두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추진해주세요. 저는 좋습니다.”

“역시 사장님이면 허락해줄 거 같았어요.”

신지혜는 신이 난 표정으로 장인분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전각장 안윤호 선생님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안윤호 선생님 저희 컬렉션에 함께 올라가 주세요. 부탁드려요.”

“응?! 내가 올라가서 뭐 할 게 있다고.”

“멋있는 일이요.”

그때 옆에 계시던 신영길이 안윤호에게 말을 이었다.

“애들이 생각이 있겠지. 빼지 말고 한다고 혀.”

“아하…. 어찌한담.”

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신지혜의 간곡한 부탁에 그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지?”

“네 그럼요.”

나와 류미리는 메인 의상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모든 과정을 숙지하고 있던 류미리 덕분에 패턴 작업이 한순간에 끝이 났다.

“여사님 두 분은 재단해주세요. 그리고 아버지랑 다니엘은 가방 다시 다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프레스도 없고 패턴도 다시 해야 하니까 서둘러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리고 미리 씨랑 남은 여사님은 표시된 부분 바느질해주셔야 합니다.”

모두 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붙임으로 드레스를 제작한다고 해도 70%는 바느질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제부터 시간과의 싸움이다.

.

.

.

쉴 틈 없이 밤을 지새워 가며 20가지 드레스와 소품을 모두 완성했다.

실크보다 촉감은 좋지 않지만 보이는 느낌은 훨씬 고급스러움과 리미티드함이 풍겨왔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이제 남은 일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 뭐. 사장님은 3차전 꼭 우승하고 와요.”

“네 감사합니다.”

류미리 옆에서 밤새도록 바느질한 여사님 세 분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셨다.

그때 신지혜가 사무실로 들어와.

출발 신호를 알렸다.

“다 실었어요. 출발하시죠.”

드디어 마지막 대회가 시작되었다.

* * *

협회 회의장.

긴급이사회 소집으로 부장급 이상이 임원들이 모두 모였다.

“선생님 무슨 일로? 갑자기 긴급이사회라니.”

“자네들이 디자인협회 얼굴에 똥칠하고 있는데 내가 보고만 있을 줄 알았어!”

박주선은 아침 일간 신문 5개를 회의 테이블에 던졌다.

신문에는 디자인협회와 서울시의 공무원들 그리고 한국의 오트 쿠튀르를 비난하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그리고 내가 서류를 하나를 아침 등기로 받았는데 내용이 아주 재미있더군. 그리고 협회 고문으로서 서류 몇 장을 더 준비했는데 안철호 협회장 변명이라도 준비해야 할 거야.”

박주선 뒤에 서 있던 김 비서가 서류 가방에서 YK어패럴과 관련된 브랜드와 협회장의 사인이 들어간 서류를 꺼내 들었다.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1년에서 2년 사이의 브랜드 중 성과가 뚜렷한 브랜드들일 뿐입니다.”

“안철호!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협회장에 앉아있으니 내가 우습게 보이나 보지?”

“고문님.”

“김 비서 설명 시작해.”

“네 선생님.”

박주선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김 비서가 프로젝트에 USB 하나를 연결했다.

그리고 PPT 자료 하나를 열었다.

“현재 보이는 자료는 YK어패럴과 연루된 브랜드 자료입니다. 빨간색은 매출액이고 주황색은 판매 수량입니다. 그리고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입니다.”

그때 안선영이 손을 들고 질문을 이어갔다.

“저 정도 수량을 팔아서 매출 금액이 저 정도로 나올 수 있습니까? 가방이나 의류를 하나에 몇천만 원에 팔지 않는 이상이야.”

“안선영 심사위원님 말이 맞습니다. 녹색으로 표시된 출처를 알 수 없는 금액에 의해 증액된 내용입니다. 임의로 조작되었다고 보입니다.”

“이런 브랜드가 몇 개나 되죠?”

“20개 참여 브랜드 중 16개의 브랜드가 이런 식으로 조작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최종 3차에 오른 이안섭 하우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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