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걱정하지 마라.”
이번 대회의 관건은 나와 류미리가 아닌 아버지와 다니엘이다.
치마 전체를 층층이 바느질하려면 엄청난 집중력과 속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에 두 사람의 역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 지시사항이 끝이 나자.
전형무의 시작 사인이 떨어졌다.
“브랜드 관계자 여러분 시작하겠습니다. 고고!”
전형무의 신호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지시에 맞춰 류미리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다니엘은 바늘에 실을 꿰기 시작했다.
순간 류미리가 하의 패턴지 한 장을 나에게 건넸다.
“벌써?!”
“뭘 놀래요.”
방금 류미리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아무리 연습을 했더라도 치수를 재지도 않고 바로 패턴 작업을 하다니 놀라운 솜씨였다.
일반적인 눈썰미와 기술을 뛰어넘었다.
재단용 가위가 움직일 때마다 디자인한 의상의 부분별 패턴지가 만들어졌다.
“스카이 블루부터.”
나는 원단을 펼쳐 패턴지를 가져다 대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최대한 바느질을 하는 두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정확하고 깔끔하게 재단을 이어갔다.
“다니엘!”
“넘겨.”
나는 재단한 하의 부분을 다니엘과 아버지에게 넘기고 상의 부분을 재단해 나갔다.
그때 패턴 뭉치를 든 류미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다 했어요. 저도 바로 재봉작업 들어갈게요.”
“정말요? 이렇게 빠르셨어요.”
“한번 해본 건 눈대중으로 가능하더라고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류미리 덕분에 작업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가장 신중해야 하고 한 번의 실수로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작업이 바로 의상 패턴 작업인데.
그녀는 정확하고 빠르게 일을 마무리해줬다.
우리는 가봉처리 없이 재봉작업을 시작했다.
“모두 바느질 최대한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마네킹에 원단을 걸어 바느질을 시작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경연대회 [의상] 4.
* * *
화창한 봄날의 아침.
생각이 많은 아침 머리를 식히고 싶어 멍하니 공방 앞을 청소 중이다.
‘고가구랑 소품을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오 웬일?”
“나 지금 고민이 많거든 시비 걸지 말고 출근이나 해줄래.”
“분위기 보니까 너 아직 가구 못 찾은 거야?”
“서울을 다 뒤졌는데 없어. 지방에 가야 하나?”
“인테리어는 다 끝났을 것이고 소품만 집어넣으면 되는데. 너도 머리 아프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대회까지 2일 남았어.”
“나도 알아. 출근해서 일이나 해. 오늘 주문 130개 추가됐더라.”
“젠장!”
다니엘은 내 말을 듣고 허탈한 얼굴로 공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몸을 돌려 공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손수레를 끌고 나타난 할아버지가 보였다.
“아침 일찍부터 많이 모으셨네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 공방 총각 아녀.”
할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손수레를 끌고 이 앞을 지나가셨다.
오늘은 이른 시간부터 공방 앞을 지나가셨다.
“이 바지 정말 좋더라고. 내가 식당 주인이랑 고물상 사장한테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그러세요. 잘 입어주시면 감사하죠.”
“받기만 해서 어째.”
“괜찮아요. 남는 원단으로 만든 거라니까요.”
“그러지 말고 오늘 우리 집에 한번 가자. 어때?”
“좋죠. 저야. 그래서 오늘 빨리 오셨죠.”
봄이 오기 전 추운 늦겨울 아버지의 공방에 처음 들어오는 날.
기계와 원단들이 들어오고 공방 정리를 하고 있던 그때.
할아버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버지 저분은 하루도 빠짐없이 여기 지나가시네요.”
“저분 참 대단한 분이야.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들었는데 부지런하시고 나도 몇 번 대화해봤는데 대단하신 분이야. 모은 돈 얼마 전에 이 앞에 학교 있잖으냐. 어디더라.”
“신성초등학교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 그래그래. 거기에 다 기부하셨다. 어렵게 사는 애들한테 주라고.”
“아.”
다음 날 나는 공방을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할아버지의 낡은 바지였다.
무릎이 모두 해져서 너덜너덜한 바지였다.
“안녕하세요.”
“누구요?”
“이 앞에 가죽공방 사장 아들이에요. 맨날 지나가시길래.”
“형만 씨 아들인가 보고만. 이야기는 들었는데 텔레비전에도 나왔담서.”
“아….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도 하셨어요?”
“자랑할 만하지 뭘.”
할아버지는 활짝 웃으시며 내 손을 잡고 유명한 사람 만났다며 좋아하셨다.
왠지 이 모습을 보는데 내 콧잔등이 찡해졌다.
‘할아버지 생각나네.’
잠시 잊고 있던 할아버지가 생각나서인지 눈물이 흘러내리려는 걸 겨우 참았다.
나는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따뜻한 두유 하나를 할아버지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거 드시고 가세요.”
“아이고 고마워라. 이걸 그냥 받아먹어도 되나.”
“그럼요. 가게 들어오셔서 몸 좀 녹이고 가세요. 오늘 날이 춥네요. 꽃샘추위래요.”
“…….”
“왜요? 불편하세요.”
“아니, 아니. 내 옷이 더러워서 냄새도 나고 미안해서.”
“괜찮아요. 저랑 같이 가세요. 손수레는 가게 앞에 두면 되니까.”
“그럴까.”
사실 나는 억지로라도 손수레 할아버지를 가게로 데리고 가려 했다.
만약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한 번쯤은 내가 만든 좋은 옷을 만들어 줬을 테지만 그러지 못해 매번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 낡은 바지를 보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은 듯 기쁜 마음이 돋아났다.
“잠시만 여기 앉아 계세요.”
“응, 아따 따뜻하고 좋네.”
정리 중이라 짐을 뒤져가며 줄자를 찾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사무실에서 나오더니 할아버지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리어카 할배요. 오늘도 나왔어요?”
“놀면 뭐해. 일해서 한 푼이라도 모아야지.”
“어이구 오늘 엄청 춥다던데. 몸 좀 사리면서 하세요. 한 푼 두 푼 모아서 또 다 기부할 거면서.”
“그러니까 해야지.”
“누가 말립니까.”
두 분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여기 있네.”
나는 구석에 떨어진 줄자를 꺼내.
대화 중인 두 분에게 다가갔다.
그때 아버지가 줄자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줄자는 왜?”
“할아버지 바지 하나 만들어 드리려고요.”
“오. 좋은 생각이다. 나도 맨날 하나 사다 드린다는 게 깜빡해서 우리 아들 솜씨 좀 발휘해봐라. 4년 등록금 값은 해야지.”
“네, 네.”
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일어나 보세요.”
“어이구 됐어. 뭐하러 젊은 사람 고생시키게. 이 앞에 5천 원만 주면 싼 거 많아.”
할아버지는 미안했던지 연신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번쩍 들어 올리시고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좋으면서 빼지 말고 일어나요. 할배도 기부하는데 우리는 못 합니까. 우리 아들 좋은 마음 좋게 받아요.”
“아이고. 이걸.”
할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두 손을 비비며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금방 끝나요. 허리 81 기장 92…….”
“고마워. 총각. 이 신세를 어찌 갚아야 하나.”
“안 갚아도 돼요. 좋은 일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라도 보상받으셔야죠.”
“아. 맞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옛날 젤리 두 개를 나에게 건네셨다.
오래전 우리 할아버지도 좋아하시던 그 젤리였다.
“줄 게 이거뿐이네.”
“고맙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럼 다행이고.”
“이틀 정도 걸릴 거 같아요.”
“그렇게나 빨리? 바쁜데 천천히 해서 줘.”
그렇게 할아버지는 언 손을 녹이고 다시 손수레를 가지고 사라지셨다.
“아들 만드는 김에 봄·여름·가을·겨울 걸로 2장씩 만들어서 드려. 여러 번 드리려고 하면 한사코 안 받으시려고 할 거니까.”
“네. 좋은 원단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고맙다.”
“아버지가 왜 고마워요.”
“뭘 물어. 잘 자라줘서 고마운 거지 일이나 해.”
“네.”
그렇게 할아버지와의 작은 인연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수레를 뒤에서 밀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
‘다니엘 또 나 혼자 갔다고 난리 치겠네.’
나는 괜한 걱정을 하며 천천히 걸어 나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레가 천천히 멈추어 섰다.
“여기야. 우리 집.”
도착한 곳은 2층 주택이었다.
내가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가니 방 하나와 부엌이 보였다.
단독주택에 문들은 틀어막아 여러 세대가 나누어 쓰는 듯 보였다.
“이래 살어. 데리고 왔는데 누추해서 미안하네. 방은 엄청 따뜻하니까 앉아 있어.”
“누추하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요.”
“농담도.”
농담이 아니었다.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는 집 구조였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그때의 추억이 말이다.
내가 잠시 추억에 젖어있으니 할아버지가 아침밥을 차려 오셨다.
“혼자서 차리신 거예요?”
“그럼 혼자 산 세월이 얼만데.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었거든.”
할아버지가 차려준 음식은 평범했다.
된장찌개와 삶은 양배추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뭔 일 있어?”
“아니요. 너무 맛있어서요.”
“고마우이.”
그렇게 아침밥을 얻어먹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신지혜도 없는 상태에서 회사를 계속 비울 수 없었다.
“저 이제 가보려고요.”
“나도 같이 나가. 일해야지 나도.”
할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와 대문으로 걸어 나가려는 그때.
내 눈에 일렁거리는 밝은 광채가 보였다.
* * *
“무슨 일이에요?”
“미리 씨 공방에서 출발할 때 원단확인 안 했어요?”
“분명 확인하고 들고 왔는데…….”
원단에 문제가 생겼다.
류미리가 들고 온 원단은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프랑스 원단의 실크가 아니다.
등급이 한참 미치지 못하는 나일론 함량이 높은 실크로 연습을 하기위해 비치해둔 원단이었다.
실크 등급은 최상품 6A부터 차례대로 5A, 4A로 숫자가 낮아질수록 함량의 차이를 보인다.
내가 마네킹에 원단을 가져다 대는 순간.
비침과 광택이 달랐기에 기존에 사용하던 연습용 원단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어요. 시간도 없고 이대로 합시다.”
“죄송해요.”
류미리만의 실수만은 아니다.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실크 패턴을 주문할 당시.
우리가 디자인한 꽃무늬 패턴을 연습용에도 집어넣어 주문했다.
완성된 의상의 느낌과 코디 부분에 대해 알아야 했기에.
근데 그게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리 씨 괜찮으니까. 재봉작업에 집중해요.”
“네….”
너무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 큰소리로 그녀를 꾸짖은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작은 실수가 큰 나쁜 결과를 만든다는 걸 몸소 느껴야 한다.
‘메인 디자인 하나가 날아간 거뿐이야. 정신 차리자.’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원단들은 내가 주문한 프랑스제 원단이다.
류미리와 나는 의상의 틀을 잡아가며 제작에 집중했다.
.
.
.
“1번 3번 카메라, 2번 아리raM 클로즈업.”
“네.”