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200)

카메라가 클로즈업되며 전형무가 2번 파티션 앞에 섰다.

“1차전 1등인 브랜드 아리raM팀 앞에 나왔습니다. 모두 집중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은데요. 잠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뜬금없이 사회자가 작업 중인 파티션에 들어왔다.

나는 가뜩이나 예민한데 그의 등장으로 신경이 더 날카롭게 곤두섰다.

“아리raM의 대표이자 얼마 전 브랜드 Han의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쳤던 차진혁 디자이너 인터뷰 한번 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매우 집중한 모습입니다. 대답은 하고 있지만, 눈은 바늘의 끝을 향하고 있네요. 그렇다고 물러설 제가 아니죠. 제가 또 깐족거리는 건 1등 아닙니까.”

에베베베베! 에베베베베!

전형무는 왔다 갔다 하면서 춤을 추고 혼자서 웃으면서 난리 블루스를 떨고 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저 행동에 눈이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

‘아 참자 참자!’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내가 여기서 화를 내면 류미리가 또 움칠하며 긴장할 게 뻔했다.

“대단합니다. 저의 깐족거림도 이겨내면서 작업을 이어가는 이 정신력 장인정신이 묻어나네요.”

‘이제 끝인가 제발 가라 가!’

끝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더니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표님 인터뷰 잠시 하시죠.”

“끝나고 합시다. 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냈다.

내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움찔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전형무에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작업 중에 예민하실 텐데.”

다행히 전형무는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내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는 도망치듯이 파티션을 나가버렸다.

“나나 인터뷰하지.”

아버지는 내심 기대하고 계셨나 보다.

“아버지 저도요. 저도 인터뷰 하고 싶었는데. 왜 사장 놈만 인터뷰 하려고 하는지 어휴.”

둘은 내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배가 불러서 그래. 스타병이야.”

“맞아요. 우리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겠네! 정말 좋겠네.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셔서 오늘 인터뷰 한번 하나 했더니만.”

어휴.

아버지나 다니엘이나 아주 죽이 척척 맞네.

내 앞에 있는 류미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상태에서 바느질을 이어갔다.

오늘만 해도 내 큰 목소리를 두 번이나 들어 긴장한 듯 보였다.

“미리 씨한테 화낸 거 아니니까 릴랙스하세요.”

“네 사장님 저 괜찮습니다.”

“근데 손이?”

“아….”

바느질하는 오른쪽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손아귀에 힘을 주며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다행이네. 멘탈 다시 돌아왔어.’

“다들 조금만 더 힘냅시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내가 파이팅 있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하자.

아버지와 다니엘을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나 때문에 인터뷰를 못 했다는 이유인 듯하다.

그러던 그때 중간 파티션에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경연대회 [의상] 5.

* * *

브랜드 안나수엘라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원단을 밟으면 어쩌자는 거야. 방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때 다니엘이 상황을 지켜보려는 듯. 파티션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헉!”

“왜, 무슨 일인데?”

“전형무 멱살 잡혔어.”

원단에 손상 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멱살을 잡히고도 남을 상황이다.

“적당히 했어야지.”

오트 쿠튀르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상 전체를 수공예로 제작한다.

기계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장인의 혼이 담겨 있기에 더 찬란하고 고급스러운 거다.

이런 촉박한 작업 시간에서 수공예로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런 만큼 더욱 예민하다.

안 맞은 게 다행이라 볼 수 있었다.

“상황종료. 경비원들 어디서 나타나서 금방 상황 종료돼버리네.”

“왜 주먹이라도 오갔으면 했냐.”

“남자가 멱살까지 잡았으면 강냉이 한번 털어야지.”

“언제 어른 될래?”

내 꾸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니엘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바느질을 이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마를 들어 올려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실 정리 조심히 해 원단 안 상하게.”

“네, 네 잔소리꾼아.”

나는 다니엘을 뒤로하고 내 작업에 몰두했다.

잔소리는 했지만, 일에서만큼은 프로정신이 강한 녀석이다.

내가 유일하게 작업적으로 믿을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더 신경을 쓰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니엘의 목소리가 파티션을 울렸다.

“완성!”

“마네킹에 입혀.”

다니엘이 마네킹에 퓨전 한복 치마를 입히고 나에게 브이를 내보인다.

“작업에 집중 좀 하자.”

“까칠하시네.”

다니엘과 아버지가 치마를 완성했다는 건.

어느덧 경기의 종료 시각이 다가오고 있는 의미였다.

“생각보다 빨리 끝날 거 같은데.”

“다행이에요.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정말 잘하던데요. 패턴 작업 정말 놀랐어요.”

시간적 여유로 인해 긴장이 살짝 완화됐다.

그로 인해 작업속도가 전보다 빨라졌고 바느질도 더욱 정교해졌다.

경기 종료 20분을 남겨둔 상태에서 내가 먼저 상의 세 벌의 바느질을 끝마쳤다.

“바느질 끝!”

“저도 끝냈어요.”

류미리도 바로 내 뒤를 이어 겉옷을 모두 완성했다.

“실크는 프레싱 작업 조심히 해야 해요. 진짜 조심히.”

“사장님….”

“앗.”

조바심에 실수를 해버렸다.

한복을 오랫동안 배워온 그녀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작업일 터였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프레싱 공정이란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다리미를 이용해 원단에 선과 포인트를 주어 보기 좋게 만드는 방법이다.

프레싱을 하지 않은 옷은 완성된 옷이 아니라는 명언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사용한 실크 원단은 열에 매우 취약하므로 프레싱 작업을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원단이 줄어들거나 변형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이유에 수건이나 두꺼운 천을 가져다 댄 후 최대한 증기를 이용해 조심히 프레싱을 해야 했다.

“어깨선부터.”

나는 공업용 다리미의 옆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가며 증기가 잘 뿜어져 나오는지 확인했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한 번의 실수로 몇 시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쓱쓱!

“좋았어. 잘 나오네.”

나는 원단에 물기를 한가득 먹이는 느낌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물기를 머금고 증발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질수록 선과 포인트가 형태를 오래 보존한다.

“오 좋아.”

나는 프레싱 공정이 끝난 의상을 마네킹에 조심히 입혔다.

이로써 아리raM의 의상 디자인& 메인 의상 제작 단계가 마무리됐다.

.

.

.

2차전 종료 시간이 됨과 동시에 전형무가 마이크를 들고 파티션 앞으로 다가왔다.

아까 멱살이 잡힌 거 치고 안정적인 진행을 이어갔다.

“프로답네.”

나는 그의 능숙한 방송능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안나수엘라의 디자이너와 재봉사들의 매서운 눈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그들 모두 전형무를 죽일 듯 쳐다보고 있는 걸 내가 목격했다.

전형무는 제작 이후의 일정을 빠르게 알리고 잡다한 설명을 남긴 후.

얼른 개인 대기실로 도망치듯 떠났다.

“제작 종료 10, 9, 8……. 종료를 알립니다. 각 브랜드는 완성된 의상을 디스플레이관으로 옮겨 주세요.”

류미리는 옮겨지는 의상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했다.

패션 용어로 끝손질이라고 한다.

완성된 의상에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과 부자재 부착에 대한 여부를 점검하는 거다.

우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마네킹을 하나하나 옮기기 시작했다.

목련관 입구부터 시작해.

일렬로 브랜드마다 의상을 전시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만들어졌다.

“어떻게 소품을 다 구하긴 구했네. 멋진데 고풍스러워.”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겼어. 다니엘 진짜 사람은 착하게 살면 복을 받나 보더라.”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그런 게 있어.”

“하여튼 협회나 서울시나 진짜 자기들 마음대로라니까. 갑자기 무슨 디스플레이야 디스플레이는.”

“내 말이!”

다니엘과 마네킹을 옮기며 불만을 토로했다.

원래라면 완성한 의상을 파티션에서 이동 없이 심사가 이루어졌을 거다.

그 이후 방송을 통해 전국적인 ARS 투표로 순위를 결정 냈을 테지만 이번에 살짝 방식이 달라졌다.

ARS 투표는 없어졌고 오프라인으로 전시된 의상을 오프라인 관객들이 심사하게 되었다

목련 2관을 일반인에게 개방시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최 측과 서울시 담당자들의 의견이 수렴된 듯 보였다.

“편하게 ARS로 하지. 무슨 오프라인 투표야!”

“뭐, 틀린 말도 아니니까.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랑 보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도 하고. 질감, 광택, 눈으로 실제로 보는 것과 다르긴 하지.”

합리화는 시키고 있지만 사실 나도 썩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디스플레이관 설치 덕분에 고생 아닌 고생을 엄청나게 했다.

* * *

대회 일주일 전.

갑자기 주최 측의 공지 메일과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처음 열린 대회이니만큼 변동사항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요구였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협회 관계자인데 공지할 게 있어서 전화를 드렸어요.”

“네 말씀하세요.”

“브랜드별로 디스플레이관을 설치해야 할 거 같아요. 상부 명령이라서 일주일 안에 목련관에 마련된 공간에 디스플레이관 실내장식해 주세요. 메일로 공문 전송해 드렸고 의상에 맞는 콘셉트로 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일주일 만에 그걸 어떻게 합니까!”

“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처지라.”

“하….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받은 후.

바로 신지혜의 메일을 열어 공문을 확인했다.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일정이 빡빡하다.

도와주는 지원도 하나 없이 브랜드 자체에서 일주일 안에 디스플레이관을 완성해야 한다니.

더 큰 문제는 디스플레이도 심사기준으로 삼는다는 내용이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진짜!”

그때 내가 목소리를 들은 사무실 직원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가장 가까이에 있던 류미리가 다가와 상황을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 아닙니다. 하던 일 하세요.”

그녀에게 말한다고 일이 해결될 게 아니다.

디스플레이가 점수에 들어간다면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하다.

여기 있는 인력으로는 안 된다는 소리였다.

내가 나선다고 해도 크게 나아질 게 없다.

같은 디자인 부분이지만 아예 다른 분야나 마찬가지다.

‘신 디렉터한테 연락부터 해야겠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광고, 모델선정, 매장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MD, VMD 부분의 전문가를 통칭하는 용어로 이 분야에서는 신지혜가 전문가다.

“제발 받아라.”

신호가 한참을 이어지는 중.

신지혜가 전화를 받았다.

“무… 슨 일이세요?”

“자고 있었죠. 미안해요. 급한 일이라.”

“아 잠시만요 물 한 잔만 마시고.”

잠시 후 잠긴 목소리가 살짝 돌아온 신지혜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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